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04

books: '고요함이 들려주는 것들' - 마크 네포 지음

추천의 글
두 번이나 죽음의 문턱에서 되살아온 이의 용감한 여정
 
  마크가 시를 낭송하는 소리를 들을 때면 삶에서 가장 달콤한 기쁨을 맛보게 된다. 그의 음성에서 모험을 떠나는 것 같은 생생한 분위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크가 숨겨져 있던 보물을 열어 조심스레 시를 읊조리기 시작하면,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기적을 드러내면, 나는 언제나 놀라움에 휩싸인다. 사람들도 숨을 죽인다. 깊고 진실한 어떤 것, 이미 알지만 잊거나 놓치고 있던 어떤 것을 퍼뜩 깨닫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크는중요한 어떤 것을 찾아서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되돌려준다. 그러면 우리는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기억하고 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삶을 만들어가는 건 계속해서 이어지는 나날들이다. 이 시간 속에서 우리는 평화와 기쁨, 치유를 경험한다. 작고 소소한 기적들이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 마크는 이런 기적의 사도다. 일상의 연금술사처럼 보고 음미하고 느끼고 춤추면서 삶의 근원에 이르는 길을 더듬게 해준다.
   하루하루의 날들이 삶을 이루듯, 매일의 일상을 만들어내는 건 순간의 시간들이다. 그래서 충만한 삶은 순간이라는 비옥한 땅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마크는 이 땅을 일구는 농부다. 그는 사랑과 관심, 집중 속에서만 자라는 축복의 씨앗을 이 땅에 심는다. 지금의 순간을 사랑해야 가장 깊은 축복을 얻을 수 있는데, 마크는 지금의 순간을 깊이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준다.
   마크는 암을 앓은 적이 있다. 하지만 암을 이겨내면서 거의 영혼은 활ᄍᆞᆨ 깨어났다. 병으로 고통받으면서 마음을 챙기는 놀라운 힘을 얻은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얼마나 깨어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그의 두 눈과 심장을 통해 보고 느끼게 한다. 마크는 숨 쉬는 것만으로 감사할 줄 아는 죽어가는 사람의 시각도 보여준다. 지혜와 분명한 통찰, 친절, 순간의 골수는 물론 시간의 뼈대까지 빨아들이는 뜨거운 열정도 가르쳐준다. 이런 삶을 갈망하는 사람에게 그는 더없이 좋은 스승이다.
   마지막 항암치료를 마친 후 마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신선한 오렌지로 주스를 만들어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그날의 희망을 생각하면서 창밖 나무 위로 태양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잔 가득 투명한 햇살이 퍼지면그제야 주스를 입으로 가져갔다.
   짧은 기도, 포도주 한 모금과 빵 한 조각, 들고 나는 숨 하나하나, 이마에 뿌리는 성수, 소중한 사람과 나누는 반지, 친절한 말 한 마디, 축복의 말 등 성스러운 의식은 놀랄 만큼 단순한 행위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행위에 주의를 집중하면 영적인 인식의 길이 열리고 영혼의 자양분과 기븜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성스러운 의식을 위한 것이다. 동시에 마크가 우리에게 주는 넉넉한 선물, 삶의 평범하고도 풍요로운 재료로 만든 기적의 향연이다. 그러니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한 장 한 장 음미하기 바란다. 놀랄 준비를 단단히 하고 말이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기적이 삶에 숨어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 웨인 뮬러
   

 
본문에서
 
바로 지금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고 자신이 아끼는 것을 사랑하라.
 
본래의 중심을 발견하고 회복해서 이 자리에 머무르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의 타고난 의무는 온전하게 나 자신이 되는 것뿐이다.
 
본래의 자신으로 존재할 줄 알면 우주는 확실히 그 풍요로움을 드러낸다.
 
 
모든 존재의 핵심에 가까워질수록 노력과 이에 대한 보답이 같아지는 듯하다. 누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진리를 발견한 보답은 정직한 존재를 경험하는 것이고, 이해에 대한 보답은 앎이 주는 평화이며, 사랑에 대한 보답은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되는 것임을
 
우리가 느끼는 고통의 정도는 고통을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져. 고통이 느껴질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넓은 마음으로 상황을 인식하는 것뿐이야.
 
