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6

Quote: 14

'책을 읽어서, 읽기 전과 읽은 후의 그 사람이 똑같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는 없다.' - 근사록



*김훈의 의견 
('칼의 노래' 저자.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인터뷰 중에서)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근사록>이라는 책을 보면 ‘공자의 논어를 읽어서, 읽기 전과 읽은 후나 그 인간이 똑같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는 없다.’ 라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러니 다독이냐 정독이냐, 일 년에 몇 권을 읽느냐, 이런 것은 별 의미 없는 것이지요. 책을 읽는다는 것보다도 그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서 나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는 게 훨씬 더 중요한 문제죠. 책에 의해서 자기 생각이 바뀌거나 변화될 수 없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 없는 거죠.

책은, 우리가 모든 세상과 직접 관계해서 터득하고 경험의 결과를 얻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 보조적인 수단으로 필요한 것이에요. 세상을 아는 여러 가지 수단 중 하나인 것이지요. 책 속에 길이 있다고들 그러는데, 내가 보니까 책 속에는 길이 없어요. 길은 세상에 있는 것이지. 그러니까 책을 읽더라도, 책 속에 있다는 그 길을 세상의 길과 연결을 시켜서, 책 속의 길을 세상의 길로 뻗어 나오게끔 하지 않는다면 그 독서는 무의미한 거라고 생각해요."

2012-06-02

'김훈과 만나다' - 김훈 작가의 현충사 강연회 기록 (`12.5.26)


김훈과 만나다


- 김훈 작가('칼의 노래' 저자) 현충사 고택정담 강연회 기록 (2012.5.26)






선생님께서도 일기를 쓰십니까?


- 특별한 날들엔은 일기를 쓰죠. 일기는 사실과 자신의 진실성을 기록하는 것이죠. 최근 OO원에 방문했을 때도 일기를 썼어요. (어떤 사회복지시설을 말씀하신 것 같았다 - 글쓴이 주) 오늘도 돌아가면 일기를 쓰게 될 것 같아요.


충무공께서 사셨던 시대나 김훈 선생님께서 사셨던 60년대는 개인이 사회로부터 수동적인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과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더 주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강연 중 말씀하셨듯이,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능동적 가치관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역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 우리의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 배후에 숨겨진 것들이 있어요.  약육강식, 야만성, 권력.. 이런 것들이죠. 이런 것들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답변은 '김훈' 다운 답변으로 느껴졌다. 그 어두운 것들을 들여봐야 한다는 건, 그것이 목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펼쳐지는 흐름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그 흐름 속에 내가 듣고자 한 것들이 함께 섞여 있다는 것을 지적해준 것 같았다. - 글쓴이 주)

- 강연회 중 '작가와의 질의응답' 시간에
(본인 질문, 김훈 작가 답변)







김훈의 청춘을 변화시킨 한 권의 책, '난중일기'

이날 강연회에서 김훈 작가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토대로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고려대 영문과 재학시절 접한 '난중일기' 속에서는 자신히 익히 알고 있던 영미시(워즈워즈,바이런 등) 속 심오한 철학,논리,사유,신의섭리 등은 없었고, 낭만도 희망도 없는 오로지 고통과 절망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그것을 돌파해가는 한 인간의 진실성을 보았다고 한다.
그것은 (1960년대 한국의) 인간의 야만성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자신의 내면에 깊이 다가옴을 느꼈다고 한다. 그것은 김훈의 청춘을 변화 시킨 한 권의 책이 었다.

그는 대학 시절에 소설을 쓰는 것과 같은 몽환적이고 낭만적은 꿈은 가져본 적이 없었으며,
밥을 제대로 먹고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소망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돈 없는 애들은 안 가르치는 나라'라고 말하며, 자신은 그 당시 가정형편상 대학을 마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그 당시의 청년들처럼 TV나 냉장고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진로를 택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현실적인 소망을 갖고 있었지만 또다른 현실에 부딪히는 아픈 경험을 했다. 그리고 군생활을 통해 서울출신으로써 느껴보지 못했던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쌓는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젊은 시절에, 자신의 언어를 장악하는 날, 언젠가 이순신의 내면에 대해 말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고, 30여년이 지난 어느날 그는 자료조사와 현지답사 등을 하며 그 글을 써내려 가고 있었다고 말한다. 









