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16

책:: 함께읽기(고교친구들 독서모임). *다음 선정 도서 정보: '미움받을 용기' -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모임
-참여예정자: 김도훈, 김세진, 세진여자친구?!, 김승섭?!, 김홍성, 송병규. 송헌규, 한윤정
-일시: 3.1 일
-특이사항: 승섭 귀국2.27, 홍성 출국3.3

*책
-선정자: 송헌규







미움받을 용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공저/전경아 역/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



#책 소개

당신의 가치관을 뒤흔들 ‘새로운 고전’의 탄생!

★ 2014 아마존 일본 ‘종합’ 베스트셀러 1위!
★ 일본 내 ‘아들러 열풍’을 몰고 온 화제의 책!
★ 김정운 교수가 감수하고 강력 추천한 책!
★ 미디어가 먼저 주목하고 극찬한 책!
★ tvN 라이어게임 천재 심리학자 하우진(이상윤)의 책!

평범한 직장인 A. 그에게는 크나큰 고민이 하나 있는데, 바로 어릴 때부터 성격이 어두워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것. 그런 탓에 친구도 얼마 없다. 직장생활은 그럭저럭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회식 자리나 외부 미팅 등 익숙지 않은 자리에만 가면 이러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문제다. 언제까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할까. A는 오늘도 고민이다.

이런 A의 고민에 “성격은 타고난 것도 아니고, 바꿀 수 없는 것도 아닌, 본인이 원해서 선택한 것이다”라고 답변을 한 괴짜 철학자가 있다. 철학자에 의하면 사람의 성격은 유전이나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철학자는 말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일들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고, 단지 열 살 전후로 자신의 생활양식을 결정할 뿐이다. 그 생활양식이 자유롭지 못하고 어딘가 불편하다고 느껴도 쉽게 바꾸지 못하는 까닭은 그로 인해 올 변화가 두렵기 때문이다”라고.

그런데 우리는 모두 변화를 원한다. 지금보다 더 자유로운 삶,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 지금보다 더 성공적인 삶. 하지만 우리는 쉽게 핑계를 대고, 쉽게 포기한다. 지금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자. “내가 이렇게 된 것 다 걔 때문이야”, “좀 더 부자인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을 텐데”, “요 몇 년간만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올 거야”라는 식으로 과거를 탓하거나 지금 해야 할 일들을 미루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철학자는 말한다. “인간은 변할 수 있고,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고. 단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유로워질 용기, 평범해질 용기, 행복해질 용기, 그리고 미움받을 용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원하는 당신,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다.



#저자

저자 : 기시미 이치로
철학자. 1956년 교토에서 태어나서 현재까지 교토에 살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철학에 뜻을 두었고, 대학교 진학 후에는 은사의 자택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논쟁을 벌였다. 교토대학교 대학원 문학연구과 박사과정 만기퇴학을 했다. 전공은 철학, 그중에서도 서양고대철학, 특히 플라톤철학인데 그와 병행해 1989년부터 ‘아들러 심리학’을 연구했다. 아들러 심리학과 고대철학에 관해 왕성하게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펼쳤고, 정신과의원 등에서 수많은 ‘청년’을 상대로 카운슬링을 했다. 일본아들러심리학회가 인정한 카운슬러이자 고문이다. 역서로는 알프레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강의』『인간은 왜 신경증에 걸리는 걸까』가 있으며, 저서로는 『아들러 심리학 입문』 외 다수가 있다. 이 책에서는 원안을 담당했다.

저자 : 고가 후미타케
프리랜서 작가. 1973년생이다. 잡지사에서 활동한 후 현재는 서적 라이팅(이야기를 듣고 집필하는 형식)을 전문으로 하는데, 비즈니스 서적을 비롯해 논픽션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켰다. 리듬감과 현장감 넘치는 인터뷰 원고로 정평이 나 있으며, 인터뷰집 『열여섯 살의 교과서』 시리즈는 총 70만 부가 넘게 팔렸다. 20대의 끄트머리에 ‘아들러 심리학’을 접하고 상식을 뒤엎는 사상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후 몇 년에 걸쳐 기시미 이치로 씨를 찾아가 아들러 심리학의 본질에 대해 문답식으로 배웠고, 그리스철학의 고전, 대화 형식을 취한 『대화편(對話篇)』을 모티브로 삼아 이 책을 집필했다. 단독 저서로는 『스무 살의 나에게 추천하고 싶은 문장 강의』가 있다.

역자 : 전경아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요코하마 외국어학원 일본어학과를 수료했다. 현재 출판 번역 에이전시 베네트랜스에서 번역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지속가능형 인간』『지도로 보는 세계민족의 역사』『협상 심리학』『간단 명쾌한 발달심리학』『비기너 심리학』『아이의 두뇌 습관을 바꿔라』『집중의 기술』『성공한 사람들의 99%습관』『행복한 천재를 만드는 행복한 두뇌』『새콤달콤 심리학』 등이 있다.

감수 :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이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일과 삶의 조화를 중요시 여기는 ‘휴테크’ 전도사이며, 유쾌한 입담과 재치 있는 표현이 돋보이는 활기 넘치는 지식인이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베를린자유대학교 심리학과에서 발달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문화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명지대학교 인문교양학부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일본 나라현립대학에서 객원교수로 지내며 일본 교토사가예술단기대학 미술학부에서 일본화를 배우고 있다. 저서로는 『노는 만큼 성공한다』『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남자의 물건』등이 있다.



#목차

감수자의 말
시작하며

첫 번째 밤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알려지지 않은 ‘제3의 거장’
인간이 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트라우마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분노를 지어낸다
과거에 지배받지 않는 삶
소크라테스, 그리고 아들러
당신은 ‘이대로’ 좋습니까?
나의 불행은 스스로 ‘선택’한 것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나의 인생은 ‘지금, 여기’에서 결정된다

두 번째 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
열등감은 주관적인 감정이다
변명으로서의 열등 콤플렉스
자랑하는 사람은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
인생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다
내 얼굴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나뿐이다
권력투쟁에서 복수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인생의 과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붉은 실과 단단한 쇠사슬
‘인생의 거짓말’을 외면하지 말라
‘소유의 심리학’에서 ‘사용의 심리학’으로

세 번째 밤 타인의 과제를 버리라
인정욕구를 부정한다
‘그 사람’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지 말라
‘과제를 분리’하라
타인의 과제를 버리라
인간관계의 고민을 단숨에 해결하는 방법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으라
인정욕구는 부자유를 강요한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인간관계의 카드는 ‘내’가 쥐고 있다

네 번째 밤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개인심리학과 전체론
인간관계의 목표는 ‘공동체 감각’을 향한 것
왜 ‘나’ 이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가
나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더 큰 공동체의 소리를 들으라
칭찬도 하지 말고, 야단도 치지 말라
‘용기 부여’를 하는 과정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려면
여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다
인간은 ‘나’를 구분할 수 없다

다섯 번째 밤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간다
과도한 자의식이 브레이크를 건다
자기긍정이 아닌 자기수용을 하라
신용과 신뢰는 어떻게 다른가
일의 본질은 타인에게 공헌하는 것
젊은 사람은 어른보다 앞서나간다
일이 전부라는 인생의 거짓말
인간은 지금, 이 순간부터 행복해질 수 있다
‘특별한 존재’가 되고픈 사람 앞에 놓인 두 갈래 길
평범해질 용기
인생이란 찰나의 연속이다
춤을 추듯 살아라
‘지금, 여기’에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라
인생 최대의 거짓말
무의미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라





#책 속으로

남의 이목에 신경 쓰느라 현재 자신의 행복을 놓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내가 아무리 잘 보이려고 애써도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니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나만큼 오래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 이목 때문에 내 삶을 희생하는 바보 같은 짓이 어디 있느냐는 저자의 주장은 일상의 인간관계에서뿐 아니라 페이스북의 ‘좋아요’나 트위터의 ‘RT(리트윗)’를 죽어라 누르며 ‘싸구려 인정’에 목매어 사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귀담아 들을 만하다.
--- p.5~6

청 년 : 잠시만요! 그러니까 선생님은 트라우마의 존재를 부정하는 건가요?
철학자 : 단연코 부정하네. 분명히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이론은 흥미진진한 데가 있어. 마음의 상처(트라우마)가 현재의 불행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지. 인생을 거대한 ‘이야기’라고 봤을 때, 그 이해하기 쉬운 인과법칙과 드라마틱한 전개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 매력이 있어. 하지만 아들러는 트라우마 이론을 부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네. “어떠한 경험도 그 자체는 성공의 원인도 실패의 원인도 아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받은 충격-즉 트라우마-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 안에서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 p.36~37

철학자 : 인간은 모두 인간관계로 고민하고 괴로워하네. 이를테면 부모님과 형과의 관계일 수도 있고, 직장동료와의 관계일 수도 있지. 그리고 지난번에 자네가 말했지? 더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내 제안은 이것이네. 먼저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를 생각하게. 그리고 과제를 분리하게. 어디까지가 내 과제이고, 어디서부터가 타인의 과제인가. 냉정하게 선을 긋는 걸세. 그리고 누구도 내 과제에 개입시키지 말고, 나도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구체적이고도 대인관계의 고민을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아들러 심리학만의 획기적인 점이라고 할 수 있지.
청 년 : ……아하, 오늘의 과제가 ‘자유’라고 했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철학자 : 그래. 우리는 지금 ‘자유’에 관해 논하려는 걸세.
--- p.171~172

철학자 : 몇 번이고 말했지만,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라고 주장하지. 즉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해방되기를 바라고, 인간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하네. 하지만 우주에서 혼자 사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해. 생각이 여기에 이르렀다면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결론은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라네.
청 년 : 뭔데요?
철학자 : 단적으로 말해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일세.
청 년 : 네? 무슨 말씀이신지?
철학자 : 자네가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것. 그것은 자네가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자 스스로의 방침에 따라 살고 있다는 증표일세.
--- p.186

철학자 : 우리는 모두 ‘여기에 있어도 좋다’는 소속감을 갖기를 원해. 하지만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소속감이 가만히 있어도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공헌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네.
청 년 : 적극적으로 공헌한다? 그게 무슨 뜻이죠?
철학자 : ‘인생의 과제’에 직면하는 걸세. 즉 일, 교우, 사랑이라는 인간간계의 과제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거지. 만약 자네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한다면 공동체에 공헌하겠다는 생각을 눈곱만큼도 하지 않을 걸세. 모든 타인이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 사람’이니 굳이 내가 나서서 행동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자네도 나도 세계의 중심이 아니야. 내 발로 인간관계의 과제에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되네. ‘이 사람은 내게 무엇을 해줄까?’가 아니라 ‘내가 이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지.  --- p.215~216



# 출판사 리뷰

당신은 자유로워질 용기를 가졌는가?
당신은 평범해질 용기를 가졌는가?
당신은 행복해질 용기를 가졌는가?
당신은 미움받을 용기를 가졌는가?

당신의 가치관을 뒤흔들 ‘새로운 고전’의 탄생!

“남들 이목 때문에 내 삶을 희생하는 바보 같은 짓이 어디 있느냐는 저자의 주장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책을 덮고도 계속 생각하게 된다.
주체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다. 이 책은 좋은 책이다!”
_김정운(문화심리학자, 『남자의 물건』저자)

평범한 직장인 A. 그에게는 크나큰 고민이 하나 있는데, 바로 어릴 때부터 성격이 어두워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것. 그런 탓에 친구도 얼마 없다. 직장생활은 그럭저럭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회식 자리나 외부 미팅 등 익숙지 않은 자리에만 가면 이러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문제다. 언제까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할까. A는 오늘도 고민이다.
이런 A의 고민에 “성격은 타고난 것도 아니고, 바꿀 수 없는 것도 아닌, 본인이 원해서 선택한 것이다”라고 답변을 한 괴짜 철학자가 있다. 철학자에 의하면 사람의 성격은 유전이나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철학자는 말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일들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고, 단지 열 살 전후로 자신의 생활양식을 결정할 뿐이다. 그 생활양식이 자유롭지 못하고 어딘가 불편하다고 느껴도 쉽게 바꾸지 못하는 까닭은 그로 인해 올 변화가 두렵기 때문이다”라고.
그런데 우리는 모두 변화를 원한다. 지금보다 더 자유로운 삶,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 지금보다 더 성공적인 삶. 하지만 우리는 쉽게 핑계를 대고, 쉽게 포기한다. 지금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자. “내가 이렇게 된 것 다 걔 때문이야”, “좀 더 부자인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을 텐데”, “요 몇 년간만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올 거야”라는 식으로 과거를 탓하거나 지금 해야 할 일들을 미루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철학자는 말한다. “인간은 변할 수 있고,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고. 단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유로워질 용기, 평범해질 용기, 행복해질 용기, 그리고 미움받을 용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원하는 당신,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다.

왜 당신은 변하지 않는가?
왜 당신은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는가?
왜 당신은 타인의 인생을 사는가?
왜 당신은 지금 행복을 실감하지 못하는가?


