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20

"우리가 신는 나이키 운동화가 저 멀리 사는 아프리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일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멀리 있는 사람을 죽이는 게 쉬운 일일 수 있다. 벤이 살인자가 아닐 수도 있다. 서래마을에 사는 벤의 삶의 태도 자체가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
- 이창동 감독 (‘버닝’, 2018)




촛불이 타오를 때 가장 뜨거운 곳은 그 중심이 아니라 바깥면이다.

그곳에서 종수는 소설가의 꿈을 꾸며 버닝한다. 중심에서는 해미가,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벤이 버닝한다. ‘버닝’은 결국 낮은 온도가 더 높은 온도에 의해 연쇄적으로 잠식되며 완전연소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고전적 구조를 스스로 태워버리는 정점은, 모호와 분노가 극한에 다다랐을 때 버젓이 소설의 첫 줄을 쓰기 시작하는 종수의 차분한 얼굴이다.




 


해미가 시퍼런 마당에서 윗옷을 모두 벗어던진채 황홀히 춤을 추는 장면은,

'버닝’ 최고의 테이크이자 미장센이며,나에게는 소속감마저 일깨워 준다. 당신의 옆자리 또는 우리라고 부르는 이 거대한 세상에 소속된 느낌이 아니라, 나의 작고 시퍼렇지만 아주 가끔은 황홀한 세상에 내가 속해있음을 말이다.


해미는 대마초를 통해 가뿐히 넘어간다.

노을 마저 방금 사라진 시퍼런 하늘과 동네를 마주하고 윗옷을 벗어던진다. 고막을 움켜쥔 짙은 색소폰 소리에 그레이트 헝거인양 황홀히 몸을 맡긴다. 홀연 소리는 사라지고,해미는 이 세상으로 돌아 온 자신을 발견한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시퍼렇게 운다.


‘버닝’(2018) 8년만, 이창동 감독.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와 연결되어 있고, 다시 그것은 윌리엄 포크너의 ‘Barn Burning’과 연결되어 있다.고 들었다.

어떤지 지금부터 살펴볼까.

2018.5.17. 5:30-7:58pm 광주 충장로에서


Q. 글을 쓰는 시간이 즐거우신가요? (조지 플림턴이 1954년 5월 마드리드에서 물었다)

A. 무척이오.

-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 US, 1899-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