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주인공 아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가족이 단칸방 생활을 할 때 작은 부엌에 내 책상을 따로 내어 두고 내 방처럼 썼던 적이 있다. 나는 사실 괜찮았는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안방에 놓여있던 컴퓨터 책상을 변형해 부엌으로 내놓으시고는 내 자리를 마련해주셨던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 공간은 동화 속 아이가 가진 공간(다락방)보다도 못한 ‘나만의’ 공간이었다. 부엌이다 보니 식사 전후에는 늘 어머니가 곁에 계셨고, 현관문에서 단칸방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그 부엌을 거쳐 가야 했기 때문에, 사실상 언제나 가족들의 움직임에 노출이 되어있다시피 한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지금 내가 그 공간을 떠올려보면 이상하게도 나만의 공간으로, 또 그러했던 이미지들로만 머릿속에 그려진다. 나에게 있어 그 공간은 심리적으로 만큼은 ‘나만의’ 것이었던 것 같다. 주인공 아이가 겪는 자기 공간에 대한, 그리고 자신에 대한 타인(가족들)의 침투를 나는 상대적으로 덜 느꼈다는 게 그 아이와 나의 어린 시절에서의 차이인 것 같다. 나는 내 방이라고 부른 적도 없는 그 공간에서, 부엌에 있는 다른 모든 사물과 움직임을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고 오로지 나와 나의 것(책, 공책, 학용품, 책상, 의자 등)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동화 속 동생 하영이가 안 방 ‘안’에 있는 종이상자 ‘집’에서 느낄 수 있는 기분과 비슷한 것 같다. 하영이네 식구들이 머무는 곳이, 두 개의 방에서 다섯 개의 방으로 늘어났지만, 방 안의 방 형태를 띠는 것은, 물리적으로 온전한 하나의 방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하영이 것만 그렇다. 시간이 지나며 하영이가 자신의 오빠처럼 변해갈지 아니면 나의 어린 시절처럼 물리적인 주변보다는 심리적인 것에 기반 해서 자신의 공간을 느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라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동화에서처럼 어른들에게도 그것은 역시 중요하다. 자신과 관련된 물건 등을 가까이 두고 지속적으로 접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자아에 대한 인식과 그것을 만들어 가는 일에 큰 도움(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표현 수단으로써 인간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언어와 몸짓이겠지만 그것을 안정화 시켜주는 것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또 그로부터 자신을 자세히 알아가고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각자의 공간이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물리적으로, 그러나 점차적으로는 심리적으로 그것을 인지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좋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인간은, 어느 곳 어느 시간대에 있더라도, 자신自身과 자신自信을 잃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길러 갈 수 있다.
2013
홍성
iamhongsungkim.blogspot.com
*도서 정보 검색 중 우연히 발견한 다른 블로거의 '내 방이 필요해' 감상문
* <내 방이 필요해>는 송미경 작가의 단편동화집 <<복수의 여신>>(2012, 창비)에 실려있다.
작가 송미경은 인물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그려내고 복선과 반전을 절묘하게 활용해 독자들로 하여금 단편동화만의 재미를 한껏 느끼게 한다. 특히 「오빠 믿지?」에는 매력 만점의 인물 ‘준영 오빠’가 등장한다. 잘생겼고 말 잘하고 행동이 알쏭달쏭해서 일곱 살 주인공 마음을 빼앗아간 준영의 캐릭터도 인상적이거니와, 그의 엄청난 비밀이 밝혀지는 결말은 반전의 재미를 선사한다. 「내 방이 필요해」의 다섯 식구는 대사와 행동을 통해 각자의 성격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벽장을 개조한 ‘나만의 방’을 끔찍이 아끼는 주인공과 호시탐탐 그 방을 노리는 여동생, 손녀보다 손자를 은근히 더 챙기는 할머니와 그것이 못마땅한 엄마가 쉴 새 없이 주고받는 대화는 묵은 갈등조차도 오랜 세월 함께한 식구들의 호흡으로 느끼게 할 만큼 재치가 넘친다. 주제와 분위기에 따라 작품마다 적절한 문체를 구사하는 데서도 작가의 단단한 역량이 드러난다. 즉 「우연 수업」 「최고의 저녁 초대」 등 풍자와 역설을 담은 이야기에서는 지문과 대화를 빠르고 간결하게 이어가지만, 「일 분에 한 번씩 엄마를 기다린다」에서는 절망을 견디는 주인공의 감정을 침착하고 섬세하게 따라감으로써 독자에게도 그 외로움을 절절히 전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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