■ 알려지지 않은 심리학 제3의 거장 ‘아들러’
그의 사상이 일상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 우리의 고민에 답하다!

이렇게 혁신적이고도 파격적인 철학자의 답변은 바로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의 심리학에서 비롯되었다. 프로이트, 융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알프레드 아들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로, 긍정적 사고를 강조하는 ‘개인심리학’을 창시해 현대 심리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뿐 아니라 데일 카네기, 스티븐 코비 등 자기계발의 멘토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자기계발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아들러 심리학에 깊은 감명을 받고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기시미 이치로(岸見一?)와 고가 후미타케(古賀史健)다. 기시미 이치로는 그리스철학을 공부한 철학자로 어느 날 “인간은 누구나 지금 이 순간부터 행복해질 수 있다”라는 아들러 심리학에 대한 강연을 듣고는 아들러 심리학을 함께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은 아들러 심리학에 관한 한 누구보다 전문가가 되었다. 고가 후미타케는 전문 작가로 고민 많던 20대 시절에 아들러 심리학을 만난 후 세계관이 바뀌고 아들러 심리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이러한 두 사람이 만나 개인의 행복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은 물론,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는 눈 자체를 바꿀 정도로 힘이 있는 아들러 심리학을 쉽고 재미있게 구성했다. 바로 이 책,『미움받을 용기』다. 아들러 심리학은 그동안 프로이트와 융에 가려 대중적으로는 잘 언급되지 않았지만 고민이 많은 현대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용한 생활철학이다. 여기에 시대를 읽는 유쾌한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감수까지 더해 내용의 깊이를 더했다.


■ 아들러 심리학은 ‘용기의 심리학’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우주에 나 홀로 남은 것이 아닌 이상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아들러는 “인간의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라고 말한다. 어떤 종류의 고민이든 거기에는 반드시 타인과의 관계가 얽혀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인간관계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즉 ‘미움받을 용기’를 가져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진다는 뜻이다.
아들러는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길 원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타인의 눈치를 보며 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살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는 부자유스러운 일인 동시에 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즉 모든 것은 ‘용기’의 문제다. 자유도 행복도 모두 ‘용기’의 문제일 뿐 환경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우리 안에 변하고자 하는 용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용기, 미움받을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우리의 인간관계는 한순간에 달라지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아들러가 말하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에 관한 핵심이다. 이렇게 혁신적인 아들러 심리학을 처음으로 대중에게 소개하는 책, 『미움받을 용기』를 통해 그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처방을 만나보자.

- ‘트라우마’란 존재하지 않는다
약 100년 전, 아들러는 현재 트라우마 이론으로 널리 알려진 프로이트의 ‘원인론’을 부정하고 사람은 현재의 ‘목적’을 위해 행동한다는 ‘목적론’을 내놓았다. 심리학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는 오늘날에 거의 상식처럼 되어버린 트라우마를 부정한다는 것, 그것도 이미 100년 전에 그랬다는 것 자체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일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를 과거의 ‘그 사건’ 탓으로 돌리며 결정적인 순간마다 트라우마에 발목을 잡혔던 이들이라면 아들러의 주장에 귀가 솔깃할 것이다.
아들러는 어떠한 경험도 그 자체가 성공이나 실패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은둔형 외톨이의 경우, 어린 시절 부모에게 학대받은 경험 때문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라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을 이용해 불안이나 공포를 지어내는 것이라고 본다. 이렇듯 아들러는 과거의 특정한 사건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할 수 없고, 우리는 ‘목적’을 위해 행동을 달리할 수 있는 ‘변할 수 있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아들러의 ‘목적론’은 현재를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 인정욕구를 포기하고 과제를 분리하라
아들러는 또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타인의 ‘인정(認定)’을 얻으려는 ‘인정욕구’를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아무리 잘 보이려고 애써도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고, 그 누구도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나만큼 오래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아들러는 우리는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설령 자식이라고 할지라도 부모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기에 진학할 학교나 직장, 결혼 상대, 일상의 사소한 언행마저 강요하거나 지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 개념인 ‘과제의 분리’다.
‘공부하는 것’은 부모의 과제가 아닌 아이의 과제, 즉 아이가 해야 할 일이지 부모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그 선택의 최종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은 부모가 아닌 아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많은 부모가 ‘너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 ‘너를 위해서’일까? 부모인 ‘나를 위해서’는 아닐까? 이러한 ‘과제의 분리’는 단순히 부모자식 관계에서만 해당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부당하게 화를 내는 상사가 있다면 화를 내는 것은 상사의 과제고, 그 상사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과제다.
즉 아들러는 “이것이 누구의 과제인가”를 생각하고 어디까지가 나의 과제이고, 어디까지가 타인의 과제인지 구분하고 선을 그을 줄 알아야 한다고 보았다. 더불어 그 누구도 나의 과제에 개입시키지 말고, 나 역시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과제의 분리’가 가능해지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고 모든 인간관계가 여유 있고 단순해지기 때문이다.

- 인생은 ‘찰나의 연속’, 선이 아닌 점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사는 것일까? 바로 인생을 ‘선(線)’이라 여기고 남들이 옳다고 말하는 그 선의 인생을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면서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가 바로 인생은 ‘산 정상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세간의 오해조차 아들러는 정면으로 부정한다. 만약 인생이 ‘산 정상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이라면 우리는 대부분의 인생을 ‘길 위’에서 보내게 되는데, 그 길 위에서 보내는 인생을 ‘가짜’라고 여길 참이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들러는 인생은 하나의 선이 아닌 ‘점(點)의 연속’이라고 주장한다. 즉 인생은 ‘지금’이라는 무수한 ‘찰나’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아들러는 지나간 과거도 아닌, 앞으로 다가올 미래도 아닌,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빈틈없이 살라고 주문한다. 산 정상과 같이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지 말고 ‘지금, 여기’를 춤추듯 살라고 말한다. 순간순간에 충실하면 의미 있는 오늘 하루가 만들어지고,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진짜 내 인생’을 이루기 때문이다.
아직 오지 않을 미래를 위해 현재의 내 삶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그러다 미래의 꿈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렇게 애써 힘겹게 보낸 오늘은 아무것도 아닌 것일까? 나는 길 위에서 헛된 시간을 보낸 실패자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아들러는 말한다. “오늘 하루 춤추듯 즐겁게 살면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 인문+자기계발+소설이 결합된, 이전에 없던 ‘새로운 고전’의 탄생!

“대화체라 쉽고 재미있다. 술술 읽힌다!”
“100권의 자기계발서보다 이 책 한 권이 낫다!”
“지금까지의 가치관을 근본부터 흔드는 책이다!”
“이 책을 만난 건 내 인생 최대의 기적이다!”

『미움받을 용기』는 이러한 아들러 심리학을 바탕으로 하는 책이다. 아들러 심리학에 관한 일본의 제1인자인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의 명 해석과 베스트셀러 작가인 고가 후미타케의 맛깔스러운 글이 잘 결합되어 새로운 형식을 선보인다. 아들러 심리학을 공부한 ‘철학자’와 세상에 부정적이고 열등감 많은 ‘청년’이 다섯 번의 만남을 통해 ‘어떻게 행복한 인생을 살 것인가?’라는 우리 모두가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플라톤의 명저 『대화편』을 차용한 구성으로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어 쉽고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으며, 생동감마저 느껴진다.
첫 번째 밤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두 번째 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세 번째 밤 ‘타인의 과제를 버리라’, 네 번째 밤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다섯 번째 밤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간다’의 순서로 진행되는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는 점점 긴장을 불러일으키며 재미를 더한다. 특히 철학자의 주장에 이어지는 청년의 반박이 공감대를 한껏 불러일으킨다. 이 책을 감수한 문화심리학자이자 『남자의 물건』의 저자인 김정운 교수도 “이 책은 다르다. 윽박지르지 않고, 논리적으로 조곤조곤 따진다. 책 속의 청년처럼 ‘이건 또 뭔 소리지?’ 하는 의문이 자주 든다. 그리고 저자의 논리와 부딪히면서 책을 읽게 된다. 흥미롭다”고 평가했다.
이미 일본에서는 이 책을 읽고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새로워져 실제 삶이 놀랍게 바뀌었다는 찬사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미움받을 용기』로 인한 ‘아들러 열풍’이 한창이다. 그야말로 인문, 자기계발, 소설이 결합된 ‘새로운 고전’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고전을 접한 이후 당신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지금 바로 책 속의 청년을 따라 문을 열고 들어가보자.

* 『미움받을 용기』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adler2014에 오시면 책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책에 쏟아진 아마존 독자들의 찬사

“내 인생 최대의 기적!”
왜 진짜 내 삶을 살지 못했을까. 지금까지 의문이었던 수수께끼가 모두 풀렸다. 책을 덮으며 나는 울었다. 이제 나는 용기 내는 것에 자신 있다. 이 책을 만난 것은 내 인생 최대의 기적이다.

“지금까지의 가치관을 근본부터 흔드는 책!”
남의 눈을 너무 신경 쓰는, 늘 타인의 의견에 나를 맞추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한다. 인생관이나 삶 자체가 변할 것이다.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편은 아닌데, 이 책만큼은 몇 번이고 다시 읽을 생각이다.

“쉽고 재미있어 술술 읽힌다!”
대화체라 더욱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 도저히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찾던 책을 겨우 만난 느낌이다.

“100권의 자기계발서보다 이 책 한 권이 낫다!”
엄청난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려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상식을 버려야 한다. 그야말로 감동적이면서도 충격적이었다.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이라면 다른 책보다 이 책 한 권을 읽기 바란다.

“남에게 미움받는 것이 두렵지 않다!”
늘 나만 생각했다. 늘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는 것이 두려웠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달라졌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지 상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나는 자유로워졌다.

“모든 것은 용기의 문제!”
다양한 자기계발서를 봐왔지만 읽고 나면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본 후에 “용기가 없기 때문에 그랬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쉽고 풍부한 표현 덕분에 읽기 쉬웠고, 그 내용이 저절로 내 안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아주 잘 만든 책이다!”
인간에 대한 아들러의 통찰이 매우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그 통찰은 매우 훌륭했다. 인간관계뿐 아니라 삶에 뭔가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

“이렇게 나를 잘 알아준 책은 처음이다!”
어쩌면 이리 내 이야기 같을까. 지금까지 과거 탓을 하고 부모 탓을 하던 나의 마음을 지긋이 눌러주는 책이었다. 지금, 이 시기에 이 책을 만난 것에 감사하고 있다.

“재미있고 읽기 쉽다. 그러나 내용은 충격적이다!”
아주 읽기 쉬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마지막 페이지의 그림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지금 아이를 키우는 아빠인데 이 책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라면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


%출처: yes24.com



2015-02-10

책:: 함께읽기(고교친구들 독서모임). *이번 주 선정 도서 정보: '비폭력 대화' - 마셜 로젠버그 지음


*모임
-참여예정자: 김도훈, 김세진, 김홍성, 송병규. 송헌규, 한윤정
-일시: 2.15 일 오후5시반, 강남역

*책
-선정자: 송병규
-공통: 1장
-선택: 2세, 3세, 4홍, 5홍, 6병, 7병, 8윤, 9윤, 10도, 11도, 12헌, 13헌



비폭력대화 : 일상에서 쓰는 평화의 언어, 삶의 언어 개정판
마셜 B. 로젠버그 저/캐서린 한 역 | 한국NVC센터 |
원제 : Nonviolent Communication : A language of life



#책 소개

우리 삶에서 폭력을 줄이고
우리가 원하는 바를 평화롭게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입으로 내뱉는 말이 폭력적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책의 저자, 마셜 로젠버그는 새로운 소통 방식을 제안한다. 우리의 삶에서 폭력을 줄이고 우리가 원하는 바를 평화롭게 충족할 수 있는 방법, 바로 비폭력대화(NVC)다. 비폭력대화법은 서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연민으로 다른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을 것을 권유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NVC를 통해 우리는 관찰과 느낌, 삶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와 가치, 그리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요청하고 싶은 것에 대해 명확해질 수 있다. 더 이상 비난과 판단, 지배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서로의 행복에 기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친밀한 관계뿐 아니라 조직 혹은 사회적 관계까지 다방면에 걸쳐 치유와 화해의 길을 열어준다. 때로 NVC는 낯선 언어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그 연결을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있다. 즉, 비폭력대화는 이미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다.




#저자

마셜 로젠버그 Marshall B. Rosenberg

그는 1960년대에 미국 중앙정부의 후원으로 중재와 대화 기술 훈련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면서 처음으로 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 곧 NVC를 적용했고, 이를 바탕으로 1984년에 NVC센터(The Center for Nonviolent Communication), CNVC를 설립한 인물이다. 그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성장했으며, 1961년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CNVC를 지난 20년 동안 100명이 넘는 강사를 보유한 국제적 비영리 단체로 성장시켰으며, 세계 30개국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역자 : 캐서린 한

캐서린 한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68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 CNVC 위원과 인증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6년 한국NVC센터를 설립하였다. 현재 한국NVC센터와 이화여대평생교육원 등 여러 곳에서 NVC를 강의하고 있다.



