2015-01-22

책: 메모. '뉴스의 시대'(알랭 드 보통/문학동네) - 마무리. '내면으로부터의 뉴스'


어째서 우리 대중은 계속 새로운 것을 확인하는 걸까?
시간이 흐르면 이 모든 뉴스들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이는 공포와 큰 관련이 있다. 뉴스에서 눈을 떼고 나서 아주 짧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습관처럼 불안이 축적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들이 쉽게 잘못되는지, 또 순식간에 벌어지는지 안다. ...
  바로 근처에는 안정과 평화가 있을 것이다. 정원에서는 산들바람이 자두나무의 가지를 흔들고, 거실의 책상에는 조금씩 먼지가 쌓여가고 있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평온이 존재의 혼란스럽고 난폭한 핵심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다는 걸 인식하고 있으며, 따라서 잠시 뒤에는 나름의 근심이 습관처럼 자라난다.

...

  그러나 여기에는 특별한 종류의 아슬아슬한 쾌락도 있다.
아무리 무시무시하다 해도, 특히 최악의 소식일 때조차도 뉴스는 
우리가 스스로를 감내해야 하고, 
자신만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고자 영원히 애써야 하며, 
우리의 제한된 궤도 안에 있는 몇몇 사람들이 내 생각과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고투해야 한다는, 
폐소공포증을 유발하는 그런 부담들을 덜어주는 위안이 될 수 있다.

  뉴스는 우리에게 각기 할당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거나 흥미진진한 문제들을 찾아냄으로써, 그리고 이 더 큰 관심사들이 자기 자신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불안과 의심을 삼켜버리도록 용인함으로써 우리를 사로잡은 문제로부터 도피하는 탈출구가 될 수 있다. ...
  기근, 침수된 마을, 잡히지 않은 연쇄살인범, 내각의 사퇴, 내년 최저생계비에 대한 경제학자의 예측 같은 외부의 혼란이야말로 우리를 내면의 평온이라는 감각으로 인도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
  그런 뉴스를 접하고 나면 예측 가능한 일상의 쳇바퀴 앞에서, 우리의 이상한 욕망을 우리가 정말 단단히 비끄러매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동료를 독살하거나 친척을 안뜰에 묻어버린 적이 결코 없는 자신의 자제심 앞에서 새삼 안도한다.

...

  뉴스는 왁자지껄하게 쇄도하면서 우리의 가장 깊은 자아에 침투해왔다.
오늘날 고요한 순간을 누린다는 건 얼마나 커다란 성취인가.





내면으로부터의 뉴스

  우리는 새로운 것은 중요한 것일 수밖에 없다고 즉각 가정한다.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뉴스가 지배하는 시대에 온전한 판단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움과 중요함은 그 범주가 겹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서로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
  우리는... 거대하고 긴급한 소식을 듣기 위해 기꺼이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다.

  우리가 초조함을 느끼고 스스로에게 벗어나고 싶어질 때, 뉴스로 달려가는 것보다 
더 나은, 더 몰입되는, 더 믿을 만한 해결책이 뭐가 있을까.

...

  그 규모와 편재성으로 인해, 현대의 뉴스는 우리의 독립적인 사고 능력을 말살시킬 수 있다. 세계적 언론기관의 유럽 지부 조정실에는... 소크라테스의 죽음부터 전화의 발명에 이르는 23세기라는 시간에 걸쳐 인류 전체가 생성했던 것보다 더 많은 데이터가 단 하루 만에 그 건물로 쏟아져들어간다. ... 거기에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주제와 지리적 영역을 포함하는 기사들이 있다. ...
  이곳에서는 지역적이고, 토착적이며, 천천히 움직이는 모든 것을 뒤에 남겨놓고선 열광적이고, 무중력적이며, 거대한 왕국에 들어설 때 들뜨는 것과 같은 어떤 것을 제공한다.

  단언컨대 우리는 현대, 즉 방향 상실과 무작위성의 시대에 존재한다. 이 시대의 우리는 새로운 기술 덕택에 우리의 지역적 특색을 저버리고, 자연의 리듬을 폐기했으며, 넋이 나가버린 수많은 동료 피조물, 즉 자신만의 불운과 야망과 기이함을 뒤섞은 짐을 진 이들이 거대한 도시들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선명하게 인식한다.

  뉴스가 교체되는 주기는 거침없이 빠르다. 어제의 뉴스가 얼마나 중차대했는지와 무관하게, 매일 아침마다 불협화음이 한꺼번에 다시 울리기 시작한다. 뉴스의 중심에는 병원 응급실에도 있는 제도화된 기억상실증이 존재한다. 핏자국은 밤마다 깨끗이 씻겨 나가고 죽은 자들에 대한 기억은 지워진다.

...