김훈의 목소리로 듣는 '난중일기'

"이순신은 자기 부하를 많이 죽였고, 주저 하지 않았다.
전쟁기간 행해진 군법은 130회, 처형은 28회였다.
이 부대는 다양한 놈들이 다 있는 인간의 한 무리였다.
탈영, 군량도둑, 유언비어날포, 민간인 강간,약탈, 전투 중 도망 등...

다만, 그가 군법을 행할 때 그는 자비와 무자비의 경계에 있지 않았다. 
그것을 넘어서서 그는 자신의 일을 했던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육,해전에서 전패하고 있던 때에, 옥포해전 승리는 이순신이 처음으로 조국에 안겨준 승리였다.
그 당시의 기록에서는 엄격한 신분사회였지만 그 속의 하층계급이었던 부하들의 사소한 공을 챙겨주는 한 인간으로서의 자비로움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배의 좌현과 우현에 각각 소속되어 자기 역할을 하던, 심마니 김막쇠와 땅꾼 김개똥이 죽어나가자 출신과 나이, 사망사유등을 자세히 기록하여 조정에 보상을 요구했다는 기록을 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개 하층계급 부하의 죽음에 대한 이순신의 조치이다.

적 앞에서는 언제나 용맹했고 백성 앞에서는 한 없이 온순했던 
하나의 인격, 한 명의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해남 우수영 명량에서 치러졌던 명량해전, 
아군 12척의 배와 적군 130척(사실 그 뒤에 100척이 더 있었다)의 전투를 기록한 일기를 보면, 전쟁에 임하는 내면의 진솔한 두려움과 함께 그러나 부하들 앞에서는 언제나 낙관적 태도를 보이며 사기를 진작시키고자 했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인간을 전환시켜 쓸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일기에 마저도 드러나지 않는 이순신의 '침묵'

"임진왜란당시 선조 임금은 나라를 버리고 피난길에 올라 신의주로 가고 있었다. 백성들은 경복궁에 불을 질렀다. 이때 이순신은 연전연승을 하며 나라를 구하고 백성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임금에게 썩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얼마후 이순신의 몸은 고문을 견뎌야 했고, 계급장을 떼이고 무등병으로 전락하는 불명예를 겪어야 했다.

그런데,

이순신은 이 점에 있어 단 한마디의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침묵으로 일관했다.
일기는 물론이고, 편지에서나, 취중에서도 결코 언급하지 않았다."

김훈 작가는 이러한 '침묵'을 소설에서 잘 표현할 수 없었다고, 감히 그럴 수 없었다고 말하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소설은 미완성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그 침묵 속에서 이순신의 무서운 내면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추측될 수 있는 문신 정치적 권력에 대한 증오와 원한, 적개심을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는 그 무서운 내면, 그리고 강인함.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치밀하고 꼼꼼한 기록, 그리고 기록자 이순신

'병신년 1월 6일. 오수가 청어 1301마리, OO 781마리를 잡아왔고, 말려서 건어물로 만들었다.'

장군은 자신의 일기에 잡아온 물고기의 마릿수를 일의자리 까지.. 세세히 기록했다. 이 얼마나 치밀하고 꼼꼼한지.. (방청석 웃음)


'1월 7일. 부하 장군 A가 다른 부하 장군 B의 애인을 데리고 술자리에서 놀았다'

장군은 부대내에서 인간관계가 친밀했음을 보여준다. 누가 누구 애인인지 까지도 훤히 알아볼 수 있엇다. (방청석 웃음)


한편 그가 백의종군 할 때 기록한 피난민들의 함성은 슬픈 대목이다.


그리고 그는 간결하고 주어와 동사로 구성된 단순한 문장으로 기록을 남겼다.


