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17

책: 메모. '나는 어떻게 일하는가' - 13장(마무리). 내가 만든 규칙과 도덕률




1
  규칙을 어긴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 규칙을 정하는 사람들 역시 틀리기 쉬우므로, 나는 거기에 반대할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로 인한 결과를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스스로의 규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직관을 신뢰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며,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학교, 기업, 사회에서 규칙과 관례가 중요하지만, 맹목적으로 추종해서는 안 된다. 


2
  고등학교 시절이 끝나가고 있었고, 처음으로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텅 빈 미래의 캔버스가 나를 실망시킬 테지만, 적어도 그날 밤만은 최대한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무슨 벌을 받든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월요일, 내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할 시간이었다. ... 나에게는 이 모든 조치가 정말로 타당하게 보였다. 사실은 내 예상보다 훨씬 가벼운 처벌이었다. 특히 반성문 쓰기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다. 실제로 반성문을 쓰려고 텅 빈 교실에 앉았을 때, 나는 문득 이것이 내 행동을 해명할 완벽한 공개토론의 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우리에게는 댄스파티가 매우 중요했으며, 융통성 없는 교감선생님에게 반항하고 그 결과를 감수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제 우리는 달게 벌을 받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정치학 시간에 배운 시민불족종 관련 내용도 좀 써먹었다.


3
  내가 나 자신의 원칙 만들기를 처음으로 경험한 것은 고등학교에 입학하였을 때이다. 신입생이 되고 처음 몇 주 동안은 모든 것을 제대로 하려고 노력했다. 정확히 시킨 대로 했는데, 여기에는 숙제도 포함되었다. 라크로스 훈련과 방과후 동네 슈퍼마켓에서 상자 나르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면 저녁 8시쯤 되었다. ...
    입학하고 처음 몇 주일 동안은 이 계획에 다라 착실하게 움직였다. ... 하지만 곧 나에게 부과된 숙제를 전부 하려면 매일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라크로스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내가 만든 팀 아니던가! 또 집안 살림에 도움이 되려면 슈퍼마켓 아르바이트도 계속해야 했다. 엄마가 일자리를 얻더라도 그 수입만으로 살림을 꾸려나가기는 벅찼다. ...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우리가 살던 집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1층으로, 벽에 페인트칠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이제야 나는 '더럽게 가난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

  그런데 나에게 주어진 모든 숙제를 하려면 분명 일을 못하게 될 판이었다. 나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결심하고는 '숙제 안 하기 정책'을 실시했다. 계획은 간단했다. 가능한 선에서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모든 수업시간에 완벽하게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 일단 이렇게 해결책을 정하자 안도감이 밀려왔다. ... 다음날 나는 선생님을 한 분씩 찾아가 계획을 설명했다. ... 내 말에 웃음을 터트리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모든 분들이 내가 정말로 그러고 싶다면 원하는 대로 하라고 당신들 나름대로 허락하셨다. 대신 나의 종합적인 성적에는 영향이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 나는 기꺼이 그걸 감수할 작정이었다.

  그대부터 나는 숙제를 하지 않았다. 대신 수업에 열중하면서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려고 기를 썼다. 사전에 내 계획을 솔직히 이야기 하고 양해를 구한 덕분인지 선생님들은 벌점을 적용하지 않았다. 나의 '숙제 안 하기 정책'이 종합성적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것은 모든 면에서 굉장한 성공이었다.


4
  규칙 자체에 반대한 것은 아니다. 다만 큰 그림을 보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 학교에 다니는 목표는 결국 숙제가 아니라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성적에 대한 걱정을 떨쳐버렸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흥미를 끄는 과목의 공부에 집중했다. 그로인해 유전학은 A+를 받은 반면 쉬운 과목에서 C를 받기도 했다. 나는 모범적인 학생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신중하게, 의식적으로 나의 길을 선택했다.

  나에게 최선이 무엇인지 교사들이 - 혹은 그 문제에 대해 다른 누군가가 -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내 나름의 해결책을 통해 상호 합의된 목표를 더 훌륭하게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오히려 직장에서는 이러한 기회를 깨닫고 실행하기가 쉽다. 당신은 불빛이 흐릿한 방에서 일이 잘 되는가? 오후에 잠깐 눈을 붙이고 나면 능률이 더 오르는 타입인가? 좀 더 구미가 당기는 부차적인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가? 당신의 비즈니스를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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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도와주는 규칙들이 있기는 하다.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생산성을 높이고, 성공을 촉지하는 규칙들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프로그램을 짜주어야 하는 컴퓨터가 아니다. 다들 저마다 별난 괴짜들이다. 단순히 권위가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더 잘 아는 것은 아니다.
  만일 상사나 동료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며 목표 또한 잘 정리되어 있다면, 당신의 요구조건에 상대가 맞춰줄 수 있는 융통성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게 마련이다. 한편,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전례나 규약을 위해 계획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변에 강요해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요구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는 데서 해결책이 나온다.



