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집에 얹혀 살게 될 사촌을 기다리며
침대 같이 쓰는 연습을 하고 있는 '세라'
책소개
'나의 사촌 세라' (2012) - 김민령 지음/ 홍기한 그림
새 아파트로 이사한 세은이는 드디어 자기 방이 생겼다. 그런데 갑자기 얼굴도 모르는 동갑내기 사촌과 함께 방을
써야 한단다. 엄마도 아빠도 없고, 이제 할머니도 없다는 아이. 세은이는 은근히 사촌이 기다려지지만, 엄마 아빠는 그 문제로 계속 언성을
높인다. 결국 엄마의 뜻대로 사촌은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 세은이는 어디에선가 캄캄한 기분이 되어 있을 사촌 세라의 얼굴을 그리며 그 아이가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바위나리와 아기별'(1923) - 마해송 지음
맑은 바다일수록 햇빛을 받을수록 빛나는 이유는.. 바다 안에 한 때는 빛을 잃었던 아기별 하나가 다시 빛을 내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 아기별과
바위나리가 하늘과 바다를 오가며 키워가는 사랑과 우정을 예쁘게 그렸다.
우리나나
최초의 창작동화로 알려져있다.
동화감상문
<바위나리와 아기별>을 읽고
‘바위나리와 아기별’의 어린이 교육적 가치
“엄마, 엄마, 바다가 왜 밝게?”
“글쎄.., 바다가 왜 밝을까?”
“거기에 바다에 아기별이 지금 빛나구 있어서 그래!. 옛날에 옛날에 말야.. 바위나리가 빠진 덴데, 아기별도 거기 바다로...”
아이들은 주변의 사물에 호기심을 갖는다.
아이들은 자라나며 자신의 주변에 왕성한 호기심을 보인다. 모든 일들이 이유 없이 그냥 일어난다거나, 모든 물건들이 이유 없이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거란 말은, 아이들에게는 뭘 모르고 하는 소리로 들린다. 아이들은 눈앞에 보이는 것들, 귀에 들리는 것들에 민감하다. 한 집, 한 동네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이 보고 듣는 것은 하루하루가 천차만별이다. 어제 본 것도 오늘은 오늘의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자동차’니 ‘강아지’니 하며 추상화하여 전체를 보는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하나로 고정시키지 않고 사물의 상태와 변화를 주시하며 파악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어른들이 “저기 봐 바. 신호등 앞에 버스가 멈춰있지? 버스 참 크다“ 할 때도, 아이들은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물끄러미 쳐다보고, 초록버스인지 파랑버스인지, 얼마나 기다란지, 쿵쿵 소리를 내는지, 휙휙 소리를 내는지, 그러다 바퀴가 둥글둥글 굴러가는 것을 보고 있다가, 마지막에 버스가 방귀 뀌며 가는 모습까지 뚫어져라 본다. 그리고 저 놈도 살아있는 건가 싶어 한다.(어른들에게는 이 모든 과정을 비밀로 하곤 한다). 즉, 아이들에게 ‘버스’는 어른들의 버스와 다른 것이다.
이러한 아이들에게, ‘바다’를 이야기 해준다면... 끊임없이 물어올 것이다. “바다는 어떤 색깔이야? 차가워, 아니면 따뜻해? 많이 커? 거긴 누가 살아? 물고기들은 어떻게 숨을 셔? 그 물은 누가 모아놨어?..” 아이들에게 ‘바다’는 역시 어른들의 바다와 다른 것이다.
아이들은 사물을 ‘이야기’로 마음에 담아둔다.
이 동화는 이 점에서 의미 있는 접근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바위나리와 아기별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이 조만간에 혹은 유년에 한 번쯤은 접하게 될 ‘바다’에 대해 들려주고 있다. (아마도, 아이들은 바위나리나 아기별 보다는 바다를 직접 접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그 거대한 바다를 마주하고 호기심을 품을 때, 어른들은 무엇을 말해주어야 할까? 바다의 이름과 염분의 농도, 서식하는 물고기의 종류나 인근의 섬들 정도에 대해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아이들은 더욱 의문을 품고 바다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바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바다와 인사를 나누어보고 싶다. 손을 담가 악수를 해보고 싶고, 넘실거리는 밀물을 발로 차고 도망치며 장난을 부려보고 싶고, 귀를 기울여 바다가 해주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엄마, 아빠 그리고 버스 모두를 여러 날 지켜보다 보니 그 대상들이 다들 하나 이상의 이야기를 갖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어른들에게 ‘아빠’, ‘엄마’, ‘버스’는 정적인 설명의 대상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동적인 이야기로 기억된다. 그래서 이미 설명을 해준 사물에 대해서도, 새로운 변화를 발견하는 즉시 ‘왜?’라는 호기심으로 물어보곤 하는 것이며, 새로 들은 내용을 지금까지 알고 있던 그것의 이야기에 덧붙여 나가곤 한다. 한 가지 사물에 대해 물어보면, 아이는 추상화된 사전적 설명을 하지 않고, 지금까지 그것에 대해 스스로 모아온 구체적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줄줄 풀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들이 ‘바다’를 보게 되거나 떠올릴 때면, 스스로 풀어 말 수 있는 한가지의 이야기를 이 동화가 전해준다. 아이들에게는 어떤 내용이 되었든 사물에 대해 최소한 한가지씩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어줍잖은 추상적인 사전적 설명만으로는 채워줄 수 없다. 그리고 그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끊임없이 물어올 것이다. 아이들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언어가 아니라 감각으로, 정의가 아니라 이야기로 사물과 소통하기 때문이다.
