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09

소설: Sentences. '삼십세'das dreißigste jahr(단편, 1961) - 잉게보르크 바하만Ingeborg Bachmann


*도입부

 30세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젊다고 부르는 것을  그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그 자신은 일신상 아무런 변화를 찾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불안정해져간다.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곧 잊어버리게 될 어느 날 아침, 그는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는 문득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는  것이다. 잔인한 햇빛을 받으며, 새로운 날을 위한 무기와 용기를 몽땅 빼앗긴  채. 자신을 가다듬으려고 눈을 감으면, 살아온 모든 순간과 함께, 그는 다시금  가라앉아 허탈의 경지로 떠내려간다. 그는 가라앉고 또 가라앉는다. 고함을 쳐도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다. (고함 역시 그는 빼앗긴 것이다. 일체를 그는  빼앗긴 것이다!) 그리고는 바닥 없는 심연으로 굴러 떨어진다. 마침내 그의  감각은 사라지고 그가 자신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해체되고 소멸되어 무無로 환원해버린다.

  다시금 의식을 되찾아 전율을 하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벌떡 일어나 낮의  세계로 뛰쳐나가야만 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을 때,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불가사의한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기억을 해내는 능력을. 지금까지 그랬듯이 예기치 않게 또는 자진해서 이런저런 것을 기억해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고통스러운 압박을 느끼면서, 지나간 모든 세월을, 경솔하고  심각했던 시절을, 그리고 그 세월 동안 자신이 차지했던 모든 공간을  기억해내는 것이다. 그는 기억의 그물을 던진다. 자신을 향해 그물을 덮어씌워  자신을 끌어올린다. 어부인 동시에 어획물이 되어 그는 과거의 자신이  무엇이었던가를, 자신이 무엇이 되어 있었나를 보기 위해, 시간의 문턱, 장소의  문턱에다 그물을 던지는 것이다. 하기는 지금껏 그는 이날에서 저날로 건너가며  별 생각 없이 살아왔던 것이다. 날마다 조금씩 다른 일을 계획하며 아무런 악의  없이. 그는 자신을 위한 숱한 가능성을 보아왔고, 이를테면 자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위대한 남자, 등대의 한 줄기 빛. 철학적인 정신의 소유자로. 아니면 활동적인 유능한 사나이로. 그는 자신이 작업복을 입고 교량 설치나 도로 건설 현장에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야외에서 땀을 흘리며 분주히  돌아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토지를 측량하는 모습을, 양철 식기에서 걸쭉한  수프를 떠내는 모습을, 묵묵히 일꾼들과 어울려서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았다. 응당 그는 과묵한 편이었다. 또는 사회의 썩어빠진 목재 바닥에 불을 지르는 혁명가로. 그는 불같이  뜨겁고 열변을 토하며, 어떠한 모험이든 사양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선동적이며,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번민하고 좌절에 빠졌다가, 마침내  최초의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었다. 혹은 향락을 추구하는 예지의 방랑아로. - 기둥에 기댄 채 음악에서, 책에서,  고사본에서, 먼 이국에서, 오로지 향락만을 추구하는 방랑아로. 그는 다만  주어진 하나의 생을 살고, 주어진 하나의 자아를 소모시키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행복과 아름다움을 열망하고 광휘를 갈망하는, 오직 행복을 위해 창조된  하나의 자아를 말이다!

  이렇듯, 그는 몇 해 동안 가장 극단적인 사상과, 공상에 찬 계획들에  몰두했었다. 그리고 바로 자신이야말로 젊음과 건강을 누리고 있던 까닭에, 아직  얼마든지 시간이 있는 것으로 여겼었고, 닥치는 모든 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하였다. 김이 나는 한끼의 식사를 위해 학생들의 공부를 돌봐주었고, 신문을  팔았고, 한 시간에 5실링을 받으면서 눈을 치웠으며, 그러는 틈틈이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자들을 연구하였다. 이것저것 가릴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고학생으로서 어느 회사에 취직을 했다가, 어느 신문사에 입사함과 동시에  그곳을 사직했다. 신문사에서는 그에게 새로이 발명된 치아 송곳에 관해, 쌍둥이  연구해 관해, 슈테판 성당의 돔의 복구 공사에 관해 기사를 쓰게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무전 여행을 떠났다. 도중에 자동차들을 세워 탔고, 자신도 잘  모르는 친구가 또 제삼자의 주소를 적어준 것을 써먹으며, 이곳저곳에서 발길을  멈추었다가는 다시 여행을 계속했다. 이렇게 그는 유럽을 누비며 방랑을  하다가는 갑자기 굳힌 결심을 좇아 다시 되돌아왔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결정적인 직업으로 여겨지진 않았지만, 어떻든 쓸모 있는 듯한 직업을 얻기  위해 시험 준비를 해서 합격을 했다. 어떠한 기회에 부딪혀도 그는 긍정을 했던  것이다. 우정에도, 사랑에도, 무리한 요구에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항상 일종의  실험으로서, 또한 몇 번이고 거듭될 수 있는 것으로서였다. 그에겐 세계라는  것이 취소가 가능한 것으로 보였고 자기 자신까지 취소가 가능한 존재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는 지금처럼 자신에게 30세의 해의 막이 오르리라고는, 판에 박힌 문구가  자신에게도 적용되리라고는, 또한 어느 날엔가는 자신도 무엇을 진정 생각하고,  무엇을 진정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어야 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에게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한순간도  걱정해본 적이 없었다. 천 한 개의 가능성 중에서 천의 가능성은 이미 사라지고 시기를 놓쳤다고는 - 혹은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단  하나뿐이니까 나머지 천은 놓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껏 한 번도 의혹에 빠져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이제껏 무엇 하나 겁내본 적이 없었다.
  지금에야 그는 자신도 함정에 빠져 있음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이 일 년이(만 29세의 생일날에서 만 30세의 일 년간) 시작된 것은 비가 많이  내리는 6월이었다. 이전에 그는 자신이 태어난 이 6월에, 이 초여름에, 자신의  운명의 별에, 약속된 더위와 좋은 성좌의 길조에 홀딱 반해 있었다. 그는 지금 이미 자신의 별에 반해 있지 않다.

