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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1

People: 고교친구들과 마주한 남해바다 (전남 여수, '13.8.10-11 // 동찬,석배,우석,헌규)




동찬, 석배, 우석, 헌규



 8월 한여름 무더위 속에 잠을 설치곤 하던 새벽시간에 
오늘은 알람보다 일찍 눈이 떠졌음에도 더이상 자려고 하지 않았다.
정신도 맑아있어서 잠시 조용히 누워 그간의 생각들을 가볍게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어느새 맞춰둔 알람이 울렸다. 새벽 4시 50분.
강남터미널에 예약해둔 익산가는 8시 버스를 타기위해 슬슬 준비를 했다.
오늘은 고등학교 친구들 동찬,석배,우석,헌규와 점심무렵에 익산에 모이기로 했다.
같이 모여서 동찬이 차를 타고 남해바다를 보러가기러 했다.
익산에서 모이는 건, 익산이 우리들이 사는 곳들 중 가장 남쪽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동찬이가 익산에 있기 때문이다.

 동찬이는 익산에 있은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줄곧 이곳에서 생활해왔으니 말이다. 원광대 한의학 학부 6년이 무엇보다 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인턴을 거쳐 레지던트 마지막 3년차를 하고 있다. 동찬이가 평소 강조하는 대로 자신의 연고와 자리를 스스로 만드는데에 그 시간들을 잘 쏟아온 것 같다. 정말로 그런지는 내 눈으로 확인해 본적도 있었다. 인턴 때 한 번, 레지던트 때 한 번. 두 번이나 여행중에 동찬이한테 느닷없이 들렸던 기억이 난다. 병원에서는 신참이었을때라 저녁때까지 병실 환자들을 체크하며 빠듯하게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다 하루 업무를 마치면 일단락 되는가 싶다가도, 병원안 작은! 숙소에서 넉넉하지 많은 않게 지내며 환자들 간호에 긴장을 늦출 수만은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동찬이는 그 시절이 많이 힘들수 밖에 없었겠지만, 그런 모습에서 의사로서 동찬이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동찬이는 지금까지도 가끔씩 말하지만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좋은 가정을 꾸리고 살며, 한 마을에 한의원 하나를 차려서 그곳 사람들 치료해주며 살기를 바란다.
그런 앞날을 살아가려는 자세가 병원 신참시절에도 내 눈에는 들어오곤 했다. 느닷없이 찾아 온 나에게도, 일이 끝난 후 자기방으로 치킨을 시키고 동기누나들까지 같이 불러서 병원 얘기를 재밌게 들려주곤 했다. 잠도 재워줬으니, 작은!방이었지만 거기서 두 번이나 숙식을 해결해 준 셈이다. 다음날 아침 다시 출발하는 나를 배웅하며, 일상처럼 근무를 시작하는 동찬이 모습에서 안정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동찬이는 조금은 고민이 있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내년부터 해야할 군역 담당과 그 이후의 진로등에 대해서 고민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모두는 동찬이가 겪고 있는 성장통을 저마다 다른 모습이지만 하나같이 앓고 있는 걸 확인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안정된 생활을 해서 아무 고민도 어려움도 없이 사는 것보다는, 이렇게 고민들을 끊임없이 앉고 살면서도 그것들을 해결해 나가려고 노력하는 우리들 모습이 더 좋은 거 아니겠냐고 말을 던졌다. 동찬이가 그 말을 떨어뜨리지 않고 잘 받아준 거 같아 고마웠다. 그리고 동찬이가 다시 던져주는 말들에도 나와 다른 친구들도 기꺼이 두 손을 모아, 석배는 슬라이딩을 해서라도 받아냈다. 동찬이가 또다른 10년 후에는 어느 동네에 한의원을 차려 맥을 짚고 있을지.. 조금 이르지만, 지금부터 기다려진다.



