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12

리뷰: E.T.A. 호프만의 소설 '모래 사나이'

 
자동인형을 부탁해
 
    에테아 호프만의 소설 <모래 사나이>에는 결점 없이 아름다운, 그래서 마치 인형 같은 여인 한 명이 등장한다. 그녀의 모습에 주인공 나타니엘은 한순간에 넋을 잃고 그녀를 자신의 정념 속 가장 깊은 자리로 끌어다 둔다. 약혼녀의 존재마저도 잊게 할 만큼 나타니엘의 눈 앞 그녀는 초월적인 힘으로 그를 압도한다. 그러나 그녀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나타니엘이 칭송해 마지않는 그녀. 그녀에게는 차마 마주하기 힘든 섬뜩한 비밀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밀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회피가 오로지 나타니엘만의 몫이라는 점은 소설을 읽어가며 그의 내면을 은밀히 지켜보던 독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해온다.

     나타니엘의 눈에 비치고 있는 절정의 아름다운 그녀가, 생명 없이 단지 태엽과 나무로 만들어져 움직이고 있는 자동인형이라는 것을, 그는 마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은 이를 차츰 인지해가며 그녀의 생명력과 매력을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나타니엘은 그녀가 가진 결정적인, 부동不動의 결함마저도 자신에게 다가온 가장 고결한 아름다움으로 간주하면서 그녀를 자신만의 여인으로 삼으려 한다. 오직 그녀만이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해 줄 거라는 믿음 속에서.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은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함께 과도한 정신적 결함이자 문제로 비춰진다. 그래서인지 그 모습에 책 속의 사람들이나 책 밖의 사람들은 한 손을 들어 설레설레 저으며 조소를 보낸다. 그러다 서서히 껄끄럽고 두려운 자각을 하게 된다. 지금 자신들의 나머지 한 손에 들려있는 자신들만의 자동인형에 대해서.
 
     어느 종교의 독실한 신자는 그 기도의 대상에게, 어느 취업지망생은 그 회사의 최고경영자에게, 또 어느 독자는 깊은 감명을 전해 준 그 책의 저자에게, 자신만의 자동인형의 기운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일상에서 그것은 또한, 가장 가까이에 있음으로 해서 가장 덜 의식하게 되는 사람들, 즉 부모나 연인에게 꾸준히 불어넣고 있는 감정인 경우가 많다. (특히 뒤돌아보면 어린 시절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부모를 과대평가하고 이상화하곤 하는데, 이는 가장 일반적인 예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진실, 즉 내가 상대를 은연중 자동인형으로 삼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그들은 곧 그것을 회피하려 든다. , 우리가 맹목적으로 보내는 사랑, 그 사랑의 대상이 단지 태엽과 나무로 움직이고 있는 듯한 나를 위한 나만의 자동인형일 수도 있다는 섬뜩함에 우리는 두려워한다. 나타니엘 역시 그랬다. 그의 경우는, 더욱더 그녀 자동인형에 대한 사랑과 지지를 강화해 갔다. 아마도 소설 밖 대부분의 사람들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타니엘이나 우리가 각자의 자동인형을 쉽게 인정하기 힘들어 하는 이면에는 그것에게 사랑을 맹목적으로 보내고 있는, 바로 그러한 우리 자신을 마주하기가 힘든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랑이 걷혔을 때 드러나게 될 대상의 참모습을 마주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결합되어 있다. 특히 나타니엘과 같이 대상에 대해 집착이 과도하고 오래됐을수록 그 결합이 풀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더 클 수 있다. 그것은 자신에게 하나의 대상이면서 곧 하나의 세계로, 그것의 견고함이 무너지면 자신의 주관적 세계가 모두 무너지는 느낌과 함께 객관적 세계로부터의 단절과 소외라는 고통을 마주해야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자동인형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에게 꼭 문제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 강도가 적정하게 유지될 수 있다면 자동인형에게 바치는 사랑은 우리들 각자의 삶에서 긍정적인 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할 수도 있다.
 
Donald Winnicott
     아이들을 보자.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소꿉장난을 하거나 곰인형과 대화하며 노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의 모습을 정신적 문제 상황으로 규정 짓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성장과정으로 받아들인다. 장난감들로 이루어진 세계나 곰인형이라는 대상들에 보내는 맹목적인 신뢰와 사랑에 대해서도 인정해준다. 현대 아동심리학에 큰 영향을 미친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 에 따르면, 아이들이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이러한 모습 저변에는 대상보다도 다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깔려있다고 한다. 언제나 곁에 있어 줄 수 없는 엄마를 대신하여 자신을 위로해주고 달래주는 느낌을 스스로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며,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자율성과 독립성을 주려는 자아의 성장 움직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의 내면세계는 놀이의 대상들, 자동인형을 통해 외부 세계와 서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자아를 지키면서도 자아 아닌 세계를 받아들여감으로써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배우는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청소년기를 거치면서는 그 대상이 놀이, 음악, 의상, 영화 등과 같은 다양한 대상과 활동으로 확대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그들에게 무형의 자동인형인 셈이 된다. 그들은 거기에 자신의 모든 사랑을 일방적으로 온전히 바치곤 한다.
 
