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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7

'근심과 불안'을 연출하는 감독과 대담할 기회가 있었다.

의외로 장난기가 가득했고 재담꾼이었다.
다음 시즌 구상으로 슬쩍 넘어가려할 때, 그의 말을 끊고 물었다‬
‪"당신은 누구죠?"‬
‪라캉이 통역을 해줬다.‬
‪그는 조용히 가면을 바꿔쓰곤 주춤하며 무대앞으로 걸어나갔다.‬
‪하나둘 방청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2018-01-05

세계대전 이후 인류는 더더욱 '죽음'에 집착한다.

사회,국가적 이념 무장에서 부터, 한 개인이 삶의 의미를 찾는 고뇌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최종 근거점으로 오늘날 강력하게 작용한다.
그리고 이제, '죽음'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 듯 하다.
당신의 헛웃음 뒤로 점점 옅어지고 있는 모든 것의 토대.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게 될까?

2017-02-01

32.2.1 : a Seoulite

I have lived in Seoul since 2013.
And I became a Seoulite(a citizen of Seoul) today morning on paper as well.

2016-06-06

我心还动,


 
向很多方向,那漂亮的地方或那热情的人。
但我身体越来越消失消失有一天一定
我完全消失在我这里或在我人生
所以我现在心越来越动可能是着急

 
 
 2016.01.02.
洪成 

in rememberence of Roh

*written by Hongsung Kim, by refering to korean Wikipedia.
*this post is a kind of brief introduction about Roh for foriegners who are interested in Korea and its culture


Roh
盧武鉉, 1946.9.1 - 2009.5.23, 16th president of korea in 2003-2008
   

He was elected for the 16th president of korea and began his job in 2003 under a lot of social pressures.
 
He never graduated a college. So not a few of old generation looked down and ignored him. But he was a lawyer of ‘386 generations’ who hoped and accomplished 'revolution' and 'democracy' in 1980s of korea. When he was alive, so, he was loved by a lot of young generation.
 
 
His social position changing changed almost everything of him, but the true mind for the people who were struggling, suffering and dreaming.
 
(After leaving president office, in 2008, Roh returned to his hometown of Bongha Maeul. And He is still only one president who returned to his hometown to live after leaving office. The constantly growing numbers of visits by his political supporters were seen as a threat to the other parties.)
 
Fourteen months later, Roh was suspected of bribery by prosecutors, and it, the subsequent investigation, attracted public attention in the whole country.
 
This scandal, the defeat of its successor of the Democratic Party in the National Assembly and the defeat of Roh's designated successor in the presidential elections, marked a decline in the political fortunes of the 386 Generation that had brought Roh to power.
 
   
 
Roh, eventually, committed suicide on 2009.5.23 by jumping from a mountain cliff behind his home in the village which he was born in and lived his chilhood in.
 
About 4 million people visited Roh's hometown and the village in the week following his death.
 
And still there are a lot of people who remember him.  
 

 
2016.06.06.

顯忠日. The Memorial Day in Korea

2015-01-22

'Why I wanna go to Beijing'


*my application for 2015 spring semester exchange student program in Beijing Technology and Business University.


  If somebody wants to go to 'New York' in 1900s, he was not supposed to say the reason. And ,of course, he couldn't. Even though he says any purpose or any plan, he will see, hear and experience truly more things than he says.

  Now, in 2000s, Am I supposed to say the reason why I want to go to 'Beijing'? And can I say it in only some words? But, I could say the university that I want to go to, Beijing Technology and Business University, is just 'Beijing' in other words, and I feel as I am surrounded by some huge wave, because I believe 'Beijing' is namely 'World' nowadys.

  So, I mainly hope to improve my languages and have the chance to re-understand about China through BTBU programs, and futhermore I imagine some detailed images that my whole body will dash against in Beijing.

