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찬, 석배, 우석, 헌규
8월 한여름 무더위 속에 잠을 설치곤 하던 새벽시간에
오늘은 알람보다 일찍 눈이 떠졌음에도 더이상 자려고 하지 않았다.
정신도 맑아있어서 잠시 조용히 누워 그간의 생각들을 가볍게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어느새 맞춰둔 알람이 울렸다. 새벽 4시 50분.
강남터미널에 예약해둔 익산가는 8시 버스를 타기위해 슬슬 준비를 했다.
오늘은 고등학교 친구들 동찬,석배,우석,헌규와 점심무렵에 익산에 모이기로 했다.
같이 모여서 동찬이 차를 타고 남해바다를 보러가기러 했다.
익산에서 모이는 건, 익산이 우리들이 사는 곳들 중 가장 남쪽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동찬이가 익산에 있기 때문이다.
동찬이는 익산에 있은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줄곧 이곳에서 생활해왔으니 말이다. 원광대 한의학 학부 6년이 무엇보다 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인턴을 거쳐 레지던트 마지막 3년차를 하고 있다. 동찬이가 평소 강조하는 대로 자신의 연고와 자리를 스스로 만드는데에 그 시간들을 잘 쏟아온 것 같다. 정말로 그런지는 내 눈으로 확인해 본적도 있었다. 인턴 때 한 번, 레지던트 때 한 번. 두 번이나 여행중에 동찬이한테 느닷없이 들렸던 기억이 난다. 병원에서는 신참이었을때라 저녁때까지 병실 환자들을 체크하며 빠듯하게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다 하루 업무를 마치면 일단락 되는가 싶다가도, 병원안 작은! 숙소에서 넉넉하지 많은 않게 지내며 환자들 간호에 긴장을 늦출 수만은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동찬이는 그 시절이 많이 힘들수 밖에 없었겠지만, 그런 모습에서 의사로서 동찬이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동찬이는 지금까지도 가끔씩 말하지만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좋은 가정을 꾸리고 살며, 한 마을에 한의원 하나를 차려서 그곳 사람들 치료해주며 살기를 바란다.
그런 앞날을 살아가려는 자세가 병원 신참시절에도 내 눈에는 들어오곤 했다. 느닷없이 찾아 온 나에게도, 일이 끝난 후 자기방으로 치킨을 시키고 동기누나들까지 같이 불러서 병원 얘기를 재밌게 들려주곤 했다. 잠도 재워줬으니, 작은!방이었지만 거기서 두 번이나 숙식을 해결해 준 셈이다. 다음날 아침 다시 출발하는 나를 배웅하며, 일상처럼 근무를 시작하는 동찬이 모습에서 안정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동찬이는 조금은 고민이 있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내년부터 해야할 군역 담당과 그 이후의 진로등에 대해서 고민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모두는 동찬이가 겪고 있는 성장통을 저마다 다른 모습이지만 하나같이 앓고 있는 걸 확인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안정된 생활을 해서 아무 고민도 어려움도 없이 사는 것보다는, 이렇게 고민들을 끊임없이 앉고 살면서도 그것들을 해결해 나가려고 노력하는 우리들 모습이 더 좋은 거 아니겠냐고 말을 던졌다. 동찬이가 그 말을 떨어뜨리지 않고 잘 받아준 거 같아 고마웠다. 그리고 동찬이가 다시 던져주는 말들에도 나와 다른 친구들도 기꺼이 두 손을 모아, 석배는 슬라이딩을 해서라도 받아냈다. 동찬이가 또다른 10년 후에는 어느 동네에 한의원을 차려 맥을 짚고 있을지.. 조금 이르지만, 지금부터 기다려진다.
나는 서울에 살고있는 헌규와 함께 버스 시간에 맞춰 터미널에서 만나, 익산으로 향했다.
세시간이라는 긴 시간은 헌규하고, 지난번 같이 축구를 끝내고 차로 나를 데려다 주며 얘기했던 것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며 갈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이전에 적었던 글에서 헌규는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했던거 같다. 그러면서도 청춘으로써 무언가 고민하고 있다는 느낌도 적어 두었던 것 같다. 오늘 헌규는 그 것들에 대해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헌규는 지금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자신을 둘러싼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것을 말하고 설득하는 과정 속에서 마음이 편치많은 않은 것 같다. 나는 헌규를 억지로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헌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위해서 내가 갖고 있는 신념들과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예들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었다. 헌규가 그 말들에 조금이나마 힘들 얻은 것 같아 내가 오히려 고마웠다. 헌규는 자신의 생각을 조금더 구체화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신중하면서도 긍정적으로 이어갔다.
