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10

책:: 함께읽기(고교친구들 독서모임). *이번 주 선정 도서 정보: '비폭력 대화' - 마셜 로젠버그 지음


*모임
-참여예정자: 김도훈, 김세진, 김홍성, 송병규. 송헌규, 한윤정
-일시: 2.15 일 오후5시반, 강남역

*책
-선정자: 송병규
-공통: 1장
-선택: 2세, 3세, 4홍, 5홍, 6병, 7병, 8윤, 9윤, 10도, 11도, 12헌, 13헌



비폭력대화 : 일상에서 쓰는 평화의 언어, 삶의 언어 개정판
마셜 B. 로젠버그 저/캐서린 한 역 | 한국NVC센터 |
원제 : Nonviolent Communication : A language of life



#책 소개

우리 삶에서 폭력을 줄이고
우리가 원하는 바를 평화롭게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입으로 내뱉는 말이 폭력적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책의 저자, 마셜 로젠버그는 새로운 소통 방식을 제안한다. 우리의 삶에서 폭력을 줄이고 우리가 원하는 바를 평화롭게 충족할 수 있는 방법, 바로 비폭력대화(NVC)다. 비폭력대화법은 서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연민으로 다른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을 것을 권유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NVC를 통해 우리는 관찰과 느낌, 삶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와 가치, 그리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요청하고 싶은 것에 대해 명확해질 수 있다. 더 이상 비난과 판단, 지배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서로의 행복에 기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친밀한 관계뿐 아니라 조직 혹은 사회적 관계까지 다방면에 걸쳐 치유와 화해의 길을 열어준다. 때로 NVC는 낯선 언어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그 연결을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있다. 즉, 비폭력대화는 이미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다.




#저자

마셜 로젠버그 Marshall B. Rosenberg

그는 1960년대에 미국 중앙정부의 후원으로 중재와 대화 기술 훈련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면서 처음으로 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 곧 NVC를 적용했고, 이를 바탕으로 1984년에 NVC센터(The Center for Nonviolent Communication), CNVC를 설립한 인물이다. 그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성장했으며, 1961년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CNVC를 지난 20년 동안 100명이 넘는 강사를 보유한 국제적 비영리 단체로 성장시켰으며, 세계 30개국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역자 : 캐서린 한

캐서린 한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68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 CNVC 위원과 인증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6년 한국NVC센터를 설립하였다. 현재 한국NVC센터와 이화여대평생교육원 등 여러 곳에서 NVC를 강의하고 있다.



#목차

머리말 | 아룬 간디
제1장 마음으로 주기 ㅡ NVC의 핵심
제2장 연민을 방해하는 대화
제3장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제4장 느낌을 알아차리고 표현하기
제5장 욕구를 의식함으로써 자신의 느낌에대해 책임지기
제6장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부탁하기
제7장 공감으로 듣기
제8장 공감의 힘
제9장 우리 자신과 연민으로 연결하기
제10장 분노를 온전히 표현하기
제11장 보호를 위해 힘을 쓰기
제12장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다른 사람을 돕기
제13장 NVC로 감사 표현하기
에필로그
느낌말 목록
보편적인 욕구목록
NVC를 적용하는 방법
NVC에 대하여
CNVC와 한국NVC센터에 대하여
지은이 마셜 B. 로젠버그 박사
옮긴이의 말
새롭게 책을 펴내며
한국NVC센터 발행 서적·교구
더 읽으면 좋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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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현재 세계 2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는 책.

2004년 출간이후로 국내에 10만 명 이상의 독자들을 만났고 매해 만 명의 새로운 독자들을 만나고 있는 책.

자신이 하는 말이 전혀 폭력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말할 때에도 본의 아니게 우리의 말하는 방식이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상대를 아프게 할 때가 있다. 수세기 동안 우리는 불행하게도 갈등, 내적 고통, 폭력을 영속화시키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 이 책의 저자인 마셜 로젠버그는 우리가 지금까지 배웠던 소통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우리 삶에서 폭력을 줄이고 우리가 원하는 바를 평화롭게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이 비폭력대화(NVC, Nonviolent Communication)이다.

비폭력대화는 우리가 날 때부터 지닌 '연민'이 우러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는다.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대화 방법이다. 비폭력대화를 통해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깊은 욕구를 듣게 되어, 자신이 가진 연민의 깊이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공통의 인간성. 이것이 우리의 힘이다. 우리의 힘을 모두의 욕구를 충족하는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비폭력대화는 ‘영성의 실천’ 일 뿐만 아니라, 삶의 활기로 가득 찬 가정과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말로 상처를 주고받고 있는 것은 바로 당신이다. 비폭력 대화로 만나는 사람들과 성숙한 관계를 만들고 내면의 힘을 키울 수 있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좀 더 쉬운 소통의 방법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하는 말이 어떻게 서로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신뢰를 구축하고, 갈등을 예방하고,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지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친밀한 관계에서 뿐 아니라 직장, 의료·사회복지분야, 경찰·교정 분야, 정부, 학교, 사회단체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어떻게 치유와 화해의 길이 열리는 지 볼 수 있다.