  In spring, 2015, I am
- talking with a lot of people from various countries in the campus and the streets of Beijing.
- having a attention to characteristical arts of China that is being hugely impressed world art today.
- growing deep in my eyes while I stroll every corner of Beijing with my camera that is extension of my eyes.

  For this, I will follow the schedule of the exchange student program of BTBU next spring semester. And I also hope you ,BTBU, help me in my schedule.


2014, fall
hongsung kim

2015-01-10

엄마가,

  곧 생일이니 내려와 미역국이라도 먹고 가라고 하셨다. 한 주를 보내며 '다음에나요'로 대답이 바뀌었다. 오늘, 그래서 자취집으로 직접 올라와 미역국을 끓여 주셨다.

우리 북경 교환학생 조 첫 모임

  비자는 물론 이미 항공권까지 예매를 끝낸 타지역 교환학생 조의 소식을 건네 들으며 위기감이 느껴졌다. 3월 2일 또는 3일 우리 조 다섯 명은 북경수도공항에 어떤 일이 있어도 놓여질 것이다. 그날부터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쳐도 우리는 잘 견디고 이겨나갈 수 있을까.
  존 F. 케네디가 연설을 통해 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중국사람들은 '위기危機'를 두 글자로 표기합니다. 한 글자는 위험危을 뜻하고, 또 한 글자는 기회機를 의미합니다.  위기가 닥치면 우리는 위험을 알되 그 위기 속의 기회 또한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The Chinese use two brush strokes to write the word crisis.  one brush stroke stands for danger; the other for opportunity.  In a crisis, be aware of the danger but recognize the opportunity.")
  근대 백 년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세상의 중심국이었던, 두 글자만으로 근대 백 년 최강국의 리더의 마음을 사로잡는 전통을 지닌 그 나라의 심장부로 가고자 한다. 그 격렬할 뜀박질 위에서 우리 모두는 두 다리를 꼿꼿이 세우고 그 곳을 누릴 수 있을까.
  일단은 이 곳에서 작은 일부터 힘을 모으기로 했다. 

2015-01-09

상준이

이번 주 부터 홍릉초등학교 도서실에서 교외근로를 시작했다. 그런데 오일동안 한번도 제시간에 퇴근하지 못했다. 이게 다 저 녀석 때문이다. 매번 종료시간을 아랑곳하지 않고 늦게까지 책을 보는 주제에 하루는 나한테 떡볶이도 얻어먹었다.  지금도 퇴근을 못하고 있다. 저 녀석, 상준이...!

2013-08-20

2013년 2학기.


헤이, 주드. 시작해 봐!

넌 함께 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구나.
그런데 그게 바로 너란 걸 모르니.

헤이, 주드. 넌 하게 될 거야.
그것들은 너에게 달려 있어.


Hey Jude, begin!

You're waiting for someone to perform with.
and don't you know that it's just you.

Hey Jude, you'll do,
The movement you need is on your shoulder.


- 'Hey Jude' by Beatles 중에서

2013-07-24

서울에 있는 예술독립영화관, '씨네큐브' (광화문점, 2013.7.21)


오늘 영화 한 편을 보고 왔다.
올해들어서는 처음이다..
그런데 흔히들 가는 멀티플렉스 대형 영화관이 아니라, 
작고 소규모 상영이 이루어지는 '씨네큐브'란 곳에 찾아가서 보고 왔다.

씨네큐브는 서울에 있는 예술독립영화관 중 한 곳이다.
비슷한 곳이 서울에 6~7개 남짓 있다.
이 곳들은 말 그대로 작품성 있는 영화들을 독자적으로 배급 및 상영한다.
국내외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작품들이,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상영 기회를 잡지 못하고 쓰러져 갈 때에
이 영화관들이 부축해주고 자리를 마련해 주는 모습이다.

사실 대중들로부터는 상업성과 수익성이 높지 않은 영화들이다.
그래서 영화 시장 전반에서도 외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작품들을 상영하여 영화관을 운영할려고 하니
으레 영화관은 작아지게 되고. 상영 영화나 횟수도 적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 찾은 이 곳이 더 중요한 영화관으로 다가왔다.

