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08

films: '비포 선라이즈' -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





1.
"있잖아···
허접 같은 기억들에도 불구하고···
내게 어린 시절은···
마법의 시간이었어, 정말이야
엄마가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얘기해준 게 기억나
증조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가족이 모두 플로리다에 갔을 때였거든
내가 3살인가 3살 반인가 그랬을 거야
어쨌든 그때 난 뒤뜰에서 놀고 있었어
누나가 정원에 있는 호스로 그걸 막 가르쳐 줬거든
왜 그거 있잖아
햇빛에 물을 뿌리면 무지개 생기는 거 말야, 알지?
그걸 하고 있었는데···
그때 물안개 너머로 할머니가 보이는 거야
저기 서 계시더라고 나한테 미소를 지으면서 말야
난 호스를 들고 한참을 서있었지
할머니를 보면서 말야
그러다 마침내 호스를 놔버렸어, 알지?
그러자 호스는 땅에 떨어졌고 할머니는 사라졌지
난 안으로 달려들어가 부모님께 얘길 했어
부모님은 날 앉히더니 한참 동안 연설을 늘어놓더군
죽은 사람은 만날 수 없다고, 내가 상상한 거라고 말야
하지만 난 내가 뭘 봤는지 알고 있었어 그걸 보게 돼 기쁘기만 했지"

2.
"- 비엔나에 다 왔나 봐 - 그래
- 여기서 내리지 않아? - 맞아, 이제야 도착했네
널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걸 얘기하는 동안 즐거웠거든
나도 그래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
정신나간 생각이라는 건 아는데 너한테 물어보지 않으면···
- 이 생각이 평생 날 쫓아다닐 거야 - 뭔데?
너랑 계속 얘기하고 싶어 네 상황이 어떤진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우린 통하는 게 있는 것 같아, 맞지?
그래
좋아, 그러니까 이렇게 하자 바로 이렇게 하는 거야
나랑 같이 비엔나에서 내려 마을을 둘러보자
- 뭐? - 가자, 재미있을 거야
- 어서 - 여기서 뭘 하게?
몰라, 내가 아는 거라곤 난 내일 아침 9시 30분발···
호주 항공을 타야 되고 지금 수중에 호텔비는 없으니···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닐 건데 네가 있으면 더 재미있을 거라는 거야
이 녀석 알고 보니 사이코네 싶으면 다음 기차 타고 가면 되잖아"





3.
"난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며 아름다운 순간을 공유하곤 해
여행을 한다거나 밤을 샌다거나 일출을 본다거나 하면서 말야
그런 순간들은 정말 특별하지
그런데 그때마다 불만인 게 있었어
옆에 딴 사람이 있었으면 싶더라고
난 내 감정을 아는데···
중요한 게 뭔지 정확히 아는데 그 사람들은 그걸 이해를 못했거든
하지만 지금 너랑 있는 건 행복해
넌 오늘과 같은 밤이···
지금 이 순간 내게 왜 중요한지 모르겠지만 내겐 중요해"

4.
"- 다 됐습니다 - 좋아요
읽어주겠어요?
그러죠
'백일몽과 같은 망상
'리무진 같은 속눈썹
'오, 그대, 예쁜 얼굴로
'내 포도주잔에 눈물을 흘려주오
'저 큰 눈을 보라
'그대는 내게 어떤 의미인지 보라
'달콤한 케이크와 밀크셰이크
'나는 망상의 천사
'나는 환상의 퍼레이드
'내 생각을 그대가 알아주길
'더 이상의 추측은 사라지길
'나의 과거를 그대는 모르네
'우리 미래를 우리는 모르네
'강물의 나뭇가지처럼 인생에 정체되어
'조류에 휘말려 하류로 흘러가네
'난 그대를, 그대는 나를 운반하리
'그것이 마땅하니
'그대는 날 모르는가?
'지금쯤 날 알지 못하는가?'"

5.
"마치 꿈 속의 세계에 들어와있는 기분이 들어
그래, 이상해
우리가 우리 시간의 주인인 것 같아 우리의 우주 같다고
난 네 꿈 속에, 넌 내 꿈 속에 들어와있는 기분이야
진짜 멋진 건 우리가 함께 보낸 이 저녁이···
꼭 존재해야 되는 건 아니라는 거지
맞아, 그래서 초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지나 봐
하지만 아침이 오면 우린 모두 호박으로 변하겠지?
알아
그렇다 해도 지금 넌 유리 구두를 들고 맞나 안 맞나···
확인해 봐야 돼"


6.
"친구 부인이 애를 낳았는데···
집에서 낳았대, 그래서 친구가 출산을 도와야 했지
그런데 그 친구 말이 출산이란 그 심오한 순간에···
자기 아이가 생애 처음으로 인생이란 걸 경험하며···
첫 호흡을 내쉬는 걸 보고 있는데···
언젠가 죽을 인간이 지금 태어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들더래
그 생각이 머릴 떠나질 않더라는 거야
내 생각엔 그게 사실인 것 같아 모든 건 끝이 있잖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시간과 어떤 특정한 순간이···
중요하단 생각 안 들어?
맞아, 우리한테 오늘 밤이 그렇듯이 말야
내일이 지나고 나면 우린 아마 다시는 못 만나게 되겠지?
다신 못 만날 거라 생각해?
넌 어때?"

7.
"너랑 내가 항상 함께한다 치자
그럼 넌 판에 박힌 내 행동을 싫어하게 될 거야
가령 우리 집에 친구들이 놀러올 때마다···
난 불안해 술에 취할 테고···
지적이란 말로 포장된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얘기를···
계속 늘어놓을 테니 말야
난 그런 내 꼴을 항상 보거든
그래서 내가 싫증나
하지만 너랑 있으면···
난 내가 아닌 딴 사람처럼 느껴져"

8.
"네가 아까 커플이 몇 년 동안 같이 살게 되면···
상대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고···
또 상대의 습관에 싫증을 느끼게 돼 서로를 싫어하게 된다고 했잖아
난 정반대일 것 같아
난 상대에 대해 완전히 알게 될 때 정말 사랑에 빠질 것 같거든
가르마를 어떻게 타는지 이런 날은 어떤 셔츠를 입는지···
이런 상황에선 정확히 어떤 얘기를 할지 알게 되면···
난 그때야 비로소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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