'9월 2일 맑음. 새벽에 배설이 도망갔다'

자기 바로 아래에 있는 부대 초부지휘관이 도망간 것인데 저 기록이 전부다. (방청석 웃음)


'9월 8일 맑음. 적선은 오지 않았다'

만반의 준비를 다 해두었는데, 적선은 오지 않았다.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이 있던 해의 기록들을 보면...

'무술년 10월 7일 맑음. 별사위 송한연이 쌀 네 가마, 조 한섬, 꿀 석되. 김태종이 쌀 두 섬을  군량미로 가져왔다.'

군대의 규모를 보자면 누구입에 제대로 풀칠도 못 할 극히 적은 양이었다. 부대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을 기록하는 모습에서 장군의 겸손함을 볼 수 있다.


장군이 전사전에 남긴 마지막 일기는 다음과 같다.
'11월 17일. OO와 조효열이 군량을 가득채운 일본의 배 두 선을 빼앗아 돌아오던 중, 명나라의 배에 그것을 다시 빼았겼다.'


장군은 자신의 일기에 '사실'들을 적었다.

조정의 시기로 감옥에 투옥되어 고문을 받고 나오던 날 그가 남긴 일기다.

'4월 1일 맑음. 오늘 옥문을 나왔다. ... (영의정이 보내온) 종의 집에 가서 묵었다.'

'4월 2일. 어두울 무렵에 영의정(유성용)이 와서 닭이 울 무렵에 돌아갔다'






김훈 작가와의 질의응답


강연 마지막 무렵에 나를 포함해 6명 정도가 공개 질의와 답변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중에서 대학생들이 질문한 두 가지 내용을 간단히 적어본다.


문화재청 대학생 기자로 취재나온 한 여학생의 질문.
김훈 선생님의 소설은 대중에게 친근하지 않은 어휘로 다가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나도 잘 모르겠어요. (방청객 웃음) 
내가 글로써 표현하는 내면의 억눌림, 갈등 등이 독자들 내면에 울림을 주는 것 같아요.


대학생인 한 남학생의 질문.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가 젊었을 때, 20대 초반에 호기심을 갖고 세상을 탐험하며 남긴 기록인데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시각'이고 '본 것 보다 보지 않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강연회 참석 후기

 보통 김훈 작가의 책이나 글을 접하게 되면 그의 절제된 언어와 냉정함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인터뷰나 강연등을 같이 고려해보면, 그가 순수함과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매번 되풀이 되듯 그가 말하는 인간 사회의 '약육강식'과 같은 단어만 놓고 본다하여도, 정작 강자는 약육강식과 같은 것들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끊임없이 '야만성','권력' 등과 함께 그것을 자신의 소설이나 글 속에 담아내는데, 그게 절제되어 펼쳐지는 그의 언어다. 그것은 냉정하지만 현실을 눈앞에 여실히 보여주려는 노력이다.

나는 김훈 작가가 보여주는 '사실'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청춘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 즉 다시 말해 아직 우리 사회가 성취하지 못한 것, 더 좋은 사회를 위해 이루어 내야 할 것에 관심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훈은 오늘 강연에서도 그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늘 그가 할 수 있는 말들, 즉 경험으로 내면화한 것들에 대해서만 말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오늘 이 곳 현충사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유일하게 '침묵'하고 간 것도, 그곳에 있던 많은 젊은이들에게 남기고 간것도... 그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사진제공: 현충사 관리사무소


2012.6.2
김홍성

2012-05-24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지녔습니다.' - J.K.롤링





*J.K.롤링(해리포터 작가)의 2008년도 하버드대 졸업식 축사 중에서


'부모님께서 잠들기 전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시는 것이 소중한 경험이라는 주장은 제가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옹호합니다만, 제가 경험한 상상력의 가치는 더욱 넓은 의미에서 상상력이 갖는 가치입니다.

상상력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능력으로 인간은 상상력을 통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생각할 수 있고 따라서 상상력은 모든 발명과 혁신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상상력의 가장 큰 위력은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힘이라는 점입니다.

...