  곧 더운 7월이 온다.

불안이 그를 엄습한다. 그는 짐을 챙기고 자신의 방과 주변, 자신의 과거와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행을 한다기보다, 떠나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이  해를 맞아 그는 자유로워져야만 한다.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한다. 장소를, 사면의  벽을, 인간들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묵은 계산서를 청산하고, 후원자며  경찰이며 식당의 단골 친구들에게 퇴거를 신고해야만 한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그는 로마로 가야만 한다. 자신이 가장 자유롭게 지냈던  곳, 몇 해 전 자신의 도덕과 척도, 기쁨과 시선의 깨어남을 체험했던 로마로.





*종결부

  이 세상의 암흑의 중추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 그곳에서 불빛이 되어 산화해버린 그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던 것이다.

  5월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의 방안에는 꽃들이 날마다 신선한 꽃으로, 한층 화사한 것으로 바뀌어져 갔다. 낮이면 미늘창문이 몇 시간씩 내려져 있어서 방안에서는 향기가 그대로 간직되었다.

  만약 지금 그가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한 젊은 인간의 얼굴이리라. 또한 그는 자신이 젊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으리라. 실상 훨씬 젊었을 한 때에 그는 꽤나 늙은 것처럼 느껴졌었고 머리를 떨구고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의 사상과 육체가 너무나 그를 심란하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한창 젊었을 때 그는 일찍 죽기를 소원했었고, 30세가 되고 싶다고는 조금치도 바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삶을 원하고 있다. 그 당시 그의 머리속에는 세계를 향해 찍을 수 있는 구두점만이 사방에서 뒤흔들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세계가 등장하는 최초의 문장이 수중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엔 그는 무엇이든 궁극에까지 생각할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도, 자기가 현실 속으로는 이제 겨우 최초의 몇 발자국을 들여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로 그 현실이야말로 그로 하여금 궁극에까지 생각하게 허용하지 않고, 여전히 숱한 일들을 보류해두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또는 무엇을 믿는다는 것이야말로 도대체 수치스러운 일이 아닌가 어떤가를 그는 오랫동안 모르고 있었다. 지금 그는 무슨 일을 하든가, 표현을 할 때마다 자신을 믿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신뢰를 하게 된 것이다. 또한 자기가 증명할 수 없는 일, 자신의 피부의 털구멍이라든가, 바다의 짠 맛, 과일 같은 대기라든가, 단적으로 말해 일반적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해서까지도 그는 신뢰를 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퇴원하기 얼마 전에 그는 머리를 빗으려고 처음으로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낯이 익긴 하지만 동시에 약간 더 투명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이 불더미를 배경으로 해서 고개를 드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엉겨붙은 갈색의 머리털 한가운데 무엇인가 흰빛이 반짝이는 것을 발견하였다. 손으로 만져보고 거울을 가까이 비춰보았을 때 그것은 한 가닥의 흰 머리털이었다. 그의 심장은 목언저리까지 고동을 쳤다. 그는 멍청하니 꼼짝 않고 그 머리털을 바라보았다. 다음날 그는 다시금 거울을 비춰보고 더 많은 흰 머리가 보일세라 겁을 내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 가닥의 흰 머리털이 그냥 있을 뿐, 그것에서 늘어나 있지는 않았다.
  마침내 그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나는 진정 살아 있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더욱 오래 살고 싶다는 것이다. 하나의 고통, 초로의 밝은 증거인 이 흰 머리. 이것이 도대체 왜 나를 이토록 놀라게 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 이삼 일 지나 그것이 빠져버리고 새로운 흰 머리가 그렇듯 쉬 나오지 않는다 해도, 나는 이 시식의 맛을 잊지 않으리라. 그래서
구체화되어가는 나의 과정에 대해 다시는 공포를 느끼지 않게 되리라.

  나는 진정 살아 있지 않은가.

  그는 곧 회복을 할 것이다.

  그는 곧 30세가 된다.
서른번째의 생일이 올 것이다. 하지만 종을 울려 그날을 고지하는 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아니 그날은 새삼스레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벌써 있었던 것이다. 그가 안간힘 쓰며 간신히 버텨온 이 일 년간의 하루하루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그는 생기에 넘쳐 닥쳐올 것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일을 생각하며 저 밑 병실 문을 어서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 병약한 사람들, 빈사의 사람들 곁을 떠나서.

  내 그대에게 말하노니 일어서서 걸으라. 그대의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았으니.





%잉게보르크 바하만Ingeborg Bachmann, 오스트리아, 1926-1973

  시인, 소설가, 방송극 작가, 빈 대학에서 철학과 독문학 전공. 1950년 「하이데거 실존철학의 비판적 수용」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 취득, 두권의 시집 「유예된 시간」과 「큰곰자리에의 탄원(역서 제목: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로 항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2차 대전 후 피폐 상태에 빠져 있던 독일문단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새로운 언어와 유토피아, 그리고 페미니즘을 갈구한 「말리나」 「삼십세」 「동시에」 등의 산문을 남겼다. 47그룹상, 맹인협회방송극상, 뷔히너상, 오스트리아문학대상등 수상했다. 1973년 로마에서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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