나는 서울에 살고있는 헌규와 함께 버스 시간에 맞춰 터미널에서 만나, 익산으로 향했다.
세시간이라는 긴 시간은 헌규하고, 지난번 같이 축구를 끝내고 차로 나를 데려다 주며 얘기했던 것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며 갈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이전에 적었던 글에서 헌규는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했던거 같다. 그러면서도 청춘으로써 무언가 고민하고 있다는 느낌도 적어 두었던 것 같다. 오늘 헌규는 그 것들에 대해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헌규는 지금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자신을 둘러싼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것을 말하고 설득하는 과정 속에서 마음이 편치많은 않은 것 같다. 나는 헌규를 억지로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헌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위해서 내가 갖고 있는 신념들과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예들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었다. 헌규가 그 말들에 조금이나마 힘들 얻은 것 같아 내가 오히려 고마웠다. 헌규는 자신의 생각을 조금더 구체화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신중하면서도 긍정적으로 이어갔다.
이번 여행에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정말 힘이될 수 있는 소리들을 헌규에게 직,간접적으로 많이 해주었다. 이런 모습을 위해 지난번 헌규에게 이번 여행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어봤던 거였는데, 그때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고, 이렇게 정말 같이 다녀올 수 있게 되어 헌규와 우리 모두에게 더 좋았던 시간이 된 것 같다. 같이하는 여행은 끝났지만, 우리들이 같이 나눠준 이야기들이 헌규에게 힘이 되고, 그래서 지금 갖고 있는 고민들을 잘 정리해서 나아가고 있는 더 나은 모습으로 다음에 보기를 바란다. 여행을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서는 헤어지기전에 헌규가 밥도 사줬다, 그래서 다음엔 내가 사주겠다고 했는데.. 이 말도 힘을 보태주고 있겠지..헌규야?




세시간을 휴게소 한번 쉬고 줄곧 달려와 헌규와 내가 먼저 동찬이한테 도착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친구들을 기다렸다. 석배와 우석이는 청주에서 같이 기차를 타고 오고 있었다. 우석이는 근무를 쉬는 날들이기 때문에, 지난번에 같이 축구하러 광명으로 올라오던 때처럼 마음 편하게 익산으로 내려 오고 있었다. 그런데 석배는 한결 빠듯한 마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석배는 지금 포천에서 장교로 군생활을 하고 있다. 한 주 밀려서 받아낸 2박3일 휴가에, 금요일에는 청주 집으로 내려왔고, 여행 첫날인 토요일은 그렇다 쳐도, 일요일엔 복귀 시간을 고려해서 또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포천이면 우리나라 맨 위쪽인데, 남해를 보려면 우리나라 맨 아래로..  2박3일동안 그 거리를 왕복해야하니 빠듯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석배를 모시고! 다녀야 하는 우리들로서도 같이 빠듯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럼에도 석배는 꼭 바다를 눈앞에서 보고자 했는데, 그 의지덕택에 밤과 낮 모두에 남해바다를 마주할 수 있었다. 석배는 이런 자세로 소위 시절을 잘 마치고 지금 중위를 하고 있다. 학군으로 조금 늦게 임관했지만, 자기 아래에 있는 병사들을 잘 이끌고 잘 챙기며 그로부터 능력을 인정받고 만족감과 자신감 속에서 군생활을 잘 보내고 있다. 그런데 석배에게 이번 여름은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누구보다 잘 하고 있는 군생활에 대해 그것을 장기적으로 지속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를 맞고 있다. 친구들은 이에 대해서 다들 솔직하게 자기 의견을 말해주었는데, 그 안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말들이 기억난다. 석배가 지금 장교로서 잘하고 있는 것은 그곳이 꼭 군대여서라기 보다는, 이미 그만큼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석배가 되어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군대가 되었든 사회가 되었든 어디를 가든 인정받고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들이었다.
나는 여기에 더해 예전부터 석배가 가끔씩 나에게 들려주었던 자신의 꿈들을 기억해내 모두들 앞에서 들려주었다. 석배는 대학에서 토목학을 전공했는데, 예전에 나한테 그랬다. 자신은 자기 이름으로 된 다리 하나를 놓고 싶다고. 그당시 감상적인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던 이야기였지만, 나는 아직도 그 얘기가 인상깊게 다가온다. 석배가 앞으로 그런 다리를 결국 놓느냐 안놓느냐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순수함이 석배가 갖고 있는 장점이란 걸 일깨워 주고 싶었다. 또 하나 기억나는 걸 이야기 했다. 석배는 동찬이가 말하듯 수학하면 석배지라고 할 정도로 수학을 잘하고 좋아했다. 그래서 학문으로서 수학 공부를 계속하는 것도 생각해봤다고 애기했었다. 그러다보면 교수같은 직업을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두가지 이야기에 대한 기억들을 되돌려주며 석배가 조금은 더 넓게 진로를 결정했으면 했다. 석배뿐만 아니라 우리 다섯 모두가 겪고 있는 진로에 대한 고민들에는 '안정'이라는 문제가 담겨있다. 경제적,사회적 안정과 같은 문제들 말이다. 우리들은 각자의 고민을 말하고 서로 의견을 말하기를 반복하면서도, 그 이야기들이 겉은 다르지만 안은 다르지 않은 것임을 알면서도, 긴 대화의 끝에도.. 우리 모두 여기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들이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중에 '안정'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렇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안정이라는 것은 고요한 물 위에 떠있는 종이 돛단배는 아니었다. 파도가 가파르게 너울대고 비바람이 거세개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에서도그 중심을 잃지 않고 있는 어선 한 척의 모습, 그것이 우리가 공통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안정'인 것 같았다. 그래서 석배가 지금 마음 속에 품고있는, 스스로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여자친구에게 안겨주려는 '안정'에 대한 고민을.. 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지지한다. 




