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서른을 넘은 한 남자인 지금, 다시 한번 외야로 날아가는 공을 쫓아가다 농구대에 전속력으로 부딪히고 다시 한번 글러브를 베개 삼아 포도시렁 밑에서 눈을 뜬다면 나는 이번에는 뭐라고 말할까?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여기는 나를 위한 장소도 아니야, 라고.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야마노테 선 전철 안이었다. 나는 문 앞에 서서 차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단단히 움켜쥔 채 유리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의 도시, 그 풍경은 왠지 내 마음을 지독히 어둡게 만들었다. 도시 생활자가 연중행사를 치르듯 빠져드는 낯익은 것, 탁한 커피젤리 같은 정신의 엷은 어둠이 다시금 나를 사로잡고 잇엇다. 지저분한 빌딩, 이름 없는 사람들의 무리, 끊이지 않는 소음, 꼼짝 못하는 자동차의 행렬, 잿빛 하늘, 공간을 가득 메운 광고판, 욕망과 포기와 초조와 흥분, 그곳에는 무수한 선택지가 있고, 무수한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수한 동시에 제로였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손에 쥐었지만 우리 손안에 있는 것은 제로였다. 그것이 도시였다. 나는 문득 그 중국인 여자애의 말을 떠올렸다. "애초에 여기는 내가 있을 장소가 아니야."
나는 도쿄의 거리를 보며 중국을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수많은 중국인을 만났다. 그리고 수많은 중국 관련 서적을 읽었다. '사기史記'에서부터 '중국의 붉은 별'까지. 나는 중국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 중국은 나만을 위한 중국일 분이다. 그것은 나밖에 독해할 수 없는 중국이다. 나에게밖에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중국이다. 지구본 위에 노랗게 칠해진 중국과는 다른, 또하나의 중국이다. 그것은 하나의 가설이고, 하나의 잠정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중국이라는 말로 오려내는 나 자신이다. 나는 중국을 방랑한다. 하지만 비행기를 탈 필요는 없다. 그 방랑은 여기 도쿄의 지하철 안이나 택시 뒷좌석에서 이루어진다. 그 모험은 근처 치과 대기실이나 은행 창구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어디에도 갈 수 있고, 어디에도 갈 수 없다.
도쿄 -그리고 어느날, 야마노테 선 전철 안에서 이 도쿄라는 도시조차 돌연 리얼리티를 잃기 시작한다. 그 풍경은 창밖에서 갑작스레 붕괴하기 시작한다. 나는 차표를 쥐고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본다. 도쿄의 거리에 나의 중국이 재처럼 쏟아져내려 이 거리를 결정적으로 침식해간다. 그것은 차차 사라져간다. 그렇다. 여기는 나의 장소도 아닌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언어는 사라지고 우리가 품었던 꿈은 언젠가 뿌옇게 지워진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그 따분한 소년 시절이 인생 어딘가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렸듯이.
오류... 오류라는 것은 그 중국인 여대생이 말했듯이(혹은 정신분석의가 말하듯이) 결국 역설적인 욕망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류야말로 나 자신이며 당신 자신인 셈이다. 그렇가면 출구 따위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옛날 충실한 외야수로서의 자그마한 자부심을 트렁크 바닥에 챙겨넣고 항구의 돌계단에 앉아 텅 빈 수평선 위로 언젠가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르는 중국행 슬로보트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중국 거리의 빛나는 지붕을 그리워하고 그 푸른 초원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러니 상실과 붕괴 뒤에 무엇이 오든 나는 이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마치 4번 타자가 몸 쪽 변화구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열렬한 혁명가가 교수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만일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친구여, 중국은 너무도 멀다.
%출처: '중국행 슬로보트'(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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