% 이 글은 책 '나는 어떻게 일하는가'(원제:Things A Little Bird Told Me/ 비즈 스톤 지음, 유향란 옮김/ 출판사 다른)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책에는 1장부터 18장까지 수록되어 있으나, 책 메모는 여기 13장에서서 마칩니다. :)

2015-01-15

책: 메모. '나는 어떻게 일하는가' - 9장. 큰 변화는 작은 꾸러미에서 시작된다


*트위터 공통창업자 비즈 스톤Biz Stone 지음, 원제: Things A Little Bird Told Me



1

  나도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무얼 그려야 하나? 아하, 새를 한 마리 그려야지.' ... 파란색을 썼는데, 매우 산뜻해 보였다. 나는 그보다 좀 연한 파란색으로 배와 부리 그리고 날개를 그렸다.

  사람들은 그 새를 좋아했다. 나는 그것을 트위터 새라고 불렀다. ...
  얼마 후 나는 그것에 대해 좀 더 철학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
  트위터는 표현의 자유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날고 있는 새를 사용했다.

  "미래에 대한 나의 야무진 꿈대로라면, 사람들이 독재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트위터를 사용할 겁니다. 그때 사람들은 무너져내리는 독재의 담벼락에 스프레이로 이 새를 그릴 겁니다."

  트위터에 트윗을 올리는 방법이 다양해져 그것을 제한하기란 불가능해질 것이다. 어떤 나라에서든 통신의 자유를 갖게 될 것이다. 어떤 제약이 주어져도 사람들은 그것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트위터를 폐쇄하려면 전 세계 모든 이동통신업체의 문을 닫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기술적 약점만이 우리의 유일한 장애물이었다. 트위터는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시대의 도도한 물결이었다.



2

  트위터가 제공해야 할 최대의 교훈은 극히 단순한 도구도 사람들에게 위대한 일을 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트위터를 만들게 된 발상은 미미했으나 그 성장은 가히 기하급수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성장과 함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을 서로 통하게 하는 소셜 네트워크의 진정한 힘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집트의 반정부시위... 어떻게 항의집회를 조직하고 정보를 공유하는지 그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트위터를 사용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트위터가 생명줄로 작용하는 무궁무진한 시나리오를 상상할 수 있었다. 특히 나는 트위터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공상하는 일이 잦은 편이었다. ... 가능성을 상상할수록 나는 트위터의 온전한 가치사람들의 사용방식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더욱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언론에 우리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 말해주는 대신, 가장 최근에 트위터가 변화시켰거나 구원해 준 삶을 찾아내게 했다. 이는 트위터가 잘났다는 말이 아니었다. 좋은 일을 하는 훌륭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 거짓말 같은 인간의 행동이 줄줄이 이어지는 가운데 하나로 뭉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유명인사들이 트위터를 사용하고 싶어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 내가 계산에 넣지 못한 점이 있었다. ... 트위터는 스타가 팬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다. 진작 그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인간적인 트위터 덕분에 사람들이 우리 회사를 좋아하는 것처럼, 유명인사들 역시 인간으로 보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유럽과 캐나다에서는 여전히 트윗마다 돈을 지불해야 했다. ... 국제 통신회사들은 트윗의 무료 사용에 동의하지 않았다. ... 엄청난 금액의 청구서는 나의 한계점이었다. 그것이 도착하면 컴퓨터 플러그를 뽑아버렸다. 국제 트위터를 꺼버린 것이다. 그런 다음 트위터 블로그에 이런 포스트를 올렸다.  '비용이 너무 비싼 탓에 방금 모든 국제 트위터를 껐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면 통신사들로부터 협상 전화가 올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3

  경영진 교체와 기술 문제로 회사는 분열되었다.

  지도자가 된다는 것때로 확신에 찬 모습을 연마한다는 의미임을 인정한다. 그것이 내 리더십의 지향점이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이것은 올바른 일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공동의 사명감을 준다. 우리는 중심을 잃어버린 혼란스러운 회사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
  2008년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가운데... 나는 트위터가 끊기지 않고 제대로 작동될지, 이 대형 이슈를 이용해 직원들의 사기를 어떻게 회복할지에 모든 관심을 쏟았다.
  우리가 다시 한 팀임을 느끼게 만들고 싶었다. 

