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06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로버트 프로스트 지음,
피천득 옮김

2015-02-02

책:: 함께읽기(고교친구들 독서모임). *이번 주 선정 도서 정보: '프랑스 아이처럼' - 파멜라 드러커맨 지음

**모임
*참여예정자: 김도훈, 김세진, 김홍성, 송병규. 송헌규, 한윤정
*일시: 2.7토, 신촌
*특이사항: 헌규 생일2.10 축하해주기


**책
*선정자: 한윤정
*공통: 프롤로그/ 1장 / 14장/ 에필로그
*선택: 2장 - 13장 중 두 개의 장씩 맡아 발표하기
(2세, 3세, 4헌, 5헌, 6병, 7병, 8홍, 9윤, 10윤, 11도, 12도, 13홍)

*책 정보





프랑스 아이처럼 : 아이, 엄마, 가족이 모두 행복한 프랑스식 육아
파멜라 드러커맨 저/이주혜 역 | 북하이브 | 원서 : Bringing Up Bebe



*책 소개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 마라!
육아후진국 미국의 엘리트 기자가 만난 프랑스의 혁명적 육아법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자율을 강조하자니 부모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한다는 죄책감이 들고, 일명 헬리콥터 부모가 되어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자니 의존성 높은 아이로 자라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자유와 허용은 아이를 버릇없이 만들까 염려스럽고, 참견과 규율은 아이에게 상처를 주거나 소심하게 만들까 걱정스럽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육아, 시름 없는 육아를 한다는 프랑스의 가정 풍경은 어떨까? 미국식 속도전 육아법도 싫고, 규율만을 강조하는 유교식 육아법으로는 모자라고, 창의와 자율만 강조하는 스칸디나비아식 육아법으론 왠지 불안한 당신을 위해, 여기 프랑스식 육아법이 있다. 극단의 규율과 너그러운 방종이 공존하는, 조금은 이기적이고 조금은 덜 짐스러운 프랑스식 육아법을 만나보자.

앙팡루아(enfant roi)가 무슨 뜻인 줄 아는가? 프랑스어로 ‘왕 아이’, 즉 가족 안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아이를 말한다. 언제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고, 떼만 쓰면 뭐든 용인되며, 가족들 모두가 아이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그래서 마치 스스로가 우주의 중심이 된 듯 느끼며 행동하는 아이를 의미한다. 프랑스에선 “댁의 아이는 앙팡루아군요?”라는 말이 최고의 모욕이다. 그렇게 키워선 아이가 장차 절대 행복해질 수 없고, 아이 스스로도 혼돈과 자제력 부족으로 고통 받게 만드는 최악의 육아방식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하루 4~5회 정해진 시간에만 분유를 먹으며, 이는 유아가 되어도 계속 이어져 어른과 같은 식단으로, 어른과 같은 식사시간에 식사를 해야 하며 간식도 구테(gouter)에만 먹도록 허용된다. 프랑스식 육아는 프랑스의 기본 철학에서 출발해 루소에 이르러 꽃을 피우고 프랑스 혁명과 시민사회를 거치면서 다양한 사상가와 전문가들에 의해 체계화된 프랑스의 양육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이의 자발성이 싹트게 도와주면서도 명확하고 합의된 틀과 기준이 존재하는 프랑스식 육아는 좋다는 것이면 무작정 따라 다니는 기준점 없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육아 현실에도 유의미한 준거와 방침을 제시해준다.



*저자

저 : 파멜라 드러커맨

Pamela Druckerman
월스트리트저널의 경제 섹션 기자로 전 세계를 누비던 파멜라는 어느 날 회사로부터 정리해고 통보를 받고 좌절에 빠진다. 그녀는 반쯤 도피성으로 결혼을 택하고, 곧이어 출산과 육아라는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영역으로 어느 날 갑자기 뛰어들게 된다. 그것도 생면부지의 프랑스 파리에서.
임신과 출산에 필요한 정보를 모으며 조바심을 내며 첫 아이를 기다리던 파멜라는, 문득 주변의 생경한 풍경에 눈을 돌리게 된다. 레스토랑에서 소란 한 번 피우는 법 없이 식탁에 얌전히 앉아 코스요리를 먹는 유아들, 부스스한 머리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아이 뒤치다꺼리를 하는 대신 트렌치코트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하이힐을 신은 엄마들, 놀이터나 쇼핑센터에서 떼를 쓰거나 내달리거나 징징대지 않는 아기들, 치킨너깃 대신 삶은 부추와 브로콜리와 파프리카를 즐겨 먹는 아이들, 생후 2~3개월부터 밤새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자는 아이들…….
처음엔 우연의 일치인 줄 알았다. 주변의 몇몇 가정에서만 벌어지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러나 수첩을 들고 본격적으로 취재를 시작하면서 파멜라는 이것이 프랑스의 뿌리 깊은 인간이해로부터 비롯된 독특한 육아 철학으로 인해 가능한 일임을 알게 된다. 저자 파멜라 드러커맨은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로 일했으며,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파이낸셜타임스〉, 〈마리클레르〉 등에 수시로 기고를 하고 있고, CNBC, BBC, 투데이쇼, 오프라닷컴 등 다수의 매체에 출연한 바 있다. 전작 《지구촌 불륜 사유서》는 8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세 아이와 남편과 함께 파리에 살고 있다.  닫기
작가파일보기

