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 세 번 반성하는가
*언젠가 나의 무지를 알게 되는 때가 온다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법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먼저 나를 살피는 법
*차마 드러내지 못한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법
아직 이를 때 마음은 더 맑다
한 걸음 물러서야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언젠가 나의 무지를 알게 되는 때가 온다
- 소크라테스는 실망스러워하며 고심한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만약 내가 가장 지혜롭다는 신탁이 정확하다면 단지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다. 신 앞에서 나와 다른 현인들은 모두 무지한데, 나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반면 다른 사람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크레타세는 신탁의 진정한 내용이 '인간들아, 자신의 지혜가 진정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바로 너희들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이니라.'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 자신의 무지를 대담하게 인정하는 일은 때로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한 가지 장점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멸시합니다. ... 잘생겼다는 이유로 ... 자신의 배경을 내세우며 ... 자신의 잠재력이 크다고 생각하여 ... 잔재주를 발휘하면서 ... 조그만 성취를 이룬 것으로 고집불통이 되어 ...
- 인생의 길 위에서 온종일 자아의 특별함에 도취되어 있다면 자연히 진정한 자아 반성은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 이는 또 우리가 좌절이나 실패를 겪었을 때 격분하여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한 말은 분명 인간의 본성, 즉 보통 사람들의 자아 중심적 태도와 잘난 척하는 본성을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의식적으로 자신을 반성하고 자제하지 못한다면 전적으로 이런 본성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법
- 토마스 쿤(Thomas Kuhn, 1922-1996)은 <과학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962>에서 과학 연구의 패러다임 문제를 제기 했습니다. 쿤의 패러다임 개념은 동일 영역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이 몇 대에 걸쳐 점진적으로 축적하여 형성한 일련의 신념, 방법과 가정이 몇몇 사람들의 심사숙고를 거쳐 한 시기의 모든 과학자들이 과학 연구에 사용하는 기본 구조, 즉 패러다임이 되는 것입니다. ... 그래서 기존의 패러다임을 돌파하는 사람이 없으면 진정한 과학 혁명이 일어나기는 어렵고, 기껏해야 구체 영역, 구체 문제에서만 돌파가 가능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 만약 우리들이 패러다임이라는 표현을 좀 더 넓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자성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인생 역정을 통해 대부분 자신만의 사유 패러다임을 형성하기 마련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처세나 처신의 기본 방식, 사회 현상을 대하는 기본 입장, 인생의 기본 신념 등이 있겠죠. 이렇게 사유 패러다임은 우리들 각자의 세계관과 인생관의 기초를 형성하는 사유 틀의 총합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유 패러다임은 본능적으로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우리의 행위를 속박하고 제한하기도 합니다.
- 쿤이 지적한 것처럼, 패러다임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 이유는 ... 그 패러다임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장 유효한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패러다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지한 검토를 거쳐 형성되었다기보다는 개인의 선호, 직관 및 가정환경 등 각종 요소가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기본 신념이 되면 우리는 그것이 유효하다고 믿거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나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유효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혹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패러다임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여전히 숙명론의 각도에서 자신의 패러다임을 변호하곤 합니다. "나는 원래 그래. 아마 이게 나의 운명인가 봐."
- 한편 본인의 사유 패러다임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 자신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흔히 구체적인 문제에 부딪혔을 때에야 비로소 사유 패러다임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 한 사람의 사유 패러다임에는 자기가 알고 있거나 알지 못하는 많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그럼, 예를 들어 봅시다. 나(저자 팡차오후이)는 일찍이 승부욕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채근담>의 아래 구절이 나에게 커다란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선행을 하는 것은 자신을 높이고 남보다 뛰어나려고 하는 것이고
은혜를 베푸는 것은 이름을 얻고 친구를 사귀고자 하는 것이며,
공부를 하는 것은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자 하는 것이고
절개를 세우는 것은 남다른 점을 드러내어 보여주고자 함이다.
