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14

천명관·손아람: "요즘 신인들은 어떻게 써야 등단을 하고 문학상을 받는지 영악하게 알고 있다."


: 나는 작가들의 상상력과 취향이 공장에서 생산된 것처럼 다 비슷하다는 걸 믿을 수 없다. 그리고 한 주머니에 다 담아도 삐져나오는 송곳 하나 없다는 게 기이할 정도다. 결국 선생님들의 시선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시스템이 반백년 넘게 문단을 지배하고 있다. 바깥에서 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권위적이고 전근대적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봐도 나쁜 짓이다.

 
    <고래> <고령화 가족>을 쓴 소설가 천명관씨(51)<소수의견> <디마이너스>의 손아람씨(35)가 이른바 문단 권력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 출판사와 언론사, 그리고 대학이 카르텔을 형성해 시스템을 만들고 작가들을 지배하고 있다. 작가는 더 이상 문단의 주인이 아니다. 선생님들이 주인.  권력은 언제나 그 권력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왔다 하지만 나는 모든 심사 자리에 앉아 있는 선생님들의 명단을 확인할 때마다 그 실체를 경험한다.

    이 인터뷰는 신경숙씨 표절 논란 사태가 일어나기 두 달 전에 악스트편집위원인 소설가 정용준씨가 진행했다. 천씨는 최근 표절 논란에서 이어진 논의에 훨씬 앞서 한국 문학과 문단 권력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 작가들은 선생님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문단생활을 한다는 건 내내, 선생님들의 평가와 심사를 받는다는 의미다. 문제는 심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심사를 받아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 작가들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

    천씨는 같은 선생님들이 획일적인 기준으로 문학성을 평가하는 문학상 제도도 비판했다.

: 매 시즌 문학상을 놓고 겨루는 이 리그에선 장편보단 단편이, 스토리보단 문장이, 서사보단 묘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대중의 취향과는 괴리가 있다. 문학상 상금으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일이라 (문학이) 처신이 중요한 예술이라면 그리고 예술가의 최종 목표가 대학의 교수 자리라면 그것이 세상에 나가 뭘 할 수 있을까.

  
    이날 손아람씨도 경향신문에 보낸 e메일에서
 
: 문학동네를 위시한 대형 출판사들이 공모문학상문예지라는 두 무기를 휘둘러 작가들을 길들여왔다. 책을 내자며 만난 문학동네 마케팅 팀장으로부터 계약 제안이 아니라 공모전에 원고를 내보라는 제안을 받았던 일, 창비에서 청탁을 받고 문단 내 평론가 계파 갈등을 다룬 소설을 냈더니 편집위원들이 픽션을 두고 사실 왜곡이라며 반려했던 경험을 예로 들었다.
 
    손씨는 최근 1~2년간 창비와 문학동네 계간지가 다룬 작가·작품과 해당 출판사 출간 작품 등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분석해 꼬집었다 

: 이렇게 설정된 문학적 논의영역바깥에 위치한 작가·작품의 비평은 평단에서 소외돼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잡음이 되기 쉽고 심지어 지면 자체를 얻기도 어렵다. 문학상과 문예지의 막강한 권위를 앞세워, 대형 문학출판사들이 사실상 문학을 사유화하고 있다. 

    그는 이를 영화사가 영화잡지를 인수해 평론가들에게 돈을 주고 자사 영화 위주의 평론을 쓰게 하는 것’ ‘대기업이 소유한 언론사에 돈을 주고 자사 제품에 대한 기사만 싣게 하는 것에 빗댔다.
  
손: 문예지에서 평론가에게 특정 작가, 작품에 대한 비평을 청탁하는 행위를 근절하고 이러한 행위가 비윤리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또 출판사 공모문학상을 받아도 다른 소형 출판사에서 책을 낼 수 있도록 자동계약 조건을 없애고, 출판사가 자사의 책을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할 수 없게 하는 규범이 도입돼야 한다.
 
 
*글의 길이와 가독성을 위해 아래 출처의 원문기사에서 글씨체, 구두점 및 배열 등을 일부 편집하였음을 밝혀둡니다.
*출처: 경향신문, 2015.07.0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7022319455&code=9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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