 먼저 모인 셋은 기차를 타고 오는 둘을 마중나갔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동찬이 차로 움직였다. 원래 차가 저렇게 좋은게 아니었는데.. 끌고 다니던 차가 고속도로에서 느닷없이 멈추는 바람에 불행중 다행이다 싶어 차를 바꾸었다고 한다. 예전차에서 느껴지던 차안의 소음과 땅의 굴곡이 어느덧 추억이 되었다. 그걸 경험해보지 못한 헌규만 유일하게 매우 아쉬워 했다.
점심은 동찬이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논길을 파고들어가면 한가운데 나타나는 전통식 맛집에서 보리밥등을 함께 먹었다. 그리고 먼~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전남 여수를 가기로 했는데, 가는길에는 순천이 있다. 나 말고는 아무도 순천만을 가본적이 없어서 일단 순천으로 가서 순천만을 걸었다. 매표소 입구에서는 전망대까지 올라가기로 했는데, 전망대가 있는 산 입구에서 다들 살기 위해 멈췄다. 정말 그 어느때보다 뜨겁고 습한 날이었다. 우리는 멈출줄 아는 현명한 판단에 대해 서로를 칭찬하며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그 길을 다시 돌아서 나오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매표소 출구를 빠져나와 아직 건강히 살아있는 것에 만족하며 다시 차에 올랐다. 그리고는 본 목적지인 여수를 향해 갔다.  

그런데 이때부터 라디오를 간혹 틀어놓고 달리던 차안에, 익숙한 노래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동찬이가 비틀즈의 '1'앨범 CD를 튼 것이다. 다들 차창밖 순천의 전원적 풍경과 우리의 여행이라는 느낌에 잘 맞아떨어진다고 좋아했다. 그럼 그렇지.. 누가 돈 모아서 선물한건데.
비틀즈의 1위곡들 27개를 모아 놓은 앨범으로, 좋은 가사와 그와 딱들어맞는 멜로디가 인상적인 곡들이 많았다. 즉각 해석은 아니었지만, 나는 알고 있는 정보를 가삿말과 함께 몇몇곡에 붙여서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다. 익숙했지만서도, 막상 그 가사를 알고나니 친구들이 더 멋진 곡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동찬이는 대학을 다니며 밴드에서 보컬을 했다고 한다. 그걸 잘 모르고 사 주었던 거긴 하지만, 두 해 전에 사주었던 CD를 잘 틀어주니 듣기가 더 좋았다. 내가 이 CD를 선물해준 데는 사연이 있다. 동찬이와 우석이는 내가 대학을 가겠다고 대입학원을 조금이라도 다니겠다고 얘기를 했을 때, 선뜻 매달 학원비를 보태주기로 했다. 나는 말이라도 고맙다고 했지만, 정말 매달 자신들이 보여줄 수 있는 성의내에서 나에게 도움을 주었다. 나는 대입시험이 끝나고 다른 모든 계획에 앞서 공장을 다녔다. 그렇게 두달 정도를 2교대로 다녀, 무엇보다 친구들에게 받은 돈을 갚았다. 그렇지만 그 고마움은 다 갚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책이나 음악CD 같은거를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성의내에서 주곤 한다. 석배는 그 당시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석배한테서는 공부 내용등에 대해 조금씩 도움을 받았다. 이것도 내가 앞으로 계속 갚아가야 할 고마움이다.