  선거를 앞둔 몇 달 동안 우리는 용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연일체가 되어 열심히 일했다.

  대통령 후보들이 선거를 자신들을 위한 쇼라고 여겼을지 모르지만, 뉴스 제작팀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를 위한 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팀은 하나가 되었다.

  나는 직원들에게 '정보의 민주화에 새로운 특징을 추가하며'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냈다.
수백만의 시민이 주요 이슈에 대해 실시간으로 반응하며, 정치 활동가들은 항의시위를 조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 트위터를 사용하고 하나로 움직입니다.
  솔직히 다소 오버한 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글을 쓸 때 나는 직원들이 '세상에, 내가 하는 일이 이렇게 중요하다니!'라고 생각해 주기를 바랐다.



4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트위터가 연관되는 이유를 찾아내고 있었다. ...
  우리가 성능에 초점을 맞춰 땀 흘리는 동안, 사람들은 트위터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물론 트위터가 전형적인 통신사는 아니다. 트윗에 담긴 내용이 신뢰할 만한 데이터나 사실이라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오직 사용자가 생성한 140자 이내로 구성되었을 뿐이다. ... 그것이 뉴스의 미래이건 아니건 간에 최소한 보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확실하다. ... 트위터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과 우리즉각적으로 연결해 준다.

  또 단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리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을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었다.

  전 세계는 더욱 분명하게 트위터의 잠재력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잠재력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트위터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동시에 신뢰할 수 있어야 했다.
  우리는 그 두 가지를 열심히 밀어붙였다.



5

  2010년 10월 19일자 <애틀랜틱Atlantic>에 실린 기사에서 보듯이, 트위터가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생각에 전혀 반발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말콤 글래드웰은 <뉴요커New Yorker>에 "이러한 과장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다. 혁신가들은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있다. 그들은 사방에 널려 있는 모든 사실과 경험을 자기들의 새로운 모델에 우겨넣고 싶어한다"는 글을 썼다.

  ... 나는 그 기사에 마음이 무거웠다. 오히려 우리는 사람들이 트위터를 혁명의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해 왔다. 트위터는 사람들이 좋은 일에 이용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대단하지 않은가?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도구만 쥐어주면 훌륭한 일이 가능해진다.

  그 누구도 전화 때문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여하간 그때 사람들은 전화를 걸지 않았던가? 트위터는 리더 없이 자체적으로 조직된 체제변화의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증거였다.



6

  2010년 말에 아랍의 봄이 시작되면서 트위터의 역할을 분명히 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아랍 각국의 활동가들은 시위 준비에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이용했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자 우리는 실질적으로 다음 혁명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

  아랍의 봄이 진행됨에 따라 갑자기 주요 방송국들에서 뉴스 섭외 요청이 들어왔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 자아도취에 빠지거나,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 회사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강조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TV에 나가 '자, 우리 회사를 보세요! 참 대단한 회사 아닙니까?'라고 말하기는 싫었다.
  우리의 존재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가시적인 일부라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나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이사회나 가까운 투자자들 가운데 "뭐라고? 자네 미쳤나? 국제 뉴스에도 나오고, 이게 얼마나 대단한 기회인데!"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 그렇더라도 나는 언론사와 만나고 싶지 않았다.



7

  구글 블로거에 취직하고 싶어했을 때 나는 그곳에서 근무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그려보는것어떤 일을 실현시키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이제 내가 상상했던 트위터 사용자들의 사례가 그대로 재현되는 것을 보자 마치 백일몽처럼 느껴졌다.
  상황이 급박하고 매우 심각해졌다. 갑작스럽게 우리는 여러 정부와 어떻게 상호작용해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2009년 6월, 의례적인 정비 안내문을 올리자 그 즉시 전화와 이메일이 빗발쳤다. "그 시간에 서비스를 중단하면 안 됩니다. 이란에서 집회가 예정돼 있어요." 이란 정부가 통신수단을 모조리 폐쇄했기 때문에 트위터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 사건과 관련된 이메일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미국 정부 관계자가 우리 이사들 가운데 한 명에게 보냈는데, 국무부에서는 정비를 위한 트위터의 서비스 중단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그 정비 작업을 진행해야만 했다. 이미 열세 번이나 연기했기 때문에 자칫 시스템이 망가져 버릴 수도 있었다.  결국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한 번만 더 연기하는 게 좋겠어요."