본래의 자신으로만 살면 모든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외부적인 갈등에 직면한다. 이것이 개성 강한 존재들이 감당해야 하는 불화다.
 
반면에 본래의 자신으로 살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데만 급급해서 자기 내면의 소중한 부분을 죽이게 된다. 이때는 내적인 갈등과 맞닥뜨린다. 개성 약한 존재들이 감당해야 하는 불화다.
 
현자와 아이들은 매일의 삶이 선사하는 모든 것에서 쉽게 기쁨을 맛본다. 그들의 심오함과 순진무구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현재의 삶에 깨어 있을수록 신은 모든 곳에 존재하고, 모든 평범함의 외피 속에 비범함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모든 존재들과 친밀해지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모든 것의 앞이 아니라 모든 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 자신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의 일부임을 그냥 지켜보지 않고 느끼며 사는 삶이 바로 사랑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을 사랑하려면 누구도 보지 못하는, 우리를 세상 속에서 지켜주는 자기 존중감을 믿고 충실히 따라야 한다.
 
타인들 앞에서 자신을 열어 보이고 자신의 본질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이렇게 진실한 존재가 돼야만 진정한 연대의식을 느끼고 오롯한 친절을 베풀 수 있다.
 
삶의 충만함을 느끼는 근본적인 길은 두 가지인데, 모두 관계의 진실함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삶을 사랑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자신을 충족시킬 유일한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그 방법은 바로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계속 길을 감으로서 내가 가야 할 곳을 발견한다.
 
정서적으로 치유와 발전을 위해 반드시 느끼고 넘어가야 할 슬픔과 좌절을 받아들이는 것
 
감성적인 능력을 인정받거나 평가받지도 못한 채 가족의 슬픔을 내 예민한 가슴으로 감당해내야만 했다.
 
장애물이나 가로막이 쳐져 있거나 열쇠로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 않은 문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자신과 마음에서 기존의 출구를 지워버린 덕분에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진정한 삶의 기회에 다가갈 수 있었던 적은 얼마나 많은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그 순간에 존재해야 함을. 나의 완전한 본성을 억누르지 말아야 함을. 그렇지 않으면 삶이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온전한 나 자신으로 존재하면 충만감이나 완전하다는 느낌이 찾아온다. 어떤 것도 숨기지 않고 진정한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넘어야 하는 문턱이기도 하다. 이 문턱을 넘지 않으면 삶은 발전하지 못한다. 이것을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면의 것을 끄집어내고 표현할수록 더욱 생기 있는 존재가 된다.
 
표현하지 못한 것들이 가슴을 덮어버리면 가슴은 생기를 잃고 만다.
 
가슴이 문처럼 열리기 전에는 자유로워질 수 없다.
 
삶과 직면하고 진실해진 보답으로 다시 힘이 샘소는 것을 느꼇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삶이 우리를 열어준다
 
외부 세계에 부대껴서든 내부로부터 껍질을 벗어던져서든, 우리는 결국 더욱 진실한 삶을 살게 된다.
 
이따금 원치 않는 경험 속으로 깊숙이 떠밀려 들어갈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지 못한 특별한 도약을 통해 활기찬 삶의 중심으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우리는 지나치게 성취 지향적이어서 눈앞의 것들과 맺은 관계의 가치를 무시하곤 한다. 성취야말로 우리를 완전하게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삶을 경험할 때 비로소 완전해질 수 있는데 말이다.
 
내면에 무엇이 있건 이것을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도록 경험에 헌신하라는 의미다.
 
이력서에 적어 넣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실제로 체험하거나 살아내지는 못한다
 
깊이 이해하려면 먼저 깊이 열려야 한다.
 
우리보다 더욱 큰 흐름에 기꺼이 자신을 맡기는 것이 믿음의 시작이다.
우리를 지지해주는 영혼
 
모든 것에서 자신을 찾기보다는 매일 자신의 내면에서 모든 것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불안해하고 약해지고 쉽게 상처받을 수 있는 용기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한, 우리의 힘은 사라지지 않는다.
 