나는 특별하지 않는 한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도 일년에 두세번은 가곤하는데,
내가 인상적으로 본 영화들의 국내외 감독들이 새로운 작품을 들고 오면
조금 고민해보고 괜찮다 싶으면 가서 본다.
국내 감독으로는 이창동 감독이 '밀양'과 '시'를 내놓았을 때 
개봉일에 맞춰 보러 갔던 기억도 난다.

올해들어서는 보고 싶었던 영화가 한 편 있었다.
미국의 리차드 링클레이터라는 감독이 만든 '비포 미드나잇'이라는 영화다.
18년 전 '비포 선라이즈', 9년 전 '비포 선셋'에 이어 마지막 연작으로 내놓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올해 5월에 개봉해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도 많이 상영되고는 했다.
그런데 그 때 좀 미루었다가 볼려다가 어느 날이 되니 영화가 모두 내려있었다.

그리고 잠시 잊고 있다가
이번에 예술독립영화관 같은 곳을 한번 구경이라도 가봐야 겠다고 생각하며 
'씨네큐브'를 알고 오게 되었는데, 때마침 '비포 미드나잇'을 상영하고 있었고
아직은 종영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말로만 듣던 예술독립영화관을 처음 와보는 날이고,
올해 처음 영화 한편을 보는데 그게 내가 좋아하는 비포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게 됐다.




씨네큐브 광화문점

서울역사박물관 맞은 편 도보로 내려가다 보면 
흥국생명 건물 지하에 있는 걸 볼 수 있다.



단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표소가 있고 간단한 영화안내지가 진열되어 있다.
영화관은 2개다. 1관,2관.
일요일 늦은 시간에도 사람들이 적잖이 있었다.
우리들의 삶과 마음에 깊이 접근하려는 예술독립영화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래도 많은 것 같았다.



7월 21일 현재 상영되고 있는 영화는 4편이다.

'마스터'(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

'인 더 하우스'(프랑수와 오종 감독)

'엔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켄 로치 감독)


('마지막 4중주'는 상영예정작)




*간단한 감독 소개(네이버영화에서 인용)

- 폴 토머스 앤더슨
 미국의 영화 감독이자 각본가, 영화 프로듀서이다. 《리노의 도박사》 (1996년)와 《부기 나이트》 (1997년), 《매그놀리아》 (1999년), 《펀치 드렁크 러브》 (2002년), 《데어 윌 비 블러드》 (2007년), 《마스터》 (2012년) 총 여섯 편의 영화의 각본을 쓰고 감독했다.

- 프랑수와 오종
프랑스에서 주목 받는 젊은 영화감독 중 한 명으로 그가 만든 단편 및 장편 영화들은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유수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첫 장편인 <시트콤> (1998)은 1998년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출품되었으며, <8명의 여인들>, <스위밍 풀>, <리키>, <레퓨지> 등은 국내에도 개봉되었다.

- 켄 로치
영국의 영화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이다.
1964년 데뷔하여, 《레이닝 스톤》, 《빵과 장미》 등 주로 노동계급, 빈민, 홈리스 문제 등 사회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를 많이 제작했다. 켄 로치 감독 자신도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사회주의적 신념을 표현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1977년 대영 제국 훈장 4등급(OBE) 수훈자로 지명되었으나, 이를 고사했다. 국제영화제에서 다수 수상경험이 있으며, 2006년에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칸느 국제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 보려고 하는 '비포 미드나잇'



*간단한 영화 소개(네이버영화에서 인용)

1995년 <비포 선라이즈>
유럽 횡단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
비엔나에서 꿈같은 하루를 보낸 두 사람은 6개월 후 플랫폼에서 만날 것을 약속한다.

2004년 <비포 선셋>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 ‘제시’는 파리의 오래된 서점에서 마치 운명처럼 ‘셀린느’와 만난다.
시내 곳곳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아련함을 깨닫는 두 사람.