드디어 여수에 들어섰다. 나는 작년에 전국기차여행중에 여수를 걸어서 여행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그때는 오기 힘들었을 곳이었는데, 우석이의 추천에 따라 돌산대교로 먼저 향했다.
우석이 말로는 시드니 보다 더 멋지다고 한다. 그런데 도착한 시간이 조금 늦은 편이라 해가 저물고 있었다. 그래서 오래 못보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선 여수시내로 가서 숙소를 잡기로 했다. 여수엑스포가 열렸던 곳에 가까이 있는 여수항으로 갔다. 가까운데 숙소를 잡고 가볍게 씻은 후 근처에 있는 횟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나는 회를 잘 먹지 않아서 모르는 음식들도 많았는데, 친구들이 해주는 설명을 들으며 하나하나 먹어보았다. 이렇게 저녁을 먹으며, 긴 시간동안 우리는 서로의 고민들에 대해 얘기하고 의견을 나누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 먹고 일어날 때는 배도 물론 불렀지만, 모두들의 마음도 조금씩은 불러있었다.
그 마음을 차분히하고, 캔맥주와 과자 몇개를 사서 바로 앞에 있는 여수항 둑으로 갔다.
바닷물을 발 아래두고 둑에 나란히 앉았다. 밤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친구들과 남해바다를 마주하고 앉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율동이 있는 걸그룹 노래를 누가 틀어놓자 몇몇은 따라하고 몇몇은 그 모습을 보며 웃고는 했다. 옆에는 낚시하는 분들도 몇분 계셨고 가족들이 나와서 쉬고있기도 했고 어린애들도 그 옆을 뛰어다녔다. 그렇게 바닷바람에 선선하게 있다가, 모기가  하나 둘 물기 시작할 때쯤 숙소로 그만 들어갔다. 들어가서는 조금씩 뭘 더 먹고 케이블 방송 한두개를 틀어놓고 보았는데, 다들 피곤했는지 자정무렵에는 모두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일찍 일어나서 올라갈 준비를 해야했다. 석배의 빠듯한 일정에 따라.
나는 6시에 맞춰둔 알람 때문에 가장 먼저 일어났는데, 아직 시간 여유가 있어서 친구들은 깨우지 않고, 조용히 세수하고 여수항에 나가보았다. 해가 지금 막 뜨는 건 아니었지만, 하루를 맞아 새롭게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우유나 하나 사먹으면서 둑 옆 의자에 앉아 조용히 바라보다가 숙소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 놈들이 7시가 다되가도록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8시에는 출발해야 된다고 어제 그렇게들 얘기해놓고..

소리내어 잠을 깨웠는데, 그래도 안 일어날려고 해서 에어컨을 끄고, 불을 켜놓았다.
그러자 하나 둘 씻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둘 숙소를 나올 채비를 갖췄다.
바로 돌아 올라오기가 아쉬웠는지 우석이가 시간을 내서 돌산대교를 다시 가보자고 했다.
아침무렵이라 어제보다는 더 잘볼 수 있을거라고 했다. 우석이 말대로 먼 바다와 대교 그리고 여수 시내까지 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어제 역광이라 못찍은 사진을 비로소 하나찍었다. 사실 하나가 아니라... 수십방 찍은 거 같다. 정말 그럴만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제는 올라가야 했다.
석배와 우석이가 예매해 둔 돌아가는 기차 시간에 무엇보다 꼭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전남 구례 부근에 지리산 자락 곁에 있는 휴게소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얘기하거나, 졸거나, 때론 창밖의 멋진 풍경을 보며 익산으로 다시 달려왔다.
내려갈때나 올라올때나 운전은 모두 동찬이가 했는데, 차 보험을 위해서라도 차 주인이 직접 해야한다고 그랬다. 그렇긴해도 정말 고생이 많았다.
우석이도 내려갈때나 올라올때나, 업데이트 안된 동찬이의 네비게이션을 대신해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며 조수석에서 끊임없이 길을 알려줬는데, 역시 정말 고생이 많았다.
석배와 헌규와 나의 편안한 뒷자석 여행에 고생해 준 두 친구가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다음 여행을 생각해서도 미리 고마움을 전하는 바이다.