  이는 국무부의 의견을 따르려는 의도가 아니라, 트위터제대로 기능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임무는 그것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잘 돌아가게 하는 일이었다.

  정부는 트위터에 결정을 내릴 그 어떤 권한도 갖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미국 정부는 물론이고 그 어떤 정부의 편에도 서고 싶지 않았다. 그저 기술 제공자로서 중립을 지키는 것우리의 본분이었다. ... 우리는 어떤 정부에도 협력하지 않았고, 사용자 정보에 접근하려는 정부의 어떤 시도도 그냥 넘기지 않았다.



8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온전하게 지키려고 노력했다.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원하는 가장 중요한 것에 즉시 연결시켜 주는 일이 바로 그 목표였다.
  이를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가 필수적이었다. 어떤 트윗은 독재국가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촉진할 수 있다. 또 어떤 것은 우리를 미소 짓게 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에게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거나 사용자 대다수를 노골적으로 화나게 하는 트윗도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이 올린 트윗 내용에 항상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시각과 무관하게, 정보는 계속 올라와야 한다.

  우리는 공개적인 정보 교환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믿었다. 이는 실용적이면서도 윤리적믿음이었다.

  우리가 세상을 직접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았지만, 더욱 심오한 무언가를 하면서 깊은 영감을 주는 교훈을 얻었다. 좋은 사람들에게 가능성을 건네주면 그들이 위대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초능력을 지닌 영웅은 아니지만, 그래도 함께라면 우리가 새로운 방향으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책: 메모. '나는 어떻게 일하는가' - 6장. 실수에서 배우는 삶의 가치들


*트위터 공통창업자 비즈 스톤Biz Stone 지음, 원제: Things A Little Bird Told Me



1

나는 재주는 있었지만 도무지 주변머리가 없는 편이었다.

  "어제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아가씨가 제법 예쁘던데, 데이트를 신청해 보지 그래?"
  나는 그렇게 하는 게 좋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레스토랑으로 가서 다짜고짜 나가자고 한다고? 스티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너무... 노골적인 것 같은데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해."
  그래서 다음날 점심때 나는 다시 그곳으로 갔다. 마음 한편으로는 그녀가 그곳에 없기를 바랐다. ...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가 있었다. 금발의 미녀였다. 하지만 나는 아무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내게는 계획이 필요했다. 나는 다시 레스토랑 밖으로 나갔다. ... 이제 계획이 세워졌다. 나는 다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
  시작부터 난감했다. 나는 그냥 밖으로 나갈지를 잠시 고민했다.
  "...함께 영화나 보지 않겠느냐고 물어볼 참이었어요."
  "아, 그랬군요. 그런데 나는 남자친구가 있어요."
  '남자친구라고? 물론 있겠지. 흥!' 나는 그 남자친구라는 작자가 데이트를 거절하기 위해 꾸며낸 인물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 새롭고도 낯선 세계에서 사용되는 미묘한 말뜻을 파악하기에는 마음이 너무 바빴다.
 그런데 뒤쪽에 있던 그녀의 친구가 "맙소사."라고 말했다. '근사하지 않니? 이 남자는 정말로 너한테 관심이 있는 거라고!'의 의미가 담긴 듯했다. ...
  나의 시도는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당혹스러워하는 대신 배짱이 생겼다.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 아동도서 편집부에서 근무하는 젊은 여자가 무언가를 전해주러 사무실에 왔다. ... 왠지 우울해 보였다. 나는 한눈에 그녀가 좋아졌다. ...
  나는 리비아(이게 그녀의 이름이었다.)가 근무하는 사무실을 찾아 대담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하자 ... 자신의 상사랑 같이 가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 우리는 약속을 잡았다. 나는 그 사이에 사내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곧잘 써먹는 것처럼 그녀의 사무실에 갈 핑곗거리를 찾았다. 리비아는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그런데 상사와 함께 쓰는 컴퓨터에 그녀가 붙여놓은 메모지를 발견했다. ...
  그녀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데이트하기를 바랐다. 나중에야 그건 내가 일에서 너무 자신만만해 보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나를 건방지고 뻔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사실이었다. 일에 대한 문제에서 나는 늘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데이트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마침내 우리는 점심식사를 함께하러 갔다. 아늑하고 친밀한 3인용 식탁에서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얼간이처럼 굴지 않은 것에 리비아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나는 예의바르게 처신했으며, 재미있고 매력적이고 점잖게 행동했다. 그녀는 나의 애프터 신청을 받아들였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리비아와 나는 정말로 사귀기 시작했다. ... 리비아는 늘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이해했고, 진짜 어려운 결정을 통해 나를 도와주었다. 우리가 어디로 가든 그녀는 출판사나 잡지사에 일자리를 구했다.... 진부한 표현이라는 건 알지만, 리비아는 내 옆에 찰싹 들러붙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연애나 인간관계에서 주변머리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뒷짐만 지고 있지는 않았다.