사랑의 두근거림과 기다림을 아는 당신께.. 
마지막으로 다시 시작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따사로운 석양빛이 인상적인 그리스의 아름다운 해변마을 카르다밀리.
'제시'와 '셀린느'가 재회한다. 다시 열차에서 봐도 말을 걸어오겠냐는 그녀의 질문에 당연하지 라고 대답하는 '제시'.
바로 지금, 이들의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랑이라는 여행이 시작되는데...




일요일 마지막 상영시간에 맞춰 영화를 보게 됐다.



첫 날이라 멤버십카드도 발급해주었다.
자신의 생일이 있는 달에는 무료로 영화 한편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씨네큐브의 안내문인데.. 예술영화관다운 안내문이다.


'누군가는 씨네큐브에서 영화를 보려고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고 했습니다.
 누군가는 집에서 씨네큐브 까지의 걸음의 수를 
세어본 적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곳이라는 사람,
 눈이 오면 반드시 가야할 곳이라는 사람,
 꽃이 필 때 만큼 좋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
 씨네큐브는 그렇게 친구처럼 여러분과 함께 했습니다. 

   우정은 때로 멀어집니다. 
사랑이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 변하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좋은 친구가 늘 옆에 있어주듯 씨네큐브는 변하지 않습니다.
 당신과의 추억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만 깊어질 것입니다.'



관람객들이 예술독립영화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벽면에 스크랩해두고 있었다.



상영중인 영화외에도 여러 기사와 비평들이 걸려있다.


지난 달 말에는 이창동, 홍상수 감독 특별전을 했었나 보다.
상업과 흥행을 외치지 않는 '비주류' 감독들,
그러나 나에게 만큼은 '주류'로 다가오는 자신만의 영화를 가진 감독들.
다음에 이런 특별전이 있다면 한번 와보고 싶다.



이전 시간대의 영화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씨네큐브 영화관에 처음 들어가, 처음 영화를 보게 되었다.


상영시간이 가까워 지자 점점 사람들이 몰려들어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관(2관)에 들어서니 6~70석 남짓의 좌석이 있는 소박하게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영화 속 인물들의 대사와 몸짓이, 눈 앞으로 생생하게 다가왔다.


예술영화관 한 곳에 아직 걸려있어서
볼 수 있었던 '비포 미드나잇'


  영화는 어땠을까?


씨네큐브에서는
'아직은' 이 영화가 종영되지 않고 있다.


2013.7.21
김홍성


Diary: 2013.7.20 - 7.23


Diary 



2013. 7. 20


정오 무렵에 철산역 부근에 모여 고교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나서 친구 차를 얻어 타고 수원으로 내려 갔다. 수원은 내 기억에 처음 와보는 날이었다.
오늘 이 곳에 온 이유는 같은 과 동생인 유섭이를 만나기 위해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유섭이를 만나서 수원을 같이 둘러보기 위해서다.
유섭이는 방학이 되면서 수원 집에 내려가 있었는데, 언제 한번 놀러오라고 했었었다.
때마침 경기도 광명으로 축구하러 오는 오늘, 수원에 가겠다고 미리 말해두었었다.

...

수원에 도착하여, 프로야구장 주변 홈플러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유섭이가 마중을 나왔다.
유섭이는 같은 과의 동생이지만 나보다는 두 학번이 높다.
한 학기를 지내며.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기회들을 통해 친해진 동생이다.
유섭이는 학기 수업들을 잘 관리하는 편이다. 덕택에 학기 때는 기숙사에 들어가 지낸다.
지금은 방학이라 집에 내려와 있다.

...

내가 수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4시를 넘어서고 있어서 이른 시간대는 아니었다.
그래서 수원의 많은 곳을 둘러볼 수는 없었다. 오늘 저녁에 다시 서울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원의 대표적인 사적지인 화성(華城)을 서로 상기시키며.. 
일단 걷기 시작했다. 화성이 나올 때까지...