지구상의 다른 생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을 배우고 이해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타인의 마음을 읽고 타인의 처지에 자신을 놓아 이해할 능력이 있습니다.

물론 제 소설 속의 가상의 마법의 힘과 마찬가지로 이는 도덕적으로 중립성을 띈 능력입니다. 어떤 이는 이러한 능력을 다른 사람을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데 쓰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고 조종하는 데 쓸 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이러한 상상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사는 편을 택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세상의 경계선 안에서 편안하게 사는 편을 택하고 자신이 지금과 다른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어떠했을지 느껴보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타인의 비명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를 틀어막고 속박당한 이들이 갇혀 있는 현실 등은 들여다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남의 고통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그들은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럽다가도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서 저보다 악몽에 덜 시달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부럽다는 생각이 사라집니다. 그렇게 자기만의 협소한 공간 안에서 살다 보면 정신적인 광장공포증에 시달리게 되고 이 증세로 인해 나름대로 엄청난 공포감을 느끼게 됩니다.

상상하지 않고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더 많은 괴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더 큰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타인과의 공감을 거부하는 행위는 진짜 괴물들이 힘을 휘드를 능력을 갖게 만듭니다.
우리가 스스로 악을 행하지는 않아도 악이 행해지는 상황을 외면하면 악의 공모자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


여러분께서 여러분의 위치와 영향력을 바탕으로 힘없는 사람들을 돕는 길을 선택한다면,
여러분께서 힘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힘없는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겠다는 선택을 한다면,
여러분께서 여러분만큼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상상력을 지녔다면,
여러분의 가족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도움으로 더욱 나은 삶을 살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여러분을 자랑스러워 할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데 마법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이미 세상을 바꿀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지녔습니다. '


'무엇이 성공인가' - 랄프 왈도 에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This Is To Have Succeeded

-Ralph Waldo Emerson


To laugh often and much
To win the respect of intelligent people and the affection of children;
To earn the appreciation of honest critics
And endure the betrayal of false friends;
To appreciate beauty, to find the best in others;
To leave the world a bit better, whether by a healthy child, a garden
patch or a redeemed social condition;
To know that even one life has breathed easier
because you have lived.
This is to have succeeded.

2012-05-21

김훈 작가의('칼의 노래' 저자) 현충사 강연회 안내




"봄빛 가득한 현충사에서 역사와 문학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현충사 "고택정담(古宅情談)"

그 첫 번째 이야기 - 김 훈, 칼의 노래


이순신장군이 사셨던 옛집-충무공 고택에서
'칼의 노래' 저자 김훈 작가의 강연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일시: 2012. 5. 26(토), 오후 4시
- 장소: 현충사 내 충무공 옛집
- 강사: 김훈 ('칼의 노래' 저자)
- 참가: 5월 21일(월)부터 전화예약 (선착순 100명)
   전화예약 : 041-539-4612 / 문의: 041-539-4609

2012-05-20

Travel: 아산 현충사 답사 - 충무공 이순신의 옛집과 사당이 있는 곳


작년에 김훈 작가가 쓴 '칼의 노래'를 읽고서
충무공의 인간적인 측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이전에도 역사책 너머의 이순신에 대해서 알고는 싶었지만,
직접 쓴 '난중일기'는 마치 간추린 뉴스처럼 건조한 진술들로 가득했고,
이순신을 연구한 사람들의 기록 속에서도 이순신은 인간이기전에 영웅이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비록 소설이지만 많은 부분이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는
그 이야기 속에 나타난 이순신의 모습들은, 
그가 단지 민족의 영웅만이 아닌 인간적 본보기로서 나에게 다가오는 계기가 됐다.

그는 개인적인 것과 함께 사회적 책임자 입장에서의 고통과 고뇌를 깊이 겪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인내하고 극복하는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지금 '난중일기'를 다시 펼쳐본다 하더라도 나는 그 건조함을 이겨내기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이면에서 
그의 강인한 정신력과 인간적 애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전쟁 초기에 입은 부상탓에 수년간의 걸친 전쟁 내내 피를 토하거나 잠을 못 이루는 등의 많은 고통을들 겪었어야 함에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군을 통솔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말단의 부하나 백성이다 하더라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 노력했으며, 의를 지키는데 있어서는 누구보다 냉정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타인을 품을 수 있는 넓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나는 오늘 충무공의 젊은 시절 정취가 남아있는, 언젠가 한번은 가보고자 했던 현충사를 다녀왔다.