이번 여행에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정말 힘이될 수 있는 소리들을 헌규에게 직,간접적으로 많이 해주었다. 이런 모습을 위해 지난번 헌규에게 이번 여행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어봤던 거였는데, 그때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고, 이렇게 정말 같이 다녀올 수 있게 되어 헌규와 우리 모두에게 더 좋았던 시간이 된 것 같다. 같이하는 여행은 끝났지만, 우리들이 같이 나눠준 이야기들이 헌규에게 힘이 되고, 그래서 지금 갖고 있는 고민들을 잘 정리해서 나아가고 있는 더 나은 모습으로 다음에 보기를 바란다. 여행을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서는 헤어지기전에 헌규가 밥도 사줬다, 그래서 다음엔 내가 사주겠다고 했는데.. 이 말도 힘을 보태주고 있겠지..헌규야?
세시간을 휴게소 한번 쉬고 줄곧 달려와 헌규와 내가 먼저 동찬이한테 도착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친구들을 기다렸다. 석배와 우석이는 청주에서 같이 기차를 타고 오고 있었다. 우석이는 근무를 쉬는 날들이기 때문에, 지난번에 같이 축구하러 광명으로 올라오던 때처럼 마음 편하게 익산으로 내려 오고 있었다. 그런데 석배는 한결 빠듯한 마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석배는 지금 포천에서 장교로 군생활을 하고 있다. 한 주 밀려서 받아낸 2박3일 휴가에, 금요일에는 청주 집으로 내려왔고, 여행 첫날인 토요일은 그렇다 쳐도, 일요일엔 복귀 시간을 고려해서 또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포천이면 우리나라 맨 위쪽인데, 남해를 보려면 우리나라 맨 아래로.. 2박3일동안 그 거리를 왕복해야하니 빠듯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석배를 모시고! 다녀야 하는 우리들로서도 같이 빠듯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럼에도 석배는 꼭 바다를 눈앞에서 보고자 했는데, 그 의지덕택에 밤과 낮 모두에 남해바다를 마주할 수 있었다. 석배는 이런 자세로 소위 시절을 잘 마치고 지금 중위를 하고 있다. 학군으로 조금 늦게 임관했지만, 자기 아래에 있는 병사들을 잘 이끌고 잘 챙기며 그로부터 능력을 인정받고 만족감과 자신감 속에서 군생활을 잘 보내고 있다. 그런데 석배에게 이번 여름은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누구보다 잘 하고 있는 군생활에 대해 그것을 장기적으로 지속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를 맞고 있다. 친구들은 이에 대해서 다들 솔직하게 자기 의견을 말해주었는데, 그 안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말들이 기억난다. 석배가 지금 장교로서 잘하고 있는 것은 그곳이 꼭 군대여서라기 보다는, 이미 그만큼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석배가 되어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군대가 되었든 사회가 되었든 어디를 가든 인정받고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들이었다.
나는 여기에 더해 예전부터 석배가 가끔씩 나에게 들려주었던 자신의 꿈들을 기억해내 모두들 앞에서 들려주었다. 석배는 대학에서 토목학을 전공했는데, 예전에 나한테 그랬다. 자신은 자기 이름으로 된 다리 하나를 놓고 싶다고. 그당시 감상적인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던 이야기였지만, 나는 아직도 그 얘기가 인상깊게 다가온다. 석배가 앞으로 그런 다리를 결국 놓느냐 안놓느냐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순수함이 석배가 갖고 있는 장점이란 걸 일깨워 주고 싶었다. 또 하나 기억나는 걸 이야기 했다. 석배는 동찬이가 말하듯 수학하면 석배지라고 할 정도로 수학을 잘하고 좋아했다. 그래서 학문으로서 수학 공부를 계속하는 것도 생각해봤다고 애기했었다. 그러다보면 교수같은 직업을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두가지 이야기에 대한 기억들을 되돌려주며 석배가 조금은 더 넓게 진로를 결정했으면 했다. 석배뿐만 아니라 우리 다섯 모두가 겪고 있는 진로에 대한 고민들에는 '안정'이라는 문제가 담겨있다. 경제적,사회적 안정과 같은 문제들 말이다. 우리들은 각자의 고민을 말하고 서로 의견을 말하기를 반복하면서도, 그 이야기들이 겉은 다르지만 안은 다르지 않은 것임을 알면서도, 긴 대화의 끝에도.. 우리 모두 여기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들이 청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중에 '안정'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렇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안정이라는 것은 고요한 물 위에 떠있는 종이 돛단배는 아니었다. 파도가 가파르게 너울대고 비바람이 거세개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에서도그 중심을 잃지 않고 있는 어선 한 척의 모습, 그것이 우리가 공통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안정'인 것 같았다. 그래서 석배가 지금 마음 속에 품고있는, 스스로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여자친구에게 안겨주려는 '안정'에 대한 고민을.. 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지지한다.