...

이 얘기 저 얘기를 주고 받으며, 또 수원의 이런 저런 모습들을 바라보며 걷다보니
걷는 게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다. (안 힘들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 참..을 걸어간 끝에 우리는 화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화성 성벽을 따라 또 한 참...을 걸어올라 갔는데, 보람이 있었다.
날이 좋았기 때문에, 그곳에서 우리는 수원 시내 전경을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인구 100만의 수원은 아찔할 정도로 밀집되어 있고 많은 고층건물로 시 외곽이 둘러쌓여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보호되고 있는 화성 터 내부의 마을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유섭이도 어릴 적에 올라 온 기억밖에 남아 있지 않아서 그랬는지,
오늘 올라 와 수원을 내려다 보며 많이 즐거워 했다.
유섭이네 집 근처도 저 멀리 보였다.




화성을 둘러보고 내려와서는 이제 같이 저녁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이곳 저곳으로 걸어가며 어디서 먹을지 고민하다가, 수원역 앞에 가서 먹고 헤어지기로 헀다.
그리고, 화성에서 수원역까지는 또 한 참..이 걸렸다.

...

역 앞은 번화한 곳이었다.
수원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였다.
우리는 뭘 먹을지 살펴보다가 사람들이 많은 볶음밥 집에 들어가 낚지볶음밥을 같이 먹었다.
다 먹고나서 먼길 떠나기에 앞서 나는 잠시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런데 그 짧은 사이 유섭이가 우리 먹은 밥 값을 계산하고 있었다.
수원 같이 돌아봐 준 것도 고맙고해서 내가 사주고 갈려고 했는데..
유섭이 녀석.. 참..
다음에는 내가 꼭 사겠다고 말하며 가게를 나왔다. 
나는 오늘 유섭이가 고맙기도 하고, 지금 유섭이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데 와있다는 거를 떠올리며, 우선 유섭이가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걸 보고나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

수원에서의 짧은 하루 였다.
시간이 많이 않아 아쉬웠다.
그래도,
유섭이 덕택에 잘 보고 간다.


2013.7.20
김홍성








2013. 7. 22


사촌동생인 홍경이, 홍중이로부터 저녁 시간대에 문자가 왔다.
밤 늦게 김포공항에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중을 나가겠다고 했다.
두 동생은 6월 말부터 시작된 유럽여행을 마치고, 베이징을 경유하는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귀국하는 날 연락주면 마중나가겠다고 해놨기 때문에, 또 동생들을 오랫만에 한 번 보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10시가 가까운 시간에 김포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

두 동생은 91년 동갑으로 여지껏 많은 것들을 서로 같이 해온 편이다. 같은 91년 생이지만
사촌 간에는 위아래가 필요하다는 전통에 따라 홍경이가 형이고 홍중이가 동생이다.
홍경이는 넷째 작은아버지 댁의 막내 아들이고, 홍중이는 다섯째 작은아버지 댁의 막내 아들이다.
내 이름은 홍성, 내 동생은 홍철, 사촌 동생 두 명은 홍경, 홍중.
우리 사촌간은 이렇게 '홍洪'자 돌림을 쓴다.
이름도 서로 가깝듯이, 어릴 때는 명절같은 때에 거의 빠짐없이 시골 할아버지,할머니댁에 모여서 같이 어울려 놀고는 했었다. 
20대가 되면서는 서로 자주 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어릴 때 서슴없이 지냈던 사이가, 언제 만나도 금방 다시 회복되는 것은 신기할 정도다.

...

오늘도 그래서 오랫만에 한 번 보고 싶었다.
두 동생은 군대도 비슷하게 가서, 작년말과 올해초 제대도 비슷하게 했다.
그리고는 이번 여름 유럽여행을 같이 가기로 함께 결심했다.
홍경이는 몇달 간을 힘들게 공장일과 알바를 해가며 돈을 모았다고 한다.
홍중이는 다음 학기 전액장학금을 꼭 받겠다는 약속과 성적으로. 부모님께 돈을 받았다고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두 동생들의 여행이 엉성함과 서투름으로 곳곳이 눈에 띌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동생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완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불완전해서.
유럽에 다가가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청춘에 다가가서.


