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06

Books: '독일 교육 이야기' - 박성숙


*책 본문중에서.



독일과 한국의 국어시험 비교


“엄마.”
“뭐?”
“저기,저...”
“뭔데 그래?”

머뭇거리는 작은아이 손에서 종이를 낚아챘다.
“독일어 시험지잖아? 삼 점이네! 못해도 이 점 이상은 받아오더니 왜 갑자기 그랬어?”
“글짓기가 너무 어려워. 잘 안 돼.”

 3학년 들어 본격적으로 작문을 배우기 시작한 작은 아이는 갑자기 어려워진 독일어 때문에 고생했다. 그래도 ‘스스로 어ᄄᅠᇂ게든 해결하겠지’ 생각하고 내버려 두었더니 점점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3학년 중간고사에서 간신히 3점을 받은 것이다.

 독일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과 비교하여 집에서 한국어를 쓰는 우리 아이는 어휘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독일 아이와 같은 수준을 글을 쓰기도 쉽지 않다. 큰아이처럼 독서를 많이 해서 글쓰기의 바탕이 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을 땐 갑자기 어려워진 수준 때문에 고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구나 작문은 독일 학생들에게도 만만치 않을 정도로 쉽지 않은 과목이다.

 ‘스스로 하는 것은 여기까지!’ 나는 역시 어쩔 수 없는 한국 엄마인 모양이다. 독일어 공부가 어려워지면서 더 이상 혼자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독서를 본격적으로 해보기로 했다. 내 경험에 의하면 독일 학교 공부를 위해서는 책읽기만큼 완벽한 훈련은 없었다. 당장 눈앞에 성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조금 늦은 감이 있다 해도 책 읽는 분위기에 익숙하게 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초등학교 4년동안 교사가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독일어 수준은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룬다. 처음엔 알파벳을 한 글자씩 1년이 넘도록 반복 또 반복하며 배운다. ‘이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책을 읽을 수 있을ᄁᆞ?’라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기초만 다진다. 그러다 어느새 졸업학년인 4학년이 되면 아이들은 이미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한 짤막한 글 한 편 정도는 거뜬히 쓰는 실력이 된다.

 초등학생이 독일어 공부에 돌입하는 시기는 작문을 배우는 3학년부터다. 3학년 1학기 때 작은아이의 독일어 중간고사 문제중의 하나는 그림4장을 보고 이야기를 써내는 것이었다.
이 글은 상상력을 담고 있어야 하며, 내용에 어울리는 제목을 붙이고 도입과 결말과 클라이맥스가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 거디다 형용사와 부사를 적절하게 사용하고 문장의 시작을 중복되지 않게 쓴다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시험에서 문법과 맞춤법이 내용 전개보다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김나지움 고학년과 기본적인 평가기준은 대동소이하다.

 독일어 시험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작문 위주로 바귄다. 독일어뿐만 아니라 영어, 사회, 과학과목ᄁᆞ지 모두 같은 유형의 문제가 주를 이룬다. 독일 공부가 겉으로 느슨해 보인다고 만만하게 생각했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어느 정도라도 성적을 유지하려면 수박 겉핥기식의 암기로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대학에나 가야 볼 만한 깊이 있는 문제가 이곳에서는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김나지움에서 다뤄지기 때문이다.

 김나지움 10학년때 큰아이의 학기말 독일어 시험문제는 <만약 상어가 인간이 된다면>이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유명한 우화를 읽고 분석, 비평하는 문제였다. 두 시간 동안 A4용지 5장 분량의 작문을 통해 우화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글에 숨겨진 교훈을 찾아낸 뒤 이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써야 한다.

 문제도 쉽지 않지만 답안지를 보면 더욱 놀라게 된다. 엄청나게 복잡한 데다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선생님의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다. 게다가 답안지 끝에는 항상 “많이 좋아졌구나! 앞으로 계속해서 이렇게 하기 바란다.‘라든가 ’이번엔 좀 어려웠나보구나. 다음에는 더 노력해서 좋은 성적을 내도록 해라!‘등 아이에게 남기는 짤막한 메시지까지 적혀 있다.

 도대체 수십 장의 시험지를 이렇게 하나하나 채점하려면 일이 얼마나 많을까. 아이가 독일어나 영어 답안지를 받아오면 한 장 가득 세분하여 매겨진 점수판에 놀라다가, 토씨 하나 건너뛰지 않고 잡아내려는 흔적이 역력한 빨간 글씨를 보고는 입을 딱 벌리고 만다. 독일 선생님은 일한다고 물만을 놓다가도 시험지를 받아보면 투덜거릴 수가 없다.

 독일은 긴 겨울방학이 없는 대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등 분기별 시험이 끝나면 2주 정도 단기 방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마다 채점하는 데 워낙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교사들은 여름방학을 제외하면 아예 휴가는 생각할 수도 없다고 한다. 컴퓨터에 답안지를 집어넣기만 하면 전교 석차까지 자동으로 계산되어서 나온다는 한국의 교사가 독일 교사보다 이 부분에서만은 편하겠다.