먼저 모인 셋은 기차를 타고 오는 둘을 마중나갔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동찬이 차로 움직였다. 원래 차가 저렇게 좋은게 아니었는데.. 끌고 다니던 차가 고속도로에서 느닷없이 멈추는 바람에 불행중 다행이다 싶어 차를 바꾸었다고 한다. 예전차에서 느껴지던 차안의 소음과 땅의 굴곡이 어느덧 추억이 되었다. 그걸 경험해보지 못한 헌규만 유일하게 매우 아쉬워 했다.
점심은 동찬이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논길을 파고들어가면 한가운데 나타나는 전통식 맛집에서 보리밥등을 함께 먹었다. 그리고 먼~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전남 여수를 가기로 했는데, 가는길에는 순천이 있다. 나 말고는 아무도 순천만을 가본적이 없어서 일단 순천으로 가서 순천만을 걸었다. 매표소 입구에서는 전망대까지 올라가기로 했는데, 전망대가 있는 산 입구에서 다들 살기 위해 멈췄다. 정말 그 어느때보다 뜨겁고 습한 날이었다. 우리는 멈출줄 아는 현명한 판단에 대해 서로를 칭찬하며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그 길을 다시 돌아서 나오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매표소 출구를 빠져나와 아직 건강히 살아있는 것에 만족하며 다시 차에 올랐다. 그리고는 본 목적지인 여수를 향해 갔다.
그런데 이때부터 라디오를 간혹 틀어놓고 달리던 차안에, 익숙한 노래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동찬이가 비틀즈의 '1'앨범 CD를 튼 것이다. 다들 차창밖 순천의 전원적 풍경과 우리의 여행이라는 느낌에 잘 맞아떨어진다고 좋아했다. 그럼 그렇지.. 누가 돈 모아서 선물한건데.
비틀즈의 1위곡들 27개를 모아 놓은 앨범으로, 좋은 가사와 그와 딱들어맞는 멜로디가 인상적인 곡들이 많았다. 즉각 해석은 아니었지만, 나는 알고 있는 정보를 가삿말과 함께 몇몇곡에 붙여서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다. 익숙했지만서도, 막상 그 가사를 알고나니 친구들이 더 멋진 곡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동찬이는 대학을 다니며 밴드에서 보컬을 했다고 한다. 그걸 잘 모르고 사 주었던 거긴 하지만, 두 해 전에 사주었던 CD를 잘 틀어주니 듣기가 더 좋았다. 내가 이 CD를 선물해준 데는 사연이 있다. 동찬이와 우석이는 내가 대학을 가겠다고 대입학원을 조금이라도 다니겠다고 얘기를 했을 때, 선뜻 매달 학원비를 보태주기로 했다. 나는 말이라도 고맙다고 했지만, 정말 매달 자신들이 보여줄 수 있는 성의내에서 나에게 도움을 주었다. 나는 대입시험이 끝나고 다른 모든 계획에 앞서 공장을 다녔다. 그렇게 두달 정도를 2교대로 다녀, 무엇보다 친구들에게 받은 돈을 갚았다. 그렇지만 그 고마움은 다 갚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책이나 음악CD 같은거를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성의내에서 주곤 한다. 석배는 그 당시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석배한테서는 공부 내용등에 대해 조금씩 도움을 받았다. 이것도 내가 앞으로 계속 갚아가야 할 고마움이다.
드디어 여수에 들어섰다. 나는 작년에 전국기차여행중에 여수를 걸어서 여행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그때는 오기 힘들었을 곳이었는데, 우석이의 추천에 따라 돌산대교로 먼저 향했다.