이 곳에는 충무공의 옛집과 사당이 있다.

옛집은 젊은 시절 혼인하여 장인으로부터 물려받아 살았던 곳이며, 
이곳에서 10년 간 무예를 연마했다. 32세 되던 해에는 무과에 급제했다. 
집 가까운 곳에는 평소 활쏘기를 연습하던 활터가 남아있으며, 
집 뒤편으로는 가묘(家廟)가 있는데 이곳에는 충무공 신위가 모셔져 있고
해마다 이곳에서는 기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현충사(顯忠祠)라는 명칭은 '충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라는 뜻으로, 
충무공이 순국한지 108년이 지난 1706년에 숙종에 의해 이곳 충남 아산에 세워진 것이다.
1967년 현재의 사당 본전(本殿)이 세워졌으며 이곳에는 충무공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최근 몇년간의 공사를 통해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을 건립하여 내부에 전시관과 교육관 등을 갖추고 있다.

현충사 내에는 옛집과 본전, 기념관 등을 포함해도 많은 건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터 자체가 크고, 연못이나 잔디밭 또 많은 나무등이 어우러져 있어
산책하거나 아이들과 함께 소풍 온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나도 그 덕에 
즐거운 마음으로 그 넓디 넓은 곳을 어느정도는 둘러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버스 시간 맞추느라
구석구석까지 다 들여다 보지는 못했지만
충무공의 절은 시절의 정취를 - 소박함과 성실함 -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현충사를 둘러보고 나서는 편안한 발걸음 속에서 
후손으로서 내가 느끼고 살아가는 안정감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았다.



앞으로 내가 하는 일들에 있어서도
충무공이 남긴 정신들을 본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2012.5.19
홍성





현충사 답사 사진들




현충사 입구


하절기 무료입장 기간이라 공짜로 들어갔습니다^^;

*매주 화요일은 문닫는 날이라 돈내고도 못들어갑니다. 참고!



현충사 안내도


현충사 터가 생각보다 넓습니다. 옛사람들의 여백의 미(?)를 땅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입구에 비치된 팜플렛에 지도랑 설명이 잘 적혀있으니까 하나 챙겨 갖고 다니면 좋습니다.



충무공이순신기념관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현충사 유적정비사업에 따라 건립되었습니다.
거북선 모형, 가상전투도, 영상학습관 등과 함께, 전쟁 당시 실제로 쓰여진 전법서,교서등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실 통로에 붙어있는 포스터


'칼의 노래' 김훈 작가의 강연회가 
다음주에 이곳 현충사 내 충무공 옛집에서 열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강연제목은 '고택정담(古宅情談)'.





충무공 영정

영정의 원본은 현충사 내 본전(本殿)에 있습니다.
책에서 작은 사진으로만 보다 실제로 보니 매우 크게 느껴졌습니다.



충무공 장검


三尺誓天 山河動色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一揮掃蕩 血染山河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충무공이 오랜 전란 속에서 왜적을 몰아내고자 하는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만든 칼입니다.
칼날에는 위와 같은 친필 검명(劍名)이 각각 새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장검은 전투용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고 정신수양 측면에서 간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역시 실제로 보니 그 크기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난중일기

'난중일기' 책들을 특별 전시해 놓은 공간입니다.
보급판, 문고판 등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출판되어온 난중일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충무정

충무공의 옛집 앞에 있는 우물로써, 이곳에서 물을 길러 먹었다고 합니다. 



충무공 옛집


소박함이 느껴지는 집터로 둘러보며 충무공의 평범한 일상을 상상해 봤습니다.












활터

마지막으로 활터입니다.
집 바로 옆에 있으며, 틈틈이 활쏘기를 연습했던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