일어날 수 있는 일 가운데 최악이 무엇일까?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 상대방이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하는 것?
아니면 데이트에 보호자를 데리고 올 정도로 상대가 흥미를 보이지 않는 것?

비록 이번에는 실패하더라도 다음에는 좀 나아지지 않을까?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경우 사람들은 대개 몸을 사린다. 안전망을 설치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

  문제는 우리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기꺼이 감수하려 하지 않을 경우, 최고의 시나리오를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만일 자신이 꿈꾸는 가능성을 향해 가려 한다면, 일에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 위험을 감수하려는 마음이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어준다.




2

  <가타카Gattaca>(공상과학 영화)에서... '빈센트'(우월하지 않은 유전자를 통해 태어난)는 수영시합(아주 먼 바다까지 헤엄쳐서 나가되 먼저 포기하고 돌아오는 사람이 지는)에서 이기기 위해 죽음의 위험조차 기꺼이 감수했다.(반면, '안톤'은 훨씬 강했지만 대신 그는 조심스럽고 신중했다. 모든 것을 바치지 않고 돌아올 힘을 남겨두었다.)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이 빈센트의 결정에 담겨있다.

  화끈하게 성공하기 위해서는 화끈하게 실패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는 곧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죽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다.

  지구를 뒤흔들고 삶을 뒤바꾸는 엄청나고 장렬한 실패를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성공을 거둔다면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고도 남는 일이다. 설령 실패한다 해도 당신은 대단한 이야깃거리를 갖게 되며, 다시 그 일을 하게 될 때 매우 중요하고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이것은 대체로 새로운 일의 시작에 좋은 가르침이 되며, 당신이 진실로 원하는 일을 하려 할 때도 교훈이 된다. 말하자면 양쪽에 균등한 힘이 작용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니 정말로 크게 성공하고 싶다면 엄청난 실패에 대한 위험부담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고등학교 시절 체조수업이 있었다. 나는 백핸드스프링을 배우고 싶었다. ... 하지만 막상 해보면 힘차게 점프하기가 어려웠다. 겁을 먹고 물러서거나, 비틀거리며 돌거나, 옆으로 넘어지기 일쑤였다. ...
  그런 나를 지켜보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 가장 중요한 점은 기꺼이 제어지점을 지나서 떨어지겠다는 자세지. 그러한 위험에 너 자신을 맡길 수 있다면 크게 힘들이지 않고 뒤로 재주넘기를 할 수 있을 거다."
  나는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시도해 보았다. 그랬더니 정말로 재주넘기에 성공했다.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지났더니 별로 힘들일 필요가 없었다. ...

  성공을 거두었을 때 그것은 얼마나 환상적인 일인가?

  백핸드스프링에 성공하자 나는 경외감을 느꼈다.




3

  트위터가 끊임없이 말썽을 일으켰던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방대하고 복잡한 프로그램으로 애초에 급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
  우리가 트위터를 만든 방식은 이상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잘못되었다고 할 수도 없었다.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엄청난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해서도 안되었을 것이다.
  어떤 제품을 오랜 시간 공들여 완벽하게 만든 후 내보내기 보다는 일단 작동만 되면 세상에 선을 보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트위터의 대형사고 중 하나가 이른바 플랫폼 문제였다. 2007년에 우리는 플랫폼을 내놓았다. ... 제3자인 개발자가 트위터의 기술을 이용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 하지만 섣부른 결정이었다.
  플랫폼을 내놓자마자 새로운 트위터 앱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그로 인한 수많은 선택권이 오히려 사용자의 정신을 사납게 했다. 또 우리 서버에서 모든 앱의 요구를 무제한으로 허용하다 보니 원할한 서비스에 제동이 걸렸다.
  페이스북이 자체 플랫폼인 f8을 들고 나왔을 때도 같은 문제를 겪었으리라 생각한다. ... 페이스북은 계획을 취소하고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규칙과 제한을 도입해야 했다. 현재 대부분의 페이스북 앱은 페이스북이 자체적으로 만들고 있다.
  책 표지를 작업하면서 나는 완벽한 디자인이란 다양한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점을 배웠었다. 미술부, 편집부, 영업부의 마음에 모두 들어야 했다. ... 우리는 이와 같은 목표 아래 플랫폼을 세상에 내놓았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런 준비 없이 대뜸 수문부터 열었다. 나중에 일부를 폐쇄해야 했을 때 사람들은 매우 혼란스러워했다.
  우리는 방심했다. 개발자들이 작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옵션을 내놓으면서 좀 더 천천히 시작할 수도 있었다. ... 그런데 우리는 신중하고 비판적인 접근법을 취하지 않았다. 