#목차

머리말 | 아룬 간디
제1장 마음으로 주기 ㅡ NVC의 핵심
제2장 연민을 방해하는 대화
제3장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제4장 느낌을 알아차리고 표현하기
제5장 욕구를 의식함으로써 자신의 느낌에대해 책임지기
제6장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부탁하기
제7장 공감으로 듣기
제8장 공감의 힘
제9장 우리 자신과 연민으로 연결하기
제10장 분노를 온전히 표현하기
제11장 보호를 위해 힘을 쓰기
제12장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다른 사람을 돕기
제13장 NVC로 감사 표현하기
에필로그
느낌말 목록
보편적인 욕구목록
NVC를 적용하는 방법
NVC에 대하여
CNVC와 한국NVC센터에 대하여
지은이 마셜 B. 로젠버그 박사
옮긴이의 말
새롭게 책을 펴내며
한국NVC센터 발행 서적·교구
더 읽으면 좋은 자료
찾아보기






#출판사 리뷰

현재 세계 2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는 책.

2004년 출간이후로 국내에 10만 명 이상의 독자들을 만났고 매해 만 명의 새로운 독자들을 만나고 있는 책.

자신이 하는 말이 전혀 폭력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말할 때에도 본의 아니게 우리의 말하는 방식이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상대를 아프게 할 때가 있다. 수세기 동안 우리는 불행하게도 갈등, 내적 고통, 폭력을 영속화시키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 이 책의 저자인 마셜 로젠버그는 우리가 지금까지 배웠던 소통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우리 삶에서 폭력을 줄이고 우리가 원하는 바를 평화롭게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이 비폭력대화(NVC, Nonviolent Communication)이다.

비폭력대화는 우리가 날 때부터 지닌 '연민'이 우러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는다.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대화 방법이다. 비폭력대화를 통해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깊은 욕구를 듣게 되어, 자신이 가진 연민의 깊이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공통의 인간성. 이것이 우리의 힘이다. 우리의 힘을 모두의 욕구를 충족하는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비폭력대화는 ‘영성의 실천’ 일 뿐만 아니라, 삶의 활기로 가득 찬 가정과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말로 상처를 주고받고 있는 것은 바로 당신이다. 비폭력 대화로 만나는 사람들과 성숙한 관계를 만들고 내면의 힘을 키울 수 있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좀 더 쉬운 소통의 방법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하는 말이 어떻게 서로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신뢰를 구축하고, 갈등을 예방하고,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지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친밀한 관계에서 뿐 아니라 직장, 의료·사회복지분야, 경찰·교정 분야, 정부, 학교, 사회단체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어떻게 치유와 화해의 길이 열리는 지 볼 수 있다.

비폭력대화는 우리 마음 속 깊숙이 숨어 있다. 이 책은 비폭력대화를 발견하고 찾아내서 우리의 몸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출처:yes24.com, 이미지 출처: google.com, 동영상 출처: youtube.com




2015-02-09

소설: Sentences. '삼십세'das dreißigste jahr(단편, 1961) - 잉게보르크 바하만Ingeborg Bachmann


*도입부

 30세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젊다고 부르는 것을  그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그 자신은 일신상 아무런 변화를 찾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불안정해져간다.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곧 잊어버리게 될 어느 날 아침, 그는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는 문득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는  것이다. 잔인한 햇빛을 받으며, 새로운 날을 위한 무기와 용기를 몽땅 빼앗긴  채. 자신을 가다듬으려고 눈을 감으면, 살아온 모든 순간과 함께, 그는 다시금  가라앉아 허탈의 경지로 떠내려간다. 그는 가라앉고 또 가라앉는다. 고함을 쳐도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다. (고함 역시 그는 빼앗긴 것이다. 일체를 그는  빼앗긴 것이다!) 그리고는 바닥 없는 심연으로 굴러 떨어진다. 마침내 그의  감각은 사라지고 그가 자신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해체되고 소멸되어 무無로 환원해버린다.

  다시금 의식을 되찾아 전율을 하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벌떡 일어나 낮의  세계로 뛰쳐나가야만 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을 때,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불가사의한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기억을 해내는 능력을. 지금까지 그랬듯이 예기치 않게 또는 자진해서 이런저런 것을 기억해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고통스러운 압박을 느끼면서, 지나간 모든 세월을, 경솔하고  심각했던 시절을, 그리고 그 세월 동안 자신이 차지했던 모든 공간을  기억해내는 것이다. 그는 기억의 그물을 던진다. 자신을 향해 그물을 덮어씌워  자신을 끌어올린다. 어부인 동시에 어획물이 되어 그는 과거의 자신이  무엇이었던가를, 자신이 무엇이 되어 있었나를 보기 위해, 시간의 문턱, 장소의  문턱에다 그물을 던지는 것이다. 하기는 지금껏 그는 이날에서 저날로 건너가며  별 생각 없이 살아왔던 것이다. 날마다 조금씩 다른 일을 계획하며 아무런 악의  없이. 그는 자신을 위한 숱한 가능성을 보아왔고, 이를테면 자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위대한 남자, 등대의 한 줄기 빛. 철학적인 정신의 소유자로. 아니면 활동적인 유능한 사나이로. 그는 자신이 작업복을 입고 교량 설치나 도로 건설 현장에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야외에서 땀을 흘리며 분주히  돌아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토지를 측량하는 모습을, 양철 식기에서 걸쭉한  수프를 떠내는 모습을, 묵묵히 일꾼들과 어울려서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았다. 응당 그는 과묵한 편이었다. 또는 사회의 썩어빠진 목재 바닥에 불을 지르는 혁명가로. 그는 불같이  뜨겁고 열변을 토하며, 어떠한 모험이든 사양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선동적이며,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번민하고 좌절에 빠졌다가, 마침내  최초의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었다. 혹은 향락을 추구하는 예지의 방랑아로. - 기둥에 기댄 채 음악에서, 책에서,  고사본에서, 먼 이국에서, 오로지 향락만을 추구하는 방랑아로. 그는 다만  주어진 하나의 생을 살고, 주어진 하나의 자아를 소모시키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행복과 아름다움을 열망하고 광휘를 갈망하는, 오직 행복을 위해 창조된  하나의 자아를 말이다!

  이렇듯, 그는 몇 해 동안 가장 극단적인 사상과, 공상에 찬 계획들에  몰두했었다. 그리고 바로 자신이야말로 젊음과 건강을 누리고 있던 까닭에, 아직  얼마든지 시간이 있는 것으로 여겼었고, 닥치는 모든 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하였다. 김이 나는 한끼의 식사를 위해 학생들의 공부를 돌봐주었고, 신문을  팔았고, 한 시간에 5실링을 받으면서 눈을 치웠으며, 그러는 틈틈이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자들을 연구하였다. 이것저것 가릴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고학생으로서 어느 회사에 취직을 했다가, 어느 신문사에 입사함과 동시에  그곳을 사직했다. 신문사에서는 그에게 새로이 발명된 치아 송곳에 관해, 쌍둥이  연구해 관해, 슈테판 성당의 돔의 복구 공사에 관해 기사를 쓰게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무전 여행을 떠났다. 도중에 자동차들을 세워 탔고, 자신도 잘  모르는 친구가 또 제삼자의 주소를 적어준 것을 써먹으며, 이곳저곳에서 발길을  멈추었다가는 다시 여행을 계속했다. 이렇게 그는 유럽을 누비며 방랑을  하다가는 갑자기 굳힌 결심을 좇아 다시 되돌아왔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결정적인 직업으로 여겨지진 않았지만, 어떻든 쓸모 있는 듯한 직업을 얻기  위해 시험 준비를 해서 합격을 했다. 어떠한 기회에 부딪혀도 그는 긍정을 했던  것이다. 우정에도, 사랑에도, 무리한 요구에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항상 일종의  실험으로서, 또한 몇 번이고 거듭될 수 있는 것으로서였다. 그에겐 세계라는  것이 취소가 가능한 것으로 보였고 자기 자신까지 취소가 가능한 존재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는 지금처럼 자신에게 30세의 해의 막이 오르리라고는, 판에 박힌 문구가  자신에게도 적용되리라고는, 또한 어느 날엔가는 자신도 무엇을 진정 생각하고,  무엇을 진정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어야 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에게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한순간도  걱정해본 적이 없었다. 천 한 개의 가능성 중에서 천의 가능성은 이미 사라지고 시기를 놓쳤다고는 - 혹은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단  하나뿐이니까 나머지 천은 놓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껏 한 번도 의혹에 빠져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이제껏 무엇 하나 겁내본 적이 없었다.
  지금에야 그는 자신도 함정에 빠져 있음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이 일 년이(만 29세의 생일날에서 만 30세의 일 년간) 시작된 것은 비가 많이  내리는 6월이었다. 이전에 그는 자신이 태어난 이 6월에, 이 초여름에, 자신의  운명의 별에, 약속된 더위와 좋은 성좌의 길조에 홀딱 반해 있었다. 그는 지금 이미 자신의 별에 반해 있지 않다.

  곧 더운 7월이 온다.

불안이 그를 엄습한다. 그는 짐을 챙기고 자신의 방과 주변, 자신의 과거와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행을 한다기보다, 떠나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이  해를 맞아 그는 자유로워져야만 한다.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한다. 장소를, 사면의  벽을, 인간들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묵은 계산서를 청산하고, 후원자며  경찰이며 식당의 단골 친구들에게 퇴거를 신고해야만 한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그는 로마로 가야만 한다. 자신이 가장 자유롭게 지냈던  곳, 몇 해 전 자신의 도덕과 척도, 기쁨과 시선의 깨어남을 체험했던 로마로.





*종결부

  이 세상의 암흑의 중추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 그곳에서 불빛이 되어 산화해버린 그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던 것이다.

  5월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의 방안에는 꽃들이 날마다 신선한 꽃으로, 한층 화사한 것으로 바뀌어져 갔다. 낮이면 미늘창문이 몇 시간씩 내려져 있어서 방안에서는 향기가 그대로 간직되었다.

  만약 지금 그가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한 젊은 인간의 얼굴이리라. 또한 그는 자신이 젊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으리라. 실상 훨씬 젊었을 한 때에 그는 꽤나 늙은 것처럼 느껴졌었고 머리를 떨구고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의 사상과 육체가 너무나 그를 심란하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한창 젊었을 때 그는 일찍 죽기를 소원했었고, 30세가 되고 싶다고는 조금치도 바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삶을 원하고 있다. 그 당시 그의 머리속에는 세계를 향해 찍을 수 있는 구두점만이 사방에서 뒤흔들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세계가 등장하는 최초의 문장이 수중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엔 그는 무엇이든 궁극에까지 생각할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도, 자기가 현실 속으로는 이제 겨우 최초의 몇 발자국을 들여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로 그 현실이야말로 그로 하여금 궁극에까지 생각하게 허용하지 않고, 여전히 숱한 일들을 보류해두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또는 무엇을 믿는다는 것이야말로 도대체 수치스러운 일이 아닌가 어떤가를 그는 오랫동안 모르고 있었다. 지금 그는 무슨 일을 하든가, 표현을 할 때마다 자신을 믿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신뢰를 하게 된 것이다. 또한 자기가 증명할 수 없는 일, 자신의 피부의 털구멍이라든가, 바다의 짠 맛, 과일 같은 대기라든가, 단적으로 말해 일반적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해서까지도 그는 신뢰를 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퇴원하기 얼마 전에 그는 머리를 빗으려고 처음으로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낯이 익긴 하지만 동시에 약간 더 투명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이 불더미를 배경으로 해서 고개를 드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엉겨붙은 갈색의 머리털 한가운데 무엇인가 흰빛이 반짝이는 것을 발견하였다. 손으로 만져보고 거울을 가까이 비춰보았을 때 그것은 한 가닥의 흰 머리털이었다. 그의 심장은 목언저리까지 고동을 쳤다. 그는 멍청하니 꼼짝 않고 그 머리털을 바라보았다. 다음날 그는 다시금 거울을 비춰보고 더 많은 흰 머리가 보일세라 겁을 내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 가닥의 흰 머리털이 그냥 있을 뿐, 그것에서 늘어나 있지는 않았다.
  마침내 그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나는 진정 살아 있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더욱 오래 살고 싶다는 것이다. 하나의 고통, 초로의 밝은 증거인 이 흰 머리. 이것이 도대체 왜 나를 이토록 놀라게 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 이삼 일 지나 그것이 빠져버리고 새로운 흰 머리가 그렇듯 쉬 나오지 않는다 해도, 나는 이 시식의 맛을 잊지 않으리라. 그래서
구체화되어가는 나의 과정에 대해 다시는 공포를 느끼지 않게 되리라.

  나는 진정 살아 있지 않은가.

  그는 곧 회복을 할 것이다.