 나는 큰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한국과 독일 국어교육의 차이점을 정확하게 경험했다. 세 살 때 독일에 와서 하루도 쉬지 않고 내가 아이를 위해 신경 쓴 부분은 다름 아닌 한국어였다. 자신 있게 가르칠 만한 과목이기도 했고, ‘언어를 완벽하게 하나 더 구사한다면 아이 인생이 얼마나 더 풍요로워질까’ 생각하니 힘들기는 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한국어는 집에서 계속 사용한다는 장점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한국 문제집을 구해다가 차례로 배웠고, 지금은 중학교 1학년 2학기 과정인데 아이는 이제 한국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간다고 느낄 만큼 요즘 들어 부쩍 어휘가 다양해지고 대화 수준도 제법 어린아이 수준을 벗어나고 있다.

 하지만 한글공부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려고 하루에 20분 이상을 넘기지 않으려다 보니, 같은 학년의 진도를 따라가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저학년 때는 그래도 어느 정도 되는가 싶었지맍 고학년에 가니 학교 공부량도 많아진 데다 수준이 점점 높아져서 이제는 겨우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만 유지할 뿐이다.

 그래도 지금 중학교 1학년 2학기 문제집을 푸는 아이가 평균 90점 이상의 점수를 받는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다. 그런데 텍스트를 써보라고 하면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문장도 흉내내지 못할 정도로 어려워한다는 게 더 신기하다. 문제집을 풀 때면 한국 시험이 식은 죽 먹기라며 너스레를 떨었는데 말이다.

 논술 공부라는 말이 없었던,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닌 시절에는 국어시간에 글 한 줄 써보지 않았고, 시험도 정답 번호를 찍기만 하다가 졸업했다. 큰아이를 통해 당시 우리의 국어 실력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러니 우리 시대에는 명문 대학을 졸업했어도 편지 한 장 제대로 못 쓰는 사람이 허다했던 것이다.

 독일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된 작문시험이 대입시험까지 이어진다. 물론 저학년에서는 문법과 맞춤법이 중요시되기는 하지만 6학년만 되면 이미 독일어 시험에서 문법은 사라지고 오직 작문 실력이 평가기준으로 남는다. 독일 학교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가장 어려운 과목이 독일어이다. 충분한 독서량과 논리적인 사고와 창의적인 생각이 동시에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가기가 힘드랃.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글쓰기는 달달 외운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단기간에 들입다 판다고 될 일도 아니다. 아비투어에서 독일어 시험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13학년까지 체계적으로 연습하고 훈련해서 마지막으로 치르는 논술 시험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학생들 대부분이 시험을 위해 단 한 번의 과외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논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요즈음 한국 학교에서는 글쓰기를 어떻게 지도하는지 궁금하다. 설마 학우너에 모든 것을 의학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여기에 생각이 이르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설마 그럴까....






명문 대학 없는 독일


 한국에서 대학이 평준화된다면, 서울대학이 없어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독일 학생이 경쟁에 찌들지 않고 여유롭게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바로 명문 대학이 없다는 데에 있다. 그들은 중고등학교 때는 함께 어우러져 사회성과 인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고, 대학에 진학한 후에야 비로소 공부다운 공부를 시작한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독일의 베를린 공대나 하이델베르크대학, 아헨 공대는 정작 족일인에게는 관심 없는 이름이다. 학생이 대학을 먼 도시로 가는 경우는 자신이 원하는 학과가 지금 사는 곳의 대학에는 없다거나 경쟁자가 유독 많아 인근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을 경우지, 대학 이름을 찾아 이사까지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다는 것은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별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처음 독일에 왔을 때는 나도 이 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교육열에 불타는 젊은 한국 엄마라면 모두 자기 아이가 어릴 때는 천재라고 착각하듯 나도 그랬나 보다. 아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1등만 할 것 같은데 공부를 잘해도 보상이 없다는 독일 교육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는 대학평준화 때문에 아이가 풍요로운 청소년 시절을 보낼 수 있다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학평준화는 비인간적인 경쟁을 조장하지 않는다. 대학도 중고등학교처럼 공부를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고르게 입학한다. 독일 대학에는 학과마다 몇몇 수재가 눈에 띈다. 그들이 한국에서라면 명문 대학을 갔으 학생이고, 독일을 이끌어갈 인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대학 이름으로 일류와 이류로 나뉘지 않는다. 어느 학과를 졸업했느냐가 중요하지 어느 대학이냐는 진로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 간 교류와 이동이 자유롭다.

 또한 전체 대학이 고른 수준을 유지한다. 한국이나 일본, 미국 등 여타의 나라처럼 1등만 입학할 수 있는 명문 대학이 없나는 뜻은 인재가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가 <더타임스> 세계대학평가 발표에도 잘 나타난다.
2009년에 발표된 <더타임스>의 세계대학평가에서 한국은 4개 대학이 200위에 들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끊임없이 교육에 투자한 결과가 이제 서서히 수치로 나타나는 것이다. 순위 안에 든 4개 대학은 잔치 분위기 속에서 총장의 리더십이 뛰어났다거나 대학혁신의 결과라는 등 자화자찬에 열을 올렸다.