     이렇게 개개인들에게 자동인형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면서,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자아의 축소나 확장으로 이어지게 해주는 중요한 매개물이 된다. 그리고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잘 드러나듯, 우리가 삶 속에서 외부 대상으로서 자동인형을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자아를 독립시키고 스스로 성장해나가고자 하는 내부적 충동과 함께 세상 속에서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는 외부적 필요가 동시에 작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개개인에게 있어 이러한 자동인형들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지나친 강제성을 띄게 될 경우에는 성장을 돕는 것이 아니라, 위니캇의 말을 빌리자면 자아에 덧붙여진 누더기 조각이 된다. 그리고 <모래 사나이>의 나타니엘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내부적 요인이 지나치게 고정화되고 집착으로 흘러간다면 이 또한 고립과 고통을 부른다. 예를 들어, ‘롤 모델은 하나의 자동인형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정해주거나 남들이 선택했다고 해서 자신도 무작정 하나 둘 갖게 되는 롤 모델들은 자신 자아의 진정한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단지 하나의 롤 모델만을 완고히 유지하려고만 든다면, 이 역시 더 큰 세상과의 만남을 제한하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동인형을 갖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내외부 요인에 대한 능동적인 결정과 지속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삶을 위해 스스로에게, 끊임없는 신뢰와 사랑을 갈구하는 우리 자신에게, 곁에 놓인 각자의 자동인형을 잘 돌보아 줄 것을 부탁해야 할 것이다. 

2013
홍성
iamhongsungkim.blogspot.com





* '모래 사나이'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모래 사나이 [Der Sandmann] (고전해설ZIP, 2009. 5. 10., 지만지)


    독일 낭만주의 시기의 대표적 작가 에른스트 호프만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며 후기 낭만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은 사회사적, 정신분석학적 방법론 등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는 작품이다. 노벨레1)적 요소와 동화적 요소, 현실적인 것과 환상적초자연적인 것이 뒤섞여 있을 뿐 아니라 광기와 눈의 모티브, 자동인형 등 이색적인 소재가 등장하며, 이야기가 여러 시점에서 전개되는 등 현대적서사 전략이 동원되고 있어 하나의 고정된 시각으로 작품 전체를 조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호프만의 기록에 따르면 이 작품은 181511월에 완성되었고, 1816년에 출간된 그의 두 번째 노벨레 작품집 밤의 풍경들(Nachtstücke)을 열어주는 첫 번째 이야기로 실렸다. ‘밤의 풍경이란 원래 16세기 회화에서 유래된 개념으로 달빛이나 횃불, 촛불로 불완전하게 조명된 대상위에는 명암이 날카롭게 대비되는데 이를 독특한 색채로 표현함으로써 낯설고 불안한 효과를 자아내는 그림을 의미했다. 그런데 이 개념은 18세기부터는 문학에 전용되어 유령이나 강도 등 범죄자들이 등장하는 무서운 이야기들, 나아가 기괴하고 무서운 사건이나 현상들의 배후에 있으며 인간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불가해한 어두운 힘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뜻하게 되었다. 밤의 풍경들에는 이런 성격의 작품들이 모두 여덟 편 실려 있다.
     ≪모래 사나이에서는 광기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대학생 나타나엘이 어린 시절의 끔찍한 체험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들을 겪으면서 점차 광기에 사로잡혀 파멸해 가는 것이 전체 줄거리다. 꿈과 환상, 광기나 최면술과 같은 초자연적 현상, 무의식적이고 비합리적인 경험들은 독일에서 이성과 합리성을 내세웠던 계몽주의 시기에는 금기시되고 배척되었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계몽주의적 합리성의 세계가 가져온 답답한 현실에서 심한 소외를 느끼게 되자 예술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내적인 자유를 추구했던 낭만주의자들이 즐겨 사용했던 문학적 소재가 되었다. 즉 낭만주의 문학에서는 환상적인 세계가 일상의 세계와 통합되며, 인간의 무의식적이고 비합리적인 경험들이 중요한 소재가 된다. 그리고 초자연적 요소가 풍부한 낭만주의 초기의 환상적 이야기들은 차츰 세계의 마성적인 힘, 인간 내면에서 파멸을 가져오는 어둡고 기이한 정신적인 과정, 사악한 충동, 광기, 불안, 경악을 소재로 하는 공포 낭만주의로 나아간다. 아울러 낭만주의 시대에는 의학과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광기와 같은 인간 정신의 밤의 측면들에 주목하는 집중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광기는 인간의 오성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 영역이었고 정상과 광기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긋는 것은 불가능한 현상으로 여겨졌으며, 특히 광기는 1800년대에 문학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주제가 되었다. 모래 사나이는 바로 광기에 대한 당대의 이러한 담론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광기나 주인공의 정신적 외상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광기에 사로잡힌 주인공의 시점에서 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 'E.T.A. 호프만'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E.T.A 호프만 (해외저자사전, 2014. 5., 교보문고)
E.T.A. Hoffmann
    
 E.T.A 호프만(E.T.A. Hoffmann, 1776~1822)은 환상적인 작품 세계로 유명한 독일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 작가로 1776년에 옛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법학을 전공했고, 프로이센 법률관을 지냈다. 그 뒤 음악에 열중하여 밤베르크에서 악단 지휘자로 일하며 음악가로서의 평판도 쌓아 나갔다. 1806년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숨을 거두기 전까지 8년 동안, 호프만은 예술가로서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낮에는 법관으로 일하고 밤에는 글 쓰는 일에 몰두하는 이중생활을 영위하여 도깨비 호프만’, ‘밤의 호프만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고, 당대 낭만주의 작가들과 함께 제라피온 형제들이란 모임을 만들어 예술에 대해 논하곤 했다.
     호프만은 현실과 환상이 어우러진 신비로운 분위기의 작품을 열정적으로 펴냈으나, 건강을 심하게 해쳐서 182262546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작품 중 가장 유명한 호두까기 인형1816년에 발표되었고, 1892년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극으로 만들어져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 첫 공연을 올렸다.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및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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