  그는 곧 30세가 된다.
서른번째의 생일이 올 것이다. 하지만 종을 울려 그날을 고지하는 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아니 그날은 새삼스레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벌써 있었던 것이다. 그가 안간힘 쓰며 간신히 버텨온 이 일 년간의 하루하루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그는 생기에 넘쳐 닥쳐올 것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일을 생각하며 저 밑 병실 문을 어서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 병약한 사람들, 빈사의 사람들 곁을 떠나서.

  내 그대에게 말하노니 일어서서 걸으라. 그대의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았으니.





%잉게보르크 바하만Ingeborg Bachmann, 오스트리아, 1926-1973

  시인, 소설가, 방송극 작가, 빈 대학에서 철학과 독문학 전공. 1950년 「하이데거 실존철학의 비판적 수용」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 취득, 두권의 시집 「유예된 시간」과 「큰곰자리에의 탄원(역서 제목: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로 항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2차 대전 후 피폐 상태에 빠져 있던 독일문단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새로운 언어와 유토피아, 그리고 페미니즘을 갈구한 「말리나」 「삼십세」 「동시에」 등의 산문을 남겼다. 47그룹상, 맹인협회방송극상, 뷔히너상, 오스트리아문학대상등 수상했다. 1973년 로마에서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015-02-06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로버트 프로스트 지음,
피천득 옮김

2015-02-02

책:: 함께읽기(고교친구들 독서모임). *이번 주 선정 도서 정보: '프랑스 아이처럼' - 파멜라 드러커맨 지음

**모임
*참여예정자: 김도훈, 김세진, 김홍성, 송병규. 송헌규, 한윤정
*일시: 2.7토, 신촌
*특이사항: 헌규 생일2.10 축하해주기


**책
*선정자: 한윤정
*공통: 프롤로그/ 1장 / 14장/ 에필로그
*선택: 2장 - 13장 중 두 개의 장씩 맡아 발표하기
(2세, 3세, 4헌, 5헌, 6병, 7병, 8홍, 9윤, 10윤, 11도, 12도, 13홍)

*책 정보





프랑스 아이처럼 : 아이, 엄마, 가족이 모두 행복한 프랑스식 육아
파멜라 드러커맨 저/이주혜 역 | 북하이브 | 원서 : Bringing Up Bebe



*책 소개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 마라!
육아후진국 미국의 엘리트 기자가 만난 프랑스의 혁명적 육아법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자율을 강조하자니 부모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한다는 죄책감이 들고, 일명 헬리콥터 부모가 되어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자니 의존성 높은 아이로 자라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자유와 허용은 아이를 버릇없이 만들까 염려스럽고, 참견과 규율은 아이에게 상처를 주거나 소심하게 만들까 걱정스럽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육아, 시름 없는 육아를 한다는 프랑스의 가정 풍경은 어떨까? 미국식 속도전 육아법도 싫고, 규율만을 강조하는 유교식 육아법으로는 모자라고, 창의와 자율만 강조하는 스칸디나비아식 육아법으론 왠지 불안한 당신을 위해, 여기 프랑스식 육아법이 있다. 극단의 규율과 너그러운 방종이 공존하는, 조금은 이기적이고 조금은 덜 짐스러운 프랑스식 육아법을 만나보자.

앙팡루아(enfant roi)가 무슨 뜻인 줄 아는가? 프랑스어로 ‘왕 아이’, 즉 가족 안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아이를 말한다. 언제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고, 떼만 쓰면 뭐든 용인되며, 가족들 모두가 아이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그래서 마치 스스로가 우주의 중심이 된 듯 느끼며 행동하는 아이를 의미한다. 프랑스에선 “댁의 아이는 앙팡루아군요?”라는 말이 최고의 모욕이다. 그렇게 키워선 아이가 장차 절대 행복해질 수 없고, 아이 스스로도 혼돈과 자제력 부족으로 고통 받게 만드는 최악의 육아방식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하루 4~5회 정해진 시간에만 분유를 먹으며, 이는 유아가 되어도 계속 이어져 어른과 같은 식단으로, 어른과 같은 식사시간에 식사를 해야 하며 간식도 구테(gouter)에만 먹도록 허용된다. 프랑스식 육아는 프랑스의 기본 철학에서 출발해 루소에 이르러 꽃을 피우고 프랑스 혁명과 시민사회를 거치면서 다양한 사상가와 전문가들에 의해 체계화된 프랑스의 양육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이의 자발성이 싹트게 도와주면서도 명확하고 합의된 틀과 기준이 존재하는 프랑스식 육아는 좋다는 것이면 무작정 따라 다니는 기준점 없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육아 현실에도 유의미한 준거와 방침을 제시해준다.



*저자

저 : 파멜라 드러커맨

Pamela Druckerman
월스트리트저널의 경제 섹션 기자로 전 세계를 누비던 파멜라는 어느 날 회사로부터 정리해고 통보를 받고 좌절에 빠진다. 그녀는 반쯤 도피성으로 결혼을 택하고, 곧이어 출산과 육아라는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영역으로 어느 날 갑자기 뛰어들게 된다. 그것도 생면부지의 프랑스 파리에서.
임신과 출산에 필요한 정보를 모으며 조바심을 내며 첫 아이를 기다리던 파멜라는, 문득 주변의 생경한 풍경에 눈을 돌리게 된다. 레스토랑에서 소란 한 번 피우는 법 없이 식탁에 얌전히 앉아 코스요리를 먹는 유아들, 부스스한 머리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아이 뒤치다꺼리를 하는 대신 트렌치코트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하이힐을 신은 엄마들, 놀이터나 쇼핑센터에서 떼를 쓰거나 내달리거나 징징대지 않는 아기들, 치킨너깃 대신 삶은 부추와 브로콜리와 파프리카를 즐겨 먹는 아이들, 생후 2~3개월부터 밤새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자는 아이들…….
처음엔 우연의 일치인 줄 알았다. 주변의 몇몇 가정에서만 벌어지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러나 수첩을 들고 본격적으로 취재를 시작하면서 파멜라는 이것이 프랑스의 뿌리 깊은 인간이해로부터 비롯된 독특한 육아 철학으로 인해 가능한 일임을 알게 된다. 저자 파멜라 드러커맨은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로 일했으며,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파이낸셜타임스〉, 〈마리클레르〉 등에 수시로 기고를 하고 있고, CNBC, BBC, 투데이쇼, 오프라닷컴 등 다수의 매체에 출연한 바 있다. 전작 《지구촌 불륜 사유서》는 8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세 아이와 남편과 함께 파리에 살고 있다.  닫기
작가파일보기

역 : 이주혜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영어로 된 문학 작품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옮기는 데 관심이 많아 아동 작가로 활동하면서, 현재 번역가 에이전시 하니브릿지 전속 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역서로 『왜요, 엄마?』, 『레이븐 블랙』, 『지금 행복하라』, 『거인나라의 콩나무』, 『고대 이집트의 비밀은 아무도 몰라!』 , 『카즈딘 교육법』, 『놀이의 힘』, 『하루 종일 투덜대면 어떡해! : 매사에 부정적인 어린이가 행복해지는 법』, 『블러드 프롬이즈』 등이 있고, 저서로는『반쪽이』, 『콩중이 팥중이』, 『세계명작 시리즈 - 백조왕자』, 『세계명작 시리즈 - 톰팃톳』, 『전래동화 시리즈』(1-5), 『양육 쇼크』, 『아빠, 딸을 이해하기 시작하다』, 『아이의 신호등』, 『프랑스 아이처럼』,『세상에서 가장 쉬운 그림영어사전』외 다수가 있다.



*목차

Prologue 도대체 왜? _ 레스토랑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는 프랑스 아이들
Chapter 1. 아이를 기다리나요? _ 결혼과 출산, 그리고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Chapter 2. 편하게 통증 없이 _ 출산은 스포츠도, 종교행위도, 숭고한 고통도 아니다
Chapter 3. 밤새 잘 자는 아기들 _ 생후 4개월이면 모든 아기는 깨지 않고 12시간을 내리 잔다
Chapter 4. 기다려! _ 조르거나 보챈다고 원하는 것을 가질 수는 없다
Chapter 5. 작고 어린 인간 _ 아이는 2등급 인간도, 부모에게 속한 소유물도 아니다
Chapter 6. 탁아소? _ 프랑스 아이는 엄마가 아니라, 온 나라가 함께 키운다
Chapter 7. 분유 먹는 아기들 _ 모유가 좋다는 건 안다, 그러나 엄마 인생이 더 소중하다
Chapter 8. 완벽한 엄마는 없다 _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엄마는 불행한 아이를 만들 뿐이다
Chapter 9. 똥 덩어리 _ 극단적 자유와 독재적 제한이 공존하는 프랑스의 습관 교육
Chapter 10. 두 번째 경험 _ 전혀 낭만적이지 못했던 두 번째 쌍둥이 출산
Chapter 11. 죽지 못해 산다? _ 프랑스 여자들은 왜 남편 욕을 하지 않을까
Chapter 12. 한 입만 먹으면 돼 _ 패스트푸드보다 채소 샐러드를 더 좋아하는 아이들
Chapter 13. 내가 대장 _ 프랑스 부모는 소리치지 않고도 권위를 확립한다
Chapter 14. 네 길을 가라 _ 4세부터 부모에게서 떨어져 여행 가는 아이들
Epilogue 프랑스에서의 내일 _ 잠재적 성공보다 현재의 행복을 만끽하는 사람들
Appendix 프랑스 육아 용어 풀이



*책 속으로

프랑스 육아법에 관심을 갖고 보니, 달라 보이는 건 식사 예절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스쳐 보냈던 풍경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프랑스 놀이터에서 수백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단 한 번도 악을 지르며 떼를 쓰는 아이를 본 적이 없다. 프랑스 친구들은 통화 중에 아이가 칭얼대거나 운다는 이유로 전화를 끊고 달려가지 않았다. 프랑스 거실은 우리 집과 달리 아기용 천막이나 미끄럼틀, 장난감으로 점거당하지 않았다. 미국 아이들은 파스타나 흰쌀이 포함된 소위 ‘어린이 메뉴’만 먹는데, 프랑스 아이들은 마치 어른처럼 생선이나 채소를 포함해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먹는다. 프랑스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을 제외하곤 간식을 입에 달고 지내지 않는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랬다. 모든 게 달랐다! - 10쪽

에릭은 아직도 제니퍼의 얘길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아내는 짐볼 위나 욕조 안에서 아기를 낳고 싶어 했어요.”
그러나 담당의는 제니퍼에게 조언했다. “산부인과는 동물원이 아니고 출산은 서커스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출산하실 겁니다. 반듯이 누워서 다리를 벌리고요. 그래야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제가 제때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 51쪽

프랑스 사람들은 ‘잠깐 멈추기’를 첫째 해법으로 삼고 생후 몇 주부터 그 방법을 적용한다. 〈마망〉의 기사에 의하면, 생후 6개월 이전 아기의 수면 중 50~60%는 흥분한 상태의 수면이다. 그 상태에서 아기는 갑자기 하품을 하거나 몸을 쭉 펴며 기지개를 켜거나 심지어 눈을 떴다 감기도 한다. 기사는 말한다. ‘이를 호출로 해석하고 곧바로 달려가 아기를 안아준다면, 아기의 수면 열차를 탈선시켜버리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과 같다.’ - 76쪽

프랑스 부모는 흔히 아이들에게 ‘사쥬(sage, 현명해라)’라고 말한다. 미국 부모들이 ‘착하게 굴어라(be good)’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처럼 프랑스에선 ‘현명해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안에는 좀 더 큰 뜻이 담겨 있다.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 착하게 행동하라고 말하면, 아이는 그 시간동안 길들여진 행동을 해야 하는 야생동물 취급을 받는 것과 같다. 착해지라는 건 그것이 아이의 본성과 정반대라는 숨은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현명해라’라는 말은, 이미 아이에게 있는 올바른 판단력을 발휘하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존중하라는 뜻이다. 아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아이를 믿는다는 뜻을 함축하기도 한다. - 92쪽

《행복한 아이(A Happy Child)》라는 책에서 프랑스 심리학자 디디에 플뢰(Didier Pleux)는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좌절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이를 놀지 못하게 하거나 안아주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아이의 취향, 리듬, 개성은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 다만 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며 모두를 위한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걸 배워야 한다.’ - 104쪽

오늘날 파리에서 만나는 부모들은 아이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결정은 부모가 한다’는 것 사이에 효과적인 균형을 찾아낸 듯 보인다. 프랑스 부모들은 언제나 아이들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점심으로 초콜릿 빵을 먹겠다고 하면 허락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부모들은 루소의 양 어깨를 딛고 선 돌토를 양육의 금과옥조로 삼는다. - 130쪽

결국 중요한 것은 양육자의 ‘민감성’, 즉 양육자가 아이가 세계를 경험해가는 과정을 얼마나 잘 맞춰주는가다. 탁아소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요구에 세심하게 신경 쓰고 아이의 언어적?비언어적 신호와 징후에 반응하며 아이의 호기심과 욕구를 자극해주는 온화하고 지원적이며 관심을 쏟아주는 양육자’를 만났을 때 아이는 탁아소에서 ‘고품질’ 양육을 받는 셈이다. 베이비시터든 조부모든 탁아소 교사든, 민감성이 높은 양육자와 함께 할 때 아이는 더 잘 살아간다. - 153쪽

