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金薰). 소설가. 1948년생(서울). 대표작 '칼의노래'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할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 '02년 2월, 월간조선 인터뷰 중에서
'나는 젊은이들이 구체성을 묻는 질문을 배우기를 바라요. 말하자면,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과학적으로 들여다보는 안목을 갖기를 바라요. 사이언스를 알아야 된다 그거예요. 사이언스. 우리 젊은이들은, 나도 그렇지만 이 세상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이 너무나 모자라요. 교육이 그렇게 돼 있어요. 이 세상을 항상 정서적으로 인식하거나 심미적으로 인식하죠. 아니면 이념적으로 인식해버려요. 어떤 현상을 보면, ‘이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왜 이런가’, ‘이것과 저것과의 관계는 어떤가’를 질문하지 않고, ‘이것은 내 마음에 드나 안 드나’, ‘이것은 내가 보기에 아름다운가 추한가’, ‘이것은 나한테 이로운가 해로운가’, ‘이것은 나한테 이로운가, 저놈한테 이로운가’, ‘이것은 내 적한테 이로운가, 내 적의 적한테 이로운가’를 생각하죠. 인간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저 인간은 내 편인가 아닌가’를 생각하잖아요. ‘저 사람은 내 편은 아닌 것 같은데, 내 적의 적인 거 같으니까 내 편이 될 수도 있겠다.’ 이따위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 세상을 이해할 길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대해서 과학적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해요. 그런 사람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는 것이죠. 나는 문학이라는 것은 과학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대해서 문학적인 질문을 한다는 것은 그 세상을 과학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죠. 심미적으로 이해한다기보다는. 물론 심미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에요.'
- '13년 5월, 네이버캐스트 인터뷰 중에서
'인간이 소통하기 위해서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열을 짜고 군집을 이루는 것이 소통이 아니고, 개별적 존재로 이성적 거리를 유지해야 소통이 가능하다.
개별적 존재들의 개별성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소통이 가능하다.
소통은 동일화가 아니며 이성적 존재와 이성적 존재 사이에서 오고가는 대화다.'
- '11년 4월, 아시아경제 인터뷰 중에서
'나를 형성한 습관이나 원칙……, 글쎄요……. 나는 스승이나 선배가 없이 산 사람이에요. 나 혼자서 산 사람이지요. 그리고 지금은 어디 매인 데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아무도 나를 컨트롤해주는 사람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 자신을 규율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내가 나를 규율하지 못하면 나는 망해버려요, 그 순간에.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정확하게 일을 하고, 그날 봐야 될 책이나 자료를 보고 그러는 것이지요. 근면하게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것들을 실천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재주가 없으면 부지런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나 자신에게 강철 같은 기운을 스스로 부과하는 것이지요. 그것에 의해서 나를 버텨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기운을 상실하는 순간에 난 모든 것을 잃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지요. 나는 늘 조금씩이라도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그것이 나의 습관이에요.'
- '13년 5월, 네이버캐스트 인터뷰 중에서
우리는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나는 소설을 쓰기 위해 많은 데를 다녀요. 그러다 보면 몇 개의 이미지가 걸려 들어와요. 그러면 그것이 글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되죠. 책보다도 오히려 세상을 직접 보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돼요. 책은 자료나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도움이 되는데, 이미지를 확보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안 돼요. 그래서 책을 별로 안 좋아해요.
물론 나는 책을 아주 많이 읽은 사람입니다. 아마 쓸데없이 많이 읽은 사람일 거예요. 하지만 그것을 추호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아요. 내 친구들 중에 평생 책 한 권도 안 읽은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무시하지도 않아요. 그 사람들은 밥 벌어먹고 살기가 너무 바빠서 책을 안 읽은 거예요. 나는 그 사람들 보고 책 읽으라는 말은 안 해요. 다만 그 밥 버는 일을 성실하고 정직하게 하는 게 좋겠다는 얘기는 하지요.
공자님 글을 보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와요. 그런데 그것이 책 읽으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책을 들여다보라는 얘기하고는 전혀 다른 것이에요. 공자님이 말씀하시는 공부하라는 얘기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스스로 나아갈 바를 찾아보라’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책 들여다보는 공부보다 훨씬 어려운 공부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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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에요. 우리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느냐는 것이 우리가 세계를 상대하는 거의 모든 문제일 거예요. 그러니까 책보다도 인간을, 이웃 사람을, 친구를 잘 들여다보는 것이, 그들을 직접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것이 책을 읽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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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남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나는 젊은이들이 자기 내부에 침잠해서 자기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지 말고 자기 주변의 인간, 주변의 사람을 좀 더 폭넓고 심도 깊게 들여다보았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젊은이들이 자기의 삶을 건강하게 자리 잡아가는 길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까 남을 이해하고, 나와 너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고, 그 관계에서 아름다움과 그 정당성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걸 찾아가는 게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13년 5월, 네이버캐스트 인터뷰 중에서
삶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가치는 무엇일까
'나는 밥벌이야말로 인간이 자기의 도덕과 인격을 완성해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어먹을 수 없는 자가 무슨 인격을 말할 수가 있겠어요. 그렇죠? 인간의 인격은, 인간의 도덕성은 자기 손으로 제 밥을 벌어먹어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죠.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나로서는 매우 중요한 얘기를 하는 것이죠.
그리고 나는 밥벌이라든지 돈이라든지 건강이라든지, 그러니까 말하자면 세속적인 가치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인정할 수가 없어요. 이것은 인간에게 소중한 거예요. 돈은 엄청나게 소중한 겁니다. 돈을 열심히 벌고, 아껴 쓰고, 잘 쓸 줄 알아야죠. 돈을 하찮게 알고, 돈벌이를 우습게 알면서, 자기는 마치 고매한 정신세계에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을 나는 신뢰도 안 하고 경멸해요.
그러니까 나는 밥을 열심히 성실하게 벌고, 그 안에서 도덕을 실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은 때때로 지겨운 일이다 하는 거. 지겨운 일. 즉 피할 수도 없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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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젊은 사람들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나도 그런 점이 매우 모자라는 사람이지요. 자기 입장만을 생각하지 말고, 남과의 관계, 자기와 사회와의 관계, 자기와 이웃과의 관계를 깊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삶의 구체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이 나는 좋아요. 인간의 품격이라는 것도 거기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품격이라는 것은 우선 그 물적 토대가 있어야 해요. 그 위에서 가능한 것이지요. 이것은 참 저속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저속한 얘기가 아니에요. 아주 절실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 젊은이들의 취업난은 참으로 심각한 일이지요. ‘88만원 세대’라는 말도 있지만, 이것은 기성세대가 젊은이들한테 가하는 죄악이에요.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게 만들어놓고, 그 가혹한 저임금에다 방치해놓고, 그것이 시장적인 질서라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야만적인 짓이에요. 이런 것들을 개선해나가야 하는데, 그걸 개선하려면 우선 물적 바탕이 있어야 해요. 그다음에 리더십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젊은이들이 어떤 경우에도 삶의 구체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자기의 품격을 유지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 '13년 5월, 네이버캐스트 인터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