비폭력대화는 우리 마음 속 깊숙이 숨어 있다. 이 책은 비폭력대화를 발견하고 찾아내서 우리의 몸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출처:yes24.com, 이미지 출처: google.com, 동영상 출처: youtube.com




2015-02-09

소설: Sentences. '삼십세'das dreißigste jahr(단편, 1961) - 잉게보르크 바하만Ingeborg Bachmann


*도입부

 30세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젊다고 부르는 것을  그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그 자신은 일신상 아무런 변화를 찾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불안정해져간다.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곧 잊어버리게 될 어느 날 아침, 그는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는 문득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는  것이다. 잔인한 햇빛을 받으며, 새로운 날을 위한 무기와 용기를 몽땅 빼앗긴  채. 자신을 가다듬으려고 눈을 감으면, 살아온 모든 순간과 함께, 그는 다시금  가라앉아 허탈의 경지로 떠내려간다. 그는 가라앉고 또 가라앉는다. 고함을 쳐도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다. (고함 역시 그는 빼앗긴 것이다. 일체를 그는  빼앗긴 것이다!) 그리고는 바닥 없는 심연으로 굴러 떨어진다. 마침내 그의  감각은 사라지고 그가 자신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해체되고 소멸되어 무無로 환원해버린다.

  다시금 의식을 되찾아 전율을 하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벌떡 일어나 낮의  세계로 뛰쳐나가야만 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을 때,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불가사의한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게 된다. 기억을 해내는 능력을. 지금까지 그랬듯이 예기치 않게 또는 자진해서 이런저런 것을 기억해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고통스러운 압박을 느끼면서, 지나간 모든 세월을, 경솔하고  심각했던 시절을, 그리고 그 세월 동안 자신이 차지했던 모든 공간을  기억해내는 것이다. 그는 기억의 그물을 던진다. 자신을 향해 그물을 덮어씌워  자신을 끌어올린다. 어부인 동시에 어획물이 되어 그는 과거의 자신이  무엇이었던가를, 자신이 무엇이 되어 있었나를 보기 위해, 시간의 문턱, 장소의  문턱에다 그물을 던지는 것이다. 하기는 지금껏 그는 이날에서 저날로 건너가며  별 생각 없이 살아왔던 것이다. 날마다 조금씩 다른 일을 계획하며 아무런 악의  없이. 그는 자신을 위한 숱한 가능성을 보아왔고, 이를테면 자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위대한 남자, 등대의 한 줄기 빛. 철학적인 정신의 소유자로. 아니면 활동적인 유능한 사나이로. 그는 자신이 작업복을 입고 교량 설치나 도로 건설 현장에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야외에서 땀을 흘리며 분주히  돌아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토지를 측량하는 모습을, 양철 식기에서 걸쭉한  수프를 떠내는 모습을, 묵묵히 일꾼들과 어울려서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았다. 응당 그는 과묵한 편이었다. 또는 사회의 썩어빠진 목재 바닥에 불을 지르는 혁명가로. 그는 불같이  뜨겁고 열변을 토하며, 어떠한 모험이든 사양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선동적이며,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번민하고 좌절에 빠졌다가, 마침내  최초의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었다. 혹은 향락을 추구하는 예지의 방랑아로. - 기둥에 기댄 채 음악에서, 책에서,  고사본에서, 먼 이국에서, 오로지 향락만을 추구하는 방랑아로. 그는 다만  주어진 하나의 생을 살고, 주어진 하나의 자아를 소모시키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행복과 아름다움을 열망하고 광휘를 갈망하는, 오직 행복을 위해 창조된  하나의 자아를 말이다!

  이렇듯, 그는 몇 해 동안 가장 극단적인 사상과, 공상에 찬 계획들에  몰두했었다. 그리고 바로 자신이야말로 젊음과 건강을 누리고 있던 까닭에, 아직  얼마든지 시간이 있는 것으로 여겼었고, 닥치는 모든 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하였다. 김이 나는 한끼의 식사를 위해 학생들의 공부를 돌봐주었고, 신문을  팔았고, 한 시간에 5실링을 받으면서 눈을 치웠으며, 그러는 틈틈이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자들을 연구하였다. 이것저것 가릴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고학생으로서 어느 회사에 취직을 했다가, 어느 신문사에 입사함과 동시에  그곳을 사직했다. 신문사에서는 그에게 새로이 발명된 치아 송곳에 관해, 쌍둥이  연구해 관해, 슈테판 성당의 돔의 복구 공사에 관해 기사를 쓰게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무전 여행을 떠났다. 도중에 자동차들을 세워 탔고, 자신도 잘  모르는 친구가 또 제삼자의 주소를 적어준 것을 써먹으며, 이곳저곳에서 발길을  멈추었다가는 다시 여행을 계속했다. 이렇게 그는 유럽을 누비며 방랑을  하다가는 갑자기 굳힌 결심을 좇아 다시 되돌아왔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결정적인 직업으로 여겨지진 않았지만, 어떻든 쓸모 있는 듯한 직업을 얻기  위해 시험 준비를 해서 합격을 했다. 어떠한 기회에 부딪혀도 그는 긍정을 했던  것이다. 우정에도, 사랑에도, 무리한 요구에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항상 일종의  실험으로서, 또한 몇 번이고 거듭될 수 있는 것으로서였다. 그에겐 세계라는  것이 취소가 가능한 것으로 보였고 자기 자신까지 취소가 가능한 존재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는 지금처럼 자신에게 30세의 해의 막이 오르리라고는, 판에 박힌 문구가  자신에게도 적용되리라고는, 또한 어느 날엔가는 자신도 무엇을 진정 생각하고,  무엇을 진정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어야 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에게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한순간도  걱정해본 적이 없었다. 천 한 개의 가능성 중에서 천의 가능성은 이미 사라지고 시기를 놓쳤다고는 - 혹은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단  하나뿐이니까 나머지 천은 놓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껏 한 번도 의혹에 빠져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이제껏 무엇 하나 겁내본 적이 없었다.
  지금에야 그는 자신도 함정에 빠져 있음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이 일 년이(만 29세의 생일날에서 만 30세의 일 년간) 시작된 것은 비가 많이  내리는 6월이었다. 이전에 그는 자신이 태어난 이 6월에, 이 초여름에, 자신의  운명의 별에, 약속된 더위와 좋은 성좌의 길조에 홀딱 반해 있었다. 그는 지금 이미 자신의 별에 반해 있지 않다.

