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들을 덜 사랑하게 될 일은 없어
시간이 갈수록 엄마는 너를 더 많이 사랑할 거야
넌 갈수록 엄마를 덜 사랑하겠지만...
인생이란 게 원래 그렇잖니."
- Mommy
Director's Note
처음 영화를 만들 때부터, 나는 사랑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왔다.
10대 시절, 나는 강제적인 격리나 트랜스섹슈얼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잭슨 폴락과 90년대, ‘소외’와 ‘호모포비아’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기숙사 학교와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전형적인 단어 같은 ‘스페셜(Special)’, 소젖 짜기, 스탕달의 ‘사랑의 결정화 과정’과 ‘스톡홀름 신드롬’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다소 저질스럽고 더러운 말도 했다. 가끔은 영어로 이야기했고, 꽤 많은 시간 동안은 허세를 부리며 말하기도 했다.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 할 때에는 언제나 잘못 말할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항상 나에게 아주 직접적으로 와 닿았던 것, 혹은 내가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해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가진 다름, 내가 자랐던 시골, 그리고 지금까지도 갖고 있는 타인에 대한 나의 거대한 두려움, 비밀 속에 살아가면서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들, 또는 시간 도둑을 향한 쓸모없는 사랑과 같은 것들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 어떤 것보다 알고 싶은 단 한 가지, 나에게 무조건적으로 영감을 줄 수 있는 단 한 가지,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내가 사랑하는 단 한 가지만 존재해야 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나의 엄마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나의 엄마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은 대체로 나의 엄마로 대표될 수 있는 보편적인 ‘엄마’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엄마는 항상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곳이기 때문이다. 싸움에 이기는 것을 보고 싶은 것도 엄마, 내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도 엄마이고, 나는 엄마를 통해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또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때 내게 시끄럽게 소리지르는 것을 듣고 싶은 것도, 내가 틀렸을 때 옳은 길로 가고 싶게 하는 것도 엄마. 엄마, 무엇이든 간에 결국은, 엄마다.
<아이 킬드 마이 마더>때를 생각하면 나는 아마도 엄마를 벌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겨우 5년이 지났고, 이제 난 <마미>를 통해 엄마의 복수를 청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곤란하니, 더는 묻지 말길.
- 2014년 5월, 자비에 돌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