  어떤 실패는 일이 마비될 정도로 위험하지는 않다. 그저 평범하고 오래된 실수일 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정직하게 대응하고 그러한 상황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다.




4

나는 리비아에게 말을 꺼냈다.
"우리도 이제 결혼을 해야겠어."
"제기랄."
리비아의 반응이었다.
찜찜하기는 했지만 그녀의 희망적인 반응에 용기를 내서 나는 일을 저질렀다.

  리비아와 나는 애초 사람들을 피해 도망가려고 했다. ... 그런데 친구들이 결혼식 '증인'으로 나타나는 바람에, 가족들을 왕따시킨 소박한 결혼식과 도피여행의 중간쯤이 되어 버렸다. 이를 통해 우리는 후딱 해치울 수 있는 결혼식의 마법을 경험했고, 배신감과 소외감을 토로하는 성난 가족들의 원망을 평생 들으면서 살게 되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렸다. 식이 시작되고 1분도 지나지 않아 친구 던스턴이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었다. 그것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결혼식 사진이다. 나는 면으로 된 양복을 입고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힌 채 활짝 웃고 있다. 아내는... 빈티지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표정은 알 수 없다.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처럼 보이는 반면, 아내의 몸짓에는 이제 막 최악의 실수를 저지른 여자라는 분위기가 은근히 풍긴다. 마치 속으로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라고 중얼거리는 듯하다.

  내가 그녀에게 늘 말해왔던 것처럼,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 가운데 일부는 실수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벤 프랭클린Ben Franklin도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인류가 저지른 실수의 역사는, 모든 점을 고려할 때 그들이 이룬 발견의 역사보다 훨씬 가치 있고 흥미롭다."

  오늘날까지 우리 부부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내가 아는 한 말이다.

2015-01-13

리뷰: 모옌(莫言, 중국 소설가, 2012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단편, '먹는 일에 관한 이야기 둘'

*그 중에서도 '먹는 일로 당한 치욕' 을 읽고



당신은 자신의 생리적 치부를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가? 
아니 누군가에게 드러낼 필요는 없더라도, 어디까지 스스로 엿볼 수 있는가? 



  최근에 본 영화 중에 음악과의 조합이 너무 인상적인 덕에,  그 영상이 더욱 선명하게 남아있는 영화가 하나 있다. 개인적으로 오래전에 보았던 <헝거hunger, 2008>가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것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고 나서는, 감독이 '몸'을 통해 인간의 바닥을 드러내는데 깊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비교적 최근에 극장에서 상영된 <노예12년12 Years, A Slave, 2013> 를 등으로도 잘 알려진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 감독, 그의 2011년 작  <셰임Shame>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영화다.


  <셰임>의 O.S.T 들은 단조롭고 비장하고 또는 웅장한... 그러면서 그 이면에 깊은 고독을 담고 있는 곡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이 곧 <셰임>의 영상이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남자는 간단히 말해 성性에 집착하고 중독이 되어있다. 마치 올무에 발이 걸려 어떻게든 벗어나려 드는 고라니 한마리 같다. 자신의 다리 가죽과 연골이 다 갈려나가고 핏기 어린 뼈가 드러나 있는지도 모르는채 여전히 허공을 향해 발길질을 해대는 것처럼, 주인공은 일견 자기를 자각하는 순간이 오고 그것을 벗어나려고도 하지만 여전히 그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업業의 덫 안에서 심신이 찟겨 나가기만 한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그가 묶인 덫을 더 확대하고 적나라하게 까서 보여준다. 우발적으로 동성과도 관계를 맺는가 하면, 마지막에는 두 명의 여자를 상대로 하는 베드신을 통해 그의 습관화된 거대한 욕망의 심연을 보여준다. 그때 클로즈업 되는 그의 얼굴에는, 몸이 누리고 있는 모든 즐거움이 사실은 고통임을 말하는 것인 마냥, 치부恥部에 가까운 초췌함이 처량하게도 만연해 있다.

