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06

Books: '살아있는 글쓰기' - 이호철



아이들의 시, 잘 들어주기



발가락

- 경북 경산 부림국교 5학년 류호철


내 양말에 구멍이

발가락이 쏙 나왔다.

발가락은 꼼틀꼼틀
지거끼리 좋다고 논다.

나도 좀 보자
나도 좀 보자
서로 밀치기 한다.

안 한다
모처럼 구경할라 하니까
와 밀어내노,
서로서로 얼굴을 내민다.

그런데 엄마가 집어서
발가락은 다시
캄캄한 세상에서
숨도 못 쉬고 살게 되었다.
(1989.10.20.)


 요즘은 여름에도 양말을 모두 신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더운 여름에 양말을 신고 있으면 얼마나 답답한가. 그래서 발에 냄새가 나고 아무리 약을 발라도 잘 낫지 않는 그 지독한 무좀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맨발로 흙을 밟으며 돌아다니면 발 건강에 매우 좋다고 한다.
 이 시에서는 양말 속의 갑갑한 곳에 갇혀 있다가 구멍난 틈으로 공기를 쐬려고 내미는 발가락의 모습들을 장난꾸러기 아이들로 의인화해서 재미있게 나타내었다. 그런데 엄마가 기워서 안쓰럽게도 캄캄한 세상, 숨막히는 세상에서 숨도 옳게 못 쉬고 살게 되었다. 양말을 시원하게 벗어 던지고 발가락 모두에게 세상 구경을 시켜 주었더라면 더욱 좋겠다. 자기의 몸인데도 좀처럼 마음을 쓰기 힘드는 발가락에 마음을 주었다는 것이 칭찬할 만하다.




설거지

- 경북 경산 부림국교 6학년 김필선


그릇에 기름이 묻어 있어
퐁퐁으로 그릇을 씻었다.
퐁퐁의 거품이
동글동글한 게 꼭 지구 같다.
내가 입으로 후 부니까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이
빙글빙글 돈다.
“우와 이쁘다!
민아, 저거 봐라!
무지개가 지구에
둘러싼 것 같제!“
“정말 이쁘다.
무지개보다 더 이쁘다.“
그걸 보면서 설거지를 하니
기분이 그냥 좋다.
(1986.6.16.)

 아름다움이라도 그 속에 뛰어들어서 몸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냥 바라만 보고 머리로 느끼는 아름다움은 조작된 아름다움이다. 그런 아름다움은 얼마 가지 않아서 싫증을 느끼게 된다. 오히려 보기 싫어진다. 땀 흘리며 일하는 가운데 문득 발견하는 그 아름다움은 영원한 것이다. 진짜 아름다움이다.
 이 시에서는 설거지를 하다가 거품에 비치는 아름다운 무지개 색깔을 발견하고 놀라워한다. 그래서 그걸 보면서 설거지를 하니 일을 해도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들에서 일하다가 문득 서쪽 하늘에서 보는 저녁 노을이나, 잠시 쉬면서 듣는 시원한 매미 소리, 아침에 소 먹이다 보는 풀잎의 이슬, 이런때 보이는 아름다움이 정말 값지다.
“우와 이쁘다!
민아, 저거 봐라!
무지개가 지구에
둘러싼 것 같제?“
이 말 속에 그 아름다움을 보며 놀라워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서문

솔직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은 깨끗하다. 거짓말할 줄 모르고 양처럼 온순하다. 그래서 거짓글을 쓰는 사람, 꾀놔 요령이나 거짓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바보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땀흘리며 일할 줄 알고, 어려움을 이겨 낼 줄 알며, 옳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강하게 대항할 줄 알고, 그릇된 일은 비판하여 올바른 길을 찾을 줄도 안다. 또한 보는 눈이 넓고, 생각이 깊고, 앞서 가서 멀리 내다볼 줄도 안다. 그것뿐 아니다. 언제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으며, 아름다운 마음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

 꾀나 요령으로, 거짓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솔직한 글을 쓸 수도 없거니와 바로 눈 앞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아웅다웅 다툰다. 남의 괴로움 따위는 모르거니와 알아도 모르는 척한다. 남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척도 하지만 정말 어렵게 더불어 살아야 할 일에는 발뺌도 잘 한다. 참되게 사는 맛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아주 불행한 사람이다.