  곧 더운 7월이 온다.

불안이 그를 엄습한다. 그는 짐을 챙기고 자신의 방과 주변, 자신의 과거와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행을 한다기보다, 떠나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이  해를 맞아 그는 자유로워져야만 한다.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한다. 장소를, 사면의  벽을, 인간들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묵은 계산서를 청산하고, 후원자며  경찰이며 식당의 단골 친구들에게 퇴거를 신고해야만 한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그는 로마로 가야만 한다. 자신이 가장 자유롭게 지냈던  곳, 몇 해 전 자신의 도덕과 척도, 기쁨과 시선의 깨어남을 체험했던 로마로.





*종결부

  이 세상의 암흑의 중추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 그곳에서 불빛이 되어 산화해버린 그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던 것이다.

  5월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의 방안에는 꽃들이 날마다 신선한 꽃으로, 한층 화사한 것으로 바뀌어져 갔다. 낮이면 미늘창문이 몇 시간씩 내려져 있어서 방안에서는 향기가 그대로 간직되었다.

  만약 지금 그가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한 젊은 인간의 얼굴이리라. 또한 그는 자신이 젊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으리라. 실상 훨씬 젊었을 한 때에 그는 꽤나 늙은 것처럼 느껴졌었고 머리를 떨구고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의 사상과 육체가 너무나 그를 심란하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한창 젊었을 때 그는 일찍 죽기를 소원했었고, 30세가 되고 싶다고는 조금치도 바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삶을 원하고 있다. 그 당시 그의 머리속에는 세계를 향해 찍을 수 있는 구두점만이 사방에서 뒤흔들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세계가 등장하는 최초의 문장이 수중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엔 그는 무엇이든 궁극에까지 생각할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도, 자기가 현실 속으로는 이제 겨우 최초의 몇 발자국을 들여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로 그 현실이야말로 그로 하여금 궁극에까지 생각하게 허용하지 않고, 여전히 숱한 일들을 보류해두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또는 무엇을 믿는다는 것이야말로 도대체 수치스러운 일이 아닌가 어떤가를 그는 오랫동안 모르고 있었다. 지금 그는 무슨 일을 하든가, 표현을 할 때마다 자신을 믿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신뢰를 하게 된 것이다. 또한 자기가 증명할 수 없는 일, 자신의 피부의 털구멍이라든가, 바다의 짠 맛, 과일 같은 대기라든가, 단적으로 말해 일반적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해서까지도 그는 신뢰를 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퇴원하기 얼마 전에 그는 머리를 빗으려고 처음으로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낯이 익긴 하지만 동시에 약간 더 투명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이 불더미를 배경으로 해서 고개를 드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엉겨붙은 갈색의 머리털 한가운데 무엇인가 흰빛이 반짝이는 것을 발견하였다. 손으로 만져보고 거울을 가까이 비춰보았을 때 그것은 한 가닥의 흰 머리털이었다. 그의 심장은 목언저리까지 고동을 쳤다. 그는 멍청하니 꼼짝 않고 그 머리털을 바라보았다. 다음날 그는 다시금 거울을 비춰보고 더 많은 흰 머리가 보일세라 겁을 내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 가닥의 흰 머리털이 그냥 있을 뿐, 그것에서 늘어나 있지는 않았다.
  마침내 그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나는 진정 살아 있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더욱 오래 살고 싶다는 것이다. 하나의 고통, 초로의 밝은 증거인 이 흰 머리. 이것이 도대체 왜 나를 이토록 놀라게 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 이삼 일 지나 그것이 빠져버리고 새로운 흰 머리가 그렇듯 쉬 나오지 않는다 해도, 나는 이 시식의 맛을 잊지 않으리라. 그래서
구체화되어가는 나의 과정에 대해 다시는 공포를 느끼지 않게 되리라.

  나는 진정 살아 있지 않은가.

  그는 곧 회복을 할 것이다.

  그는 곧 30세가 된다.
서른번째의 생일이 올 것이다. 하지만 종을 울려 그날을 고지하는 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아니 그날은 새삼스레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벌써 있었던 것이다. 그가 안간힘 쓰며 간신히 버텨온 이 일 년간의 하루하루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그는 생기에 넘쳐 닥쳐올 것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일을 생각하며 저 밑 병실 문을 어서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 병약한 사람들, 빈사의 사람들 곁을 떠나서.

  내 그대에게 말하노니 일어서서 걸으라. 그대의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았으니.