이 동화를 통해, 아이들은 바위나리와 아기별의 우정을 어렴풋이 간직하며 ‘바다’를 따뜻한 대상으로 마음에서 알아갈 것이다.
<나의 사촌 세라>를 읽고
아이들은 기다린다, 친구로서, 당신을
우리 집에 누가 얹혀와 살게 됐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무래도 엄마, 아빠들은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설 것이다. 특히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담당하는 쪽에서는 그만큼 고민이 더 클 것이다. 밥상 위에 올라가는 밥과 찬그릇이 하나씩 더 늘어나야 되고, 빨래도 한 움큼 더 돌리고 또 널고 해야 되고, 등등 알게 모르게 손가야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본 가족들을 관리하는 것만도 힘이 겨운 것이 사실일 텐데, 본의 아니게 식구가 하나 더 늘어나야 한다면 어느 누가 즐겁게만 받아들일 수 있겠나 싶다. 그런데다가 서로 살아온 환경이 자못 다른 사람들이 한 집에서 지낸다면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 수 있다. 그래서인지 노부모를 선뜻 모시려는 자식 많이 없고, 중병에 걸린 부모를 집에서 지속 모시려는 자식 많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걸 두고 어떻게 부양자들을 탓만 할 수 있겠냔 말이다. 자신들 나름대로 고민 고민하여 적어도 차선의 선택을 하려고 나름 노력할 텐데. 그래서 모두가 잘 지내기를 바랄 텐데 말이다. 그러나 동화 「나의 사촌 세라」에는 그런 상황에 처한, 엄마, 아빠의 입장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아이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데로 쓰여 진 이야기이므로 오히려 그것이 당연한 것이기는 하다.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집안의 아이 세은이가 겪는 심리와 갈등은 세세히 잘 그려지고 있다. 세은이 말을 듣고 있다 보면, 이름도 모르는 그 동갑내기 사촌을 어느새 나도 보고 싶어진다. 세은이는 집안에 짐 하나 더 늘어나는 걸로 사촌 아이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 세은은 외동딸인 자신에게 살 부대끼며 같이 지내게 될 형제 하나쯤 생기는 걸로 기대하고 있다. 즐거움과 설렘으로 말이다. 혹 자신에게 동생이 있다 해서. 동생이 가족에게 줄 부담을 고민하지는 않았을 듯이, 그런 문제는 세은의 관심과는 한참 떨어진 일이다. 단지 같이 지낼 아이가 누구냐 하는 것, 그 아이랑 지내면 어떨까 하는 것, 이런 기다림과 기대감이 세은이 마음의 전부다. 친형제가 아닐 바에야 나랑 가깝고 가까운 사촌만한 형제가 또 어디 있겠는가 싶기도 하고. 그리고 아직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기에 더 호기심을 갖고 있다. 그와 함께 사촌 아이의 집안 사정을 듣고 나서는 그 아이가 얼마나 마음과 몸 고생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보며, 그 아이를 위한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준비 해주고 싶어 한다. 아직 집에 오지도 않은 아이를 위해, 누워 잘 자리를 자신의 침대 반쪽에 내어주는 연습을 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주고 싶어 한다. 학교에 가서도 친구들과 그 아이가 집에 오게 된 이야기를 같이 하며, 함께 살 그 날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동화는 이렇게 세은의 일상을 통해 다른 사람을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을 잘 그려주고 있다. 동화의 마지막 끝내 같이 살게 되지 못한 사촌아이의 행복을 빌어주는 세은이의 마음이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힘이 여기에 있다.
동화 「나의 사촌 세라」는, 다른 인간 및 존재에 대한 아이들의 호기심과 설렘의 심리를 잘 그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들의 보편적 정서를 지지해주고 더 세밀히 그 마음을 가져볼 수 있게끔 도와준다. 이것은 동화를 읽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언급 하였 듯 동화 속 세은 부모의 입장과 그들이 내리는 결정에 있어 그 심리가 잘 드러나지 않는 점은 이야기 구조에서는 자연스러우나, 어른들의 이해타산적 겉모습이 조금은 부정적으로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에 대한 공감이 부족해지거나, 자신이 나중에 커서 이처럼 행동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동화가 아이들과 눈높이를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은 무엇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다가온다.
*2013.1학기 '어린이교육과문학' 수업에서 작성한 동화감상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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