 살다가 보면 기쁜 일, 슬픈 일, 억울한 일, 답답한 일, 따져 볼 일, 외로움, 놀라움, 신비로움... 수도 없이 많다. 아이들이 그런 것들을 글로 마음껏 풀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 글을 읽는 사람 중에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은 큰 위로가 될 것이고, 그와 같은 처지에 있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처지를 잘 이해하게 되어 결국 모두 한마음이 될 수 잇지 않겠나.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어떤가? 그런 것들을 까마득히 접어두고 지식만 주워 담는 학원에서, 텔레비전 앞에서, 전자오락실에서, 비디오 앞에서, 몹쓸 만화책 속에서, ... 잘못된 어른들의 삶처럼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아이들이 본디 지니고 있는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글을 쓰게 하고, 책을 읽게 한다면,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세상은 모두가 거짓없이 더불어 살아가는 참으로 살맛나는 세상이 됮지 않겠나.

 아이들을 글짓기 선수로 만들기 위해서 억지로 쓰게 하는 글짓기 지도가 아니라, 참되게 살아가게 하기 위한 글쓰기 지도를 해 보자. 글쓰기 지도는 문예부 교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교사나 밥 먹는 것처럼 할 수 있어야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읽는 사람이 감동할 수 있는 솔직한 글을 쓰게 하려면 우선 아이들이 굳게 닫아 놓은 마음의 문을 먼저 활짝 열어제치게 해야 한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우리 어른들은 그렇게 할 수 없도록 권위란 힘으로 아이들을 곽 눌러 꼼짝 못하게 하고 있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너그럽게 받아들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하고 싶은 말도 가슴 깊이 묻어만 두고 밖으로 마음껏 나타내지 못한다. 그러면서 마음에도 없는 말로 어른들의 마음에 들도록 겉만 번지르하게 꾸며낸다. 어른들은 이것을 보고 아이들의 참 모습이라고 착각한다. 그건 아이들 본래의 모습이 아니다. 더구나 어른들의 걱정이 아이들의 걱정이 되고 거가다가 아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걱정이 또 더해져서 무겁게 누르는데 그 마음을 풀지 못한 채 예쁜 모습, 아름다운 모습만을 꾸미도록 강요당하고 있지 않는가. 이렇게 꼭두각시처럼 시키는 대로 겉만 번지르하게 해서 아이들의 것이라고 내세우게 하지 말고, 정말 아이들의 생각을 마음ᄁᅠᆺ 드러내 보이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본 마음을 내보인 것이 어른들의 비위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어른들에게 버릇없는 어린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비밀스럽고 부끄러운 일들을 묻어 두고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깊이 묻어둔 채 굳게 닫고 있다면 과연 자신이 여러 사람들 앞에 떳떳해질 수 있을까? 어떤 부끄러운 일도 세상 사람들 앞에 드러내 놓을 수 있다면 나는 우선 그 사람이 다시 떳떳해지고 깨끗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들도 꼭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면 앞날이 아주 밝아지겠지.

 아이들이 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도록 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과 같은 모든 것, 모든 일을 사랑의 눈으로 살펴볼 줄 알게 하기 위함이다. 그 가운데서 특히 힘없고, 불쌍하고, 보잘 것 없고, 작고,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 남에게 버림받은 것들을 사랑할 줄 알게 해야 한다. 더욱이 그들의 아픔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그들을 더 자세히 관찰하고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하며, 그들의 처지가 되어보게 해야 한다. 눈으로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이 하는 일을 직접 겪게 했으면 더욱 좋겠다. 그렇더라도 자신의 일에 묻혀 사는 것만큼 마음을 다 알 수 있겠나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도록 해야겠다.

 또 한 가지, 세상 일은 아무리 감추어도 드러나게 되는 법이다. 그래, 아이들의 눈에 들어오는 세상살이는 어떨까? 그만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세상 돌아가는 대로 따라 돌아가기만 하면 될까? 거기에서 어떤 불량한 물건이 만들어져 나와도 상관없이 돌아가기만 하면 될까? 안 될 일이다. 세상에는 진정 아름다운 것도 많지만, 겉으로만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많다. 그래서 겉이 번드르하게 꾸며져 있어 남 보기에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한 번쯤은 따져 보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와 반대로 겉은 험해서 흉하게 보이나 속은 아름답고 쓸모 있는 것도 많으니 그 또한 살펴보도록 할 일이다. 이렇게 세상은 참 묘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어른들이 아주 많다. 그냥 그렇게 세상을 아름답게 보도록 아이들을 기르면 될 것이지 굳이 썩고 병든 것을 파헤쳐 보여서 무얼 배우겠느냐고, 그렇게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찍, 될 수 있는 대로 일찍 찾아내고 파헤치도록 해야 좋다고 생각하낟. 그리고 썩은 원인을 여러 가지 면으로 찾아보게 하고 그 원인에 딸 스스로 치료를 하면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자기 자신을 바르게 세우게 된다. 이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커서 제대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세상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마음의 눈을 크게 뜨도록 해야 한다.

