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04

랄프 왈도 에머슨의 셰익스피어 비평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의 유일한 전기작가다. 우리 안의 셰익스피어, 즉 우리가 가장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그 순간을 제외한다면 그 역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현명한 셰익스피어와 그의 삶에 관한 책이 그러하다. 그는 우리의 모든 현대 음악을 위해서 곡을 썼다. 그는 현대 생활의 텍스트, 즉 관습의 텍스트를 써서 영국인과 유럽인들 그리고 미국인들의 선조를 묘사했다. 인간의 모습과 시대, 그 시대에 일어난 일들을 묘사했다. 남자와 여자의 마음과 그들의 고결함과 고민, 그리고 계략과 순수한 속임수들을 읽어냈다. 그리고 서로 상반되는 성질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면서 선과 악이 전이되는 것도 읽어냈다. 아이의 얼굴에서 부계와 모계의 인자를 구별해냈으며, 자유와 운명의 섬세한 경계선을 그었다. 본성을 다스리는 억압의 법칙을 알았고, 인간 운명의 모든 달콤함과 공포가 마치 자연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진정으로 부드럽게 그의 마음속에 존재했다. 그리고 이런 인생을 읽어내는 지혜의 중요성에 관한 한, 드라마가 되었든 서사시가 되었든 문학의 형식에 좌우되지 않았다. 문학의 형식을 따지는 것은 마치 왕의 전갈이 적힌 종이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과 다름없다.
 
  셰익스피어는 대중들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만큼 유명한 작가들로부터도 벗어나 있다. 다른 작가들이 우리가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지혜롭다면 그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지혜롭다. 훌륭한 독서가는 플라톤의 지성에 어느 정도 다가갈 수 있으며 거기서부터 생각할 수 있지만, 셰익스피어에게는 절대로 다가갈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문외한이다. 실천하는 능력과 창조적 능력에서 셰익스피어는 독보적이다. 어느 누구도 그 이상 상상할 수 없다. 그는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정교함의 정점에 도달해 있었으며, 그것은 모든 작가들 가운데 가장 정교한 수준으로 바로, 지금, 당장 창작할 수 있는 가능성의 한계에 도달했다. 이런 인생의 지혜는 상상력과 서정적인 힘의 재능에 비할 만하다. 그는 자기 이야기 속의 인물들이 마치 그와 한 지붕 아래 살았던 사람들인 것처럼 그들에게 형태와 감정을 부여하는데, 이렇게 허구만큼 두드러진 등장인물을 남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등장인물들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듣기 좋은 언어로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재능을 써서 겉치레로 말한다거나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법이 없다.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간 군상은 그의 뛰어난 모든 재능을 통합한다. 재능 있는 자에게 말할 거리를 제공하라. 그러면 그의 취향이 곧 드러난다. 그에게는 확실한 관찰력과 견해와 화젯거리가 있는데, 이 모든 것이 예상외로 뛰어날 때 그것을 가장 잘 보이게 배열할 줄 안다. 그는 사물 본래의 적합성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적합성과 힘을 고려해서, 이쪽은 잔뜩 채워넣고, 나머지는 텅 비워놓는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에게는 특이한 점도, 시선을 모으는 화제도 없지만 모든 것이 알맞게 주어져 있다.
 
  그에게는 일시적 기분이나 호기심 따위가 없다. 그는 소를 그리는 화가도, 새를 파는 사람도, 매너리즘에 빠진 사람도 아니다. 이기주의도 눈에 띄지 않는다. 위대한 사람은 위대하게 말하고, 시시한 사람은 시시하게 말한다. 그는 강조하거나 주장하지 않으면서 지혜롭다. 힘들이지 않고도 대지를 들어올려 골짜기로 만드는 자연처럼 강하고, 자연이 똑같은 규칙으로 공중에 거품을 띄우듯 이 사람에게나 저 사람에게나 골고루 도움이 되고자 애쓴다. 이 때문에 희극과 비극과 내러티브와 연가에 동등한 힘이 실리는데, 이런 장점은 정말 끝이 없어서 개개의 독자는 다른 독자들의 이해력을 의심하게 된다.
 