역 : 이주혜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영어로 된 문학 작품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옮기는 데 관심이 많아 아동 작가로 활동하면서, 현재 번역가 에이전시 하니브릿지 전속 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역서로 『왜요, 엄마?』, 『레이븐 블랙』, 『지금 행복하라』, 『거인나라의 콩나무』, 『고대 이집트의 비밀은 아무도 몰라!』 , 『카즈딘 교육법』, 『놀이의 힘』, 『하루 종일 투덜대면 어떡해! : 매사에 부정적인 어린이가 행복해지는 법』, 『블러드 프롬이즈』 등이 있고, 저서로는『반쪽이』, 『콩중이 팥중이』, 『세계명작 시리즈 - 백조왕자』, 『세계명작 시리즈 - 톰팃톳』, 『전래동화 시리즈』(1-5), 『양육 쇼크』, 『아빠, 딸을 이해하기 시작하다』, 『아이의 신호등』, 『프랑스 아이처럼』,『세상에서 가장 쉬운 그림영어사전』외 다수가 있다.



*목차

Prologue 도대체 왜? _ 레스토랑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는 프랑스 아이들
Chapter 1. 아이를 기다리나요? _ 결혼과 출산, 그리고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Chapter 2. 편하게 통증 없이 _ 출산은 스포츠도, 종교행위도, 숭고한 고통도 아니다
Chapter 3. 밤새 잘 자는 아기들 _ 생후 4개월이면 모든 아기는 깨지 않고 12시간을 내리 잔다
Chapter 4. 기다려! _ 조르거나 보챈다고 원하는 것을 가질 수는 없다
Chapter 5. 작고 어린 인간 _ 아이는 2등급 인간도, 부모에게 속한 소유물도 아니다
Chapter 6. 탁아소? _ 프랑스 아이는 엄마가 아니라, 온 나라가 함께 키운다
Chapter 7. 분유 먹는 아기들 _ 모유가 좋다는 건 안다, 그러나 엄마 인생이 더 소중하다
Chapter 8. 완벽한 엄마는 없다 _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엄마는 불행한 아이를 만들 뿐이다
Chapter 9. 똥 덩어리 _ 극단적 자유와 독재적 제한이 공존하는 프랑스의 습관 교육
Chapter 10. 두 번째 경험 _ 전혀 낭만적이지 못했던 두 번째 쌍둥이 출산
Chapter 11. 죽지 못해 산다? _ 프랑스 여자들은 왜 남편 욕을 하지 않을까
Chapter 12. 한 입만 먹으면 돼 _ 패스트푸드보다 채소 샐러드를 더 좋아하는 아이들
Chapter 13. 내가 대장 _ 프랑스 부모는 소리치지 않고도 권위를 확립한다
Chapter 14. 네 길을 가라 _ 4세부터 부모에게서 떨어져 여행 가는 아이들
Epilogue 프랑스에서의 내일 _ 잠재적 성공보다 현재의 행복을 만끽하는 사람들
Appendix 프랑스 육아 용어 풀이



*책 속으로

프랑스 육아법에 관심을 갖고 보니, 달라 보이는 건 식사 예절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스쳐 보냈던 풍경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프랑스 놀이터에서 수백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단 한 번도 악을 지르며 떼를 쓰는 아이를 본 적이 없다. 프랑스 친구들은 통화 중에 아이가 칭얼대거나 운다는 이유로 전화를 끊고 달려가지 않았다. 프랑스 거실은 우리 집과 달리 아기용 천막이나 미끄럼틀, 장난감으로 점거당하지 않았다. 미국 아이들은 파스타나 흰쌀이 포함된 소위 ‘어린이 메뉴’만 먹는데, 프랑스 아이들은 마치 어른처럼 생선이나 채소를 포함해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먹는다. 프랑스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을 제외하곤 간식을 입에 달고 지내지 않는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랬다. 모든 게 달랐다! - 10쪽

에릭은 아직도 제니퍼의 얘길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아내는 짐볼 위나 욕조 안에서 아기를 낳고 싶어 했어요.”
그러나 담당의는 제니퍼에게 조언했다. “산부인과는 동물원이 아니고 출산은 서커스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출산하실 겁니다. 반듯이 누워서 다리를 벌리고요. 그래야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제가 제때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 51쪽

프랑스 사람들은 ‘잠깐 멈추기’를 첫째 해법으로 삼고 생후 몇 주부터 그 방법을 적용한다. 〈마망〉의 기사에 의하면, 생후 6개월 이전 아기의 수면 중 50~60%는 흥분한 상태의 수면이다. 그 상태에서 아기는 갑자기 하품을 하거나 몸을 쭉 펴며 기지개를 켜거나 심지어 눈을 떴다 감기도 한다. 기사는 말한다. ‘이를 호출로 해석하고 곧바로 달려가 아기를 안아준다면, 아기의 수면 열차를 탈선시켜버리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과 같다.’ - 76쪽