  자신을 성찰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
  하지만 우리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길 정말 간절히 피하고자 하는 그때가 바로, 불편하지만 잠재력 있는 생생한 생각들을 배양하는 순간이다. 
  뉴스가 우리를 붙잡아매는 순간도 이때다. 내면 탐구에 반대하는 이 뉴스라는 존재가 얼마나 질투심이 많은지, 그리고 우리 내면으로 얼마나 깊이 침투하기를 소망하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먼저 자신만의 생각을 잉태시킬 만한 인내심 많은 산파의 기술을 터득하지 못하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는 단단한 무엇을 하나도 갖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무선 신호를 끊고 읽을거리도 손에 쥐지 않은 채 멀리 기차 여행을 떠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방랑하는 사색에 시동을 거는 절제용기를 지닌 엔진의 지속적인 현존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런 여행 말이다.
  낡은 책의 책장을 넘길 때 얻게 되는, 혹은 반쯤 부서지고 이끼로 뒤덮인 사원의 제단에서 얻게 되는 태도와 이데올로기, 감정의 양상, 마음의 철학이 있다.
  우리는 스크린 위에서 계속 변화하는 화소와의 접촉과, 제본과 서체로써 장래에 갖게 될 생각의 한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고 웅변하는 묵직한 양장본의 본문 페이지와의 접촉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뉴스가 부추긴 인상에서 놓여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때때로 상상 속에서 우주로 솟아오를 수 있어야 한다. ... 가장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조차 다른 은하의 풍경이 입증하는 영겁의 시간에 부딪혀 소멸하는 곳으로.
  우리는 우리 주위를 둘러싼, 딱히 달변은 아닌 종들이 내건 훨씬 낯설고 보다 경이로운 헤드라인에 주목하기 위해 가끔 뉴스를 포기하고 지내야 한다. ... 어린아이들을 비롯한, 우리의 멜로드라마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 모든 생명들은 우리의 불안과 자기도취를 상쇄한다.

  뉴스가 더이상 우리에게 가르쳐줄 독창적이거나 중요한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챌 때 은 풍요로워 진다. 그때 우리는 타자와 상상 속에서만 연결되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타자를 정복하고 망가뜨리고 만들거나 없애는 일을 그만둘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할당된 짧은 시간 속에서 견지해야 할 자신만의 목적이 있음을 자각하면서 말이다.





% 이 메모는 책 '뉴스의 시대'(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문학동네) 중 '프롤로그' 및 '결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 이 책은 1장 '프롤로그'로 시작하여 8장 '결론'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그 사이에 있는  여섯 개의 장에서는 각각 정치, 해외, 경제, 셀러브리티, 재난, 소비자 정보로 항목을 나누어 뉴스를 성향별로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이 개별 장들로부터 많은 것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지만, 그럼에도 '프롤로그'와 '결론'에 담겨 있는 내용만으로도 성찰과 영감의 계기를 마련해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뉴스, 뉴스와 비슷한 오늘날의 또 다른 매체 예를들면 SNS,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자신에 대한 것들입니다.
  곱씹고 싶은 단락들이 많았습니다. 이 책 메모들을 통해 이 책의 성격과 윤곽을 기본적으로 이해하는 데 기본적인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그 관심이 나머지 디테일한 여섯개의 장으로 확장되는데도 또한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책: 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 트레일러

*출처: 문학동네


책: 메모. '뉴스의 시대'(알랭 드 보통/문학동네) - 프롤로그


  
  보통 하루 이내의 간격을 두고(...특히 불안한 상태라면 고작 십 분이나 십오 분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뭘 하고 있었건 간에 뉴스를 확인하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춘다. 앞서 마지막으로 뉴스를 일별한 이후 이 행성 곳곳에서 일어난 인류의 엄청난 성취, 재난, 범죄, 전염병, 복잡한 연애사에 관한 결정적 정보를 잇달아 투여받겠다는 기대를 품고 일상을 잠시 멈춘다.

  이제부터 하게 될 일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이 익숙한 습관을 지금보다 훨씬 더 이상하면서도 조금은 위태롭게 보이도록 해보려는 연습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Why I wanna go to Beijing'


*my application for 2015 spring semester exchange student program in Beijing Technology and Business University.


  If somebody wants to go to 'New York' in 1900s, he was not supposed to say the reason. And ,of course, he couldn't. Even though he says any purpose or any plan, he will see, hear and experience truly more things than he says.

  Now, in 2000s, Am I supposed to say the reason why I want to go to 'Beijing'? And can I say it in only some words? But, I could say the university that I want to go to, Beijing Technology and Business University, is just 'Beijing' in other words, and I feel as I am surrounded by some huge wave, because I believe 'Beijing' is namely 'World' nowadys.

  So, I mainly hope to improve my languages and have the chance to re-understand about China through BTBU programs, and futhermore I imagine some detailed images that my whole body will dash against in Beijing.

  In spring, 2015, I am
- talking with a lot of people from various countries in the campus and the streets of Beijing.
- having a attention to characteristical arts of China that is being hugely impressed world art today.
- growing deep in my eyes while I stroll every corner of Beijing with my camera that is extension of my eyes.

  For this, I will follow the schedule of the exchange student program of BTBU next spring semester. And I also hope you ,BTBU, help me in my schedule.


2014, fall
hongsung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