약함과 강함의 유일한 차이는 자신을 정직하게 직시하고 받아들이며, 약점을 포함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라는 점을 겸허히 인정하게 됐다.
 
우리의 노력이 우리르 어딘가로 인도하리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 우리는 지상에서나마 비상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꺽어버리고 가둘 정도로 목적지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산다./ 사랑과 배움, 영혼의 진실에 대한 갈망을 길들이거나 잠재운다.
 
우리는 진실하게 살아온 만큼만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삶에 가슴을 열어놓은 만큼만 고통과 기쁨을 이해할 수 있다.
 
가슴을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분명하고도 직접적인 길은 두렵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리 내면에서 이미 기능을 다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바꿔야 한다. 우리가 아끼는 것 가운데 활기를 잃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버려야 한다.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나 시각, 낡은 관계 방식이나 믿음, 경험을 받아들이는 뒤떨어진 방식 등
 
본래의 진정한 자기로 존재하면 언제나 특별한 힘을 발산한다. 이 힘은 아무런 의도나 계획이 없어도 그 힘을 접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온기와 빛을 모든 방향으로 발산하면서 진정한 존재로 살아가면, 우리 주변의 모든 존재도 성장한다. 우리의 영혼이 작은 태양처럼 본연의 빛을 뿜어내면, 예수가 말한 사랑과 부처가 말한 자비를 퍼뜨리면,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뿌리는 더욱 깊이 뻗어나간다.
 
진정한 자기로 존재하면, 우리 자신도 활기 있게 삶을 경험하고, 타인들도 더욱 철저하게 진정한 자기로 존재하게 도울 수도 있다. 진정한 자기가 되면, 이 진실의 에너지에 계속 헌신하면, 중요한 한 줄기 빛을 향해 뻗어나가도록 서로를 도울 수 있다.
 
태양이 그 빛을 거둬들일 수 없는 것처럼,
아플 때는 아프다고, 슬플 때는 슬프다고, 두려울 때는 두렵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아주 간단한 것 같지만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매일매일 솔직하게 표현하다 보면, 이 진실의 에너지로 인해 상황이 달라진다. 진실의 즉각적인 표현으로 빛과 온기가 발산되면, 더욱 생기 있는 존재가 된다. 이로써 우리의 영혼도 환히 빛을 뿜어낸다.
 
모든 것을 연결 짓는 것은 최선을 다해 소박하고 겸허하게 매일을 살아가는 개인이다.
 
사람들과 접촉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에 앞서 외부세계를 흡수할 수 있는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닷물이 밀려들면 해변의 가장 작은 구멍들에도 물이 스며들 듯, 세계는 열린 가슴을 통해 우리 안으로 흘러든다. 가장 조용한 기적은 바로 이것이다. 본래의 자기로 존재하기만 하면 세계는 끊임없이 우리 안으로 흘러 들어와 우리를 채우고 정화시켜준다.
 
타인들의 느낌에 언제나 마음을 열어놓되 그들의 생각에는 좌우되지 않는 것. 이것은 가장 분명하면서도 지키기 힘든 영적인 목적 가운데 하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리와 사랑에 우리의 내면을 맡길 때만 진정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삶과 관망의 경계선은 아주 얇다. 하지만 숙고를 위한 한순간의 멈춤이나 휴식으로 이 선은 두꺼워진다. 망설임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힘들어도 다시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무리 작고 익숙한 것이어도 이것을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한다.
 
영적인 삶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햇살을 기다리는 먼지 속에도, 누군가 들어주기를 기다리는 음악 속에도, 한낮의 감각들 속에도 존재한다. 영적인 삶은 우리가 이런저런 책들을 읽고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유용하고 가ᄁᆞ이에 존재한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자신의 속내를 표현하는 행위다. 들어주는 사람은 없어도 좋다. 우리의 영혼이 세상을 헤엄치고 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리하여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말을 하는 행위다. 
 