 익산에 도착하니 헌규와 내가 타고 올라올 서울행 버스가 출발을 바로 앞두고 있었다.
익산역에서 석배와 우석이가 타고갈 기차 시간에 앞서,
서울행 버스가 익산버스터미널에 먼저 있었다.
그래서 우리 둘이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표를 끊고 버스에 오르기 전에 모두 같이 인사를 나눴다.
짧은 이틀이었지만 이렇게 시간을 내어 모여서
같이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것 같다.
다음에 또다른 여행을 기약하며,
잘 올라가라고, 너희도 잘 가라고, 그리고 잘 있으라고,
인사하고 손 흔들었다.
서로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앞으로 힘이되기를 바라고,
다시 볼때까지 모두 건강하기를 바라며.


2013. 8. 11
김홍성


2013-07-24

People: 고교친구 승섭, 규형, 우석이와 만난 뜨거운 오후 (2013.7.20, 철산역 부근)




규형, 승섭, 나, 종성, 우석



낮 12시 부터 2시까지,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 뜨겁게 축구를 했다.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오후 시간대였다...
지난 번 처럼 종성이네 일본공대 친목팀에 우리들이 용병으로 합류해서 공을 찼다.
지난 번에 같이 사진을 못찍었던 승섭이, 그리고 오늘 찾아 온 규형이 우석이와 함께 
끝나고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종성이도 물론)
이 날은 경기가 끝나고 같이 밥을 먹은 후
내가 수원으로 바로 내려가야 할 일이 있었는데,
승섭이가 고맙게도 자기 가는 길에 나를 수원까지 태워다 주었다.



승섭이는 지금 용인에 일시적으로 머무르며 직장을 다니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우리 반 일등은 언제나 승섭이었다.
그만큼 착실하고 노력하는 친구였다. 
웃기도 잘 해서 편하게 다가설 수 있는 친구다.
수원까지 차를 타고 가며 나눈 이야기 중에 기억에 남는 것 하나는
승섭이가 일본생활과 한국생활 모두에 정이 잘 든다는 점이었다.
승섭이는 도쿄에서 대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자신의 청춘의 많은 부분을 그곳에서 갖추어 온 게 된다.
그래서 앞으로의 미래도 그곳에서 꿈꾸는 이야기들을 하곤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국에 일시적으로 머무르며 하고 있는 생활들이
승섭이에게는 향수와 또다른 즐거움들로 다가오는 듯 했다.
승섭이의 말을 잘 들어보면,
자기가 지내고 있는 곳의 사람들과의 관계가 승섭이를 그렇게 이끄는 듯 했다.
어디를 가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들이, 자신이 있는 곳에 정을 들게 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 장기적으로는 어느 정도 선택을 해서 생활할 곳을 결정해야 겠지만,
우선은 두 나라가 그리 멀지 않다는 점이 승섭이에게는 조금이나마 마음의 여유를 주고 있었다. 