 그럼 독일은 어떨까? 독일은 가장 우수한 대학으로 평가받은 뮌헨대학이 55위에 그치면서 선진국 중 50위권에 든 대학을 하나도 배충하지 못하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20세기 초 독일이 누렸던 학문적 명성은 빛바랜 추억이 되었다. 그런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ᄁᆞ?
이해를 돕기 위해 비영어권 나라 중 관심 있는 몇몇 나라를 중심으로 표를 만들어 보았다.
표에 나타난 결과로 보면 독일은 강대국 중 유일하게 50위권에 대학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물론 도표 상으로는 참담해 보이겠지만 독일 교육제도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결과가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그런 제도를 유지함에도 200위 안에 10개나 되는 대학이 들었다는 것이 놀랍다.

 50위 안에 든 대학은 없었지만 뮌헨공대를 시작으로 괴팅겐대 등까지 10개 대학이 크게 수준차이를 보이지 않으면서 200위 안에 진입했다.

 한국은 서울대학이 47위를 했고 독일은 뮌헨대학이 그보다 못한 55위를 했지만 이 결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봐야 한다. 서울대학은 한국 최고의 수재를 한 곳에 모아 집중적으로 투자해 얻은 결과지만 뮌헨대학은 바이에른 지역을 대표하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몇몇 학과가 약간 유명할 뿐 다른 대학과 큰 차이가 없는 평범한 대학일 뿐이다.

 교육 관련 글을 쓰면서 독일 부모나 선생님을 만나면 집중적으로 교육 이야기를 한다. 내가 만난 모든 독일 선생님과 학부모는 대학 때문에 먼 곳으로 떠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독일은 전체적으로 대학 수준이 고르며, 중간으로 갈수록 두터워진다. 또한 500위 안에 든 대학이 영구 다음으로 가장 많은 나라다. 인재의 고른 분포와 주 정보의 공편한 지원이 대학의 전체수준까지끌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대학평준화는 입시 경쟁을 해소하기 위한 해법만은 아니다. 인재가 더나지 않고 지역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진정한 지방자치제를 이루는 근간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독일인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태어난 도시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을 졸업하여 그 도시의 직장에 다닌다.

 도시라고 해도 한국의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를 의미하지 않는다. 인구 30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에 사는 독일인의 일생도 마찬가지다. 내거 거주하는 아헨은 대학도시기이 때문에 경제시설이 부족한 관계로 밥벌이를 위해 떠나는 사람이 있지만, 어쨌든 독일인은 태어난 곳에서 계속 살며 공부하고 일하는 삶을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한다. 알다시피 한국에서는 시골이나 소도시의 수재가 고향에 남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독일은 이렇게 좋은 제도를 가졌으면서도 대학의 줄세우기를 무시할 수만은 없는 듯 2006년부터 국제경쟁력을 키운다는 명분으로 엘리트 대학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다. 현재 아홉 개 대학이 선정되었고 차례를 기다리는 다른 대학도 있지만 이 정책이 실효를 거두는지 구체적인 결과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또한 ‘몇몇 엘리트 대학을 만들기보다는 전체적인 대학의 질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과연 엘리트 대학 양성이 한국처럼 극심한 입시경쟁을 유발할지 미지수다.

 정부의 적극적인 움직임과 달리 국민은 시큰둥한 입장이라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대학은 크게 없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꾸준히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독일에도 국제경쟁력에서 앞서가는 명문 대학이 생길 것이다. 그날엔 독일도 세계대학평가 순위명단 상위권에 진입하겠지만 그것을 위해 학생은 무엇을 내주어야 할까?

 아마도 학생들은 학교 수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성적을 올려 명문대를 가기 위해 과외를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교육 시스템이 발 빠르게 성장할 수밖에 없다. 과외를 받은 학생과 받지 않은 학생 간에 차이가 발생할 테고 고액과외비를 낼 만한 부자의 자녀들이 명문 대학에 많이 입학할 것이다. 이미 사회는 명문대 출신이 아니면 잉여인간 취급을 하고, 기업 또한 골치 아프게 인성이니 능력이니 따질 필요 없이 일단 명문 대학을 나온 이를 먼저 채용한다. 아, 이것이 바로 한국의 모습이 아닌가.

 유급 위기에 처하지 않고는 과외가 필요 없는 지금의 독일 학생은 여행을 즐기고 운동이나 음악활동 등 다양한 취미생활을 통하여 젊음을 만끽한다. 명문 대학이 있다면 그런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 생활을 계속해서 영위하는 사람은 이미 청소년기에 인생의 낙오자로 낙인찍힐 테니 말이다.

 어느 지역 어느 동네에 살든지 수준이 비슷한 대학에 진학하는 일은 옛날이야기가 되어, 명문 대학이 없는 고시는 엘리트들이 모두 명문 대학을 찾아 떠났기 때문에 점점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독일은 상상만 해도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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