%잉게보르크 바하만Ingeborg Bachmann, 오스트리아, 1926-1973

  시인, 소설가, 방송극 작가, 빈 대학에서 철학과 독문학 전공. 1950년 「하이데거 실존철학의 비판적 수용」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 취득, 두권의 시집 「유예된 시간」과 「큰곰자리에의 탄원(역서 제목: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로 항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2차 대전 후 피폐 상태에 빠져 있던 독일문단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새로운 언어와 유토피아, 그리고 페미니즘을 갈구한 「말리나」 「삼십세」 「동시에」 등의 산문을 남겼다. 47그룹상, 맹인협회방송극상, 뷔히너상, 오스트리아문학대상등 수상했다. 1973년 로마에서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015-02-06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로버트 프로스트 지음,
피천득 옮김

2015-02-02

책:: 함께읽기(고교친구들 독서모임). *이번 주 선정 도서 정보: '프랑스 아이처럼' - 파멜라 드러커맨 지음

**모임
*참여예정자: 김도훈, 김세진, 김홍성, 송병규. 송헌규, 한윤정
*일시: 2.7토, 신촌
*특이사항: 헌규 생일2.10 축하해주기


**책
*선정자: 한윤정
*공통: 프롤로그/ 1장 / 14장/ 에필로그
*선택: 2장 - 13장 중 두 개의 장씩 맡아 발표하기
(2세, 3세, 4헌, 5헌, 6병, 7병, 8홍, 9윤, 10윤, 11도, 12도, 13홍)

*책 정보





프랑스 아이처럼 : 아이, 엄마, 가족이 모두 행복한 프랑스식 육아
파멜라 드러커맨 저/이주혜 역 | 북하이브 | 원서 : Bringing Up Bebe



*책 소개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 마라!
육아후진국 미국의 엘리트 기자가 만난 프랑스의 혁명적 육아법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자율을 강조하자니 부모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한다는 죄책감이 들고, 일명 헬리콥터 부모가 되어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자니 의존성 높은 아이로 자라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자유와 허용은 아이를 버릇없이 만들까 염려스럽고, 참견과 규율은 아이에게 상처를 주거나 소심하게 만들까 걱정스럽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육아, 시름 없는 육아를 한다는 프랑스의 가정 풍경은 어떨까? 미국식 속도전 육아법도 싫고, 규율만을 강조하는 유교식 육아법으로는 모자라고, 창의와 자율만 강조하는 스칸디나비아식 육아법으론 왠지 불안한 당신을 위해, 여기 프랑스식 육아법이 있다. 극단의 규율과 너그러운 방종이 공존하는, 조금은 이기적이고 조금은 덜 짐스러운 프랑스식 육아법을 만나보자.

앙팡루아(enfant roi)가 무슨 뜻인 줄 아는가? 프랑스어로 ‘왕 아이’, 즉 가족 안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아이를 말한다. 언제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고, 떼만 쓰면 뭐든 용인되며, 가족들 모두가 아이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그래서 마치 스스로가 우주의 중심이 된 듯 느끼며 행동하는 아이를 의미한다. 프랑스에선 “댁의 아이는 앙팡루아군요?”라는 말이 최고의 모욕이다. 그렇게 키워선 아이가 장차 절대 행복해질 수 없고, 아이 스스로도 혼돈과 자제력 부족으로 고통 받게 만드는 최악의 육아방식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하루 4~5회 정해진 시간에만 분유를 먹으며, 이는 유아가 되어도 계속 이어져 어른과 같은 식단으로, 어른과 같은 식사시간에 식사를 해야 하며 간식도 구테(gouter)에만 먹도록 허용된다. 프랑스식 육아는 프랑스의 기본 철학에서 출발해 루소에 이르러 꽃을 피우고 프랑스 혁명과 시민사회를 거치면서 다양한 사상가와 전문가들에 의해 체계화된 프랑스의 양육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이의 자발성이 싹트게 도와주면서도 명확하고 합의된 틀과 기준이 존재하는 프랑스식 육아는 좋다는 것이면 무작정 따라 다니는 기준점 없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육아 현실에도 유의미한 준거와 방침을 제시해준다.



*저자

저 : 파멜라 드러커맨

Pamela Druckerman
월스트리트저널의 경제 섹션 기자로 전 세계를 누비던 파멜라는 어느 날 회사로부터 정리해고 통보를 받고 좌절에 빠진다. 그녀는 반쯤 도피성으로 결혼을 택하고, 곧이어 출산과 육아라는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영역으로 어느 날 갑자기 뛰어들게 된다. 그것도 생면부지의 프랑스 파리에서.
임신과 출산에 필요한 정보를 모으며 조바심을 내며 첫 아이를 기다리던 파멜라는, 문득 주변의 생경한 풍경에 눈을 돌리게 된다. 레스토랑에서 소란 한 번 피우는 법 없이 식탁에 얌전히 앉아 코스요리를 먹는 유아들, 부스스한 머리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아이 뒤치다꺼리를 하는 대신 트렌치코트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하이힐을 신은 엄마들, 놀이터나 쇼핑센터에서 떼를 쓰거나 내달리거나 징징대지 않는 아기들, 치킨너깃 대신 삶은 부추와 브로콜리와 파프리카를 즐겨 먹는 아이들, 생후 2~3개월부터 밤새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자는 아이들…….
처음엔 우연의 일치인 줄 알았다. 주변의 몇몇 가정에서만 벌어지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러나 수첩을 들고 본격적으로 취재를 시작하면서 파멜라는 이것이 프랑스의 뿌리 깊은 인간이해로부터 비롯된 독특한 육아 철학으로 인해 가능한 일임을 알게 된다. 저자 파멜라 드러커맨은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로 일했으며,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파이낸셜타임스〉, 〈마리클레르〉 등에 수시로 기고를 하고 있고, CNBC, BBC, 투데이쇼, 오프라닷컴 등 다수의 매체에 출연한 바 있다. 전작 《지구촌 불륜 사유서》는 8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세 아이와 남편과 함께 파리에 살고 있다.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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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 이주혜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영어로 된 문학 작품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옮기는 데 관심이 많아 아동 작가로 활동하면서, 현재 번역가 에이전시 하니브릿지 전속 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역서로 『왜요, 엄마?』, 『레이븐 블랙』, 『지금 행복하라』, 『거인나라의 콩나무』, 『고대 이집트의 비밀은 아무도 몰라!』 , 『카즈딘 교육법』, 『놀이의 힘』, 『하루 종일 투덜대면 어떡해! : 매사에 부정적인 어린이가 행복해지는 법』, 『블러드 프롬이즈』 등이 있고, 저서로는『반쪽이』, 『콩중이 팥중이』, 『세계명작 시리즈 - 백조왕자』, 『세계명작 시리즈 - 톰팃톳』, 『전래동화 시리즈』(1-5), 『양육 쇼크』, 『아빠, 딸을 이해하기 시작하다』, 『아이의 신호등』, 『프랑스 아이처럼』,『세상에서 가장 쉬운 그림영어사전』외 다수가 있다.