프랑스 부모는 흔히 아이들에게 ‘사쥬(sage, 현명해라)’라고 말한다. 미국 부모들이 ‘착하게 굴어라(be good)’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처럼 프랑스에선 ‘현명해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안에는 좀 더 큰 뜻이 담겨 있다.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 착하게 행동하라고 말하면, 아이는 그 시간동안 길들여진 행동을 해야 하는 야생동물 취급을 받는 것과 같다. 착해지라는 건 그것이 아이의 본성과 정반대라는 숨은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현명해라’라는 말은, 이미 아이에게 있는 올바른 판단력을 발휘하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존중하라는 뜻이다. 아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아이를 믿는다는 뜻을 함축하기도 한다. - 92쪽

《행복한 아이(A Happy Child)》라는 책에서 프랑스 심리학자 디디에 플뢰(Didier Pleux)는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좌절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이를 놀지 못하게 하거나 안아주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아이의 취향, 리듬, 개성은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 다만 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며 모두를 위한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걸 배워야 한다.’ - 104쪽

오늘날 파리에서 만나는 부모들은 아이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결정은 부모가 한다’는 것 사이에 효과적인 균형을 찾아낸 듯 보인다. 프랑스 부모들은 언제나 아이들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점심으로 초콜릿 빵을 먹겠다고 하면 허락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부모들은 루소의 양 어깨를 딛고 선 돌토를 양육의 금과옥조로 삼는다. - 130쪽

결국 중요한 것은 양육자의 ‘민감성’, 즉 양육자가 아이가 세계를 경험해가는 과정을 얼마나 잘 맞춰주는가다. 탁아소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요구에 세심하게 신경 쓰고 아이의 언어적?비언어적 신호와 징후에 반응하며 아이의 호기심과 욕구를 자극해주는 온화하고 지원적이며 관심을 쏟아주는 양육자’를 만났을 때 아이는 탁아소에서 ‘고품질’ 양육을 받는 셈이다. 베이비시터든 조부모든 탁아소 교사든, 민감성이 높은 양육자와 함께 할 때 아이는 더 잘 살아간다. - 153쪽

겉으로 보면 프랑스 엄마들은 눈높이가 높다. 엄마이면서 동시에 섹시해야 하고 성공해야 하며 매일 저녁 집에서 요리한 음식을 내놔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 죄책감을 얹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완벽한 엄마는 바로 당신(The Perfect Mother Is You)》의 공저자이자 기자인 다니엘은 5개월 된 딸을 처음 크레쉬(탁아소)에 맡기고 나올 때의 심정을 기억한다. “아이를 놔두고 나오는 건 속상했어요. 하지만 일을 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있었어도 속상하긴 마찬가지였을 거예요.”그녀는 죄책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했다.
“한번 죄책감을 느끼고, 또 계속 살아가는 거죠.”
세상의 모든 엄마이자 여성을 위로하듯, 다니엘은 덧붙였다.
“완벽한 엄마란 존재하지 않잖아요.” - 185쪽

빈과 함께 브르타뉴의 프랑스 가정을 방문했을 때 그 집 어린 딸 레오니가 할머니에게 혀를 쑥 내밀었다. 할머니는 아이들을 앉혀놓고 그런 행동을 해도 될 때와 안 될 때를 자세히 일러주었다. “네 방에 혼자 있을 때는 해도 돼. 화장실에서 혼자 있을 때도 해도 돼. 그럴 때는 맨발로 있어도 되고 혀를 내밀어도 되고 누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켜도 되고 똥 덩어리 같은 말을 해도 돼. 너 혼자 있을 때는 그런 걸 다 해도 돼. 하지만 어린이집에서는 안 돼. 식탁에 있을 때도 안 돼. 엄마와 아빠와 있을 때도 안 돼. 길거리에서도 안 돼. 그게 인생이야. 차이를 반드시 이해해야 해.” - 209쪽

프랑스 아이들이 왜 그렇게 잘 먹는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파리시 식단위원회에 참석했다. 위원회는 파리의 크레쉬(탁아소)에서 향후 2개월 간 무엇을 제공할지 결정한다.
위원회는 ‘아이들과 음식에 관한 프랑스식 사고의 소우주’와도 같다. 그들의 첫 번째 신조는 이것이다. ‘어린이용 음식 따위는 없다!’ 영양사가 4가지 코스로 된 점심 메뉴 초안을 발표한다. 프렌치프라이, 치킨 너깃, 피자, 케첩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하루 메뉴를 뽑아 살펴보자. 잘게 썬 붉은 양배추와 프로마주 블랑 치즈 샐러드, 그 다음으로 딜 소스를 곁들인 대구 찜과 영국풍 유기농 감자 요리가 나온다. 치즈는 부드러운 쿨로미에, 후식으로는 구운 유기농사과가 나온다. 각 음식은 아이들 연령대에 따라 잘라 주거나 으깨서 준다. - 254쪽