2013년 6월 어느날 서울에 올라와 생활하게 된 나에게,
아직 서울 생활이 낯설다면 낯설 시기에 규형이가 문자를 주었다. 
다른 친구를 통해 알게 되어 나에게 연락을 주었던 것인데
나는 반갑고 고마워서 한 두주가 채 지나지 않아 규형이를 만나러 퇴근 시간에 맞춰 신촌에 직접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그 규형이가 오늘 축구 하는 데에도 왔는데 경기 중반 멋진 골까지 넣었다.
그리고는 바로 무릎에 부상을 입고 경기가 끝날 때가지 벤치에서.. 편히 쉬었다.
자기 무릎이라 별거 아닌듯 대했지만, 다른 사람의 무릎이라면 조금 달랐을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이 다친 곳이 그 사람의 마음이라면, 분명 더 달랐을 것이다.
규형이는 지금 세브란스 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 과정을 밟고 있다.
규형이에게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소중하게 다루려는 걸 느낄 수 있다.
고등학교 때의 준수한 외모와 외향적인 성격을 고려해보면,
정신과를 담당하고 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잘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규형이는 그 역할에 딱 맞는 친구같다.
규형이는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줄 줄 아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일이 고되지 않냐는 질문에도, 자신은 그냥 잘 들어주기만 한다고 대답하는데,
나는 잘 들어주는 것만큼 어려우면서 중요한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을 묵묵히 정성들여 해나갈 수 있는 데에,
규형이가 지닌 내면이 딱 들어맞는 것 같았다.




오늘은 우리들이 다녔던 고등학교가 있는 청주에서
우석이가 아침부터 부지런히 올라와서 같이 공을 찰 수 있었다.
평일에 근무를 마치고 쉬는 날이었는데, 친구들 볼 겸 이 곳에 와서
땀 좀 같이 흘리자는 말에, 선뜻 가깝지만은 않은 이 곳까지 와줘서 고마웠다.
우석이는 고향 청주에서도 꾸준히 봐왔지만, 이제 이렇게 다른 곳에 와 만나고 있으니
느낌이 조금 새롭기는 했다. 그러나 10년을 넘게 보아 온 우석이는 한결같은 친구다.
언제나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게 살고 있다.
고등학교 때는 자신의 학비를 보태기 위해, 
학기 중에도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들을 꾸준히 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대학 때에도 이어졌고, 반도체 대기업 회사에서
근무하는 오늘까지도 변함이 없다.
우석이는 이론보다 실전에 더 강하다고도 할 수 있다.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이고,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 아니면
함부로 얘기하지 않는다. 반면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기꺼이 하나의 이야깃 거리로 꺼내놓을 줄 아는 여유가 있다.
작년부터인가는 회사생활과 대학원 과정을 병행하고 있는데,
힘내서 잘 마치고, 가끔씩 말하는 자신의 더 큰 목표에 다가설 수 있기를 응원한다.




오늘 함께 모였던 
친구들에 대해 지금 내가 느끼는 것들을 적어 보았다.
글로 적어보니 더 분명하게 친구들이 마음에 다가오는 거 같기도 하다.
참 배울 점이 많은 친구들 한 명 한 명이란 생각이 든다.
참 좋은 친구들이다...
여름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다음에 볼때도 모두 힘내고 있었으면 좋겠다.



2013.7.20
김홍성

2013-07-07

People: 고교친구 종성이, 헌규와 오랫만에 공차기 (철산역 부근, '13.7.6)




도훈, 종성, 헌규, 나



어제는 그리웠던 친구들과 다시 만나 공을찼다.
지난주 친구 결혼식에서 정말 오랫만에 만나 반가웠는데,
그날 헤어지면서 공차자고 해놓고, 오늘 정말 찼다.
그런데.. 날이 공차기에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종성이 팀이 오전10시부터 오후2시까지
철산역 인근 축구장을 빌려서 쓰는데에 나랑 헌규가 같이 간건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림자가 발빝에만 숨어있을 정도에서 해는 강하게 내려쬐고 있었고,
구장은 인조잔디인 덕택에 아지랭이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오랫만에 같이 공찬다는 즐거움으로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다.



종성이는 친구들이 국내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을 고3때
일본공대 국비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갔었다.
그리고 지금은 병역담당겸 국내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몇주마다, 그때 일본공대로 갔다 온 동기나 선후배들과 
주기적으로 모이면서 같이 공을차고 있었다.