*목차

Prologue 도대체 왜? _ 레스토랑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는 프랑스 아이들
Chapter 1. 아이를 기다리나요? _ 결혼과 출산, 그리고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Chapter 2. 편하게 통증 없이 _ 출산은 스포츠도, 종교행위도, 숭고한 고통도 아니다
Chapter 3. 밤새 잘 자는 아기들 _ 생후 4개월이면 모든 아기는 깨지 않고 12시간을 내리 잔다
Chapter 4. 기다려! _ 조르거나 보챈다고 원하는 것을 가질 수는 없다
Chapter 5. 작고 어린 인간 _ 아이는 2등급 인간도, 부모에게 속한 소유물도 아니다
Chapter 6. 탁아소? _ 프랑스 아이는 엄마가 아니라, 온 나라가 함께 키운다
Chapter 7. 분유 먹는 아기들 _ 모유가 좋다는 건 안다, 그러나 엄마 인생이 더 소중하다
Chapter 8. 완벽한 엄마는 없다 _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엄마는 불행한 아이를 만들 뿐이다
Chapter 9. 똥 덩어리 _ 극단적 자유와 독재적 제한이 공존하는 프랑스의 습관 교육
Chapter 10. 두 번째 경험 _ 전혀 낭만적이지 못했던 두 번째 쌍둥이 출산
Chapter 11. 죽지 못해 산다? _ 프랑스 여자들은 왜 남편 욕을 하지 않을까
Chapter 12. 한 입만 먹으면 돼 _ 패스트푸드보다 채소 샐러드를 더 좋아하는 아이들
Chapter 13. 내가 대장 _ 프랑스 부모는 소리치지 않고도 권위를 확립한다
Chapter 14. 네 길을 가라 _ 4세부터 부모에게서 떨어져 여행 가는 아이들
Epilogue 프랑스에서의 내일 _ 잠재적 성공보다 현재의 행복을 만끽하는 사람들
Appendix 프랑스 육아 용어 풀이



*책 속으로

프랑스 육아법에 관심을 갖고 보니, 달라 보이는 건 식사 예절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스쳐 보냈던 풍경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프랑스 놀이터에서 수백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단 한 번도 악을 지르며 떼를 쓰는 아이를 본 적이 없다. 프랑스 친구들은 통화 중에 아이가 칭얼대거나 운다는 이유로 전화를 끊고 달려가지 않았다. 프랑스 거실은 우리 집과 달리 아기용 천막이나 미끄럼틀, 장난감으로 점거당하지 않았다. 미국 아이들은 파스타나 흰쌀이 포함된 소위 ‘어린이 메뉴’만 먹는데, 프랑스 아이들은 마치 어른처럼 생선이나 채소를 포함해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먹는다. 프랑스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을 제외하곤 간식을 입에 달고 지내지 않는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랬다. 모든 게 달랐다! - 10쪽

에릭은 아직도 제니퍼의 얘길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아내는 짐볼 위나 욕조 안에서 아기를 낳고 싶어 했어요.”
그러나 담당의는 제니퍼에게 조언했다. “산부인과는 동물원이 아니고 출산은 서커스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출산하실 겁니다. 반듯이 누워서 다리를 벌리고요. 그래야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제가 제때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 51쪽

프랑스 사람들은 ‘잠깐 멈추기’를 첫째 해법으로 삼고 생후 몇 주부터 그 방법을 적용한다. 〈마망〉의 기사에 의하면, 생후 6개월 이전 아기의 수면 중 50~60%는 흥분한 상태의 수면이다. 그 상태에서 아기는 갑자기 하품을 하거나 몸을 쭉 펴며 기지개를 켜거나 심지어 눈을 떴다 감기도 한다. 기사는 말한다. ‘이를 호출로 해석하고 곧바로 달려가 아기를 안아준다면, 아기의 수면 열차를 탈선시켜버리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과 같다.’ - 76쪽