프랑스 부모들도 아이들에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한다. 끊임없는 융단폭격보다 단번의 국부타격을 선호한다. 그러나 고함은 정말 중요한 순간을 위해 아껴둔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내가 고함을 지르면, 아이들이 무슨 엄청난 잘못을 했나 의아해하며 쳐다볼 정도다. 나는 다른 미국 부모들처럼 권위를 훈육과 벌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반면 프랑스 부모는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훈육보다 ‘교육’이라 말한다. 말 자체가 암시하듯,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어떤 것은 용납이 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지’ 아이들에게 서서히 가르쳐주는 쪽이다. - 287쪽

자율을 강조하는 프랑스식 풍토는 프랑수아 돌토로부터 왔다. 돌토는 《아동기의 주요단계》에서 이렇게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안전한 상태에서 가능한 일찍부터 자율이 주어지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그 모습 그대로 사랑 받는다고 느낄 필요가 있다. 공간 안에서 자기 자신을 확신하고 매일매일 자신만의 탐험 속에서,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또래와의 관계 속에서 보다 자유를 허락받을 필요가 있다.’ - 303쪽

프랑스 학교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혹독해진다. 그러나 이는 프랑스 교사들의 의무이자 프랑스 부모들의 신념에 부합하는 일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무엇이 효과적이고 무엇이 효과적이지 않은지 알아보기 위해, 과학적인 방법론을 이용해 양육을 진행해간다. 그리고 이들이 내린 결론은 ‘어떤 칭찬은 이롭지만 칭찬을 너무 많이 하면 아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 314쪽



*출판사 리뷰

“좌절을 경험하지 않은 아이는 불행하다!”
육아후진국 미국의 엘리트 기자가 만난 프랑스의 혁명적 육아법
아마존·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바로 그 책!

앙팡루아(enfant roi)가 무슨 뜻인 줄 아는가? 프랑스어로 ‘왕 아이’, 즉 가족 안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아이를 말한다. 언제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고, 떼만 쓰면 뭐든 용인되며, 가족들 모두가 아이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그래서 마치 스스로가 우주의 중심이 된 듯 느끼며 행동하는 아이를 의미한다. 프랑스에선 “댁의 아이는 앙팡루아군요?”라는 말이 최고의 모욕이다. 그렇게 키워선 아이가 장차 절대 행복해질 수 없고, 아이 스스로도 혼돈과 자제력 부족으로 고통 받게 만드는 최악의 육아방식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하루 4~5회 정해진 시간에만 분유를 먹으며, 이는 유아가 되어도 계속 이어져 어른과 같은 식단으로, 어른과 같은 식사시간에 식사를 해야 하며 간식도 구테(gouter)에만 먹도록 허용된다. 설령 누군가가 선물로 사탕이나 초콜릿을 주어도 그것을 집으로 가져왔다가 구테 시간이 되어야 먹을 수 있다. 심지어 구테 시간이라 해도 아무것이나 먹을 수 없다.

미국식 육아에 흠뻑 젖어 있는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혼내거나 윽박지르는 것은 곧 ‘아이의 기를 꺾고 창의성을 죽이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어떤 집이든 들어가 보면, “우리 집엔 아이가 있어요!”라고 광고라도 하듯 온갖 장난감과 놀이시설, 동화책과 학습용 포스터들이 거실을 장악하고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선 이런 장면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이를 위해 온 가족이 희생한다는 것을 석연치 않아 하고, 아이란 무조건적인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불완전한 존재라고 여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식 육아는 프랑스의 기본 철학에서 출발해 루소에 이르러 꽃을 피우고 프랑스 혁명과 시민사회를 거치면서 다양한 사상가와 전문가들에 의해 체계화된 프랑스의 양육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이의 자발성이 싹트게 도와주면서도 명확하고 합의된 틀과 기준이 존재하는 프랑스식 육아는 좋다는 것이면 무작정 따라 다니는 기준점 없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육아 현실에도 유의미한 준거와 방침을 제시해준다.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 마라!
자율과 복종, 규율과 자유가 공존하는 ‘프랑스 아이처럼’ 키워라

오늘날 프랑스에서 엄마아빠,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프랑스는 온 나라가 함께 아이를 키운다. 우선, 아이가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부양을 위한 사회적 자원이 무상으로 주어진다. 엄마는 아이 양육과 교육을 위해 자기희생을 강요받지 않는다. 아빠는 무관심과 재정적 지원만 요구 받는 반쪽짜리 부모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이 하나를 위해 온 가족이 희생하는 일 따위는 없다.

떠올려보라.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예의 바르지만, 아이다운 장난기와 애교가 넘치는 작은 인간. 존중받고 존중할 줄 알며 때와 장소를 가려 지혜롭게 행동하는 아이. 통제력과 자제력이 있으면서도 자기주장이 분명한 아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좌절과 인내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한 아이.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며 그러기에 뭔가를 받으면 뭔가를 돌려줘야 함을 아는 아이. 한껏 자유롭지만 부모의 권위에 복종할 줄 아는 아이. 당신의 아이를 그런 아이로 키울 수 있다. 그리고 그러려면 부모의 철학이 담긴 육아법이라는 씨앗이 온전히 뿌리내려야 한다.