처음 이 구절을 보고 나는 '승부욕이 강하고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심리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승부욕이 나의 독특한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감정이라고 한다면 이런 심리가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로 내가 느끼는 감정이 결코 독특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항상 남을 이기려고 하는' 사유 패러다임에 무의식중에 지배되어, 지금까지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내가, 과거의 사유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여러 해 동안 나는 승부욕 때문에 일에 대한 지나친 의욕을 표출했고, 그 결과 삶을 즐기지 못했습니다. ... 동시에 나는 과거에는 내가 안중에 두지도 않았거나 나보다 못하다고 여겼던 동료나 친구들이 사실은 삶을 이해하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비록 과거의 사유 패러다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적어도 자신의 문제를 직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승부욕 ... 분발의 동력 ... 일에서 성공 ...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승부욕이 없다면, 어찌 열정이 있는 인생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학생들로부터 이런 유형의 문제 제기를 항상 들어 왔습니다. 이는 매우 단편적인 관점일 수 있습니다. <채근담>이 우리들에게 말하려는 것은 분발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법으로 분발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기려는 방식만으로 분발한다면 인생의 경지와 행복이 일정한 한도 내에서만 돌고 도는 것으로 고정되고 만다는 것이죠.
- 좋지 않은 사유 패러다임이나 틀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영원히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고, 나아가 삶에 커다란 근심을 초래할 문제를 안고 있어도 죽을 때까지 자신의 문제를 깨닫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매번 <채근담>,<소창유기>,<위로야화>등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항상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혜의 빛에 몸서리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의 패러다임의 한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곤 합니다.
*차마 드러내지 못한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법
-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 젊어서 의식과 잠재의식을 구분하는 학설을 발표했습니다. ... 평상시 우리들이 이성직이지 않다고 여기는 욕망이나 사회 규범에 반하는 충동은 항상 그 싹을 드러낼 때마다 곧바로 억압되어 점차 우리의 의식 속에서 소멸하고 잠식된다는 이론입니다.
- 그는 잠재의식에 남아 있는 것들은 쉽게 관찰하기는 어렵지만 사람들의 성격에는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가장 강력한 욕구를 반영하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람들의 행위 방식을 강하게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개인의 잠재의식 안에 있는 욕망을 풀어놓으면 놓을수록 마음 깊은 곳의 억압은 점차 감소하게 되고 성격이 더욱 건강해진다고 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한 개인의 잠재의식에 자리 잡은 욕망이 한 차례 좌절과 억압을 받게 되면 그의 성격은 쉽게 왜곡된다는 것입니다. ... 잠재의식에 자리 잡은 욕망은 자주 ... 억압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성격에는 어느 정도 건강하지 않은 요소가 있게 마련입니다.
- 그가 정신병을 치료한 방법 중 하나는... 환자의 마음을 억압하는 근원을 정확하게 인식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마음 속에서 과거 감히 대면하지 못한 것들을 끄집어내어 의식적으로 그것을 직시하려고 노력하고, 나아가 이성적인 심리 상태로 그것을 대할 줄 알게 된다면, 훌륭한 자성의 방식을 경험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프로이트는 정상인과 정신병자 사이에는 본질적인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무의식 세계의 시달림을 받고 심리적 억압을 느껴, 이로 인하여 모두 망견妄見(잘못 봄), 망문妄聞(잘못 들음), 망의妄意(잘못 생각함)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부터 우리 각자는 자신의 무의식 세계를 인식할 줄 알아야 하고 점진적으로 자신의 망견, 망문, 망의를 없애 나가면서 심리적 건강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 유가의 '자성' 사상은 현실 생활 속에서 심리학이 맡은 역할과 매우 유사합니다. 오늘날 <대학>,<중용>,<논어>,<맹자>등의 유가 경전... 등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중국 고대의 수신 사상이 자신의 심리를 어떻게 분석하고 조절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고대 유학자들이 현대의 심리학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유가의 자성 학설은 개개인들이 스스로의 심리치료사가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채근담>의 '야심인정독좌관심'夜深人靜獨坐觀心('밤 깊어 사람 소리 고요한 때에 홀로 일어나 앉아 내 마음을 관찰해 보면')과 같은 구절을 읽을 때에는 자아를 인식하고 자아를 조정하며 자아를 분석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옛 선비들의 정신세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 스스로 자신의 심리치료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 여러분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가장 심하게 아픔을 느끼는 것은 무엇인지, 지난 수년 동안 감히 직시하지 못한 기억은 무엇이고, 어떤 사건이 가장 참기 힘든 일이었는지를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혹은 관점을 바꾸어 무엇이 지금 가장 강력하게 자신을 지배하는 소망이고, 혹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바람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마음을 다해 생각하고 있는지, 나아가 이성적 태도로 이 문제를 대하고 근원을 찾아내어 정식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 이러한 자기 성찰은 진정으로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한결 가뿐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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