프랑스 부모는 흔히 아이들에게 ‘사쥬(sage, 현명해라)’라고 말한다. 미국 부모들이 ‘착하게 굴어라(be good)’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처럼 프랑스에선 ‘현명해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안에는 좀 더 큰 뜻이 담겨 있다.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 착하게 행동하라고 말하면, 아이는 그 시간동안 길들여진 행동을 해야 하는 야생동물 취급을 받는 것과 같다. 착해지라는 건 그것이 아이의 본성과 정반대라는 숨은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현명해라’라는 말은, 이미 아이에게 있는 올바른 판단력을 발휘하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존중하라는 뜻이다. 아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아이를 믿는다는 뜻을 함축하기도 한다. - 92쪽

《행복한 아이(A Happy Child)》라는 책에서 프랑스 심리학자 디디에 플뢰(Didier Pleux)는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좌절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이를 놀지 못하게 하거나 안아주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아이의 취향, 리듬, 개성은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 다만 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며 모두를 위한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걸 배워야 한다.’ - 104쪽

오늘날 파리에서 만나는 부모들은 아이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결정은 부모가 한다’는 것 사이에 효과적인 균형을 찾아낸 듯 보인다. 프랑스 부모들은 언제나 아이들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점심으로 초콜릿 빵을 먹겠다고 하면 허락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부모들은 루소의 양 어깨를 딛고 선 돌토를 양육의 금과옥조로 삼는다. - 130쪽

결국 중요한 것은 양육자의 ‘민감성’, 즉 양육자가 아이가 세계를 경험해가는 과정을 얼마나 잘 맞춰주는가다. 탁아소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요구에 세심하게 신경 쓰고 아이의 언어적?비언어적 신호와 징후에 반응하며 아이의 호기심과 욕구를 자극해주는 온화하고 지원적이며 관심을 쏟아주는 양육자’를 만났을 때 아이는 탁아소에서 ‘고품질’ 양육을 받는 셈이다. 베이비시터든 조부모든 탁아소 교사든, 민감성이 높은 양육자와 함께 할 때 아이는 더 잘 살아간다. - 153쪽

겉으로 보면 프랑스 엄마들은 눈높이가 높다. 엄마이면서 동시에 섹시해야 하고 성공해야 하며 매일 저녁 집에서 요리한 음식을 내놔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 죄책감을 얹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완벽한 엄마는 바로 당신(The Perfect Mother Is You)》의 공저자이자 기자인 다니엘은 5개월 된 딸을 처음 크레쉬(탁아소)에 맡기고 나올 때의 심정을 기억한다. “아이를 놔두고 나오는 건 속상했어요. 하지만 일을 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있었어도 속상하긴 마찬가지였을 거예요.”그녀는 죄책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했다.
“한번 죄책감을 느끼고, 또 계속 살아가는 거죠.”
세상의 모든 엄마이자 여성을 위로하듯, 다니엘은 덧붙였다.
“완벽한 엄마란 존재하지 않잖아요.” - 185쪽

빈과 함께 브르타뉴의 프랑스 가정을 방문했을 때 그 집 어린 딸 레오니가 할머니에게 혀를 쑥 내밀었다. 할머니는 아이들을 앉혀놓고 그런 행동을 해도 될 때와 안 될 때를 자세히 일러주었다. “네 방에 혼자 있을 때는 해도 돼. 화장실에서 혼자 있을 때도 해도 돼. 그럴 때는 맨발로 있어도 되고 혀를 내밀어도 되고 누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켜도 되고 똥 덩어리 같은 말을 해도 돼. 너 혼자 있을 때는 그런 걸 다 해도 돼. 하지만 어린이집에서는 안 돼. 식탁에 있을 때도 안 돼. 엄마와 아빠와 있을 때도 안 돼. 길거리에서도 안 돼. 그게 인생이야. 차이를 반드시 이해해야 해.” - 209쪽

프랑스 아이들이 왜 그렇게 잘 먹는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파리시 식단위원회에 참석했다. 위원회는 파리의 크레쉬(탁아소)에서 향후 2개월 간 무엇을 제공할지 결정한다.
위원회는 ‘아이들과 음식에 관한 프랑스식 사고의 소우주’와도 같다. 그들의 첫 번째 신조는 이것이다. ‘어린이용 음식 따위는 없다!’ 영양사가 4가지 코스로 된 점심 메뉴 초안을 발표한다. 프렌치프라이, 치킨 너깃, 피자, 케첩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하루 메뉴를 뽑아 살펴보자. 잘게 썬 붉은 양배추와 프로마주 블랑 치즈 샐러드, 그 다음으로 딜 소스를 곁들인 대구 찜과 영국풍 유기농 감자 요리가 나온다. 치즈는 부드러운 쿨로미에, 후식으로는 구운 유기농사과가 나온다. 각 음식은 아이들 연령대에 따라 잘라 주거나 으깨서 준다. - 254쪽

프랑스 부모들도 아이들에게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한다. 끊임없는 융단폭격보다 단번의 국부타격을 선호한다. 그러나 고함은 정말 중요한 순간을 위해 아껴둔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내가 고함을 지르면, 아이들이 무슨 엄청난 잘못을 했나 의아해하며 쳐다볼 정도다. 나는 다른 미국 부모들처럼 권위를 훈육과 벌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반면 프랑스 부모는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훈육보다 ‘교육’이라 말한다. 말 자체가 암시하듯,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어떤 것은 용납이 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지’ 아이들에게 서서히 가르쳐주는 쪽이다. - 287쪽