미국식 속도전 육아법도 싫고, 규율만을 강조하는 유교식 육아법으로는 모자라고, 창의와 자율만 강조하는 스칸디나비아식 육아법으론 왠지 불안한 당신을 위해, 여기 프랑스식 육아법이 있다. 극단의 규율과 너그러운 방종이 공존하는, 조금은 이기적이고 조금은 덜 짐스러운 프랑스식 육아법을 만나보자.
아울러, 지금 당신이 고전하는, 그리고 두려워하는 몇 가지 아이 키우기의 해법까지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 보채거나 깨지 않고 밤새 잘 자는 법
- 반찬투정 하지 않고 골고루 잘 먹는 법
-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게 있어도 차분히 기다리는 법
- 시킬 때만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법
- 징징대거나 떼쓰지 않고 상황에 대처하는 법
- 아이가 생긴 후에도 부부관계가 시들해지지 않는 법



*추천평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한데다 엄청나게 재밌다. 아이를 돌보는 방법만이 아니라 여자로서의 자아를 잃지 않는 법까지 배웠다. 이 책이 너무나 좋다. 프랑스로 이민가고 싶어질 정도로.
- 인디아 나이트(India Knight), 〈선데이타임스〉

저자는 유쾌한 유머를 갖춘 탁월한 스토리텔러이자 타문화를 이질감 없이 녹여 소개하는 뛰어난 전파자다. 또한 역사와 철학을 아울러 탄탄한 이론적 뒷받침까지 이루어져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 출판평론지 〈커커스 리뷰(Kirkus Reviews)〉

솔직하고 발칙한 유머와 위트, 거기에 유익한 정보까지. 독자는 마치 저자 자신이 된 듯, 느긋하고 자유로우며 자신감이 넘치는 프랑스 육아법의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간다. 재밌게 읽을 수 있는데다 두고두고 활용할 좋은 공부가 되는 책이다.
- 〈가디언(The?Guardian)〉

가르치며 훈계하는 그런 책이 아니다. 면밀하고 세심한 관찰이 돋보이는 회고록이자 잔잔하지만 깊이 있는 울림을 주는 대화록이다. 잘 정리된 방법론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덧 행복한 부모와 아이들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하다.
- 〈휴스턴 크로니클(Houston Chronicle)〉

잘 자는 아이, 코스요리를 즐기는 아이, 여유로운 부모. 나 역시 감탄했던 프랑스의 이색적인 양육 풍경을 저자는 누구보다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죄책감이나 조바심에 시달리는 요즘 부모들을 위해 꼭 필요한 힐링 메시지이기도 하다.

- 미레유 길리아노, 《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 저자



%출처: yes24.com



2015-01-27

소설: Sentences. '중국행 슬로보트'中国行きのスロウ・ボート(단편, 1983) - 무라카미 하루키

 5

  이미 서른을 넘은 한 남자인 지금, 다시 한번 외야로 날아가는 공을 쫓아가다 농구대에 전속력으로 부딪히고 다시 한번 글러브를 베개 삼아 포도시렁 밑에서 눈을 뜬다면 나는 이번에는 뭐라고 말할까?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여기는 나를 위한 장소도 아니야, 라고.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야마노테 선 전철 안이었다. 나는 문 앞에 서서 차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단단히 움켜쥔 채 유리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의 도시, 그 풍경은 왠지 내 마음을 지독히 어둡게 만들었다. 도시 생활자가 연중행사를 치르듯 빠져드는 낯익은 것, 탁한 커피젤리 같은 정신의 엷은 어둠이 다시금 나를 사로잡고 잇엇다. 지저분한 빌딩, 이름 없는 사람들의 무리, 끊이지 않는 소음, 꼼짝 못하는 자동차의 행렬, 잿빛 하늘, 공간을 가득 메운 광고판, 욕망과 포기와 초조와 흥분, 그곳에는 무수한 선택지가 있고, 무수한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수한 동시에 제로였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손에 쥐었지만 우리 손안에 있는 것은 제로였다. 그것이 도시였다. 나는 문득 그 중국인 여자애의 말을 떠올렸다. "애초에 여기는 내가 있을 장소가 아니야."