진정한 자기에게 충실한 것이 곧 자신감
 
가장 가까이 있는 삶의 조각들에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면, 그것들이 곧 중심으로 되돌아가는 또 다른 길을 보여줄 것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보고 생각할 수 있는 모험심과 두려움 속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만 나타나는 토대를.
 
믿음은 마음에 구름이 잔뜩 끼었을 때도 빛의 존재를 기억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다시는 햇살이 비치지 않을 것 같을 때도 태양은 끊임없이 빛을 발산한다. 실제로 어떤 구름이 우리를 뒤덮건 태양은 저편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열기와 온기를 뿜어낸다.
 
눈에 보이는 것에 고착되기 전에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자신감과 사랑, 세상의 빛은 마음의 온갖 요동 밑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가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믿음뿐이다 - 커티스 램킨
 
지금은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언제나 이런 대화를 나눈다는 걸 안다. 많은 창의적인 사람들은 아이 같은 눈으로 믿음을 통해 곧장 사물의 핵심으로 파고든다는 것도 안다.
 
오십이 가까운 지금, 나는 믿음이 하나의 결말이 아니라 모든 존재 속에서 생명력을 발견하는 한 가지 방법임을 겸허히 깨닫고 있다. 

films: '시'(Poetry, 2010) - 이창동 감독

미자는 주민센터에서 여는 시 강좌를 듣게 된다. 시 강좌 첫날 시인 선생님은 강좌가 끝날 때까지 시를 한 편씩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던 중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자신의 손자가 포함된 중학생 집단이 같은 학교 여중생을 오랫동안 성폭행 해왔고, 여자 아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여자 아이의 세례명은 아네스.
 
간병 일을 하며 외손자와의 생계를 꾸려가는 미자.
손자의 미성숙한 태도에 원망과 연민을 동시에 느낀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일상에서 시를 찾아내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생계를 꾸리는 일 속에서는, 권력의 부당성에 의한  비도덕적인 요구를 받는다.
 
그러다 알츠하이머를 진단받는다.
가끔은 흔한 단어들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피해 여학생의 위자료를 마련해야하는 부담을 떠안는다.
 
어느 날
미자는 피해 여학생이 스스로 몸을 던진 강 물 위의 다리찾아가서 발걸음을 옮겨본다.
 
뿌리쳤던 권력의 부당한 요구를 직접 찾아가 수용한다.
 
 
 손해배상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던 차에, 가해자 남학생들의 부모들은
피해 여학생의 홀어머니와 직접 만나 문제를 조율해볼 것을 제안하고
미자는 그 아이의 집이 있는 마을을 찾아 간다.
마을을 찾아가 우연히 만난 한 여인에게 많은 말들을 주고받다 뒤돌아서는 길에, 그녀가 그 아이의 어머니 였음을 뒤늦게 알아챈다.
 
그러면서 시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는다.
시의 순수성과 아름다움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고 시가 쉽게 써지지 않는것에 대해, 가슴속에 담겨있는 것들이 펼쳐지지 못하는 것에 홀로 눈물을 흘린다.
 
손자에게는 성찰의 기회들을 마련해주지만 수용하지 못하는 손자에게 낙담한다.
 
이제는 위자료를 급히 마련해야하는 시간이 됐다.
미자는 권력을 이용한다. 정확히는 부도덕한 권력을 행사한 자에게, 사회적 수치로 되돌려 주겠다고 협박 비슷한 것을 한다. 그렇게 돈을 받아낸다.
 

손해배상을 모두 하게 된 미자는
손자에게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할 것을 충고한다.
 
그러나 손자는 그 죄 값을 치르는 길로 인도되게 된다.
 
시 강좌의 마지막 날.
애초에 말했던 데로, 시를 한편씩 써서 내는 날.
그러나 다른 사람 모두는 시를 써오지 않았다. 어렵다는 이유로.
시인 선생님은 말한다. 시를 쓰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시를 쓰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오직 이 자리에 오늘 출석하지 않은 주인공, 양미자만이 시를 써서 냈다.
 
 
* ‘아네스의 노래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느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맞추는 풀입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에 그오랜 기다림. 아버지의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랫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다시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