우석이 말로는 시드니 보다 더 멋지다고 한다. 그런데 도착한 시간이 조금 늦은 편이라 해가 저물고 있었다. 그래서 오래 못보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선 여수시내로 가서 숙소를 잡기로 했다. 여수엑스포가 열렸던 곳에 가까이 있는 여수항으로 갔다. 가까운데 숙소를 잡고 가볍게 씻은 후 근처에 있는 횟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나는 회를 잘 먹지 않아서 모르는 음식들도 많았는데, 친구들이 해주는 설명을 들으며 하나하나 먹어보았다. 이렇게 저녁을 먹으며, 긴 시간동안 우리는 서로의 고민들에 대해 얘기하고 의견을 나누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 먹고 일어날 때는 배도 물론 불렀지만, 모두들의 마음도 조금씩은 불러있었다.
그 마음을 차분히하고, 캔맥주와 과자 몇개를 사서 바로 앞에 있는 여수항 둑으로 갔다.
바닷물을 발 아래두고 둑에 나란히 앉았다. 밤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친구들과 남해바다를 마주하고 앉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율동이 있는 걸그룹 노래를 누가 틀어놓자 몇몇은 따라하고 몇몇은 그 모습을 보며 웃고는 했다. 옆에는 낚시하는 분들도 몇분 계셨고 가족들이 나와서 쉬고있기도 했고 어린애들도 그 옆을 뛰어다녔다. 그렇게 바닷바람에 선선하게 있다가, 모기가 하나 둘 물기 시작할 때쯤 숙소로 그만 들어갔다. 들어가서는 조금씩 뭘 더 먹고 케이블 방송 한두개를 틀어놓고 보았는데, 다들 피곤했는지 자정무렵에는 모두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일찍 일어나서 올라갈 준비를 해야했다. 석배의 빠듯한 일정에 따라.
나는 6시에 맞춰둔 알람 때문에 가장 먼저 일어났는데, 아직 시간 여유가 있어서 친구들은 깨우지 않고, 조용히 세수하고 여수항에 나가보았다. 해가 지금 막 뜨는 건 아니었지만, 하루를 맞아 새롭게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우유나 하나 사먹으면서 둑 옆 의자에 앉아 조용히 바라보다가 숙소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 놈들이 7시가 다되가도록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8시에는 출발해야 된다고 어제 그렇게들 얘기해놓고..
소리내어 잠을 깨웠는데, 그래도 안 일어날려고 해서 에어컨을 끄고, 불을 켜놓았다.
그러자 하나 둘 씻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둘 숙소를 나올 채비를 갖췄다.
바로 돌아 올라오기가 아쉬웠는지 우석이가 시간을 내서 돌산대교를 다시 가보자고 했다.
아침무렵이라 어제보다는 더 잘볼 수 있을거라고 했다. 우석이 말대로 먼 바다와 대교 그리고 여수 시내까지 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어제 역광이라 못찍은 사진을 비로소 하나찍었다. 사실 하나가 아니라... 수십방 찍은 거 같다. 정말 그럴만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제는 올라가야 했다.
석배와 우석이가 예매해 둔 돌아가는 기차 시간에 무엇보다 꼭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전남 구례 부근에 지리산 자락 곁에 있는 휴게소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얘기하거나, 졸거나, 때론 창밖의 멋진 풍경을 보며 익산으로 다시 달려왔다.
내려갈때나 올라올때나 운전은 모두 동찬이가 했는데, 차 보험을 위해서라도 차 주인이 직접 해야한다고 그랬다. 그렇긴해도 정말 고생이 많았다.
우석이도 내려갈때나 올라올때나, 업데이트 안된 동찬이의 네비게이션을 대신해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며 조수석에서 끊임없이 길을 알려줬는데, 역시 정말 고생이 많았다.
석배와 헌규와 나의 편안한 뒷자석 여행에 고생해 준 두 친구가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다음 여행을 생각해서도 미리 고마움을 전하는 바이다.
익산에 도착하니 헌규와 내가 타고 올라올 서울행 버스가 출발을 바로 앞두고 있었다.
익산역에서 석배와 우석이가 타고갈 기차 시간에 앞서,
서울행 버스가 익산버스터미널에 먼저 있었다.
그래서 우리 둘이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표를 끊고 버스에 오르기 전에 모두 같이 인사를 나눴다.
짧은 이틀이었지만 이렇게 시간을 내어 모여서
같이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것 같다.
다음에 또다른 여행을 기약하며,
잘 올라가라고, 너희도 잘 가라고, 그리고 잘 있으라고,
인사하고 손 흔들었다.
서로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앞으로 힘이되기를 바라고,
다시 볼때까지 모두 건강하기를 바라며.
2013. 8. 11
김홍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