  나는 도쿄의 거리를 보며 중국을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수많은 중국인을 만났다. 그리고 수많은 중국 관련 서적을 읽었다. '사기史記'에서부터 '중국의 붉은 별'까지. 나는 중국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 중국은 나만을 위한 중국일 분이다. 그것은 나밖에 독해할 수 없는 중국이다. 나에게밖에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중국이다. 지구본 위에 노랗게 칠해진 중국과는 다른, 또하나의 중국이다. 그것은 하나의 가설이고, 하나의 잠정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중국이라는 말로 오려내는 나 자신이다. 나는 중국을 방랑한다. 하지만 비행기를 탈 필요는 없다. 그 방랑은 여기 도쿄의 지하철 안이나 택시 뒷좌석에서 이루어진다. 그 모험은 근처 치과 대기실이나 은행 창구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어디에도 갈 수 있고, 어디에도 갈 수 없다.
  도쿄 -그리고 어느날, 야마노테 선 전철 안에서 이 도쿄라는 도시조차 돌연 리얼리티를 잃기 시작한다. 그 풍경은 창밖에서 갑작스레 붕괴하기 시작한다. 나는 차표를 쥐고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본다. 도쿄의 거리에 나의 중국이 재처럼 쏟아져내려 이 거리를 결정적으로 침식해간다. 그것은 차차 사라져간다. 그렇다. 여기는 나의 장소도 아닌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언어는 사라지고 우리가 품었던 꿈은 언젠가 뿌옇게 지워진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그 따분한 소년 시절이 인생 어딘가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렸듯이.
 오류... 오류라는 것은 그 중국인 여대생이 말했듯이(혹은 정신분석의가 말하듯이) 결국 역설적인 욕망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류야말로 나 자신이며 당신 자신인 셈이다. 그렇가면 출구 따위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옛날 충실한 외야수로서의 자그마한 자부심을 트렁크 바닥에 챙겨넣고 항구의 돌계단에 앉아 텅 빈 수평선 위로 언젠가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르는 중국행 슬로보트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중국 거리의 빛나는 지붕을 그리워하고 그 푸른 초원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러니 상실과 붕괴 뒤에 무엇이 오든 나는 이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마치 4번 타자가 몸 쪽 변화구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열렬한 혁명가가 교수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만일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친구여, 중국은 너무도 멀다.


%출처: '중국행 슬로보트'(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문학동네)

2015-01-26

사진: 제프 월Jeff Wall, '갑작스러운 돌풍'A Sudden Gust of Wind (after Hokusai), 1993


책: 메모. '행복의 정복'(The Conquest of Happiness, 버트란드 러셀) - 무엇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가


한낮의 햇빛을 견뎌내는 일


  짐승들은 건강하고 먹을 것이 충분하기만 하면 행복하다. 그러나 인간은, 적어도 대부분의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내가 만나는 모든 얼굴에
가냘픔과 슬픔의 빛이 깃들여 있노라.

  영국의 시인 블레이크가 한 말이다. 물론 그 종류는 각양각색이지만 당신은 도처에서 사람들이 불행과 마주친다는 것을 알게 된다. ... 근무 시간의 군중에게서는 불안과 지나친 긴장, 소화불량, 경쟁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무관심, 마음놓고 즐기지조차 못하는 초조함, 동료들을 의식하지 못하는 태도 등을 보게 될 것이다.

  여러 가지 불행의 원인은 일부는 사회 제도에, 일부는 개인 심리에 있다. -물론 개인 심리도 대체로 사회 제도의 산물이다- 나는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요구되는 사회 제도의 변혁에 대해서는 전에 이미 쓴 적이 있다. 전쟁과 경제적 착취 그리고 잔인성과 공포심을 조장하는 교육의 폐지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전쟁을 피할 수 있는 제도를 찾아내는 일은 오늘날 문명의 가장 긴급한 과제이다. (*이 책은 러셀이 58세이던, 1930년에 출판됐다)

  그러나 한낮의 햇빛을 견뎌내는 일보다 서로 죽이는 일이 덜 무서운 일로 여겨질 만큼 인간들이 불행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그런 제도가 생길 기회는 없다.

  이 책을 쓰는 나의 목적은 문명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마다 겪고 잇는 일상적인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불행은 분명한 외부적 원인이 없어 사람들이 거기서 벗어날 방도를 찾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 견디기 어려운 불행이다.
  나는 이러한 불행의 원인이 주로 잘못된 세계관, 그릇된 윤리, 좋지 못한 생활 습관에 있다고 믿는데,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행복이든 동물의 행복이든 모든 행복이 궁극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가능한 일에 대한 자연적인 열정과 요구를 파괴한다.
  이러한 문제는 개인의 능력 범위 안에 속해있는 일이며, 따라서 나는 약간의 행운만 있다면 누구나 행복을 성취할 수 있는 변화의 방법을 제시하려고 한다.






러셀의 고백

  내가 주장하려고 하는 행복론에 앞서 내 자신의 얘기를 조금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나는 행복하게 태어나지는 않았다. 어렸을 적에 나는 “죄에 싸인 몸이 세상에 지치어...”라는 찬송가를 좋아했다.
  다섯 살 때, 나는 내가 앞으로 일흔 살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이제 고작 전 생애의 14분의 1을 살았을 뿐이므로 내 앞에 길게 가로놓여 있는 권태를 거의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느꼈다. 청년 시절에는 삶을 증오했고 늘 자살의 유혹에 시달렸지만 수학을 좀더 알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그 위험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삶을 즐기고 있다. 해가 거듭될수록 삶을 더 즐길 수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내가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대부분 에 넣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론 본질적으로 달성될 수 없는 욕구 -예컨대 어떤 것에 대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지식의 획득 따위-를 깨끗이 단념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주된 원인은 나 자신에 대한 편견을 감소시켰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청교도적 교육을 받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나 자신의 죄, 어리석음, 결점 등을 깊이 생각하는 버릇이 잇었다. 나는 나 자신을 의심의 여지없이 비참한 사람의 본보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차로 나는 나 자신과 나의 결점에 무관심해지는 방법을 배웠다. 나는 점점 더 외부의 대상, 즉 세간의 일이라든가 여러 가지 지식의 분야라든가 내가 애정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집중하게 되었다.