그런데 그 축구하는 날에, 각자의 친구들이 있으면
용병 자격으로 데려와서 같이 공을 차곤 했나보다.
오늘은 나와 헌규가 거기에 용병 친구로 같이 간 거였다.
우리 둘 말고도 도훈이와 찬호도 왔다.
학교다닐 때는 이 친구들 이름만 좀 들어봤을뿐 잘 알지 못했는데,
어제 같이 공차면서, 또 얘기해보면서 조금씩 알게됐다.
고등학교때 친구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정감있는 친구들이었다.
학교때는 몰랐지만 앞으로 꾸준히 만나면서 더 친해지고 싶은 친구들이었다.
(찬호는 부모님이 오셔서 집에 일찍 가냐고 사진은 같이 못찍었다.
그리고 또 한명. 
뜻밖에 만난 중1때 같은 반이었던 승섭이도 일본공대 다녀온걸 그제서야 알았다.
다시봐서 반가웠는데, 다른거하고있냐고.. 역시 사진은 같이 못찍었다.)



암튼, 종성이 따라 와서 친구들도 오랫만에 보고 땀흘리며 공도 차서 좋았다.
용병으로 온 우리들은, 회비도 안내고 물냉면을 하나씩 얻어 먹기도 했다.
어제는 주말이었지만 시간이 안되서 못 온 친구들이 더 있다.
공을 차거나 다른 모임이 있어 머지않아 다시 만나게 될텐데,
헌규가 나한테 문득 얘기했듯이 고등학교때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 든다.
사회적 관계가 아니라, 순수하게 친구였던 서로들이었기 때문에 더 정이 간다.



2시 무렵이 되니, 구장을 빌린 또다른 팀이 하나 둘 구장에 들어와 몸을 풀고 있었다.
우리는 경기를 마무리 짓고, 풀어놓았던 짐과 음료수등을 뒷정리했다.
종성이는 동기선후배들과 사우나까지 간다고 해서 먼저 가라고 인사를 했다.
종성이는 붙임성이 좋아서 자기 팀을 축구 외적으로도 잘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학교다닐 때 그런 모습들이 변하지 않고, 지금도 간직하고 있어서
종성이가 참 멋져보이기도 했고, 이렇게 친구들 모일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기도 했다.
다다음주에 다시 보자는데, 그날도 정오시간대라 종성이말대로 '사망조심'해야할 거 같다.
승섭이와 도훈이는 각자 차가 있어서 집까지 잘 몰고 가라고 인사했다.



나는 철산역까지 걸어가 7호선을 타고 돌아올려고 했는데,
헌규가 미숙한 운전솜씨지만.. 자기 차로 나를 태워줬다.
원래 철산역까지 한 5분만 타고 올려고 했는데,
이얘기 저얘기 하다보니 어느새 헌규네 집까지 한시간 정도 달려왔다.
그리고도 부족했는지, 헌규네 집근처 한티역 지하에까지 내려가서 얘기했다.
나는 이름도 처음듣는 역에서 집으로 편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헌규는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인 적도 없었는데 친해진 친구다.
워낙에 정이 많고 남을 잘 배려하는 친구다.  
어리광 잘 부리게 생겼는데, 실제 그렇다.
그런데 차를 타고오면서 얘기를 하다보니
헌규도 청춘은 청춘인지, 청춘다운 고민들을 조금은 하고 있었다.
헌규는 지금 직장에서 태양전지 연구팀에서 일하고 있다.
공부하는 걸 싫어해서 연대에서 공대 학부만 마치고 바로 직장을 잡았다.
그렇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자기만의 고민이 있는 듯 했다.
나는 헌규 고민을 잘 들어주기만 했다. 그러다 하나 얘기를 했다.

꾸준히 만나던 친구들과 다음달에 남해로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사실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아는 사이여서, 또 헌규도 정말 그러고 싶어해서
바로 그날 다른친구들과 함께 가기로 결정됐다.

헌규의 고민을 풀기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여행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여행이든 뭐든
헌규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고민하고 있는 헌규의 청춘이 멋져보였다.
그리고 청춘들과 청소년들이 자기 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내 꿈 중 하나이기 때문에,
헌규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그럴려면 얼마후 친구들을 다시 보게 될때까지 
하루하루를 좀 더 노력하며 보내야 할 것 같다.

2013.7.7
김홍성

2012-05-08

HC: Google '모바일 음성검색' UCC 공모전 수상작

*제목: 구글 모바일 음성검색에 관한 불편한 진실
*만든이: 김홍철 외 동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