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cutSEOUL
08. 4.19묘지 청춘들이 아름다운 이유
4.19묘지 가는 길
이 곳에서, 그 곳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아이 업은 엄마가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을만큼, 우리들 가까운 곳에
평화로운 길 자락 위에 있었다.
잠들어 있는 그들이 마음껏 뛰어다니고 싶어했을
그런 길 위에.
사월 학생 혁명 기념탑
'1960년 4월 19일 이 나라 젊은이들의 혈관속에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능히 던질 수 있는 피의 전통 용솟음 치고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부정과 불의에 항쟁한 수만 명 학생 대열은 의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로 세웠고 민주 재단에 피를 뿌린 185 위의 젊은 혼들은 거룩한 수호신이 되었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되살아 피어나리라.'
그들, 4.19 묘지의 청춘들과의 첫 대면은
위와 같았다.
입구에서 상징문을 지나 참배로를 걸어가면 위처럼 '사월 학생 혁명 기념탑'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해주는 문구를 접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었을까?
무언가 엄청나게 특별한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을 휘감는 거창한 문구에 나는 주눅들지 않을 수 없었고,
그리 큰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과의 거리감을 잠시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4.19 묘역
기념탑과 문구 뒤로 난 길을 걸어 가니, 그들이 있었다.
그곳은 소박했다.
각자의 한 평 남짓 땅에
그들의 마지막 작은 뒷척임과 나즈막한 숨결이 간직되고 있었다.
잠들어 있는 그들은,
결코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니었다.
故 고순자 학생 묘비
'1937년 5월 8일 생.
서울출생(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4년 재학.
1960년 4월 19일 세종로 시위중 총상 사망'
그렇지만,
자신의 삶과 꿈을 버리면서까지
보이지 않는 더 큰 무언가를 위해 어떻게 나아갈 수 있었을까.
어떻게 저항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과연 자신을 버린 것이었을까?
자신 밖의 거대한 무언가에만 저항하고 있던 것이었을까?
우리는 그렇게 배웠지만,
나는 이에 저항한다.
그들은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 길로 나아갔다.
그들이 무엇보다 저항한 것은
두려워하며, 불의에 눈감으려 하는
자기 자신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 요즘에도
촛불시위와 여러 집회가
이 날의 저항 정신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개개인의 일상의 삶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저항의 힘은 많이 약해져 있는 것 같다.
사회와 역사를 위하면서도
스스로를 뛰어 넘고자 했던
이곳 청춘들의 저항이
아름다워 보인다.
묘지
자신을 영원히 잠재울 수 있는,
그 두려움 속으로.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 또한 없었다면,
그들은 그 험난한 길로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묘역에서 발길을 다시 뒤로 조금만 돌리면
이 층으로 된 4.19 혁명기념관을 둘러볼 수 있다.
그 앞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초중고 학생들이 적은 감사의 편지가 가득 걸려있었다.
나는 이 곳 4.19묘지를 한 바퀴 둘러보면서도
부끄럽게..
그들에게 무엇보다 먼저 깊이 감사해야 함을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오늘 누리는 청춘의 자유에 대해
그들에게 감사드린다.
방명록
나는 살아오며 알게 됐다.
누군가의 용기는, 다른 사람에게 설레임과 희망을 준다는 것을.
이 곳에 잠들어 있는 청춘들이 보여 준
아름다운 저항 정신과 그 용기는
나를 설레게하고 희망을 갖게 해주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는
삶을 살아보자고 생각하며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그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내가 있어야 할 '이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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