자율을 강조하는 프랑스식 풍토는 프랑수아 돌토로부터 왔다. 돌토는 《아동기의 주요단계》에서 이렇게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안전한 상태에서 가능한 일찍부터 자율이 주어지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그 모습 그대로 사랑 받는다고 느낄 필요가 있다. 공간 안에서 자기 자신을 확신하고 매일매일 자신만의 탐험 속에서,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또래와의 관계 속에서 보다 자유를 허락받을 필요가 있다.’ - 303쪽

프랑스 학교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혹독해진다. 그러나 이는 프랑스 교사들의 의무이자 프랑스 부모들의 신념에 부합하는 일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무엇이 효과적이고 무엇이 효과적이지 않은지 알아보기 위해, 과학적인 방법론을 이용해 양육을 진행해간다. 그리고 이들이 내린 결론은 ‘어떤 칭찬은 이롭지만 칭찬을 너무 많이 하면 아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 314쪽



*출판사 리뷰

“좌절을 경험하지 않은 아이는 불행하다!”
육아후진국 미국의 엘리트 기자가 만난 프랑스의 혁명적 육아법
아마존·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바로 그 책!

앙팡루아(enfant roi)가 무슨 뜻인 줄 아는가? 프랑스어로 ‘왕 아이’, 즉 가족 안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아이를 말한다. 언제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고, 떼만 쓰면 뭐든 용인되며, 가족들 모두가 아이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그래서 마치 스스로가 우주의 중심이 된 듯 느끼며 행동하는 아이를 의미한다. 프랑스에선 “댁의 아이는 앙팡루아군요?”라는 말이 최고의 모욕이다. 그렇게 키워선 아이가 장차 절대 행복해질 수 없고, 아이 스스로도 혼돈과 자제력 부족으로 고통 받게 만드는 최악의 육아방식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하루 4~5회 정해진 시간에만 분유를 먹으며, 이는 유아가 되어도 계속 이어져 어른과 같은 식단으로, 어른과 같은 식사시간에 식사를 해야 하며 간식도 구테(gouter)에만 먹도록 허용된다. 설령 누군가가 선물로 사탕이나 초콜릿을 주어도 그것을 집으로 가져왔다가 구테 시간이 되어야 먹을 수 있다. 심지어 구테 시간이라 해도 아무것이나 먹을 수 없다.

미국식 육아에 흠뻑 젖어 있는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혼내거나 윽박지르는 것은 곧 ‘아이의 기를 꺾고 창의성을 죽이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어떤 집이든 들어가 보면, “우리 집엔 아이가 있어요!”라고 광고라도 하듯 온갖 장난감과 놀이시설, 동화책과 학습용 포스터들이 거실을 장악하고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선 이런 장면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이를 위해 온 가족이 희생한다는 것을 석연치 않아 하고, 아이란 무조건적인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불완전한 존재라고 여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식 육아는 프랑스의 기본 철학에서 출발해 루소에 이르러 꽃을 피우고 프랑스 혁명과 시민사회를 거치면서 다양한 사상가와 전문가들에 의해 체계화된 프랑스의 양육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이의 자발성이 싹트게 도와주면서도 명확하고 합의된 틀과 기준이 존재하는 프랑스식 육아는 좋다는 것이면 무작정 따라 다니는 기준점 없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육아 현실에도 유의미한 준거와 방침을 제시해준다.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 마라!
자율과 복종, 규율과 자유가 공존하는 ‘프랑스 아이처럼’ 키워라

오늘날 프랑스에서 엄마아빠,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프랑스는 온 나라가 함께 아이를 키운다. 우선, 아이가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부양을 위한 사회적 자원이 무상으로 주어진다. 엄마는 아이 양육과 교육을 위해 자기희생을 강요받지 않는다. 아빠는 무관심과 재정적 지원만 요구 받는 반쪽짜리 부모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이 하나를 위해 온 가족이 희생하는 일 따위는 없다.

떠올려보라.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예의 바르지만, 아이다운 장난기와 애교가 넘치는 작은 인간. 존중받고 존중할 줄 알며 때와 장소를 가려 지혜롭게 행동하는 아이. 통제력과 자제력이 있으면서도 자기주장이 분명한 아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좌절과 인내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한 아이.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며 그러기에 뭔가를 받으면 뭔가를 돌려줘야 함을 아는 아이. 한껏 자유롭지만 부모의 권위에 복종할 줄 아는 아이. 당신의 아이를 그런 아이로 키울 수 있다. 그리고 그러려면 부모의 철학이 담긴 육아법이라는 씨앗이 온전히 뿌리내려야 한다.

미국식 속도전 육아법도 싫고, 규율만을 강조하는 유교식 육아법으로는 모자라고, 창의와 자율만 강조하는 스칸디나비아식 육아법으론 왠지 불안한 당신을 위해, 여기 프랑스식 육아법이 있다. 극단의 규율과 너그러운 방종이 공존하는, 조금은 이기적이고 조금은 덜 짐스러운 프랑스식 육아법을 만나보자.
아울러, 지금 당신이 고전하는, 그리고 두려워하는 몇 가지 아이 키우기의 해법까지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 보채거나 깨지 않고 밤새 잘 자는 법
- 반찬투정 하지 않고 골고루 잘 먹는 법
-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게 있어도 차분히 기다리는 법
- 시킬 때만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법
- 징징대거나 떼쓰지 않고 상황에 대처하는 법
- 아이가 생긴 후에도 부부관계가 시들해지지 않는 법



*추천평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한데다 엄청나게 재밌다. 아이를 돌보는 방법만이 아니라 여자로서의 자아를 잃지 않는 법까지 배웠다. 이 책이 너무나 좋다. 프랑스로 이민가고 싶어질 정도로.
- 인디아 나이트(India Knight), 〈선데이타임스〉

