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03

레이먼드 카버, 단편소설 '보존' 중에서

 
 샌디의 남편은 올해 겨우 서른한 살이었다. 서른하나 더하기 스물셋은 쉰넷. 그때는 그녀도 오십대가 될 것이었다. 맙소사, 누구도 여생을 침대든 소파든 그런 곳에서만 보낼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만약 남편이 외상을 입었거나 병에 걸렸다면, 그러니까 교통사고라도 당한 것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녀는 이해할 수 있었으리라. 그 비슷한 경우였다면 분명히 견뎌냈을 것이라는 걸 그녀는 안다. 그랬다면, 그가 소파에서만 살아야 한다고 해도 거기까지 음식을 갖다줬을 것이며 숟가락으로 입에 떠다 먹일 용의도 충분히 있었다. 그건 순애보적인 느낌도 다분히 있으니까. 하지만 아직 젊은데다 몸도 건강한 그녀의 남편이 화장실에 갈 때나 아침에 TV를 켜고 저녁에 TV를 끌 때를 제외하고는 줄곧 소파를 차지하고 있다는 건 다른 문제였다.
 
 
레이먼드 카버, '보존' 중에서


  Sandy's husband was only thirty-one. Thirty-one and twenty-three is fifty-four. That'd put her in her fifties then, too. My God, a person couldn't live the whole rest of his life in bed, or else on the sofa. If her husband had been wounded or was ill, or had been hurt in a car accident, that'd be different. She could understand that. If something like that was the case, she knew she could bear it. Then if he had to live in the sofa, and she had to bring him his food out there, maybe carry the spoon up to his mouth---there was even something like romance in that kind of thing. But for her husband, a young and otherwise healthy man, to take to the sofa in this way and not want to get up except to go to the bathroom or to turn the TV on in the morning or off at night, this was different.


from Raymond Carver, 'Preser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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