겉으로 보면 프랑스 엄마들은 눈높이가 높다. 엄마이면서 동시에 섹시해야 하고 성공해야 하며 매일 저녁 집에서 요리한 음식을 내놔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 죄책감을 얹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완벽한 엄마는 바로 당신(The Perfect Mother Is You)》의 공저자이자 기자인 다니엘은 5개월 된 딸을 처음 크레쉬(탁아소)에 맡기고 나올 때의 심정을 기억한다. “아이를 놔두고 나오는 건 속상했어요. 하지만 일을 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있었어도 속상하긴 마찬가지였을 거예요.”그녀는 죄책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했다.
“한번 죄책감을 느끼고, 또 계속 살아가는 거죠.”
세상의 모든 엄마이자 여성을 위로하듯, 다니엘은 덧붙였다.
“완벽한 엄마란 존재하지 않잖아요.” - 185쪽

빈과 함께 브르타뉴의 프랑스 가정을 방문했을 때 그 집 어린 딸 레오니가 할머니에게 혀를 쑥 내밀었다. 할머니는 아이들을 앉혀놓고 그런 행동을 해도 될 때와 안 될 때를 자세히 일러주었다. “네 방에 혼자 있을 때는 해도 돼. 화장실에서 혼자 있을 때도 해도 돼. 그럴 때는 맨발로 있어도 되고 혀를 내밀어도 되고 누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켜도 되고 똥 덩어리 같은 말을 해도 돼. 너 혼자 있을 때는 그런 걸 다 해도 돼. 하지만 어린이집에서는 안 돼. 식탁에 있을 때도 안 돼. 엄마와 아빠와 있을 때도 안 돼. 길거리에서도 안 돼. 그게 인생이야. 차이를 반드시 이해해야 해.” - 209쪽

프랑스 아이들이 왜 그렇게 잘 먹는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파리시 식단위원회에 참석했다. 위원회는 파리의 크레쉬(탁아소)에서 향후 2개월 간 무엇을 제공할지 결정한다.
위원회는 ‘아이들과 음식에 관한 프랑스식 사고의 소우주’와도 같다. 그들의 첫 번째 신조는 이것이다. ‘어린이용 음식 따위는 없다!’ 영양사가 4가지 코스로 된 점심 메뉴 초안을 발표한다. 프렌치프라이, 치킨 너깃, 피자, 케첩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하루 메뉴를 뽑아 살펴보자. 잘게 썬 붉은 양배추와 프로마주 블랑 치즈 샐러드, 그 다음으로 딜 소스를 곁들인 대구 찜과 영국풍 유기농 감자 요리가 나온다. 치즈는 부드러운 쿨로미에, 후식으로는 구운 유기농사과가 나온다. 각 음식은 아이들 연령대에 따라 잘라 주거나 으깨서 준다. - 254쪽

프랑스 부모들도 아이들에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한다. 끊임없는 융단폭격보다 단번의 국부타격을 선호한다. 그러나 고함은 정말 중요한 순간을 위해 아껴둔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내가 고함을 지르면, 아이들이 무슨 엄청난 잘못을 했나 의아해하며 쳐다볼 정도다. 나는 다른 미국 부모들처럼 권위를 훈육과 벌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반면 프랑스 부모는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훈육보다 ‘교육’이라 말한다. 말 자체가 암시하듯,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어떤 것은 용납이 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지’ 아이들에게 서서히 가르쳐주는 쪽이다. - 287쪽

자율을 강조하는 프랑스식 풍토는 프랑수아 돌토로부터 왔다. 돌토는 《아동기의 주요단계》에서 이렇게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안전한 상태에서 가능한 일찍부터 자율이 주어지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그 모습 그대로 사랑 받는다고 느낄 필요가 있다. 공간 안에서 자기 자신을 확신하고 매일매일 자신만의 탐험 속에서,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또래와의 관계 속에서 보다 자유를 허락받을 필요가 있다.’ - 303쪽

프랑스 학교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혹독해진다. 그러나 이는 프랑스 교사들의 의무이자 프랑스 부모들의 신념에 부합하는 일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무엇이 효과적이고 무엇이 효과적이지 않은지 알아보기 위해, 과학적인 방법론을 이용해 양육을 진행해간다. 그리고 이들이 내린 결론은 ‘어떤 칭찬은 이롭지만 칭찬을 너무 많이 하면 아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 314쪽



*출판사 리뷰

“좌절을 경험하지 않은 아이는 불행하다!”
육아후진국 미국의 엘리트 기자가 만난 프랑스의 혁명적 육아법
아마존·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바로 그 책!

앙팡루아(enfant roi)가 무슨 뜻인 줄 아는가? 프랑스어로 ‘왕 아이’, 즉 가족 안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아이를 말한다. 언제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고, 떼만 쓰면 뭐든 용인되며, 가족들 모두가 아이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그래서 마치 스스로가 우주의 중심이 된 듯 느끼며 행동하는 아이를 의미한다. 프랑스에선 “댁의 아이는 앙팡루아군요?”라는 말이 최고의 모욕이다. 그렇게 키워선 아이가 장차 절대 행복해질 수 없고, 아이 스스로도 혼돈과 자제력 부족으로 고통 받게 만드는 최악의 육아방식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하루 4~5회 정해진 시간에만 분유를 먹으며, 이는 유아가 되어도 계속 이어져 어른과 같은 식단으로, 어른과 같은 식사시간에 식사를 해야 하며 간식도 구테(gouter)에만 먹도록 허용된다. 설령 누군가가 선물로 사탕이나 초콜릿을 주어도 그것을 집으로 가져왔다가 구테 시간이 되어야 먹을 수 있다. 심지어 구테 시간이라 해도 아무것이나 먹을 수 없다.

미국식 육아에 흠뻑 젖어 있는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혼내거나 윽박지르는 것은 곧 ‘아이의 기를 꺾고 창의성을 죽이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어떤 집이든 들어가 보면, “우리 집엔 아이가 있어요!”라고 광고라도 하듯 온갖 장난감과 놀이시설, 동화책과 학습용 포스터들이 거실을 장악하고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선 이런 장면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이를 위해 온 가족이 희생한다는 것을 석연치 않아 하고, 아이란 무조건적인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불완전한 존재라고 여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식 육아는 프랑스의 기본 철학에서 출발해 루소에 이르러 꽃을 피우고 프랑스 혁명과 시민사회를 거치면서 다양한 사상가와 전문가들에 의해 체계화된 프랑스의 양육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이의 자발성이 싹트게 도와주면서도 명확하고 합의된 틀과 기준이 존재하는 프랑스식 육아는 좋다는 것이면 무작정 따라 다니는 기준점 없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육아 현실에도 유의미한 준거와 방침을 제시해준다.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 마라!
자율과 복종, 규율과 자유가 공존하는 ‘프랑스 아이처럼’ 키워라

오늘날 프랑스에서 엄마아빠,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프랑스는 온 나라가 함께 아이를 키운다. 우선, 아이가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부양을 위한 사회적 자원이 무상으로 주어진다. 엄마는 아이 양육과 교육을 위해 자기희생을 강요받지 않는다. 아빠는 무관심과 재정적 지원만 요구 받는 반쪽짜리 부모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이 하나를 위해 온 가족이 희생하는 일 따위는 없다.

떠올려보라.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예의 바르지만, 아이다운 장난기와 애교가 넘치는 작은 인간. 존중받고 존중할 줄 알며 때와 장소를 가려 지혜롭게 행동하는 아이. 통제력과 자제력이 있으면서도 자기주장이 분명한 아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좌절과 인내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한 아이.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며 그러기에 뭔가를 받으면 뭔가를 돌려줘야 함을 아는 아이. 한껏 자유롭지만 부모의 권위에 복종할 줄 아는 아이. 당신의 아이를 그런 아이로 키울 수 있다. 그리고 그러려면 부모의 철학이 담긴 육아법이라는 씨앗이 온전히 뿌리내려야 한다.

미국식 속도전 육아법도 싫고, 규율만을 강조하는 유교식 육아법으로는 모자라고, 창의와 자율만 강조하는 스칸디나비아식 육아법으론 왠지 불안한 당신을 위해, 여기 프랑스식 육아법이 있다. 극단의 규율과 너그러운 방종이 공존하는, 조금은 이기적이고 조금은 덜 짐스러운 프랑스식 육아법을 만나보자.
아울러, 지금 당신이 고전하는, 그리고 두려워하는 몇 가지 아이 키우기의 해법까지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 보채거나 깨지 않고 밤새 잘 자는 법
- 반찬투정 하지 않고 골고루 잘 먹는 법
-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게 있어도 차분히 기다리는 법
- 시킬 때만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법
- 징징대거나 떼쓰지 않고 상황에 대처하는 법
- 아이가 생긴 후에도 부부관계가 시들해지지 않는 법



*추천평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한데다 엄청나게 재밌다. 아이를 돌보는 방법만이 아니라 여자로서의 자아를 잃지 않는 법까지 배웠다. 이 책이 너무나 좋다. 프랑스로 이민가고 싶어질 정도로.
- 인디아 나이트(India Knight), 〈선데이타임스〉

저자는 유쾌한 유머를 갖춘 탁월한 스토리텔러이자 타문화를 이질감 없이 녹여 소개하는 뛰어난 전파자다. 또한 역사와 철학을 아울러 탄탄한 이론적 뒷받침까지 이루어져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 출판평론지 〈커커스 리뷰(Kirkus Reviews)〉

솔직하고 발칙한 유머와 위트, 거기에 유익한 정보까지. 독자는 마치 저자 자신이 된 듯, 느긋하고 자유로우며 자신감이 넘치는 프랑스 육아법의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간다. 재밌게 읽을 수 있는데다 두고두고 활용할 좋은 공부가 되는 책이다.
- 〈가디언(The?Guardian)〉

가르치며 훈계하는 그런 책이 아니다. 면밀하고 세심한 관찰이 돋보이는 회고록이자 잔잔하지만 깊이 있는 울림을 주는 대화록이다. 잘 정리된 방법론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덧 행복한 부모와 아이들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하다.
- 〈휴스턴 크로니클(Houston Chronicle)〉

잘 자는 아이, 코스요리를 즐기는 아이, 여유로운 부모. 나 역시 감탄했던 프랑스의 이색적인 양육 풍경을 저자는 누구보다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죄책감이나 조바심에 시달리는 요즘 부모들을 위해 꼭 필요한 힐링 메시지이기도 하다.

- 미레유 길리아노, 《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 저자



%출처: yes24.com



2015-01-27

소설: Sentences. '중국행 슬로보트'中国行きのスロウ・ボート(단편, 1983) - 무라카미 하루키

 5

  이미 서른을 넘은 한 남자인 지금, 다시 한번 외야로 날아가는 공을 쫓아가다 농구대에 전속력으로 부딪히고 다시 한번 글러브를 베개 삼아 포도시렁 밑에서 눈을 뜬다면 나는 이번에는 뭐라고 말할까?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여기는 나를 위한 장소도 아니야, 라고.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야마노테 선 전철 안이었다. 나는 문 앞에 서서 차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단단히 움켜쥔 채 유리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의 도시, 그 풍경은 왠지 내 마음을 지독히 어둡게 만들었다. 도시 생활자가 연중행사를 치르듯 빠져드는 낯익은 것, 탁한 커피젤리 같은 정신의 엷은 어둠이 다시금 나를 사로잡고 잇엇다. 지저분한 빌딩, 이름 없는 사람들의 무리, 끊이지 않는 소음, 꼼짝 못하는 자동차의 행렬, 잿빛 하늘, 공간을 가득 메운 광고판, 욕망과 포기와 초조와 흥분, 그곳에는 무수한 선택지가 있고, 무수한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수한 동시에 제로였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손에 쥐었지만 우리 손안에 있는 것은 제로였다. 그것이 도시였다. 나는 문득 그 중국인 여자애의 말을 떠올렸다. "애초에 여기는 내가 있을 장소가 아니야."