  그는 자신의 생리적,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생리욕구적 치부를 보는데 결국 자기 시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
 남자가 밤에 홀로 거리로 나와 조깅한다. 남자의 치부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으나 음악과 영상에서 영화 전반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장면이다.
*참고로, 블로그에 O.S.T 두 곡을 올려놓았다. 'Unravelling', 'New York, New York'





  모옌의 <먹는 일에 관한 치욕>은 이런 면에서 보자면, 자신의 욕구를 너무나 잘 꿰뚫어 보고 있는데 오히려 이 때문에 겪는 인간 내면적 갈등을 그린다.

  사내는 식성이 너무나 좋다. 그리고 그것을 타고났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밥을 먹다보면 으레 꼴사납게 먹는다는 소리를 듣곤한다. 시골에서 올라 온 사내는 텃새를 부리며 거리낌없이 말해대는 수도 베이징 사람들, 그들의 인정없는 말에 상처받곤한다. 그리고 분해하고 억울해 한다. 그러나 다행히 그가 또 하나 타고난 것, 즉 기억력이 별로 안좋다는 것에 힘입어 그 말들을 이내 잊곤한다. 그런 연후라 다시 사람들과 밥을 먹을라 치면 자존이나 체면이라는 것은 일절 없는 사람처럼 밥을 먹고 있다. 이런 경우들이 대부분 그들에게 밥을 얻어 먹다가 겪는 경우여서,  이때 가해지는 그들의 모욕은 얻어먹는 밥과 맞물리며 고스란히 감내해야 되는게 되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러다 모옌 소설의 주인공(그도 이름이 '모옌'이다)에게도 자기를 바꾸어야 겠다고 강하게 마음 먹는 순간이 온다.

 '나는 어찌 그리 천박할까, 나는 어찌 그리 주책이 없을까? ... 너는 스스로 항상 너 자신의 신분을 잊고 있다. 너는 시골 출신이고 남들이 너를 근본적으로 안중에 두지도 않으며, 근본적으로 사람으로 보고 있지도 않다는 것을 잊고 있다. ... 이런 도리를 깨닫게 된 뒤, 나는 차라리 굶어죽을지언정 남이 사 주는 것은 먹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럼에도 그는 굴욕을 당하는 경우를 겪게된다. 그는 베이징을 벗어나 고향집에 내려와 있을 때 자신의 어머니를 상대로 모든 것을 고백하고 조언을 구한다. 어머니는 '믿을 수 없다. 사람은 자존심으로 사는 건데...'라고 말하면서도 어떻게 처신 해야할 지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그 방법을 차차 따르게 되니 사내는 일단 자신이 음식 앞에서 안달하지 않고 겸양한 태도로 먹을 수 있게됐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고는 이제 모두의 칭찬을 기다린다. 그런데 그에게 돌아오는 말들은 억지로 애를 쓴다거나, 본래 생긴대로 노는게 좋다는 등의 여전히 굴욕적인 소리들 뿐이다. 다시 찾아간 어머니는, 운명을 받아들이라 한다. 다만 그렇게 말하면서 지적한다. 즉 사내의 몸이 드러내는 치부 이면의 것을 지적해준다.

'엄마가 볼 때, 네가 하루하루가 다르게 몸이 불어나는 것이 분명한데, 행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몸이 불겠니? 아들아, 너는 지금 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몸이 복 속에 있으면서 복을 몰라서야 되겠니?' 

  어머니의 말을 찬찬히 음미해 보니, 사내는 점점 마음이 평안해졌다. 더 나아가 그는,
  '이른바 자존이나 체면이라는 것은 모두 배가 부르고 난 뒤의 일인 것이다. 곧 배고파 죽게 생긴 사람에게는 문둥병 환자가 먹다 남긴 국수조차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다. 물론 굶어죽어도 미국의 구호 양식은 안 먹겠다는 주쯔칭 선생 같은 분도 있지만, 그 분은 위대한 분이고, 나처럼 개돼지 같은 존재는 결단코 자존과 명예 따위의 개소리 놀음으로 자신을 난처하게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라고 자신의 분명한 새로운 입장을 '스스로'에게 말한다.