...

동생들을 공항에서 맞이하고 나니 금방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노원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11시 무렵의 기차를 타야했기 때문이다.
동생들은 홍경이네 집인 인천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동생들이 아쉬운지 나도 인천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공항에 마중을 나와있었다.

...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인천으로 갔다.
동생들과 다음날 새벽 4시가 되도록 같이 먹고 바람 쐬고 얘기나누며 밤을 보냈다.

어릴적 시골집에 모여 별것도 아닌 것 같고도 웃어대며 서로 밤을 지새우던 날들이 스쳐갔다.

앞으로 각자 일들을 해나가다 보면
오늘 같은 기회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하나 둘,, 만들 수 있도록 해봐야 겠다.


2013. 7. 22
김홍성

 
 



 2013. 7. 23


대한, 소민, 경준이와 만났다.
근무와 알바 시간이 끝나는 때를 맞춰 저녁 7시에 봤다.
11학번으로 동기엠티를 같이 다녀 온 동생들인데, 오랫만에 같이 모였다.
나는 아직도 이 곳 대학 주변을 잘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동생들이 이끌어 주는 데로 오늘 막걸리 집과 해물탕 집 한 곳에 가서 먹으며
그곳들도 알게 됐다.
별다른 이야기들은 없었다.
경준이가 얘기를 꺼내면 대한이와 소민이가 격렬히 반응하는 흐름이 주로였던 것 같다.
서로 시간내어 만나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갈 수 있어 좋았다.


2013. 7. 23
김홍성

2013-07-20

SeMa Green 김구림展 -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서울시립미술관, 2013.7.19)


*일러두기.
-김구림展(서울시립미술관) 은 사진촬영이 허용되었기에 직접 찍은 작품 사진 몇 점을 이 곳 블로그에 업로드 합니다. 추후 저작권 보호 발생시에는 블로그 운영자에게 연락주시면 그에 맞게 조치하겠습니다.
-블로그 운영자에게 연락하는 방법: 프로필을 클릭하면 이메일 주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구림展 정보(서울시립미술관 제공)

SeMA Green 김구림展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전시명
SeMA Green 김구림展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전시기간
2013-07-16 ~ 2013-10-13
장소
서소문본관 1층
부문/작품수
설치, 영상, 아카이브 / 약30점
참여작가
김구림
문의
신은진 (☎ 02-2124-8939)

서울시립미술관은 전후 한국미술사에 대한 재조망의 일환이자 세대를 아우르는 한국미술의 균형 잡힌 발전을 위하여 2012년 봄부터 SeMA 삼색전을 기획하고 있다. 2012년 4월에 개최된 청년작가 단체전인 SeMA Blue: 12개의 방을 위한 열두 개의 이벤트전을 시작으로 19명의 중진작가들의 숨겨진 욕망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SeMA Gold:히든트랙전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청년, 중진 작가들의 단체전에 이어 이번에 개최되는 SeMA Green 전은 전후 한국미술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원로작가를 초대하여 그들의 예술세계를 집중조망 해보는 자리를 가진다. 처음으로 SeMA Green전의 문을 여는 작가는 한국미술 제1세대 전위예술가이자 오늘날까지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구림화백이다. 

김구림화백은1936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나 정규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스스로 독자적인 창작의 길을 개척하여, 회화68, A.G.그룹, 제4집단 등 한국전위예술의 흐름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그룹활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또한 해프닝, 설치미술, 메일아트, 바디페인팅, 대지미술, 실험영화 등 회화와 조각에만 집중되어있던 한국의 60-70년대 미술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활동을 지속해왔다. 