  나는 도쿄의 거리를 보며 중국을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수많은 중국인을 만났다. 그리고 수많은 중국 관련 서적을 읽었다. '사기史記'에서부터 '중국의 붉은 별'까지. 나는 중국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 중국은 나만을 위한 중국일 분이다. 그것은 나밖에 독해할 수 없는 중국이다. 나에게밖에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중국이다. 지구본 위에 노랗게 칠해진 중국과는 다른, 또하나의 중국이다. 그것은 하나의 가설이고, 하나의 잠정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중국이라는 말로 오려내는 나 자신이다. 나는 중국을 방랑한다. 하지만 비행기를 탈 필요는 없다. 그 방랑은 여기 도쿄의 지하철 안이나 택시 뒷좌석에서 이루어진다. 그 모험은 근처 치과 대기실이나 은행 창구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어디에도 갈 수 있고, 어디에도 갈 수 없다.
  도쿄 -그리고 어느날, 야마노테 선 전철 안에서 이 도쿄라는 도시조차 돌연 리얼리티를 잃기 시작한다. 그 풍경은 창밖에서 갑작스레 붕괴하기 시작한다. 나는 차표를 쥐고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본다. 도쿄의 거리에 나의 중국이 재처럼 쏟아져내려 이 거리를 결정적으로 침식해간다. 그것은 차차 사라져간다. 그렇다. 여기는 나의 장소도 아닌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언어는 사라지고 우리가 품었던 꿈은 언젠가 뿌옇게 지워진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그 따분한 소년 시절이 인생 어딘가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렸듯이.
 오류... 오류라는 것은 그 중국인 여대생이 말했듯이(혹은 정신분석의가 말하듯이) 결국 역설적인 욕망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류야말로 나 자신이며 당신 자신인 셈이다. 그렇가면 출구 따위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옛날 충실한 외야수로서의 자그마한 자부심을 트렁크 바닥에 챙겨넣고 항구의 돌계단에 앉아 텅 빈 수평선 위로 언젠가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르는 중국행 슬로보트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중국 거리의 빛나는 지붕을 그리워하고 그 푸른 초원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러니 상실과 붕괴 뒤에 무엇이 오든 나는 이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마치 4번 타자가 몸 쪽 변화구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열렬한 혁명가가 교수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만일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친구여, 중국은 너무도 멀다.


%출처: '중국행 슬로보트'(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문학동네)

2015-01-26

사진: 제프 월Jeff Wall, '갑작스러운 돌풍'A Sudden Gust of Wind (after Hokusai), 1993


책: 메모. '행복의 정복'(The Conquest of Happiness, 버트란드 러셀) - 무엇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가


한낮의 햇빛을 견뎌내는 일


  짐승들은 건강하고 먹을 것이 충분하기만 하면 행복하다. 그러나 인간은, 적어도 대부분의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내가 만나는 모든 얼굴에
가냘픔과 슬픔의 빛이 깃들여 있노라.

  영국의 시인 블레이크가 한 말이다. 물론 그 종류는 각양각색이지만 당신은 도처에서 사람들이 불행과 마주친다는 것을 알게 된다. ... 근무 시간의 군중에게서는 불안과 지나친 긴장, 소화불량, 경쟁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무관심, 마음놓고 즐기지조차 못하는 초조함, 동료들을 의식하지 못하는 태도 등을 보게 될 것이다.

  여러 가지 불행의 원인은 일부는 사회 제도에, 일부는 개인 심리에 있다. -물론 개인 심리도 대체로 사회 제도의 산물이다- 나는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요구되는 사회 제도의 변혁에 대해서는 전에 이미 쓴 적이 있다. 전쟁과 경제적 착취 그리고 잔인성과 공포심을 조장하는 교육의 폐지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전쟁을 피할 수 있는 제도를 찾아내는 일은 오늘날 문명의 가장 긴급한 과제이다. (*이 책은 러셀이 58세이던, 1930년에 출판됐다)

  그러나 한낮의 햇빛을 견뎌내는 일보다 서로 죽이는 일이 덜 무서운 일로 여겨질 만큼 인간들이 불행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그런 제도가 생길 기회는 없다.

  이 책을 쓰는 나의 목적은 문명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마다 겪고 잇는 일상적인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불행은 분명한 외부적 원인이 없어 사람들이 거기서 벗어날 방도를 찾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 견디기 어려운 불행이다.
  나는 이러한 불행의 원인이 주로 잘못된 세계관, 그릇된 윤리, 좋지 못한 생활 습관에 있다고 믿는데,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행복이든 동물의 행복이든 모든 행복이 궁극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가능한 일에 대한 자연적인 열정과 요구를 파괴한다.
  이러한 문제는 개인의 능력 범위 안에 속해있는 일이며, 따라서 나는 약간의 행운만 있다면 누구나 행복을 성취할 수 있는 변화의 방법을 제시하려고 한다.






러셀의 고백

  내가 주장하려고 하는 행복론에 앞서 내 자신의 얘기를 조금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나는 행복하게 태어나지는 않았다. 어렸을 적에 나는 “죄에 싸인 몸이 세상에 지치어...”라는 찬송가를 좋아했다.
  다섯 살 때, 나는 내가 앞으로 일흔 살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이제 고작 전 생애의 14분의 1을 살았을 뿐이므로 내 앞에 길게 가로놓여 있는 권태를 거의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느꼈다. 청년 시절에는 삶을 증오했고 늘 자살의 유혹에 시달렸지만 수학을 좀더 알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그 위험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삶을 즐기고 있다. 해가 거듭될수록 삶을 더 즐길 수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내가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대부분 에 넣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론 본질적으로 달성될 수 없는 욕구 -예컨대 어떤 것에 대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지식의 획득 따위-를 깨끗이 단념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주된 원인은 나 자신에 대한 편견을 감소시켰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청교도적 교육을 받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나 자신의 죄, 어리석음, 결점 등을 깊이 생각하는 버릇이 잇었다. 나는 나 자신을 의심의 여지없이 비참한 사람의 본보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차로 나는 나 자신과 나의 결점에 무관심해지는 방법을 배웠다. 나는 점점 더 외부의 대상, 즉 세간의 일이라든가 여러 가지 지식의 분야라든가 내가 애정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집중하게 되었다.

  물론 외부에 대한 관심고통을 수반한다. 세상은 전쟁에 휘말리기도 하고, 어떤 부분의 지식은 획득하기 어렵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죽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고통은 자신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고통처럼 삶의 본질을 파괴하지 않는다. 그리고 외부에 대한 관심은 그 관심이 생생한 한, 권태를 완전히 막아주는 어떤 활동을 일깨워준다.

  반대로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은 적극적인 활동을 일으키지 못한다. 기껏해야 계속해서 일기를 쓴다든가, 심리 분석에 익숙하게 만든다든가, 또는 승려가 된다든가 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승려도 따분한 절 생활에 젖어서 자기 자신의 영혼을 잊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한 것이다. 따라서 승려가 종교에 귀의해서 얻었다고 하는 행복은, 만일 그가 어쩔 수 없이 도로 청소부가 되었더라도 얻을 수 있었을 행복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몰입이 지나쳐 다른 방법으로는 이를 고칠 길이 없는 불행한 사람들에게는 외부적인 훈련만이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자기에 빠져 있는 사람

  자기에 빠져 있는 사람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우리가 흔히 볼 수 잇는 세 가지 타입으로 죄인, 자기 도취자, 과대망상증에 걸린 사람을 들 수 있다.


*'Narcissus' by the Italian Baroque master Caravaggio (1597-1599)

  내가 말하는 죄인이란, 실제로 죄를 저지른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죄는 누구나 짓기 마련인 것이기도 하고, 또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내가 말하는 죄인이란 죄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탓하며, 만일 그가 종교인이라면 이를 하느님의 비난이라고 해석한다. 그는 자신이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아상을 가지고 있으며, 이 자아상은 실제의 자기에 대한 지식과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킨다.
   만일 의식적인 사고에 있어서 어머니의 무릎에서 배운 도덕률을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면, 그의 죄의식은 무의식 속으로 깊이 가라앉았다가 취했거나 잠을었을 때에만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취했거나 잠들었을 때 죄의식이 머리를 드는 것만으로도 모든 일에 대한 흥미를 빼앗기에 충분하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어릴 적에 배운 온갖 도덕적 금기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불경스런 말을 하는 것은 죄악이다. 술을 마시는 것은 나쁘다, 일상의 업무에서 교활하게 구는 것은 좋지 않다, 무엇보다도 섹스는 죄악이다 등. 물론 그가 이러한 쾌락을 삼가는 건 아니지만 쾌락이 자신을 타락시킨다고 느끼기 때문에 이러한 쾌락은 즐거움은커녕 독이 된다.

  그가 진심으로 바라는 유일한 쾌락은 어렸을 때처럼 어머니의 따뜻한 애무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즐거움을 접할 수 없으므로 아무래도 좋다고 느긴다. 그리하여 어차피 죄를 짓기 마련이므로 철저히 죄를 짓기로 결심한다. 사랑에 빠질 때, 그는 여자에게 모성을 기대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모습이 어른거려, 자신과 성관계를 맺고 있는 어떤 여성에 대해서도 존경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애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절망한 나머지 잔인해지고 다시 자신의 잔인성을 뉘우친다. 이런 식으로 상상적인 죄악과 현실적인 뉘우침의 움울한 순환이 새롭게 시작된다. 이것이 하느님으로부터 비정하게 버림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많은 사람들의 심리이다.

  그들을 방황하게 만드는 것유년 시절에 깊이 심어진 어이없는 도덕률과 도달할 수 없는 대상(어머니 또는 어머니를 대신하는 자)에 대한 헌신이다. 이와 같은 모성적 도덕의 희생자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유년 시절의 믿음이나 감정으로부터 해방되어야만 한다. 


  자기 도취는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습관적인 죄의식에 반대되는 것이다. 자기 도취는 자기 자신을 찬양하고 또 자기 자신이 찬양받기를 바라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자기 도취는 정상적인 것이며 비난할 것이 못 된다. 자기 도취가 중대한 악이 되는 것은 너무 지나칠 경우이다.
  많은 여성들, 특히 상류 사회 여성들의 경우 사랑을 느끼는 능력은 완전히 고갈돼버린 반면, 모든 남성이 자기를 반드시 사랑해야 한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이러한 여성의 경우 어떤 남자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이 확실해지면 그 남자는 이미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여자의 경우처럼 빈번하지는 않지만 남자에게도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 그 고전적인 예가 혁명 직전의 프랑스 귀족들의 정사를 그린 저 유명한 소설 ‘위험한 관계’의 주인공이다. 허영심이 이 정도로 극단에 달하면, 다른 사람에 대한 진정한 관심은 있을 수 없고, 사랑으로부터 진정한 만족도 얻지 못한다.
  다른 관심들은 더 비참한 상태에 빠진다. 자기 도취자가 위대한 화가에 대한 존경심이 계기가 되어 그림 공부를 하게 되는 경우를 로 들어보자. 그에게 있어서 그림은 단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는 테크닉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자기 자신과 관계 없는 주제는 택하지도 않는다. 결과는 실패와 실망뿐이고 기대했던 아첨 대신 비웃음을 받게 된다. 자기 소설 속에서 언제나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상화시키는 소설가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원시인은 훌륭한 사냥꾼이 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으리라.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사냥이라는 활동을 즐겼다. 허영심이 어떤 한계점을 넘어서면 모든 활동에 깃들인 쾌락을 말살하고, 불가피하게 피곤과 권태를 일으킨다. 허영심은 대개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며, 이런 경우에는 자존감을 키우는 것이 그 치료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치료법도 객관적 관심에 의해 자극된 활동에 성공할 때만 효력이 있다.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매력적이기보다는 강력해지기를 바라고, 사랑을 받기보다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자 한다는 점에서 자기 도취에 빠진 사람과 구별된다. 많은 정신병자와 역사상의 대부분의 위인이 이러한 타입에 속한다.
  허영심과 마찬가지로 권력에 대한 애착은 정상적인 인간성의 중요한 요소이며, 그 자체로서는 비난받을 만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도가 지나치거나 빈약한 현실 감각과 결합할 때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불행해지거나 바보가 된다. ...
  알렉산더 대왕은 심리학적으로는 정신병자와 다를 게 없었으나, 단지 그에게는 정신병자의 꿈을 실현시킬 능력이 있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그러나 꿈을 실현할수록 자신의 꿈의 폭도 넓어져 결국 그는 꿈을 완전히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가장 위대한 정복자로 명성을 날리게 되자 그는 신이라 자처했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었을까? 폭음, 결렬한 분노, 여성에 대한 무관심, 신성에 대한 요구 등은 그가 행복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인간성의 한 요소를, 다른 모든 요소를 희생시켜가면서 개발했다고 해서 궁극적인 만족을 얻는 것은 아니며, 또한 온 세상을 자신의 위대함을 나타내기 위한 재료로 삼는다고 해서 궁극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통 과대망상증은 병적이든, 정상적이든 모두 심한 모욕을 받은 결과인 경우가 많다. ...
  정치적 의미의 억압과 정신분적적 의미의 억압은 그 궤를 같이 한다. 따라서 정신분석적 억압이 명백한 형태로 발생하는 경우, 진정한 행복은 있을 수 없다. ,,,
적절한 한계를 지키는 권력은 행복에 크게 기여할지 모르나, 권력을 삶을 유일한 목표로 삼는다면 비록 외면적으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내면적으로는 파멸을 맞게 된다.