  물론 외부에 대한 관심고통을 수반한다. 세상은 전쟁에 휘말리기도 하고, 어떤 부분의 지식은 획득하기 어렵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죽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고통은 자신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고통처럼 삶의 본질을 파괴하지 않는다. 그리고 외부에 대한 관심은 그 관심이 생생한 한, 권태를 완전히 막아주는 어떤 활동을 일깨워준다.

  반대로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은 적극적인 활동을 일으키지 못한다. 기껏해야 계속해서 일기를 쓴다든가, 심리 분석에 익숙하게 만든다든가, 또는 승려가 된다든가 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승려도 따분한 절 생활에 젖어서 자기 자신의 영혼을 잊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한 것이다. 따라서 승려가 종교에 귀의해서 얻었다고 하는 행복은, 만일 그가 어쩔 수 없이 도로 청소부가 되었더라도 얻을 수 있었을 행복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몰입이 지나쳐 다른 방법으로는 이를 고칠 길이 없는 불행한 사람들에게는 외부적인 훈련만이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자기에 빠져 있는 사람

  자기에 빠져 있는 사람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우리가 흔히 볼 수 잇는 세 가지 타입으로 죄인, 자기 도취자, 과대망상증에 걸린 사람을 들 수 있다.


*'Narcissus' by the Italian Baroque master Caravaggio (1597-1599)

  내가 말하는 죄인이란, 실제로 죄를 저지른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죄는 누구나 짓기 마련인 것이기도 하고, 또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내가 말하는 죄인이란 죄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탓하며, 만일 그가 종교인이라면 이를 하느님의 비난이라고 해석한다. 그는 자신이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아상을 가지고 있으며, 이 자아상은 실제의 자기에 대한 지식과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킨다.
   만일 의식적인 사고에 있어서 어머니의 무릎에서 배운 도덕률을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면, 그의 죄의식은 무의식 속으로 깊이 가라앉았다가 취했거나 잠을었을 때에만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취했거나 잠들었을 때 죄의식이 머리를 드는 것만으로도 모든 일에 대한 흥미를 빼앗기에 충분하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어릴 적에 배운 온갖 도덕적 금기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불경스런 말을 하는 것은 죄악이다. 술을 마시는 것은 나쁘다, 일상의 업무에서 교활하게 구는 것은 좋지 않다, 무엇보다도 섹스는 죄악이다 등. 물론 그가 이러한 쾌락을 삼가는 건 아니지만 쾌락이 자신을 타락시킨다고 느끼기 때문에 이러한 쾌락은 즐거움은커녕 독이 된다.

  그가 진심으로 바라는 유일한 쾌락은 어렸을 때처럼 어머니의 따뜻한 애무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즐거움을 접할 수 없으므로 아무래도 좋다고 느긴다. 그리하여 어차피 죄를 짓기 마련이므로 철저히 죄를 짓기로 결심한다. 사랑에 빠질 때, 그는 여자에게 모성을 기대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모습이 어른거려, 자신과 성관계를 맺고 있는 어떤 여성에 대해서도 존경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애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절망한 나머지 잔인해지고 다시 자신의 잔인성을 뉘우친다. 이런 식으로 상상적인 죄악과 현실적인 뉘우침의 움울한 순환이 새롭게 시작된다. 이것이 하느님으로부터 비정하게 버림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많은 사람들의 심리이다.

  그들을 방황하게 만드는 것유년 시절에 깊이 심어진 어이없는 도덕률과 도달할 수 없는 대상(어머니 또는 어머니를 대신하는 자)에 대한 헌신이다. 이와 같은 모성적 도덕의 희생자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년 시절의 믿음이나 감정으로부터 해방되어야만 한다. 