  <셰임>의 남자가 자신의 치부를 자각하는 데 한계를 갖게 되면서, 그 한계 밖에 놓인 눈(카메라 또는 세상)에 포위되는, 그래서 결코 자신의 치부를 숨기지도 못하게 되는 존재로 남아 있는다면,  <먹는 일에 관한 치욕>의 사내는 어느 순간부터 끊임없이 자신의 치부를 알아차린다. 부끄러움과 굴욕 그리고 상처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억지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어머니)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그것을 말하며 자각시킨다.
  그 끝에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과정, 즉 체념에 이르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렇게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이 있음으로 해서 그의 발목을 꽉 쥐고 있던 덫이 결국은 스스로 만들어낸 허상임을 알게된다. 그는 치부를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결국은 치부를 벗어던진 존재로 거듭난 것이다.
  사내의 말을 다시 한번 빌리면, 자존과 명예 따위의 개소리 놀음으로 자신을 난처하게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소설의 첫 문단
  '남의 음식을 먹는 데 있어 입이 짧아야 한다는 말의 뜻은 아주 분명하다. 단지 이 정도 뜻만 가지고는 뭐 별로 뜻이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 내 말은 남의 당근 하나 얻어먹고 당한 치욕은 오래된 산삼 한 뿌리를 가지고도 깨끗이 씻어 내기 어렵다는 의미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
사실 소설 전반이 촌철살인의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이 단락은, 식당에서 (프랑스산 혈통있는) 개에게 (그것도 모르고) 고깃조각을 하나 던져 주었다가 쫓겨나다시피해서 뛰쳐나와 숙소로 돌아와 눈물을 흘리며 하는 생각이다.
  '모스크바가 눈물을 믿지 않으니 베이징은 더욱 눈물을 믿지 않을 것이다. 베이징은 물이 부족한 도시다. 눈물은 양이 적지만 수돗물이 변해서 된 것이니 함부로 흘리는 것은 각성이 부족하다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었다. 외지에서 베이징에 온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 울려면 산둥山東(모옌의 고향)에 돌아가서 울어야 한다. 베이징 수돗물을 마시지 않는다면 베이징에서 울어도 될 것이다. 그러면 울고 싶을 때 울어도 된다.'

*'붉은 수수밭 가족'
  나는 중국 영화중에는 장예모 감독의 <붉은 수수밭>(1998년 베를린영화제 대상 황금곰상 수상작)영화 등을 좋아하는데, 이것과 첸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 두 영화의 시나리오를 모옌이 썼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 <붉은 수수밭>시나리오는 자신의 소설 <붉은 수수밭 가족>을 원작으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에는 이 원작을 한번 읽어보고 싶다.




2015.1.13
홍성

2015-01-12

'Mother died today. Or, maybe, yesterday; I can,t be sure.'

카뮈Albert Camus '이방인L'Étranger' 영역본을 구했다.
첫 문장부터, 다시 설렌다.



'New York, New York' : by Carey Mulligan <셰임Shame> OST





소문을 내주세요
나는 오늘 떠나요
난 뉴욕의 일부가 되고 싶어요
Start spreading the news
I'm leaving today
I wanna be a part of it

뉴욕 
New York
뉴욕
New York

나는 그 도시에서 깨어나고 싶어요
잠들지 않는 그 도시에서요
그리고 내가 최고라는 사실을 깨닫고 싶어요
그들 중 최고라는 걸
I wanna wake up in a city
That doesn't sleep
And find I'm king of the hill
Top of the heap

이 방랑자의 신발은
떠돌고싶어 안달이 났어요
뉴욕의 심장부를 가로질러
뉴욕, 뉴욕
These Vagabond shoes
Are longing to stray
Right through the very heart of it
New York, New York

만약 내가 그곳에서 성공할 수 있다면
어디서든 성공할 수 있어요
어디서든 
If I can make it there
I'll make it
Anywhere

당신에게 달린거에요
It's up to you


뉴욕, 뉴욕
New York, New York




나는 그 도시에서 깨어나고 싶어요
잠들지 않는 그 도시에서요
그리고 내가 최고라는 사실을 깨닫고 싶어요
그 리스트의 첫머리
최고인 사람이란걸요
그들의 꼭대기에 서서
I wanna wake up in a city
That doesn't sleep
And find I'm king of the hill
Head of the list
Cream of the crop
At the top of the heap

이 작은 마을의 우울들은
녹아 없어져 버릴 거예요
난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할거에요
오래된 뉴욕에서
These little town blues
Are melting away
I'll make a brand new start of it
In old New York

만약에 내가 그곳에서 성공할 수 있다면
어디서든 성공할 수 있어요
어디서든 
If I can make it there
I'll make it
Anywhere

당신에게 달린거에요 
It's up to you

뉴욕
New York

뉴욕
New York



*원곡은 Frank Sinatra의 'New York, New York'(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