새로운 꼬리

  불행의 심리적 원인은 다양하지만, 거기에는 분명 공통점이 있다. 전형적으로 불행한 사람은 청소년 시절에 어떤 정상적인 만족을 박탈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그 한 가지 만족을 과대평가하게 되어 자신의 생활을 오직 그 만족을 얻는 방향으로만 이끌게 되고, 자연히 거기에 방해가 되고 성격이 다른 성취들에 대해서는 아주 부당한 평가를 내리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는 현대에 와서 더욱 현저해졌고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어떤 형태의 만족이 아니라, 오락과 망각만을 추구할 정도로 완전한 좌절감에 사로잡혀 결국 쾌락광신자가 된다. 다시 말하면 활동을 줄임으로써 삶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술에 취하는 것은 일시적인 자살이다. 그것은 소극적인 행복에 지나지 않으며 불행을 순간적으로 정지시키는 것뿐이다.

  불행한 사람은 잠을 잘 못 잔 사람처럼 언제나 불행하다는 사실을 자랑한다. 아마도 이러한 자랑은 꼬리를 잃은 여우의 자랑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이야기. 꼬리를 잃은 여우가 자기만 꼬리가 없는 것이 부끄러워 꾀를 내어 다른 여우들에게 꼬리가 없는 것이 훨씬 좋다고 설득하다가 실패한다는 내용- 과 같은 것이리라. 그렇다면 치료법은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새로운 꼬리를 자라게 할 수 있는가를 지적해주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길을 알면서, 일부러 불행을 선택한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 그러므로 나는, 독자들이 불행해지기보다는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있다고 가정하겠다. 내가 이러한 희망을 실현시키는 데 도움이 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해롭지는 않을 것이다.



% 이 책 메모는 '행복의 정복'(원제:The Conquest of Happiness,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 지음, 문예출판사)을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텍스트 효과(소제목 및 볼드 처리 등)와  이미지는 필자가 임의로 삽입한 것들입니다.

% '무엇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가'는 이 책의 첫 번째 장입니다. 러셀은 이후의 십여개의 장을 통해  이 불행을 더 자세히 진단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즉 행복에 다다르는 일에 대해 말합니다.

이 책의 전체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1부 불행의 원인
무엇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가 / 바이런적 불행 / 경쟁 / 
피로/ 질투/ 죄의식 / 피해망상 / 여론에 대한 공포

제2부 행복의 원인
아직도 행복은 가능한가 / 열의 / 사랑 / 가족 / 일 / 일반적 관심사 /
노력과 체념 / 행복한 사람 / 옮긴이의 말

%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1872-1970)에 대해 더 알아보기(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wiki/%EB%B2%84%ED%8A%B8%EB%9F%B0%EB%93%9C_%EB%9F%AC%EC%85%80



2015-01-25

Quite: 63.


- 버트란드 러셀 1872-1970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야하며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행복과 맞바꾸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자아와 나머지 세계와의 모든 대립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밖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갖게 되면 곧 사라져 버린다. 이러한 관심을 통해 인간은 그 자신이 생명 흐름의 한 부분이며, 충돌하는 것 말고는 다른 실체와 전혀 관계를 맺을 수 없는 당구공처럼 엄밀하게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2015-01-22

책: 메모. '뉴스의 시대'(알랭 드 보통/문학동네) - 마무리. '내면으로부터의 뉴스'


어째서 우리 대중은 계속 새로운 것을 확인하는 걸까?
시간이 흐르면 이 모든 뉴스들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이는 공포와 큰 관련이 있다. 뉴스에서 눈을 떼고 나서 아주 짧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습관처럼 불안이 축적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들이 쉽게 잘못되는지, 또 순식간에 벌어지는지 안다. ...
  바로 근처에는 안정과 평화가 있을 것이다. 정원에서는 산들바람이 자두나무의 가지를 흔들고, 거실의 책상에는 조금씩 먼지가 쌓여가고 있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평온이 존재의 혼란스럽고 난폭한 핵심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다는 걸 인식하고 있으며, 따라서 잠시 뒤에는 나름의 근심이 습관처럼 자라난다.

...

  그러나 여기에는 특별한 종류의 아슬아슬한 쾌락도 있다.
아무리 무시무시하다 해도, 특히 최악의 소식일 때조차도 뉴스는 
우리가 스스로를 감내해야 하고, 
자신만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고자 영원히 애써야 하며, 
우리의 제한된 궤도 안에 있는 몇몇 사람들이 내 생각과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고투해야 한다는, 
폐소공포증을 유발하는 그런 부담들을 덜어주는 위안이 될 수 있다.

  뉴스는 우리에게 각기 할당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거나 흥미진진한 문제들을 찾아냄으로써, 그리고 이 더 큰 관심사들이 자기 자신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불안과 의심을 삼켜버리도록 용인함으로써 우리를 사로잡은 문제로부터 도피하는 탈출구가 될 수 있다. ...
  기근, 침수된 마을, 잡히지 않은 연쇄살인범, 내각의 사퇴, 내년 최저생계비에 대한 경제학자의 예측 같은 외부의 혼란이야말로 우리를 내면의 평온이라는 감각으로 인도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
  그런 뉴스를 접하고 나면 예측 가능한 일상의 쳇바퀴 앞에서, 우리의 이상한 욕망을 우리가 정말 단단히 비끄러매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동료를 독살하거나 친척을 안뜰에 묻어버린 적이 결코 없는 자신의 자제심 앞에서 새삼 안도한다.

...

  뉴스는 왁자지껄하게 쇄도하면서 우리의 가장 깊은 자아에 침투해왔다.
오늘날 고요한 순간을 누린다는 건 얼마나 커다란 성취인가.





내면으로부터의 뉴스

  우리는 새로운 것은 중요한 것일 수밖에 없다고 즉각 가정한다.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뉴스가 지배하는 시대에 온전한 판단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움과 중요함은 그 범주가 겹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서로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
  우리는... 거대하고 긴급한 소식을 듣기 위해 기꺼이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다.

  우리가 초조함을 느끼고 스스로에게 벗어나고 싶어질 때, 뉴스로 달려가는 것보다 
더 나은, 더 몰입되는, 더 믿을 만한 해결책이 뭐가 있을까.

...

  그 규모와 편재성으로 인해, 현대의 뉴스는 우리의 독립적인 사고 능력을 말살시킬 수 있다. 세계적 언론기관의 유럽 지부 조정실에는... 소크라테스의 죽음부터 전화의 발명에 이르는 23세기라는 시간에 걸쳐 인류 전체가 생성했던 것보다 더 많은 데이터가 단 하루 만에 그 건물로 쏟아져들어간다. ... 거기에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주제와 지리적 영역을 포함하는 기사들이 있다. ...
  이곳에서는 지역적이고, 토착적이며, 천천히 움직이는 모든 것을 뒤에 남겨놓고선 열광적이고, 무중력적이며, 거대한 왕국에 들어설 때 들뜨는 것과 같은 어떤 것을 제공한다.

  단언컨대 우리는 현대, 즉 방향 상실과 무작위성의 시대에 존재한다. 이 시대의 우리는 새로운 기술 덕택에 우리의 지역적 특색을 저버리고, 자연의 리듬을 폐기했으며, 넋이 나가버린 수많은 동료 피조물, 즉 자신만의 불운과 야망과 기이함을 뒤섞은 짐을 진 이들이 거대한 도시들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선명하게 인식한다.

  뉴스가 교체되는 주기는 거침없이 빠르다. 어제의 뉴스가 얼마나 중차대했는지와 무관하게, 매일 아침마다 불협화음이 한꺼번에 다시 울리기 시작한다. 뉴스의 중심에는 병원 응급실에도 있는 제도화된 기억상실증이 존재한다. 핏자국은 밤마다 깨끗이 씻겨 나가고 죽은 자들에 대한 기억은 지워진다.

...

  자신을 성찰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
  하지만 우리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길 정말 간절히 피하고자 하는 그때가 바로, 불편하지만 잠재력 있는 생생한 생각들을 배양하는 순간이다. 
  뉴스가 우리를 붙잡아매는 순간도 이때다. 내면 탐구에 반대하는 이 뉴스라는 존재가 얼마나 질투심이 많은지, 그리고 우리 내면으로 얼마나 깊이 침투하기를 소망하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먼저 자신만의 생각을 잉태시킬 만한 인내심 많은 산파의 기술을 터득하지 못하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는 단단한 무엇을 하나도 갖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무선 신호를 끊고 읽을거리도 손에 쥐지 않은 채 멀리 기차 여행을 떠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방랑하는 사색에 시동을 거는 절제용기를 지닌 엔진의 지속적인 현존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런 여행 말이다.
  낡은 책의 책장을 넘길 때 얻게 되는, 혹은 반쯤 부서지고 이끼로 뒤덮인 사원의 제단에서 얻게 되는 태도와 이데올로기, 감정의 양상, 마음의 철학이 있다.
  우리는 스크린 위에서 계속 변화하는 화소와의 접촉과, 제본과 서체로써 장래에 갖게 될 생각의 한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고 웅변하는 묵직한 양장본의 본문 페이지와의 접촉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뉴스가 부추긴 인상에서 놓여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때때로 상상 속에서 우주로 솟아오를 수 있어야 한다. ... 가장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조차 다른 은하의 풍경이 입증하는 영겁의 시간에 부딪혀 소멸하는 곳으로.
  우리는 우리 주위를 둘러싼, 딱히 달변은 아닌 종들이 내건 훨씬 낯설고 보다 경이로운 헤드라인에 주목하기 위해 가끔 뉴스를 포기하고 지내야 한다. ... 어린아이들을 비롯한, 우리의 멜로드라마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 모든 생명들은 우리의 불안과 자기도취를 상쇄한다.

  뉴스가 더이상 우리에게 가르쳐줄 독창적이거나 중요한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챌 때 은 풍요로워 진다. 그때 우리는 타자와 상상 속에서만 연결되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타자를 정복하고 망가뜨리고 만들거나 없애는 일을 그만둘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할당된 짧은 시간 속에서 견지해야 할 자신만의 목적이 있음을 자각하면서 말이다.





% 이 메모는 책 '뉴스의 시대'(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문학동네) 중 '프롤로그' 및 '결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 이 책은 1장 '프롤로그'로 시작하여 8장 '결론'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그 사이에 있는  여섯 개의 장에서는 각각 정치, 해외, 경제, 셀러브리티, 재난, 소비자 정보로 항목을 나누어 뉴스를 성향별로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이 개별 장들로부터 많은 것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지만, 그럼에도 '프롤로그'와 '결론'에 담겨 있는 내용만으로도 성찰과 영감의 계기를 마련해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뉴스, 뉴스와 비슷한 오늘날의 또 다른 매체 예를들면 SNS,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자신에 대한 것들입니다.
  곱씹고 싶은 단락들이 많았습니다. 이 책 메모들을 통해 이 책의 성격과 윤곽을 기본적으로 이해하는 데 기본적인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그 관심이 나머지 디테일한 여섯개의 장으로 확장되는데도 또한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책: 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 트레일러

*출처: 문학동네


책: 메모. '뉴스의 시대'(알랭 드 보통/문학동네) - 프롤로그


  
  보통 하루 이내의 간격을 두고(...특히 불안한 상태라면 고작 십 분이나 십오 분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뭘 하고 있었건 간에 뉴스를 확인하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춘다. 앞서 마지막으로 뉴스를 일별한 이후 이 행성 곳곳에서 일어난 인류의 엄청난 성취, 재난, 범죄, 전염병, 복잡한 연애사에 관한 결정적 정보를 잇달아 투여받겠다는 기대를 품고 일상을 잠시 멈춘다.

  이제부터 하게 될 일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이 익숙한 습관을 지금보다 훨씬 더 이상하면서도 조금은 위태롭게 보이도록 해보려는 연습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Why I wanna go to Beijing'


*my application for 2015 spring semester exchange student program in Beijing Technology and Business University.


  If somebody wants to go to 'New York' in 1900s, he was not supposed to say the reason. And ,of course, he couldn't. Even though he says any purpose or any plan, he will see, hear and experience truly more things than he says.

  Now, in 2000s, Am I supposed to say the reason why I want to go to 'Beijing'? And can I say it in only some words? But, I could say the university that I want to go to, Beijing Technology and Business University, is just 'Beijing' in other words, and I feel as I am surrounded by some huge wave, because I believe 'Beijing' is namely 'World' nowadys.

  So, I mainly hope to improve my languages and have the chance to re-understand about China through BTBU programs, and futhermore I imagine some detailed images that my whole body will dash against in Beijing.

  In spring, 2015, I am
- talking with a lot of people from various countries in the campus and the streets of Beijing.
- having a attention to characteristical arts of China that is being hugely impressed world art today.
- growing deep in my eyes while I stroll every corner of Beijing with my camera that is extension of my eyes.

  For this, I will follow the schedule of the exchange student program of BTBU next spring semester. And I also hope you ,BTBU, help me in my schedule.