  자기 도취는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습관적인 죄의식에 반대되는 것이다. 자기 도취는 자기 자신을 찬양하고 또 자기 자신이 찬양받기를 바라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자기 도취는 정상적인 것이며 비난할 것이 못 된다. 자기 도취가 중대한 악이 되는 것은 너무 지나칠 경우이다.
  많은 여성들, 특히 상류 사회 여성들의 경우 사랑을 느끼는 능력은 완전히 고갈돼버린 반면, 모든 남성이 자기를 반드시 사랑해야 한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이러한 여성의 경우 어떤 남자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이 확실해지면 그 남자는 이미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여자의 경우처럼 빈번하지는 않지만 남자에게도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 그 고전적인 예가 혁명 직전의 프랑스 귀족들의 정사를 그린 저 유명한 소설 ‘위험한 관계’의 주인공이다. 허영심이 이 정도로 극단에 달하면, 다른 사람에 대한 진정한 관심은 있을 수 없고, 사랑으로부터 진정한 만족도 얻지 못한다.
  다른 관심들은 더 비참한 상태에 빠진다. 자기 도취자가 위대한 화가에 대한 존경심이 계기가 되어 그림 공부를 하게 되는 경우를 로 들어보자. 그에게 있어서 그림은 단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는 테크닉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자기 자신과 관계 없는 주제는 택하지도 않는다. 결과는 실패와 실망뿐이고 기대했던 아첨 대신 비웃음을 받게 된다. 자기 소설 속에서 언제나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상화시키는 소설가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원시인은 훌륭한 사냥꾼이 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으리라.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사냥이라는 활동을 즐겼다. 허영심이 어떤 한계점을 넘어서면 모든 활동에 깃들인 쾌락을 말살하고, 불가피하게 피곤과 권태를 일으킨다. 허영심은 대개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며, 이런 경우에는 자존감을 키우는 것이 그 치료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치료법도 객관적 관심에 의해 자극된 활동에 성공할 때만 효력이 있다.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매력적이기보다는 강력해지기를 바라고, 사랑을 받기보다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자 한다는 점에서 자기 도취에 빠진 사람과 구별된다. 많은 정신병자와 역사상의 대부분의 위인이 이러한 타입에 속한다.
  허영심과 마찬가지로 권력에 대한 애착은 정상적인 인간성의 중요한 요소이며, 그 자체로서는 비난받을 만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도가 지나치거나 빈약한 현실 감각과 결합할 때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불행해지거나 바보가 된다. ...
  알렉산더 대왕은 심리학적으로는 정신병자와 다를 게 없었으나, 단지 그에게는 정신병자의 꿈을 실현시킬 능력이 있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그러나 꿈을 실현할수록 자신의 꿈의 폭도 넓어져 결국 그는 꿈을 완전히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가장 위대한 정복자로 명성을 날리게 되자 그는 신이라 자처했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었을까? 폭음, 결렬한 분노, 여성에 대한 무관심, 신성에 대한 요구 등은 그가 행복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인간성의 한 요소를, 다른 모든 요소를 희생시켜가면서 개발했다고 해서 궁극적인 만족을 얻는 것은 아니며, 또한 온 세상을 자신의 위대함을 나타내기 위한 재료로 삼는다고 해서 궁극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통 과대망상증은 병적이든, 정상적이든 모두 심한 모욕을 받은 결과인 경우가 많다. ...
  정치적 의미의 억압과 정신분적적 의미의 억압은 그 궤를 같이 한다. 따라서 정신분석적 억압이 명백한 형태로 발생하는 경우, 진정한 행복은 있을 수 없다. ,,,
적절한 한계를 지키는 권력은 행복에 크게 기여할지 모르나, 권력을 삶을 유일한 목표로 삼는다면 비록 외면적으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내면적으로는 파멸을 맞게 된다.



새로운 꼬리

  불행의 심리적 원인은 다양하지만, 거기에는 분명 공통점이 있다. 전형적으로 불행한 사람은 청소년 시절에 어떤 정상적인 만족을 박탈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그 한 가지 만족을 과대평가하게 되어 자신의 생활을 오직 그 만족을 얻는 방향으로만 이끌게 되고, 자연히 거기에 방해가 되고 성격이 다른 성취들에 대해서는 아주 부당한 평가를 내리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는 현대에 와서 더욱 현저해졌고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어떤 형태의 만족이 아니라, 오락과 망각만을 추구할 정도로 완전한 좌절감에 사로잡혀 결국 쾌락광신자가 된다. 다시 말하면 활동을 줄임으로써 삶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술에 취하는 것은 일시적인 자살이다. 그것은 소극적인 행복에 지나지 않으며 불행을 순간적으로 정지시키는 것뿐이다.

  불행한 사람은 잠을 잘 못 잔 사람처럼 언제나 불행하다는 사실을 자랑한다. 아마도 이러한 자랑은 꼬리를 잃은 여우의 자랑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이야기. 꼬리를 잃은 여우가 자기만 꼬리가 없는 것이 부끄러워 꾀를 내어 다른 여우들에게 꼬리가 없는 것이 훨씬 좋다고 설득하다가 실패한다는 내용- 과 같은 것이리라. 그렇다면 치료법은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새로운 꼬리를 자라게 할 수 있는가를 지적해주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길을 알면서, 일부러 불행을 선택한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 그러므로 나는, 독자들이 불행해지기보다는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있다고 가정하겠다. 내가 이러한 희망을 실현시키는 데 도움이 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해롭지는 않을 것이다.



% 이 책 메모는 '행복의 정복'(원제:The Conquest of Happiness,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 지음, 문예출판사)을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텍스트 효과(소제목 및 볼드 처리 등)와  이미지는 필자가 임의로 삽입한 것들입니다.

% '무엇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가'는 이 책의 첫 번째 장입니다. 러셀은 이후의 십여개의 장을 통해  이 불행을 더 자세히 진단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즉 행복에 다다르는 일에 대해 말합니다.

이 책의 전체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1부 불행의 원인
무엇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가 / 바이런적 불행 / 경쟁 / 
피로/ 질투/ 죄의식 / 피해망상 / 여론에 대한 공포

제2부 행복의 원인
아직도 행복은 가능한가 / 열의 / 사랑 / 가족 / 일 / 일반적 관심사 /
노력과 체념 / 행복한 사람 / 옮긴이의 말

%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1872-1970)에 대해 더 알아보기(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wiki/%EB%B2%84%ED%8A%B8%EB%9F%B0%EB%93%9C_%EB%9F%AC%EC%85%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