저자는 유쾌한 유머를 갖춘 탁월한 스토리텔러이자 타문화를 이질감 없이 녹여 소개하는 뛰어난 전파자다. 또한 역사와 철학을 아울러 탄탄한 이론적 뒷받침까지 이루어져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 출판평론지 〈커커스 리뷰(Kirkus Reviews)〉

솔직하고 발칙한 유머와 위트, 거기에 유익한 정보까지. 독자는 마치 저자 자신이 된 듯, 느긋하고 자유로우며 자신감이 넘치는 프랑스 육아법의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간다. 재밌게 읽을 수 있는데다 두고두고 활용할 좋은 공부가 되는 책이다.
- 〈가디언(The?Guardian)〉

가르치며 훈계하는 그런 책이 아니다. 면밀하고 세심한 관찰이 돋보이는 회고록이자 잔잔하지만 깊이 있는 울림을 주는 대화록이다. 잘 정리된 방법론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덧 행복한 부모와 아이들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하다.
- 〈휴스턴 크로니클(Houston Chronicle)〉

잘 자는 아이, 코스요리를 즐기는 아이, 여유로운 부모. 나 역시 감탄했던 프랑스의 이색적인 양육 풍경을 저자는 누구보다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죄책감이나 조바심에 시달리는 요즘 부모들을 위해 꼭 필요한 힐링 메시지이기도 하다.

- 미레유 길리아노, 《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 저자



%출처: yes24.com



2015-01-27

소설: Sentences. '중국행 슬로보트'中国行きのスロウ・ボート(단편, 1983) - 무라카미 하루키

 5

  이미 서른을 넘은 한 남자인 지금, 다시 한번 외야로 날아가는 공을 쫓아가다 농구대에 전속력으로 부딪히고 다시 한번 글러브를 베개 삼아 포도시렁 밑에서 눈을 뜬다면 나는 이번에는 뭐라고 말할까?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여기는 나를 위한 장소도 아니야, 라고.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야마노테 선 전철 안이었다. 나는 문 앞에 서서 차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단단히 움켜쥔 채 유리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의 도시, 그 풍경은 왠지 내 마음을 지독히 어둡게 만들었다. 도시 생활자가 연중행사를 치르듯 빠져드는 낯익은 것, 탁한 커피젤리 같은 정신의 엷은 어둠이 다시금 나를 사로잡고 잇엇다. 지저분한 빌딩, 이름 없는 사람들의 무리, 끊이지 않는 소음, 꼼짝 못하는 자동차의 행렬, 잿빛 하늘, 공간을 가득 메운 광고판, 욕망과 포기와 초조와 흥분, 그곳에는 무수한 선택지가 있고, 무수한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수한 동시에 제로였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손에 쥐었지만 우리 손안에 있는 것은 제로였다. 그것이 도시였다. 나는 문득 그 중국인 여자애의 말을 떠올렸다. "애초에 여기는 내가 있을 장소가 아니야."

  나는 도쿄의 거리를 보며 중국을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수많은 중국인을 만났다. 그리고 수많은 중국 관련 서적을 읽었다. '사기史記'에서부터 '중국의 붉은 별'까지. 나는 중국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 중국은 나만을 위한 중국일 분이다. 그것은 나밖에 독해할 수 없는 중국이다. 나에게밖에 메시지를 보내지 않는 중국이다. 지구본 위에 노랗게 칠해진 중국과는 다른, 또하나의 중국이다. 그것은 하나의 가설이고, 하나의 잠정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중국이라는 말로 오려내는 나 자신이다. 나는 중국을 방랑한다. 하지만 비행기를 탈 필요는 없다. 그 방랑은 여기 도쿄의 지하철 안이나 택시 뒷좌석에서 이루어진다. 그 모험은 근처 치과 대기실이나 은행 창구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어디에도 갈 수 있고, 어디에도 갈 수 없다.
  도쿄 -그리고 어느날, 야마노테 선 전철 안에서 이 도쿄라는 도시조차 돌연 리얼리티를 잃기 시작한다. 그 풍경은 창밖에서 갑작스레 붕괴하기 시작한다. 나는 차표를 쥐고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본다. 도쿄의 거리에 나의 중국이 재처럼 쏟아져내려 이 거리를 결정적으로 침식해간다. 그것은 차차 사라져간다. 그렇다. 여기는 나의 장소도 아닌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언어는 사라지고 우리가 품었던 꿈은 언젠가 뿌옇게 지워진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그 따분한 소년 시절이 인생 어딘가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렸듯이.
 오류... 오류라는 것은 그 중국인 여대생이 말했듯이(혹은 정신분석의가 말하듯이) 결국 역설적인 욕망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류야말로 나 자신이며 당신 자신인 셈이다. 그렇가면 출구 따위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옛날 충실한 외야수로서의 자그마한 자부심을 트렁크 바닥에 챙겨넣고 항구의 돌계단에 앉아 텅 빈 수평선 위로 언젠가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르는 중국행 슬로보트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중국 거리의 빛나는 지붕을 그리워하고 그 푸른 초원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러니 상실과 붕괴 뒤에 무엇이 오든 나는 이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마치 4번 타자가 몸 쪽 변화구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열렬한 혁명가가 교수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만일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친구여, 중국은 너무도 멀다.


%출처: '중국행 슬로보트'(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