2014, fall
hongsung kim

2015-01-17

책: 함께 읽기(세진,헌규). 다음 주 선정도서 정보. '뉴스의 시대'(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저/최민우 역 | 문학동네 | 원서 : The News



*책 소개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
뉴스에 탐닉하는 시대, 미디어에 중독된 우리에게 말을 건네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머리맡의 스마트폰을 켜고 인터넷 포털과 SNS에 올라오는 새로운 소식을 검색한다. 친구와 진지한 대화를 할 때도 중요한 업무회의 시간에도 틈만 나면 뉴스를 검색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습관이다. 수시로 뉴스를 검색하지 않으면 초조해질 정도로, 그렇게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뉴스에 중독됐다. 그런데 혹시 뉴스는 천천히, 그리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판단력과 자기를 차분히 돌아보는 명상의 시간을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왜 뉴스에 열광하는 것일까. 첨단 미디어 시대의 언론은 어떤 사명을 지녀야 하는 것일까. 일상에서 겪는 불안과 곤경을 날렵하게 파고드는 작가 알랭 드 보통. 그는 이 책에서 뉴스를 소재로 우리 시대의 미디어를 둘러싼 풍경을 낱낱이 묘사하면서, 쇄도하는 뉴스와 이미지 들 속에서 좀더 생산적이고 건강하게 뉴스를 수용하는 법에 대해 말한다.


*저자

Alain de Botton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에 능통하다. 알랭 드 보통은 스물세 살에 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여러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책들은 현재 2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2003년 2월에 드 보통은 프랑스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명예인 예술문화훈장을 받았으며, 「슈발리에 드 로드르 데자르 에 레트르」라는 기사 작위를 받았다. 같은 해 11월에는 츠베탕 토도로프, 로베르토 칼라소, 티모시 가튼 애쉬, 장 스타로뱅스키 등과 같이 유럽 전역의 뛰어난 문장가에게 수여되는 「샤를르 베이옹 유럽 에세이 상」을 수상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 내용에 바탕을 둔 TV 다큐멘터리 제작에 오랫동안 관여해왔다. 『프루스트는 어떻게 당신의 삶을 바꿨나』는 BBC 영화제작팀에서 랄프 파인즈와 펠리시티 켄들을 주연으로 하여 제작됐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은 영국과 미국에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동시에 영국에서 「철학: 행복으로의 안내」라는 제목으로 6부작 텔
... 펼처보기
가능하면 글은 매일 쓰려고 노력한다. 영감이 오길 기다린다면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할 것이다.
1975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전문사 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대중음악 관련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현재 대중음악 웹진 웨이브(weiv)의 편집장으로 있다. 로렌조 키에사의 〈조르조 아감벤의 프란체스코파적 존재론〉 등의 논문을 번역했다. 2012년 계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받았다.『고양이들』, 『분더킨트』를 우리말로 옮겼다.







* 목차

프롤로그

정치 뉴스
해외 뉴스
경제 뉴스
셀러브리티 뉴스 
재난 뉴스
소비자 정보 뉴스

결론



* 책 속으로

‘인류의 절반이 매일 뉴스에 넋이 나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언론을 통해 결코 접할 수 없는 헤드라인이다. 그 밖의 놀랍고 주목할 만하거나 부패하고 충격적인 일들은 무엇이든 드러내려고 안달하면서 말이다. 

어째서 우리 대중은 계속 뉴스를 확인하는 걸까? 이는 공포와 큰 관련이 있다. 뉴스에서 눈을 떼고 나서 아주 짧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습관처럼 불안이 축적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들이 쉽게 잘못되는지, 또 순식간에 벌어지는지 안다.

뉴스를 접하고 나면 예측 가능한 일상의 쳇바퀴 앞에서, 우리의 이상한 욕망을 우리가 정말 단단히 비끄러매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동료를 독살하거나 친척을 안뜰에 묻어버린 적이 결코 없는 자신의 자제심 앞에서 새삼 안도한다. 

오늘날 우리가 뉴스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장소는 지구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뉴스는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아침 일찍 일어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는 대륙을 오가는 비행기를 타고 우리를 따라온다. 뉴스는 자녀가 잠자는 틈을 타 우리 주의를 낚아채려고 대기중이다. 

오늘날 고요한 순간을 누린다는 건 얼마나 커다란 성취인가. 깊이 곯아떨어지거나 친구와 산만하지 않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참으로 흔치 않은 기적이 아닌가. 우리가 뉴스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단 하루라도 빗소리와 자기만의 상념에 귀기울이기 위해서는 실로 구도자적인 훈련이 필요하지 않은가.

정작 문제는 우리가 더 많은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접한 그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 (...) 이런 것들이 진정 의미하는 바가 뭐란 말인가? 이 사실들은 정치적 삶의 핵심적 질문들과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이 뉴스들은 우리가 뭘 이해하도록 돕는 걸까?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는 지금 이러한 공감 능력을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그건 부분적으로는, 우리가 받아들이는 지나치게 많은 정보들이 우리 깊은 자아가 소화할 수 없는 데이터 혹은 추상적인 사실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창조적 파괴’는 경쟁적인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약체인 회사가 제거되는 것을 묘사할 때 금융업자들과 경제학자들이 유용하게 써먹는 추상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미에 현 공장 부지에서 실제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수십 년간 쌓인 섬세한 노동, 노력, 계획, 원동력과 희망이 잔인한 종말을 맞는다는 것이다.

상처 입은 셀러브리티는 자신이 지닌 가치만을 생각하라는, 세상이 뭐라 말하건 무시하라는 충고를 듣는다. 하지만 애초에 그들이 세상 사람들의 생각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신경쓰는 성향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유명해질 수 있었겠는가? 

명성에 대한 갈망을 해소하는 가장 확실한 치유제는 궁극적으로 친절함과 존경심이 공평하게 넘쳐나는 세상이라는 사실 또한 우리는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비극을 통해 우리 자신이 비도덕적이고 맹목적이거나 폭력적인 행동에 무척이나 가까이 있다는 점을 때로 상기해야 한다.

뉴스는 문학이나 역사학처럼 ‘인생의 시뮬레이터’로 기능할 수 있다. 일상의 경험을 훨씬 뛰어넘는 다양한 상황 속으로 우리를 안내함으로써, 여유가 있을 때 그런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 방안을 미리 생각해보도록 돕는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뉴스가 더이상 우리에게 가르쳐줄 독창적이거나 중요한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챌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 그때 우리는 타자와 상상 속에서만 연결되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타자를 정복하고 망가뜨리고 만들거나 없애는 일을 그만둘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할당된 짧은 시간 속에서 견지해야 할 자신만의 목적이 있음을 자각하면서 말이다.


* 출판사 리뷰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
뉴스에 탐닉하는 시대,
미디어에 중독된 우리에게 말을 건네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머리맡의 스마트폰을 켜고 인터넷 포털과 SNS에 올라오는 새로운 소식을 검색한다. 친구와 진지한 대화를 할 때도 중요한 업무회의 시간에도 틈만 나면 뉴스를 검색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습관이다. 수시로 뉴스를 검색하지 않으면 초조해질 정도로, 그렇게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뉴스에 중독됐다. 그런데 혹시 뉴스는 천천히, 그리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판단력과 자기를 차분히 돌아보는 명상의 시간을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왜 뉴스에 열광하는 것일까. 첨단 미디어 시대의 언론은 어떤 사명을 지녀야 하는 것일까. 일상의 불안과 곤경을 날렵하게 파고드는 작가 알랭 드 보통. 그는 이 책에서 뉴스를 소재로 우리 시대의 미디어를 둘러싼 풍경을 낱낱이 묘사하면서, 쇄도하는 뉴스와 이미지 들 속에서 좀더 생산적이고 건강하게 뉴스를 수용하는 방법과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언론의 역할에 대해 말한다. 

뉴스가 선생님이다

뉴스는 아무런 사용설명서 없이 뉴스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문학작품을 분석하는 법은 배워도 뉴스를 읽는 법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예술작품을 보는 법은 배워도 매순간 홍수처럼 쏟아지는 뉴스 이미지를 읽어내는 법 또한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뉴스는 우리의 세계관을 창조하는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교육 매체이지 않을까. 뉴스는 우리에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어떤 변화가 가능한지 알려주고자 하며, 그러면서 정치적 사회적 현실에 대한 대중의 감각을 만들어낸다. 알랭 드 보통이 보기에 뉴스는 그만큼 대중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혁명가들이 그러하듯, 만약 당신이 한 나라의 정신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미술관, 교육부, 혹은 저명한 소설가의 집으로 향하는 대신, 정치체의 신경중추인 뉴스 본부로 곧장 탱크를 몰고 가”라고 말한다. 

우리는 왜 뉴스를 보며 계속 충격받을까 

열대지방에 내린 폭설, 정계 스캔들, 접착쌍둥이… 뉴스는 이 세상이 얼마나 놀라운 일들로 가득한지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어하는 듯하다. 그러나 뉴스는 정작 진실로 이상한 게 뭔지 알려주지 않는다. ‘전 세계 인류의 절반이 매일 뉴스에 넋이 나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결코 접할 수 없는 헤드라인이자 뉴스가 드러내려 하지 않는 속내다. 대신 뉴스는 끊임없이 정계 비리나 사회적 범죄 같은 사건들을 내보내는 데 전념한다. 왜 우리는 계속 그 뉴스를 들여다보며 충격을 받는 걸까. 
살면서 마주하는 근심과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뉴스를 찾아보는 건 아닐까. 연쇄살인 사건이나 부패한 정치인, 별난 행동을 일삼는 연예인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 내 삶이 그나마 정상적이라고 안도하기 위해 뉴스를 보는 것은 아닐까. 볕이 잘 드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서재에 앉아 있어도 존재의 근원적인 불안과 공포는 사라지지 않기에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애타게 귀기울이는 것은 아닐까. “뉴스를 확인하는 행위는 마치 조개껍데기를 귀에 갖다 대고 거기서 들리는 인류의 울부짖음에 도취되고 압도당하는 것과 같다.”

뉴스는 겁먹고 동요하고 괴로워하는 대중을 간절히 필요로 한다

현대사회에서 뉴스는 대중이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현실을 상상하고 그려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근거라고 알랭 드 보통은 말한다. 따라서 대중은 뉴스를 보며 국가와 사회의 현실에 대해 판단하며, 그에 대해 분노하거나 슬퍼하거나 좌절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뉴스가 지닌 힘이며 뉴스가 한 국가의 정치적 의제를 구성해낼 수 있는 동력이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뉴스가 너무나도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분노하는 대중에게 뉴스는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 대중이 자신이 속한 사회를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뉴스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이는 지금의 한국사회만 보더라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현재의 뉴스는 상업적인 이득만을 위해, 대중의 불안과 분노를 무책임하게 양산하거나 혹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로 현실의 중대한 문제로부터 대중의 눈길을 거두어가는 것은 아닌지. 이는 뉴스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함께 시급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뉴스의 시대를 건강하게 살아가는 법

그 많은 뉴스들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여러 해 동안 소비한 뉴스 중 우리에게 남는 건 무엇일까. 그 수많은 흥분과 두려움은 우리 안의 어디로 가는 걸까. 그 어느 시대보다도 뉴스를 통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얻지만, 이상하게도 점점 더 지혜를 얻기 힘들어진다. 이 책은 뉴스의 세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항해하는 법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하는 책이다. 정치 뉴스는 왜 그리 재미없게 느껴지고, 경제 뉴스는 왜 그렇게 딱딱하게만 느껴지는지, 왜 우리는 셀러브리티의 연애 소식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격변은 어쩌면 그렇게 ‘남의 일’처럼만 느껴지는지, 끔찍한 재난 뉴스가 역설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따져 묻는다. 

내면으로부터의 뉴스-타자와의 진정한 소통을 위하여

끊임없이 쇄도하는 뉴스 기사와 이미지는 혹시 아무도 모르는 새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뉴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타인, 그리고 세상과 접촉하지만 그것은 진정하고도 구체적인 만남이라고는 할 수 없기에, 우리는 세계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오히려 무관심해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알랭 드 보통이 궁극적으로 묻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세계와 ‘나’, 타자와 ‘나’의 만남이 진정한 것이 되려면 이러한 간접성을 보다 생생한 인간의 이야기로 채워나갈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뉴스가 그러한 생동감 넘치는 만남을 주선하는 매개체가 될 때, 우리는 나의 불안과 근심만으로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 혹은 사회의 기쁨과 고통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방안들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가 타자와 진심으로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고 있다.


* 추천 평

‘뉴스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매일매일 쏟아져나오는 뉴스와 가까이하자니 그 물량 공세 앞에 자칫 헤매기 쉽고, 떨어져 있자니 시대에 뒤처지지 않나 불안한 것이다. 뉴스와 일상적으로 만나면서도 거리를 두고 검토할 줄 아는 지성이 요청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데, 바로 이 책의 지향점이다. 지은이는 정치 뉴스, 해외 뉴스, 경제 뉴스, 셀러브리티 뉴스, 재난 뉴스, 소비자 정보 뉴스 등 각 분야로 구분해 뉴스의 역할에 관해 친절히 조명하고 있다. 언론 종사자는 물론 민주사회를 지향하는 시민이라면 읽어야 할 지침서의 하나다.
홍세화(『말과활』 공동발행인) 



%책 정보 출처: 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