  이런 표현의 힘, 또는 사물의 가장 내면에 있는 진리를 음악과 시로 변형하는 힘은 그를 시인의 전형으로 만드는데, 이것은 형이상학에서 새로운 문제로 제기되었다. 이는 그를 지구의 중요한 생산품과 새 시대와 개선의 징표로 자연사 속으로 던져넣는 형국이다. 그의 시에서 만물은 손상이나 얼룩 없이 거울처럼 비춰진다. 그는 훌륭한 사람들을 정교하게 그려냈고 위대한 사람들을 적절하게 그려냈으며, 어떤 왜곡이나 편애에 치우치지 않고 희극적이거나 비극적인 인물들을 그려낼 수 있었다. 그는 머리카락 한 올 끝까지 세밀한 부분들을 효과적으로 묘사했는데, 마치 산을 그리듯 단호하게 속눈썹이나 보조개를 마무리하지만 마치 자연의 의지처럼 이런 것들도 태양을 관측하는 현미경으로 주도면밀하게 관찰했다.
 
  다시 말해 그는 작품의 편수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중요한 본보기다. 그는 사람을 생생하게 기술하는 힘을 지녔다. 다게르(Daguerre, 프랑스 화가, 은판 사진법 발명가-옮긴이)는 한 송이 꽃의 이미지를 요오드 판 위에 새기는 법을 배우고 난 뒤 더 나아가 천천히 백만 송이를 새겼다. 사물은 항상 존재하지만 결코 표현된 적이 없다. 마침내 완벽한 표현이 여기 있으니, 형상들을 묘사할 수 있도록 형상들의 세계로 하여금 포즈를 취하게 하라. 셰익스피어처럼 되기 위한 어떤 비법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사물을 노래로 변형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이미 예시되어 있다.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
 
 1803년 미국 보스턴 출생으로, 미국의 산문가이자 사상가, 초절주의(超絶主義) 시인이다. 목사 가정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 신학부를 졸업하고, 1829년 유니테리언파 보스턴 제2교회 목사가 되었으나 그의 자유스러움과 교회의 입장이 부딪혀 '최후의 만찬'이라는 설교를 끝으로 1832년 사임하였다. 유럽 등지를 다니며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을 비롯해 밀, 콜리지, 워즈워드 등 당대의 문호와 친분을 맺었고, 1834년 미국으로 돌아온 뒤 메사추세츠 주 콩코드에 정착하여 저술활동에 전념하는 한편, 초월주의자 클럽을 발족시켜 미국 초월주의 철학사조를 발전시켰다. 1837년 8월, '아메리카의 학자'란 주제로 강연을 하였는데, 에머슨의 전기를 쓴 홈스 박사는 이 연설을 미국의 '지적 독립 선언문'이라고 일컬었다. 미국 학술원 회원 선출, 하버드 대학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882년 4월 콩코드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에머슨이 없었다면 진정한 의미의 미국 문학은 탄생할 수 없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에머슨은 미국 문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는 또한 미국 사상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특히 그가 제시한 자기신뢰, 민권 개념 등은 지금도 미국 시민들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문학평론가 로렌스 뷰얼Lawrence Buell은 자신의 저서 『에머슨Emerson』에서 에머슨과 그의 학설을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정신'으로 평가한 바 있고, 링컨은 그를 '미국의 아들'이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중세 시대의 종교』, 『자연』, 『에세이, 제1시리즈』, 『에세이. 제2시리즈』, 『대표적 인간들』, 『영국적 기질』, 『삶의 태도』, 『5월제 외』, 『사회와 고독』, 『시집』, 『시선집』, 『신생』등이 있다.
 
 
*비평문 출처: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세계문학의 천재들' 해럴드 블룸 지음 | 손태수 옮김, 2008,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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