이번 SeMA Green 김구림: 잘 알지도 못하면서전시는 김구림화백의 작품세계 중 1960-70년대 실험작품들 위주로 선보일 예정이며, 발표 후 유실된 작품들과, 에스키스로만 존재하고 기술 혹은 현실제약적인 문제로 실현되지 못한 작품들이 대거 전시된다. 특히 69년에 제작되어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으로 공개 상영된 후 원본이 유실된 한국최초의 실험영화 པ분의1초의 의미'를 16mm필름으로 복원하여 선보일 예정이다. 

이 밖에도 1968년에 발표되었으나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열린 '한국작가11인전'을 마지막으로 분실된 한국최초 일렉트릭아트 '공간구조'와 1970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초대되었으나 주최측에 의해 강제 철거당한 거대 얼음설치작품 '현상에서 흔적으로D' 등이 전시될 예정이다. 


















2013-07-18

꿈꾸는 고시원 (2013.7.18)


고시원은 매우 작은 공간이다.
부족하면 부족했지 더한 거는 없는 곳이다.
그래서 누구한테 보여주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이 고시원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래서 늘 깨어있으라고 한다.

서울로 처음오게 되며 살기 시작한 고시원인데,
5년 후 나에게 보여주며
지금의 시간들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또 조그만 추억으로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 기록으로 남겨둔다.





침대에서 한번 굴러 떨어지면 더 굴러갈 곳이 없다.
그래도 공간 활용을 잘해서 인지 이 작은 방 한 곳에
여러 짐들을 들여놓고 살 수 있다.



침대가 다행히 내 키보다는 크다.
밑으로는 수납공간이 있어서 속옷,양말,면티 등을 넣어둘 수 있다.



벽에 지지되어 있는 봉에 꼭 필요한 옷들만 걸어 놓는다.
그래도 게으른 탓에 그 중에 몇개만 골라입게 되는 것 같다.
한쪽 벽에는 서울지도를 붙여놨다. 
브로마이드 크기라서 서울을 둘러보러 나갈 때
한번 살펴보는 것으로 딱 좋다.



개인 신발장이 완전 외부에 있는데, 그 곳에는 신발이 두 개 밖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벽에 걸린 옷걸이에, 신발이 들어 있는 주머니들을 걸어놓는다.
이렇게 해놓고 나니 신발 정리는 잘 되지만, 역시 게으른 탓인지 잘 안 꺼내 신게 된다.
이곳에 큰 우산과 가방도 걸어둔다.




책이나 옷을 둘곳이 없는 것들은 박스에 넣어 벽 한쪽에 쌓아놓는다.
그 옆에는 욕실용품이나 빨래용품을 다닥다닥 붙여놓는다.
공간활용이 잘되고 있는 지점이다.
그런데 비상문 표지판이 눈에 띈다.
가끔씩 문위에서 떨어지면 저기에 올려둔다.




이곳도 공간활용이 잘 된 곳이다.

무엇보다 옷장안에는 옷들이 조금 가득히 있다.
그래서 또 잘 안 꺼내 입는 일이 반복된다.
그 앞 종이가방에는 수건을 잘 개어 넣어둔다.
왼쪽으로 이층 짜리 수납 공간에는, 
학용품이나 물병, 스킨/로션 등 비교적 손이 자주 가는 것을 놓아둔다.
수납장 위에는 지금까지 둘러본 것들의 보충품 같이 손이 가장 안가는 것들을 놓아둔다.



책을 놓아둘 곳이 많지 않아,
이렇게 쌓아 둔다.
저 안쪽 아래에 있는 책들을 꺼내 읽을 땐 조금 힘들다. 



서울에서 처음 생활하게 된 이 곳 고시원.
아직 이 곳에 대해 결론 짓는 말들은 할 수 없다.
나는 아직 여기에 살고 있으며,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거 하나는 분명하다.


고시원, 여름에는 덥다.



2013.7.18
김홍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