 자세히 듣고 보도록 마음의 문을 열게 할 일이 또 있다. 가만히 들어보면 세상에 ‘꿀꿀’우는 돼지가 없다. ‘야옹야옹’우는 고양이도 없으며, ‘맴맴’우는 매미도 없다. 사람들은 무조건 ‘꿀꿀’, ‘야옹야옹’, ‘맴맴’ 운다고 머릿속에 못 박아 놓고 있다. 또 꽃이 ‘아름답다’는 말도 온세상 어느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아름답답’는 말로밖에 아름다움을 나타낼 줄 모른다면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한다. 그와 같은 생각을 ‘관념’이라거나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런 틀에서 벗어나야만 생생한 글을 쓸 수 있다.

 어려운 일이지만 어쨌든 마음의 문을 열고,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어 못 견뎌서 쓰도록 해야 한다.





자기 글의 소중함 일깨우기

진솔한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전 인격을 걸고 내면의 세계까지 고스란히 담게 된다. 그래서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 사람과 같은 글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만큼 귀중한 것이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이 자기의 미술 작품이나 글을 아무렇게나 버리거나 대수롭잖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 데나 버려서 사람들이 짓밟게 만들고 구겨서 휴지통에 처박아 넣어 버린다. 결국 자신을 짓밟아 버리고 시궁창에 처넣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도 교사는 아이들 자신의 글은 잘 되었건 못 되었건, 마음에 차건 말건 소중하다는 것을 먼저 일깨워 주어야 한다. 그것이 또 자기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자기의 글이지만 발표가 되면 자기뿐 아니라 글을 읽는 사람의 삶도 가꾸게 한다는 사실을 개닫게 해야 한다. 따라서 문집이나 그 밖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글을 발표해서 함께 누리는 기쁨도 맛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 자신이 쓴 글에는 어느 학교 몇 학년 누구라는 것과 쓴 연도와 날짜를 꼭 적어 두도록 지도하고, 아이들의 글을 어른들이 인용할 대도 그것을 꼭 밝혀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먼 훗날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이 그 시대 사정을 생각하며 읽게 되어 글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참된 사람으로 키우는 시 쓰기

 아이들이 태어나서 이 사회의 숲에서 바르게 자라는 데는 무슨 별난 교육을 야단스럽게 하지 않아도 오염된 환경만 막아 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적어도 아이들이 본성은 잃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못난 어른들은 그냥 두지 않는다. 다른 자리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교육이란 이름 아래, 싱싱하게 자라는 나무를 괜히 조그만 화분에 꼼짝도 못 하게 옮겨 가두어 놓고 제 입맛에 맞게 비틀고 잘라 놓는다. 많은 아이들이 어른이 쓴 동시의 틀에 맞추어 거짓말 재주를 부리는 것만 보더라도 이미 그 잘못된 어른들의 생각이 아이들을 얼마나 잘못된 길로 이끄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오덕 선생님이 엮은 <일하는 아이들>에 실린 아이들 시가 그렇게 싱싱하고 개끗한 것은 그 당시 농촌이 요즘처럼 오염되지 않은 탓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본성을 잃지 않은 데다 또 그것을 뜻있는 선생님이 지켜준 데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많이도 오염된 요즘, 편한 것만 찾으며 참된 눈물을 잃어버리고 얕은 웃음으로만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서는 그런 시 얻기가 아무래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이오덕 선생님이 말한 시 교육의 목표를 살펴보자.
1) 일상의 삶에서 비뚤어지고 오염된 마음을 순화시킨다. 혹은 사람의 정신을 더 높은 경지로 고양시킨다.
2) 시적인 직감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붙잡는다.
3) 참된 삶을 인식하고, 인간스런 삶의 태도를 갖는다.
4) 진정이 들어 있는 말, 진실이 꽉 찬 말, 정직한 말의 아름다움을 개닫고, 그런 말을 쓴다.
5)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갖는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참다운 인간을 키워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교육이니 어쩌니 해도 아이들의 본성을 눌러 놓고는 참다운 인간을 길러 가는 인간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아이들이 본성을 살려 마음껏 시를 쓰면서 참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잇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어른에 의해 묻은 때, 더구나 머리로 자 맞추어 쓴 시를 익히고 써왔던 때를 깨끗이 벗겨내야 한다. 그런 다음 그 때 그 순간의 생생한 감흥을 불러일으켜 감동 있는 시를 쓰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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